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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9 00:01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은 뒤에 생긴다

<여럿이 함께>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다섯 지식인 신영복, 김종철, 최장집, 박원순, 백낙청의 강의를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이 엮어낸 책이다.

<프레시안> 창간 5주년을 기념하여 2006년 9월부터 11월까지 진행한 연속 기획 강연을 책으로 묶은 것이며, <프레시안>이 출판사업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낸 책이기도 하다.

‘프레시안북’은 그날그날에 주력할 수 없는 한계를 넘어 좀더 근본적인 문제와 장기적인 과제에 접근하기 위한 시도라고 한다.

이러한 기획의도를 반영하여 좀 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소통의 방법과 언론의 역할(신영복), 물질적 성장만을 향한 개발주의를 극복할 방법은 없는가(김종철), 시민들에게 더 나은 삶을 주는 민주주의는 어떻게 가능한가(최장집), 인간적 성숙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박원순), 화해와 공존 통일을 위해 시민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백낙청)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신영복] 낮은 곧을 향해가는 사회통합 '하방연대'

신영복 선생의 강연에서 마음에 닿은 대목은 프란시스 골튼이라는 학자가 겪은 일화를 소개하는 대목이었다. 시골장터에서 800명의 사람들이 모여 황소 한 마리를 놓고 소의 몸무게를 맞히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골튼은 아무도 몸무게를 맞추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의 예상대로 정확하게 맞힌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이 적은 숫자의 평균을 계산하였더니 실제 황소무게와 1파운드 밖에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단 한사람도 맞히지 못했지만, 여러 사람의 판단이 모이니까 정확한 무게를 맞힐 수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얼핏 보기에 어리석어 보이는 대중의 생각 속에는 문제를 꿰뚫는 지혜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은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은 뒤에 생긴다”고 한다. 여럿이 함께 가야 할 목표는 이렇게 생겨난 길 위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의 강연에서 ‘소통’을 위한 갈래 중에서 가장 마음에 닿는 부분은 사회통합에 관한 내용이다. 어떤 사람인지 관대한 사람인지 오만한 사람인지를 알아보려면 그 사람보다 약한 이들, 낮은 곳에 있는 이들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된다고 한다.

“어떤 사람에 대해 알고 싶으면 그보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이야 말로 세상을 가장 잘 들여다보는 사림일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 중에서)

그는 사회통합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은 항상 아래로 낮은 곳으로 흐르고, 가장 큰물, 가장 낮은 물, 모든 것은 다 받아들이는 물이 바로 바다라는 것이다.

따라서 소통을 통해 이루는 사회통합은 낮은 곳, 약한 자와 연대해나가는 하방연대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아래가 아닌 위를 향하는 통합이나 연대는 추종이나 야합이 되기 십상이라는 것, 아래를 향하지 않은 연대는 자칫 자신들보다 약한 세력에 대해서는 매우 오만한 모습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종철] '타이타닉호'서 뛰어내리는 것 두려워하지 말아야

김종철 선생은 한미FTA를 경제적 문제를 넘어서는 철학적, 도덕적 문제라고 말한다. 그는 강연을 통해 성장주의 패러다임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인가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이반 일리치를 인용하면서 성장주의 패러다임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삶이란 거창한 구조물을 건축하거나 뛰어난 문화재를 남기거나 하는 그런데 있는 것이 아니라, 풀뿌리 민중이 자신의 이웃과 함께 일하고, 서로 돕고 보살피는 가운데서 생을 즐기는데 있습니다.” (본문 중에서)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경제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공유지의 사적 점유야말로 민중의 평화를 깨는 가장 원천적인 폭력에 해당된다는 것. 따라서 세계 민중이 평화를 되찾으려면 무엇보다도 민중의 자립적, 자치적 삶의 기반을 파괴하는 경제발전 논리를 배격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이반 일리치의 생각이었다고 한다.

오늘날 상당수 진보적 지식인들이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체제를 우리의 발전 모델로 전망하지만, 사민주의가 경제성장 극대화를 기반으로 한다고 할 때, 임박한 생태적 위기 상황에서도 과연 유효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보야 한다는 것.

많은 전문가들의 예측대로 2010년을 전후해서 석유생산정점이 현실화되면, 석유가격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폭등할 것이고, 석유기반 산업경제부문은 대재앙에 직면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김종철 선생은 FTA와 같은 잘못된 정책 방향을 바꾸기 위하여 열심히 싸워야하지만, 동시에 ‘타이타닉호’에서 뛰어내릴 준비를 하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탄 배가 타이타닉호가 아니라고 고집부리는 사람을 다 구할 수는 없으니, 결심한 사람들부터 뛰어내리기 시작해야 한가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농업문제 전문가 윈 티에쥔을 인용하며 “동아시아 국가들 - 중국, 한국, 일본은 근본적으로 소농에 기반을 둔 농업 중심 국가로 가야만 장기적으로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공업화 추구를 통해 식민주의를 바탕으로 성장한 서구 선진국을 쫒아가는 정책은 대외적으로 다른 민족에 대한 억압과, 대내적으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을 구조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최장집] 새로운 정당, 중산층과 서민 아우르는 대안 필요

한국사회에서 민주화 운동이 민주정치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최장집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경우 집권세력과 민주화세력의 괴리를 지적한다. 민주화 세력이 집권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정착된 것이나 한미FTA가 추진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한다.

또한 민주화운동의 영향으로 “정치를 도덕적으로 접근하려는 특성이 강하고 이것이 정치와 정당에 대한 불신을 갖게 하는 동시에 시민운동의 효능을 상대적으로 과도하게 강조하는 경향”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적 대표 체계의 중심적 매카니즘인 정당에 의한 참여, 정당에 의한 대표, 정당에 의한 책임 구조를 튼튼히 하는 것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아울러 현재 우리 사회 민주주의 발전이 지지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87년 이후 운동 세력이 정당조직으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개혁을 안한다고 비판하면, 다 조중동 때문이라고 답하는 것이나, 정부를 비판하면 보수세력을 도와주는 것이니 하지 마라라고 말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정부의 책임을 언론이나 의회 안팎의 보수 세력 탓으로 돌리는 식이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습니다.” (본문 중에서)

민주주의에서 주권자는 투표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대표에게 위임하고, 다수표를 얻은 정부는 다수 유권자의 요구를 실현해가야 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최장집 선생의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판이다.

리더십에 대해서는 민주노동당과 민노총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두 조직의 민주적 리더십은 곧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것만으로 제한되는 것 같고, 지도부 임기는 지나칠 정도로 짧다는 것이다.

정당으로 발전하려는 운동세력은 계급적인 관점에서만 접근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저는 보편성을 갖는 이념과 함께 서민과 중산층을 아우르는 방향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진보적 자유주의로부터 사민주의에 이르는 넓은 대안 속에서 노동 문제를 포괄하는 대안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본문 중에서)

신자유주의 가치를 부정하더라도 신자유주의 체제를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타이타닉호에서 뛰어내리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하는 김종철 선생의 제안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한편, <여럿이 함께>에는 정당정치 강화를 해법으로 제시한 그의 대안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조희연 교수의 비판적 의견도 소개되어 있다.

[박원순] 젊은이와 은퇴자의 블루오션, 시민운동

"시민운동은 불루오션이다"는 이야기는 소셜디자이너(Social Designer)  박원순 변호사가 이 책뿐만 아니라 여러 강연에서 빠지지 않고 하는 이야기이다. 그는 시민운동이란 온 국민이 박수치고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과제에 매달리는 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비판, 반대, 고난, 위기 속에서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시민운동이 ‘위기’에 주목하기보다 블루오션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것.

시민운동을 블루오션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그의 해법은 복잡하지 않다. 첫째, 지역, 삶의 현장, 커뮤니티에서 씨를 뿌리는 운동, 한 주제를 가지고 평생을 바쳐하는 운동이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 둘째, 남들과 다른, 타 단체와 다른 새로운 아젠다를 발굴하는데 주목 할 것, 국제적인 활동에 주목할 것,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시민단체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는 사회적 다양성이 더욱 확대되기 때문에 다양한 이슈와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시민운동이 더 많이 생겨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새로운 시민운동은 젋은이와 은퇴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는 블루오션이라는 것이다.

[백낙청] 제3당사자가 통일준비'에 나서야

지난 10월 남북정상회담으로 한반도 상황이 여러 가지로 변화되었지만, 백낙청 선생이 주장하는 ‘한반도식 통일’해법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이번 강좌에서 그는 남북관계의 제3 당사자로서 ‘남녘 시민’의 역할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제3당사자란 남한의 기업, 정당, 사회단체, 종교조직, 개별시민 등 복잡한 구성이지만, 한반도 통일문제를 남북당국에게만 혹은 6자회담과 같은 틀에만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6자회담 체제에서는 제7당사자, 남북관계에서는 제3당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

그 이유는, 한반도 통일은 베트남식 무력통일도, 독일식 흡수통일도 그리고 예멘식 담합통일도 아닌 다른 방식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점진적 통일방안은 여러가지 위험 요인이 내재, 외재 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어떠한 권력이양도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 권력의 속성이기 때문에 제 3당사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무력통일은 한반도 주민 거의 전부가 거부했고 일방적 흡수통일에는 주민 다수와 적어도 한쪽 정권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으며 협상통일도 당국자들끼리의 담합으로는 도저히 안 될 정도로 ‘제3당사자’의 비중이 커진 상황에서... 국가연합이라는 해법이 제시된 이상 당국간 교류 협력 외에도 민간 차원의 다각적인 준비가 필요함은 물론, 준비가 무르익었을 때 밑으로부터의 압력이 가해짐으로써만 그 목표가 달성될 것이다.”(본문 중에서)

신영복, 김종철, 최장집, 박원순, 백낙청 강연과 토론을 엮은 <여럿이 함께>는 일관된 주제를 다루고 있지 않지만, 우리시대의 근본문제에 대한 ‘성찰’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모두 연결되어 있다. 친구와 동료들과 혹은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고 토론하기에 딱 좋은 책이다.

<여럿이 함께> 신영복, 김종철, 최장집, 박원순, 백낙청 - 프레시안북/ 235쪽,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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