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김영준이 쓴 <히말라야 걷기여행>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을 이것저것 메모해본 일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백두산 정상에 오르기, 내 손으로 집지어 보기, 농사지어서 자급 자족해보기, 완전채식주의자로 살아보기, 매년 100권 이상 책읽기, 책 한 권 쓰기 같은 것들입니다.
어떤 것은 이미 이루어진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아직 요원한 것들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늘 아주 가까이 다가왔다가 멀어지고, 다가왔다가 멀어지는 것이 있는데 바로 ‘히말라야트레킹’입니다.
재작년,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다녀온 지인이 준 사진을 테이블 유리에 끼워놓고 ‘꼭 가보리라’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마침 그 해 김남희가 쓴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여행 4>권, ‘네팔 트레킹’편을 읽을 때는 마음은 벌써 히말라야를 걷고 있었습니다.
김남희가 쓴 책을 제가 일하는 단체에서 함께 읽는 ‘이달의 도서’로 선정하여, 여러 회원들이 함께 읽으며 히말라야트레킹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여러 사람이 짧게는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시간을 내서 함께 히말라야트레킹을 떠나는 것은 마음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작년 봄, 안타푸르나로 떠나는 트레킹팀에 합류할 기회가 있었지만, 역시 단체 일 때문에 훌쩍 떠날 수 없어 마음속에 아쉬움만 묻어두고 훗날을 기약하였습니다. 수개월 동안 중국을 거쳐 네팔을 여행하고 돌아온 선배와 히말라야트레킹 약속을 하였지만 막상 실행은 요원해보입니다.
그러다 일상의 삶에 묻혀 히말라야는 마음속 깊은 곳으로 조금씩 묻혀갔습니다. 그후 약 1년 동안 히말라야로 떠나는 꿈을 꾸지 않고 지냈습니다. 여름휴가를 함께 보낼 책을 고르다가 김영준이 쓴 <히말라야 걷기여행>을 만나면서 만년설이 덮인 설산을 향해 오르는 모습을 그려보기 시작하였습니다.
8월, 몬순 우기에 떠난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
오랫동안 히말라야를 꿈꾸던 생활인 김영준은 마침내 2009년 8월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왔다고 합니다. 흔히 히말라야를 트레킹하기에 좋은 계절이라고 알려진 3~4월, 10~11월이 아닌 몬순 우기로 거의 매일 비가 오는 8월에 쿰부히말라야 코스로 다녀왔다고 합니다.
그가 쓴 <히말라야 걷기여행>은 2009년 8월 몬순 우기에 보름 동안 쿰부히말라야를 트레킹 한 기록입니다. 카트만두에서 비행기로 이동하는 해발 2840미터 ‘루클라’에서 출발하여 13일 만에 해발 5550미터 카라파타르까지 걸어서 다녀온 기록입니다.
그가 히말라야트레킹 여정을 꼼꼼하게 기록한 것은 보통 사람들이 기피하는 8월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8월에 히말라야트레킹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자료가 될 수 있도록 최대한 자세히 기록으로 남겼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는 그가 걸었던 길과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 그리고 그가 묵었던 숙소(롯지)와 그가 먹은 음식과 음식값에 이르기까지 아주 상세한 기록이 담겨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그와 같은 코스로 쿰부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난다면 매우 유익한 안내서가 되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입니다.
“네팔 정부에서는 6000미터가 넘는 산에 오르는 것을 등산이라고 정의하여 입산료를 많이 받고, 그 이하의 길을 걷는 것은 트레킹이라고 하여 아주 저렴한 요금만 받는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려면 1인당 수천만 원의 입산료를 내야하지만 쿰부 트레킹은 단돈 2만원만 내면 된다.”
“아침은 밀크커피 한 잔과 달걀을 곁들인 티베트 빵(250루피, 4250원)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달걀이 곁들여지면 음식 값이 비싸진다.”
“10분쯤 걸었을까. 몬조를 막 벗어나자 국립공원 관리소가 나타났다. 여권을 체크하고 1000루피를 낸 후 출입허가서를 받아들었다. 허가서는 나중에 국립공원을 벗어날 때도 확인하니 잘 챙겨두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그는 앞서 히말라야를 다녀온 사람들에게서 여러 정보를 얻었듯이 우기에 히말라야로 떠나는 사람들을 위하여 작은 것도 소홀히 하지 않고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몬조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산을 걷는 사람들에게 매우 흔한 질문입니다만, 길을 걷다보면 이미 목적지를 다녀오는 사람 혹은 목적지까지 가는 길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남았나요?”, “혹은 얼마나 걸릴까요?”하는 질문을 하곤 합니다.
히말라야를 걷던 첫날 사람들에게 묻는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몬조까지 얼마나 더 가야할까요” 네팔 짐꾼은 1시간을 더 가야 한다고 대답합니다. 그는 지도를 살펴본 짐작으로 30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다시 묻습니다.
영어가 유창한 초등학교 5학년 꼬마는 “10분이면 갈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10분이면 된다고 하였는데, 막상 걸어보니 30분이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그 녀석이 나를 골탕 먹이려고 장난을 쳤구나 싶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꼬마애가 내달리면 10분 만에도 올수 있겠구나 싶다. 그래, 같은 거리가 누구 기준으로는 한 시간도 되고, 누구에게는 10분도 되는 구나”
히말라야 초입의 철다리를 건너면서 ‘비우고 내려놓아 자유로워지고 싶다’던 그는 트레킹 첫날 많은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어쩌면 히말라야 트레킹은 내려놓을 수밖에는 없는 길을 걷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고소증’(고산증)이라는 자연의 법칙은 ‘비우고 내려놓은 자’에게만 높은 산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육체가 고도에 적응하는 것 보다 더 많이 오를 수 없는 것이 히말라야트레킹입니다.
어제 뒤쳐졌던 사람이 앞서가는 것도 아무렇지 않은 일이고, 기운차게 앞서가던 사람이 뒤처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곳. 오롯이 자기 속도로만 걷고 또 걸어야 하는 곳이 히말라야트레킹이더군요.
늘 걷는 사람들에게 배우는 지혜
그뿐이 아니군요. 히말라야 트레킹은 처음부터 ‘정상에 오르기’를 포기한 사람들이 걷는 길입니다. 트레킹은 애초에 히말라야 정상을 정복하기 위한 길이 아니라 히말라야에 오르는 과정을 만끽하기 위하여 걷는 길입니다.
매일 히말라야를 오르는 사람들의 걷는 모습은 어떨까요? 저자는 네팔 사람들이 걷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짐을 메고 우리는 즐기기 위해 짐을 멘다. 그들은 짐을 운반하지 않으면 밥을 먹을 수 없지만 우리는 기꺼이 돈을 지불해가며 사서 고생을 한다.”
생존을 위해 걷는 사람들은 온 몸으로 걷습니다. 어깨를 짓누르는 짐의 무게를 분산시키기 위하여 그들은 이마 끈을 묶고 걷는다고 합니다. 평생 짐꾼으로 살았을 캐리어들은 절대 한 번에 오래 걷지 않는다고 합니다. 짧게짧게 끓어서 걷는다는 것입니다.
몇 걸음 걷다가 쉬고, 다시 걷고 쉬고를 반복하며 끈질기게 걷는다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생명의 힘은 끈질김에 있는 것 같습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 다시 지는 것이 힘든 일이니 쉴 때도 서서 쉰다고 합니다. 작은 지팡이를 짚고 걷다가 쉴 때는 지팡이로 짐을 받쳐두고 쉰다는 것이지요.
꼭 챙겨야하는 준비물, 책(?)
무거운 배낭을 들고 걷는 히말라야트레킹에 웬 책이냐고 하는 분들이 있겠지요. 제가 읽은 히말라야 여행기에는 빠짐없이 책이 등장하였습니다. 평소에 책읽기를 좋아하는 저자의 경우에는 다른 여행기보다 더 많은 책이 소개되어있습니다. 그는 이미 책을 통해 여러 차례 의사체험한 후에 직접 히말라야로 떠난 샘입니다.
“롯지에서 저녁을 먹고 나면 보통 야크 똥을 태우는 난롯가에 모여 책도 읽고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일찌감치 숙소로 올라가 뜨듯한 침낭 속에 몸을 누인 채 책을 읽기 시작했다.”
히말라야까지 그가 들고 간 책은 존 크라카우어가 쓴 <희박한 공기 속으로>입니다. 1996년 에베레스트 상업원정대의 생사를 넘나드는 조난기를 생생하게 기록한 책인데, 전에 읽었던 김남희의 책에도 나오는 책입니다.
“히말라야에 있는 내내 이 책을 읽었다. 실제로 내가 걷고 있는 길, 내가 묵고 있는 마을이 책에서 언급될 때는 묘한 흥분에 휩싸이기도 했다. 여행 중에 만난 몇몇이 이 책을 읽고 있거나 알고 있어 책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눈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한적한 산장에서 난롯불을 쬐며 한가로이 책을 읽는 즐거움은 그만이다.”
마음은 벌써 여러 차례 히말라야에 다녀온 터라 이 책을 다 읽기 전에 <희박한 공기 속으로>를 주문하였습니다. 김훈이 번역한 책이더군요. 마침 얼마 전 김훈의 글쓰기에서 배우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망설임 없이 주문하였지요.
언젠가 히말라야를 걷게 된다면 저 역시 이 책을 들고 떠날지도 모르겠네요.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히말라야 롯지에서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어둠이 내린 후에 야크똥을 태우는 난롯가에서 책을 읽는 모습도 상상해봅니다.
비수기라고 하지만 저자는 트레킹 중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외국인이 대부분이지만 한국인도 있었고, 건장한 체격을 가진 젊은이들도 있었지만 나이 많은 노부부나 가족이 함께 오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히말라야는 엄홍길이나 박영석 같은 사람만 가는 데인 줄 알지만, 저자가 만난 한국인 젊은이 중 한 사람은 ‘함께 여행가자는 친구’를 따라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섰더군요.
아, 사가르마타 ! 우주만물의 어머니여 ! 만물의 여신, 초모룽마여 !
사실 히말라야트레킹 자체가 고도의 등반 경험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안전한 코스도 하루에 걷는 거리도 많은 경험자들에 의해 정해져 있습니다. 다만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고산증’이 변수라고 합니다.
김영준이 쓴 이 책은 마음먹었을 때 다녀오라고 격려하는 책입니다. 또 다시 내년 봄을 기약해봅니다. 히말라야트레킹은 누구나 도전해볼만한 범상일이라고, 경외의 대상으로 남겨두지 말고 직접 가서 겪고 느껴보라고 부추깁니다.
“10km를 달리는 사람이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는 것보다 동네 뒷산만 다닌 사람이 히말라야를 걷는 것이 더 쉬운 일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히말라야 걷기 여행 9일째, 그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조망할 수 있는 칼라파타르 정상에 오릅니다. 그가 칼라파타르 정상에 올라섰던 그 장면을 담은 제법 긴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책 소개를 마무리 합니다 .
“정상에 막 올라서며 고개를 들면 바로 코앞에 삼각뿔 모양으로 우뚝 서 있는 설산 푸모리가 제일 먼저 시선을 압도한다. 네 가닥의 능선이 나선형으로 용틀림하는 형상이 하늘을 뚫고 솟아오를 듯하다. 고개를 서편으로 돌리면 설산 창그리가 온몸으로 아침햇살을 받아내고 있다.
햇빛에 반사되는 설경에 눈이 부시다. 꿈속인 양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광경이다. 등을 돌려 돌아앉으면 내가 올라왔던 칼라파타를 언덕길과 멀리 쿰부 빙하 대협곡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늘어선 눕체의 연봉을 따라 동쪽으로 시선을 이어가면 아, 사가르마타 ! 우주만물의 어머니여 ! 만물의 여신, 초모룽마여 !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가 신비로운 자태를 들어낸다.
왼쪽 앞은 높이 7732미터의 무명봉이 막아서고 오른쪽 자락은 눕체에 가려 머리 부분만 드러나 있지만 세계 최고봉이 뿜어내는 절대 카리스마는 가려지지 않는다. 에베레스트는 특유의 흰구름을 정수리에 두른 채 검은 위용을 뽐내고 있다.
산은 떠 오르는 태양의 경사각에 따라 순간순간 모습을 달리한다. 마침내 태양이 에베레스트의 어깨 위로 솟구쳐 오른다. 일출이다.”
짧은 글로 소개하지 못한 많은 사연과 장엄하고 눈부신 히말라야의 설산을 찍은 사진들은 온전히 책을 읽는 즐거움을 선택하는 독자들을 위해 남겨둡니다. 당신 역시 간절히 원한다면 계획을 세우고 시도해보시기 바랍니다. “인생은 히말라야에 가기 전과 히말라야에 다녀온 후, 둘로 나눠진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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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걷기여행 - ![]() 김영준 지음/팜파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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