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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구타, 고문, 강간으로 얼룩진 관타나모

by 이윤기 2009.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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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마비쉬 룩사나 칸이 쓴 <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


미국법도, 국제법도 적용받지 않는 지구상에 유일한 무법지대. 마치, 세계 불가사의를 소개하는 것 같은 이곳은 바로 쿠바 관타나모에 있는 미군기지에 속한 수용소 입니다.

관타나모는 미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지만, 미국이 아니기도 하고 또한 미국이기도 한 땅 입니다. 지난 봄에  은 <촘스키, 변화의 길목에서 미국을 말하다>에 나와 있는 관타나모 이야기를 소개해봅니다.

"미국의 대법원은 관타나모에 수용된 사람들에 대해 법을 적용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그 이유는 관타나모가 미국의 관할권 아래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입니다. 부시 정부와 미국 의회도 관타나모가 국제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합니다. 결과적으로 관타나모는 아주 편리한 고문실이 되었지요."

미국법도 국제법도 적용받지 않는 ‘무법천지’

미국의 양심적 지성이라고 불리는 '노엄 촘스키'의 이야기입니다. 부시정부 당시 미국은 은 관타나모 기지를 자국의 국내법이나 국제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우기면서 가둬두고 싶은 죄수를 수용하기 위한 장소로 사용해왔습니다.

촘스키는 관타나모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조차도 필요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미국 정부가 사람들을 관타나모 수용소로 보내는 것조차 국제인권법을 위반하는 불법 행위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 후인 지난 2월 당시 관타나모 수용소에는 245명이 수감되어 있었고, 신임대통령이 수감자들에 대한 군사재판 중지를 요청하였는데, 군사법원 판사가 행정명령을 거부하였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최근 뉴스를 살펴보면 오바마 대통령은 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년 초까지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려는 모양입니다. 수감자 중 일부를 국외로 내보내는 조처도 단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여대생의 관타나모 기록

<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는> 아프가니스탄계 이민 2세 미국인 ‘마쉬비 룩사나 칸’이 쓴 관타나모 체험기입니다. 마비쉬 룩사나 칸은 미국 미시간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입니다. 마이애미대학 로스쿨에 다니며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법적인 일에 분통을 터뜨리던 그녀는 2006년 1월 수감자들을 위한 통역자원봉사에 나섭니다.

FBI의 6개월에 걸친 철저한 신원조회를 거쳐 관타나모에 들어간 그녀는 통역뿐만 아니라 제한적인 변호업무도 맡게 되고 증거 수집을 위해 위험한 아프가니스탄으로 단신출장까지 다녀옵니다.

마비쉬 룩사나 칸이 통역 자원봉사를 위해 관타나모 수용소에 들어갈 무렵 그 곳에는 760여명이 수용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2006년 당시 언론 보도에는 테러단체의 ‘전사’로 분류된 8%의 수감자를 제외한 대부분이 단순 가담, 혹은 관련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수감자 절반 이상이 미국과 동맹국에 대한 ‘적대행위’와 무관하다는 것이 국방부 비밀해제 보고서에 기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2002년 이후 760명의 포로가 수감됐고, 그중 180명을 방면했고 76명을 다른 나라의 구금시설로 이첩되었다고 하니 <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를 쓴 마비쉬 룩사나 칸이 관타나모에 들어가기 시작한 2006년에도 500여명 이상이 구금되어 있었던 것 입니다.

마비쉬는 2006년부터 관타나모 수감자들을 만나지만, 그녀가 만난 사람들 중에 끔찍한 테러리스트들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예산과는 달리 자신의 아버지를 닮은 소아과 의사 ‘무소비’, 보행기가 없으면 운신도 못하는 여든 살이 넘은 중풍 환자 ‘누스랏 칸’, 자기 집 상수도 때문에 사촌과 싸우다 붙잡혀온 염소치기 청년 ‘타즈’와 같은 평범한 청년을 만나게 됩니다.

“무소비는 자기가 왜 관타나모에 끌려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무소비는 탈레반이나 알카에다 조직원을 고발하면 지급하는 25,000 달러의 현상금을 받기 위해 누군가 자신을 미국에게 팔아넘겼다고 믿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막대한 미군 보상금에 팔려온 평범한 수감자들

실제로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살포한 전단에는 누구라도 탈레반이나 알카에다 조직원을 신고하면 5000 ~ 2,5000 달러를 준다고 홍보하였다는 것이다. 2006년 아프가니스탄 일인당 국민소득이 300달러였음을 감안하면 포상금은 83년간 뼈 빠지게 일해야 벌수 있는 로또 당첨이나 다름없는 금액이었다고 한다.

결국 막대한 현상금이 종교족, 이념적, 정치적 혹은 개인적 원한을 가진 동족 사람들을 고발하게 만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군벌들과 지역민들이 미끼를 향해 달려들었고, 파키스탄에서는 인신납치의 암시장이 형성되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파키스탄 경찰, 국경수비대, 주민들 모두 큰 액수의 현금에 눈이 멀어 수백 명의 사람들을 붙잡았고 심지어 무샤라프 대통령 회고록에도 기록된 일이라고 한다. “그의 정보기관들이 미국 CIA 포상금에 대한 대가로 369명을 미군에게 넘겨주었다"고 썼다는 것이다.

국제 엠네스티 보고서에 따르면 관타나모에 끌려간 사람의 2/3은 파키스탄에서 붙잡혔고, 미군에 팔려가기 전에 좀 더 탈레반처럼 보이도록 수염을 기르게도 하였다는 것. 뿐만 아니라 아랍인 출신의 쿠웨이트인이나 위구르족으로 알려진 중국계 무슬림 수감자들은 파키스탄이나 아프가니스탄 군벌들에게 배신당하고 팔려왔다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미군이 알카에다와 탈레반 용의자들을 넘겨주는 대가로 현금을 뿌리고 있을 때 파키스탄 경찰과 아프가니스탄 군벌에 의해 체포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수감자 중에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혹은 카시오 시계를 차고 있다는 이유로 붙잡혀 간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한편, 알카에다나 탈레반이라는 누명을 쓰고 체포된 이들은 미군에 넘겨진 후에도 무고한 사람인지 아닌지 조사한 번 받지 못하고 관타나모까지 끌고 왔다고 한다. 그러나, 미 국방부는 결백한 사람들이 팔려왔을 가능성을 일축하였고, 럼스펠드는 수감자들을 ‘최악 중의 최악인 자들’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나중에 AP통신이 공개한 관타나모 관련 정보에 따르면, 517명에 이르는 관타나모 수감자 중에서 5%만이 미국 정보당국이 직접적 노력하여 체포하였고, 86%는 미군에 의해 체포된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아비쉬 칸을 비롯한 관타나모 수감자들을 지원하는 변호사들은 한결같이 “누가 결백한지는 잘 모르지만, 그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 주장을 내놓고 있는 것 입니다.

관타나모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일부 수감자들은 구타와 폭력, 비인간적인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기도 하며, 또 다른 수감자들은 종교적 권리와 기본권을 지키기 위하여 단식투쟁을 벌이다가 강제급식을 비롯한 온각 가혹행위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알 자지라 방송국 기자 ‘알 하즈’의 체포와 구금, 고문은 대표적인 사례였으며, <345번 수감자>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경없는 의사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가 그의 석방을 위해 노력한 덕분에 2008년에 석방되어 알자지라 방송에 복귀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관타나모로 끌려오는 동안, 그리고 관타나모에 수감된 동안 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구타와 폭력 그리고 인간적, 종교적 모욕을 받으며 거듭 실패하면서도 자살을 선택합니다. 바레인 출신 수감자 ‘주마 알 도사리’도 그런 경우입니다. 그는 성적인 학대와 악랄한 조사를 견지지 못하여 2002년부터 여덟 차례나 자살을 시도하였다고 합니다.

“바닥에 넘어질 때마다 군홧발이 날아들었다. 도중에 기절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그의 머리 위에 군화가 얹혀있었다... 같은 병사가 몸 위에 올라서서 자신의 몸에 오줌을 싸고 있었다. 그 병사가 알 도사리의 머리채를 한 줌 잡더니 입술이 터질 때까지 발로 얼굴을 찼다. 그 병사는 눈과 코 그리고 성기 같은 민감한 부위만을 노렸다.” (본문 중에서)

“군인들은 그를 죽이겠다고 위협하면서 맨발로 철조만이나 유리조각 위를 걷게 했다. 그의 코도 부러졌다. 한 번은 특히 심하게 구타를 하더니 수감자들에게 옷을 벗으라고 했다. 군인들은 발가벗고 망가진 수감자들을 사진과 동영상에 담았다.” (본문 중에서)

어느 날은 뜨거운 물을 쏟아 부었고, 또 어느 날은 핸드폰 처럼 생긴 기구로 전기 충격을 가했으며, 수염수염을 한올 한올 뽑거나 잠을 재우지 않을 뿐 아니라 오랜 시간 같은 자세를 유지하도록 강요하고 맨발에 담뱃불을 껐는 것과 같은 가혹 행위가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십대의 아프가니스탄 형제 하나가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그의 족쇄를 잡아당기고 있었고 그는 발가벗은 채 엎드려 있었습니다. 한 병사가 그를 뒤에서 성폭행 했습니다. 또 다른 병사는 그 장면을 비디오테이프에 담고 있었습니다.” (본문 중에서)

알 도사리는 수 백 번이나 총으로 위협 받으며 심문을 당하였으며, 군인들에게 강간을 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동료병사가 촬영하는 가운데 생리중인 여자 조사관으로부터 강간을 당하고, 생리혈을 가슴과 얼굴과 수염에 바르는 잊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하기도 합니다.

도저히 믿기 힘든 이런 고문은 관타나모뿐만 아니라 이라크 감옥 아부 가리브에도 벌어졌고 그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기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군의 추악한 범죄 행위를 세계인들이 주목하게 되었지요. 마비쉬에 따르면 모든 수감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이슬람에 대한 종교적 모욕이 반복 되었고, 어떤 수감자는 18개월 동안 단 한 차례도 햇빛을 보지 못하고 지낸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 무엇을 잘못하고 있나?

<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를 쓴 마비쉬 룩사나 칸은 관타나모 수감자 중에는 분명 테러와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있지만, 적어도 자신이 만난 어떤 아프가니스탄 수감자들도 미국에 대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믿는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아프가니스탄 군벌을 위해 일했을지도 모르고, 어떤 이들은 탈레반 밑에서 일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이 미국 법률 하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는 것 입니다.

그녀는 관타나모에 갇혀 있는 수감자들을 만나면서, 그들 누구라도 내 아빠나 다른 이들의 아빠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동안 만난 관타나모 수감자 중 많은 사람들이 석방되었으며 그녀는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찾아 그들과 다시 재회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관타나모에는 여전히 어떤 법률로도 보호받지 못한 채 “누구도 기소 없이 투옥되어서는 안 되고 모든 사람은 공정한 재판을 통해서 자신을 방어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입니다. 책을 끝내며 그녀는 설령 ‘어떤 사악한 사람들이라도 공정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독자들에게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 - 10점
마비쉬 룩사나 칸 지음, 이원 옮김/바오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