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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여행 연수/오키나와 역사기행

전쟁의 진실을 전하는 예술의 힘, 사키마 미술관

by 이윤기 2011.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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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여행 이틀째(1월 16일) 되는 날, 본섬 중부에 있는 사키마 미술관(http://sakima.jp/)을 방문하였습니다. 미행병대 비행장인 후텐마 기지 옆구리에 붙은 작은 미술관은 오키나와의 전쟁과 평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장소입니다. 

작은 개인미술관이지만 연간 4만명의 수학여행 학생들이 방문하는 평화교육의 '메카'이기도 합니다. 오키나와에 수학여행을 오는 40만 명이 중고생들중 10%는 사키마 미술관을 다녀간다고 합니다.

참혹하고 치열했던 오키나와 전쟁

오키나와 전쟁은 미군의 태평양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교전 장소 중 한 곳입니다. 1945년 3월 23일부터 오키나와 주변섬과 본도를 공격한 미군은 4월 1일 본도에 상륙할 때까지 1주일 동안 약 4만발의 폭탄을 쏟아부었다고 합니다.

미군은 앞선 유황도(이오지마) 전투에서 일본군 잔존 세력의 역습으로 입었던 피해 때문에 더 철저한 파괴와 살인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석달 정도 진행된 당시 전투에서 20만명이 희생되었는데, 오키나와 출신자가 12만명, 일반 현민 9만 4000명, 군인 군속 2만 8000명, 그리고 미군 1만 2000명, 기타 6만 5000명이 희생당하였습니다. 당시 오키나와 주민 1/4이 희생당하였다고 하면, 기타 6만 5000명 중에는 징병, 징용, 종군위안부로 끌려갔던 한국인 1만 명도 포함되어있습니다.


평화와 역사를 성찰하는 여행지, 사키마 미술관 

오키나와 사키마 미술관은 바로 이 참혹한 전쟁의 질실을 예술의 힘을 빌어 전달하는 역사와 평화교육의 현장입니다. 한겨레신문에 '디아스포라의 눈'을 연재하는 도쿄경제대 서경식 교수는 '불의에 순응하지 않는 미술의 힘'을 볼 수 있는 장소라고 하였습니다.

"역사와 평화를 성찰하는 이런 연수여행에도 반드시 예술감상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한국 사람들이 오키나와에 갈 기회가 있다면 좀 무리를 해서라도 사키마(佐喜間) 미술관을 찾아가 마루키(丸木) 부부의 대작 <오키나와 전도(戰圖)>를 관람하기를 권한다." (10월 29일 한겨레)

저희 단체 회원들과 다녀온 오키나와 여행도 역사와 평화를 성찰하는 여행이었습니다. 서경식 교수가 무리를 해서라도 찾아가 보라던 사키마 미술관을 방문하였고, 마루키 부부의 대작 <오키나와 전도>를 비롯하여 케테 콜비츠의 작품을 관람하였습니다.

▲ 후텐마 기지와 맞붙은 상징적인 장소에 사키마 미술관이 있습니다.

▲미술관 옥상에서 내려다 본 후텐마 미군기지 철책입니다.

전쟁 기지 옆에 자리잡은 평화 미술관

후텐마 기지는 오키나와 본도 중부에 있는 기노완시 한 가운데 있고 시 면적의 26%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기지 주변으로는 시가지가 띠처럼 자리잡고 있음에도 전투용 헬기와 전투기가 수시로 뜨고 내리는 훈련을 하고 있으며, 2004년에는 오키나와 국제대학교에 헬기 추락하는 대형 사고가 있었다고 합니다.


평화를 상징하는 박물관으로서 사키마 미술관의 가장 큰 특징은 그 입지 조건입니다. 미군해병대 비행장인 후텐마 기지 바로 옆구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미술관 앞면을 제외한 나머지 삼면이 미군기지 철조망으로 둘러쌓여 있으며, 옥상에 올라가면 후텐마 기지를 가까이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도 '화룡점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미해병대 후텐마기지 옆에 들어선 작은 미술관이 평화의 교차점이 되었더군요. 사키마 미술관을 설립한 사키마 관장은 미술애호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미국 군용지대로 받은 돈으로 콜비츠(독일, 1867 - 1945)의 작품을 비롯해 '삶과 죽음', '인간과 전쟁'을 주제로 한 작품을 수집한 것이 미술관의 시작이 되었다고 합니다.

▲ 미술관 옥상에서 바라보는 후텐마 미군기지 입니다.
 
사키마 미술관이 위치한 이 땅은 사키마 관장의 선조가 대대로 소유하였던 땅인데, 태평향 전쟁 직후 미군에 접수되어 후텐마 기지의 일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토지의 일부를 돌려 받았을 때, 사키마 미치오(佐喜眞道夫)관장은 여기에 <오키나와 전도(戰圖)>를 영구전시하는 미술관을 세웠다고 합니다.

건축사이신 허정도 박사가 준비한 자료에 따르면 "오키나와 출신 건축가 미키시 코이치가 설계한 건물로 1994년에 개관"하였다고 합니다. 옥상에는 오키나와 전쟁 종전일을 상징하는 23개의 완만한 계단이 있고 계단 끝에 나가면 광대한 후텐마기지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건축가 마키시코이치는 관람자들이 이곳에서 미군기지의 실상을 볼 수 있도록 하였으며, 옥상 꼭대기에 뚫린 작은 네모 구멍은 매년 6월 23일 일몰 때 일직선으로 햇빛이 들어오게 설계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날 미술관은 오키나와 전쟁 때 죽은 영혼들을 위로하는 위령공간이 된다고 합니다.


▲ 사키마 미술관 팜플렛에 나와 있는 6월 23일 일몰 시간 추모의 빛이 들어오는 사진입니다.

입구로부터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넓어지는 실내는 '가마'의 이미지에서 착안하였답니다.  가마는 산호섬인 오키나와에 널려있는 자연동굴입니다. 입구가 좁고 안족이 넓은 가마는 전쟁 때 주민들이 피난하였다가 '영미귀축(英美鬼畜)에게 처참히 죽기 전에 천황폐하를 위해 가족, 이웃, 전우끼리 영광(?)스럽게 죽이고 죽었던 아비규환의 장소였습니다.

미술관 전체는 바로 이 '가마'를 상징하는 곳이지요. 오키나와 사키마 미술관은 '예술의 힘으로 전쟁의 진실을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사키마미술관은 홍성담 판화전(2005년 2월, 광주민중항쟁 25주년)을 비롯한 광주민중항재에 관한 전시회도 개최하였으며, 한국의 평화세력과 연대에도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평화를 이번 여행을 준비해준 '착한여행'에서 가장 먼저 추천한 곳도 바로 '사키마 미술관'이었습니다.

오후 3시쯤 사키마 미술관에 도착한 저희 일행은 오키나와 전도를 비롯한 '사키마 미술관'에 영구 소장된 작품들과 현재 기획 전시중인 작품들을 관람하였습니다. 특히 <오키나와 전도(戰圖)>를 비롯한 오키나와 전쟁을 담은 작품들은 미술관 큐레이터가 직접 그림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오키나와 전도(戰圖)>




오키나와 전투 당시 미군은 앞선 유황도 전투에서 일본군 잔존 세력의 역습으로 입었던 피해 때문에 더 철저한 파괴와 살해를 저질렀고, 일본군은 이미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 자명하였음에도 소년, 소녀와 노인들을 동원하여 끝까지 싸우도록 하였기 때문에 더 큰 피해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패배한 일본군은 주민들을 지키지 않았으며, 일본군의 명령을 받은 오키나와 주민들은 미군에게 처참한 꼴을 당하기 전에 스스로 죽음을 택하였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남편이 아내를, 젊은이가 노인을 낫이나 면도칼로 죽이고, 또 수류탄으로 함께 죽는 아비규환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일본에 의하여 철저한 황민화 교육을 받은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군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고 집단사(死)하였다고 하더군요.

전쟁을 멈추려면 전쟁을 알아야 한다


앞서 서경식 교수가 추천하였던 <오키나와 전도(戰圖)>는 지옥의 한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오키나와 전도(戰圖)> 치열한 지상전을 실제로 경험한 그림 속의 많은 인물들은 처참하게 죽어갔으며, 눈을 부릅뜬 사체들은 관람객들에게 반드시 평화를 이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림은 설명해주신 분은 "전쟁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전쟁을 아는 것" 뿐이라고 말씀하시군요. 그림 한 점이 참혹했던 오키나와 전쟁의 생생한 현장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바로 그런 곳입니다.

저희 일행은 이곳 사키마 미술관에서 오키나와 전도를 비롯한 작품을 직접보았을 뿐만 아니라 오키나와 전쟁과 역사를 주제로 하는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사키마 미술관측의 배려로 미술관 개관시간인 오후 5시를 훌쩍 넘긴 6시까지 강연을 듣고 전시작품과 미술관 옥상을 둘러보았습니다.

아울러 사키마 미술관 측의 특별한 배려 덕분에 상설전시작품이 아니어서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던 퀘테 콜비츠의 판화 작품도 직접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일행을 위해 특별한 배려를 해주신 사키마 미술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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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키마 미술관 안내 팜플렛(클릭 하시면 큰 그림을 볼 수 있음)


▲ 사키마 미술관 약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