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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교육

멀쩡한 아이 부진아 만든 일제고사 !

by 이윤기 2009.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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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일제고사, 아이들 대신 교사를 평가하라

교과부가 전국 1440개 학교를 학력부진학교로 선정하여 앞으로 1년간 840억 원의 예산을 지원하며, 학교별로 3000만원에서 최대 1억 원이 지원되고, 경남에서는 154개 학교가 집중 지원대상이라고 합니다.

이들 학교에는 앞으로 예비교사, 퇴직교원 등 총 4793명이 ‘학습보조 강사’로 채용돼 오는 9월부터 정규시업시간이나 방과 후에 부진 학생에 대한 개별지도를 하게 된다는 것 입니다.

마침 지난 6월 17일에 개최된 경남도 교육감 블로거 간담회 때, 권정호 교육감도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일제고사(학력진단평가)는 아이들을 줄 세우기 위한 시험이 아니라 학력 부진 아이와 해당학교를 더 지원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하더군요.



사실 저는 블로그 간담회를 앞두고 두 가지 질문을 준비하였습니다. 하나는 우유 강제 급식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일제고사 후에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작용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일제고사' 문제와 관련하여 간담회에서 오고 간 이야기와 교육감과 다른 제 생각을 적어 보겠습니다.

1학기에 치른 ‘일제고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일선학교에서는 시민단체와 학부모 단체가 우려하였던 ‘부작용’이 빠르게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선학교에서는 일제고사 이후에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아이들을 ‘기초학력 부진아’로 진단하고, 정규 수업이 끝난 후에 학력 향상을 위한 보충학습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기초학력 부진이라는 ‘진단’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기준 성적에 도달하지 못한 아이들을 교사와 친구들이 ‘부진아’라는 호칭으로 부르고 있다는 것 입니다. 시험성적이 나쁜 아이들은 기초학력뿐만 아니라 그 아이 자체가 ‘부진아’로 낙인찍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아이들이 공부 좀 못하는 것 빼고 달리기를 잘 하던지, 그림을 잘 그리던지, 노래를 잘 부르던지, 축구를 잘 하던지, 다른 잘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을텐데...단지 일제고사 성적이 모라라서 '부진아'가 되었다는 겁니다.

일제고사 못친 아이는 ‘부진아’(?)

블로거 간담회에서 저는 일선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교육감이 알고 있는지, 그리고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하여 교육감으로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를 질문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권정호 교육감은 즉답을 피해가며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가르쳤으면 확인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교육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성취도 평가를 합니다. 그런 걸로 서열을 세워서 발표를 하는데 앞으로 그런 건 없습니다.”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즉답을 피해가며, 가르친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평가는 해야 하지만, 아이들 줄 세우기를 하는 건 옳지 않다는 원론적이 답변이었습니다.

저는, “이미 중간고사 기말 고사 등 다른 시험도 있는데, 일제고사 성적만으로 ‘부진아’라고 낙인찍어 서열을 매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부진아’라는 표현은 잘못되었다고 인정하더군요.

전국이 모두 같은 문제로 시험을 치는 문제에 대해서는 “경제적 문제 때문에 공동출제를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제안을 해봤지요.

“경제적 문제가 있으면 설문조사 하듯이 표본을 추출하여 시험을 치르면 되지 않습니까? 그럼, 학교별로 줄 세우기를 하지 않아도 되고 아이들도 서열화 시키지 않아도 됩니다.”

이 질문에도 역시 즉답을 피하더군요. 결국 일제고사는 취지는 학력을 평가하여 기초학력에 미달되는 아이들의 학업성취도를 높이기 위하여 불가피하다는 답변 뿐 이었습니다.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대책을 내놓지도 않았습니다.

"기말고사 못 치면 여름방학에도 학교와야 한다"(?)

실제로, 학교 현장에 가면 9월에 치를 예정인 2학기 ‘일제고사’를 앞두고 적지 않은 긴장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저희 단체 회원인 마산, 창원 초등학교 학부모들 들에 따르면, “기말 고사 성적이 나쁘면 방학 동안에 학교에 나와서 보충학습을 시키겠다”는 이야기를 아이들을 통해 여러 번 들었다는 겁니다.

제 생각엔 방학 동안에 보충수업이 실제로 이루어지느냐, 아니냐와 상관없이 일선학교에서 일제고사를 잘 치러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고 있고, 그 때문에 교사들이 아이들을 압박하고 있는 현실 자체가 더 큰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결국, 권정호 교육감 블로거 간담회에서는 ‘일제고사’로 인하여 학교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작용에 대한 교육당국의 대책은 제대로 들을 수 없었습니다. ‘줄 세우기’와 ‘부진아’ 낙인찍기는 옳지 않다‘는 원론적인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블로거 간담회가 끝난 후 불과 1주일 만에 교육감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교과부 정책 발표가 이루어졌습니다. 전국 1440개 학교, 경남에는 154개 학교가 집중 지원 대상이라고 합니다. 이것도 참 우스운 정책입니다. 기초학력에 미달되는 아이들이 이들 학교에만 있다는 것인가요?

기초학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그 숫자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전국의 모든 학교에 나누어져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기초학력 미달자가 많은 학교는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기초학력 미달자가 적은 학교에 있는 아이들은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게 되는 것 입니다.

모르긴 해도 학교 현장에서는 1억 지원 받는 집중 지원대상학교가 되어 ‘공부 못하는 학교’로 낙인찍히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을 것 입니다. 그러자면, 아이들이 일제고사를 잘 치르도록 달달 볶을 수밖에 없고 이미 현실은 그렇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잘 배웠는지 대신 잘 가르쳤는지 평가하라 !

저는 기본적으로 전국 일제고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만, 교육당국에서 주장하듯이 학업성취도를 알아보기 위한 평가라면 설문조사 하듯이 표본을 추출하여 시험을 치러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시험을 바라보는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교육당국이 치르는 일제고사는 교사들이 가르친 것을 아이들이 잘 배웠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입니다. 저는 시험으로 아이들을 평가할 것이 아니라 교사들을 평가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시험은 교사가 아이들을 제대로 잘 가르쳤는지를 평가하는 제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일정한 표본을 추출하여 일제고사를 치르고, 시험결과 아이들 기초학력이 부진하면 아이들이 수업에 더 잘 참여할 수 있도록, 수업에 더 흥미를 가지도록 교사들이 ‘교수 방법’을 바꾸고 수업을 개선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입니다.

교사를 평가하자는 것이 교과부가 추진하는 '교원평가'를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시험이던 시험을 치른 결과로 아이들이 잘 배웠는지, 못 배웠는지 평가하는 대신에 교사들이 잘 가르쳤는지, 못 가르쳤는지를 평가하는 쪽으로 시험에 대한 '관점'을 바꾸자는 이야기입니다.

권정호 교육감께서는 간담회 중에 ‘제자들 때문에 교육감에 출마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셨더군요. "현직 교사로 있는 제자들만 8천 명이 넘는다"는 이 말은 듣기에 따라서 제자들 덕분에 당선되었다는 말로도 들리더군요.

그러나, 출마는 제자들 때문에 하셨는지 모르지만, 당선은 전임교육감과는 다른 정책으로 아이들을 옥죄는 경쟁위주의 교육정책을 막아달라는 교육개혁을 바라는 도민들의 지지 때문에 가능하였다는 것이 제 생각됩니다.

교육감께서는 “막상 당선되고 보니 내가 다시 공무원이 된 거 더라”는 말로 고충을 애둘러 표현하시더군요. 최근 경기도 교육감의 ‘무상급식 공약’이 교육위원회에 의해 무너지는 것을 보며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그래도 교육감을 당선시킨 지지자들의 마음을 좀 더 과감히 정책으로 담아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