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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여행 연수/오키나와 역사기행

오키나와, 미군기지가 있어 더 위험한 땅이다

by 이윤기 2011.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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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여행 이야기, 다섯 번째 입니다. 오늘은 이번 여행기에서 여러 차례 언급되었던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 강연을 소개합니다.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를 처음 알게된 것은 녹색평론을 통해 국내에 출간된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고 하는 긴 제목의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이 책은 전쟁과 평화, 평화헌법, 경제성장 그리고 빈곤과 발전,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 경제민주화, 국가의 폭력성에 관하여 새로운 지식과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특히 과잉발전을 중단하고 '대항발전'을 추구하자는 그의 주장과 선거보다 제비뽑기과 훨씬 더 민주적이라는 주장에  깊이 공감하였습니다.


2010년에는 쓰지 신이치로 교수와의 대담집이 국내에 출간되었습니다. 바로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미국인으로서 일본에서 살아온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의 살아온 이야기(어린시절, 해병대원, 베트남 반전운동, 반전평화운동 등)와 오키나와에서 살면서 체험한 헌법 9조(평화헌법) 이야기, 그리고 환경과 평화의 교차점에 관한이야기입니다.


(관련 서평기사 [책과 세상/책과 세상 - 생태, 환경] - 경제성장을 멈춰도 풍요롭게 살수 있다면?)
 
"아동노동은 강제적이고 부당하다고들 말하는데, 그럼 어른들이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위해 일생의 대부분을 낭비하는 것은 과연 강제노동일까요?, 아닐까요?"

당시 서평기사에서도 소개하였지만,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이라는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입니다. 평화와 행복의 의미를 다시 성찰하도록 해주는 책이었지요.



두 권의 책을 통해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오키나와 여행을 앞두고 현지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의 1순위는 바로 '러미스' 교수였습니다.

처음 '착한여행'에서는 '사키마 미술관'의 사키마 관장을 만나서 오키나와 역사와 문화에 관한 이야기 듣는 일정을 준비해주었지만, 저희들의 요청으로 어렵게 '더글러스 러미스'교수와의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의 강연회는 2011년 1월 16일(일) 오후 3시 30분부터 오키나와에 있는 '사키마 미술관' 강의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오후 세시경, 저희 일행이 사키마 미술관에서 <오키나와 전도(戰圖)>를 비롯한 오키나와 전쟁을 담은 작품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을 때, 훨칠한 키에 약간 구부정한 노신사가 나타났습니다. 한 눈에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지요.

아래는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의 강의 전문입니다. 번역상의 오류 등이 있을 수 있지만, 강의 전문을 소개해봅니다.



한 시간 이상 이런 그림(<오키나와 전도(戰圖)>를 비롯한 작품들)을 계속보고 있을 수 없다. 여러분도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이 두분(마루키 상 부부)은 대단하다. 나는 한 시간을 보는 것도 지겨운데...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대단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상상력을 발휘하였고...아마 그들의 꿈에도 나타낯을 것이다.

조용하고 차분하고 정신적으로 안정된 분들이다. 외모는 눈이 부리부리하고 그렇지만...따뜻한 사람들이다.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저 분들의 그림을 보면 현대의 오키나와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루키상이 이런 그림을 그린 것은 전쟁의 기억을 다음세대까지 남겨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에게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두 명 있는데, 초등아이들 소풍 때 6학년 아이들이 오키나와 전쟁을 표현하는 연극을 공연하였다. 아이들이 장난스럽지 않고 진지하게 공연을 하였던 적이 있다. 보통 소풍을 가면 재미있는 공연을 하게 되는데...피터팬, 이상한나라의 엘리스, 댄스 공연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6학년 아이들이 그런 공연을 한 것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에게 이런 강연을 하는 것은 처음이다. <최근 일본 지도>라는 책인데 절판이다. 최근일본지도인데 최근에 절판되었다. 최근이라는 말은 참 재미있는 말이다.

바로 이 시기에 지도가 바뀌었다. 일본제국이라는 지도인데....일본, 조선반도, 오키나와의 관계가 잘 드러나는 지도이다. '빨간색은 모두 일본이다' 라는 생각을 표시한 것이다. 북해도, 사할린...류큐까지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일본 신민이라고 생각했다. 황국신민이라고 이해하였던 것이다. 사적 개인이 아닌 공민이라고 이해하였다.

류큐제국이 무너지고... 현으로 바뀌었다. 조선반도를 침략하기 30년 전의 일이다. 일본은 류큐, 타이완, 조선반도 순으로 침략하였다. 이 지도를 보면 만주도 일본 땅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표현한 것이다.  이 지도에서 최근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만주 침략을 최근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류큐, 타이완, 조선을 모두 식민지 지배하겠다는 계획을 담은 지도인 것이다. 오키나와에서도 창씨개명과 언어말살 정책이 이루어졌다. 결과적으로 조선반도와 타이완에서는 식민지 지배에 실패하였지만, 오키나와에 대한 지배는 성공한 샘이다. 식민지 침탈의 역사에서 한국인들도 오키나와에 대하여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학교에서는 오키나와 말을 가르치지 않는다. 중년과 노년의 사람들만이 오키나와 말을 할 줄 안다. 목수, 건축일을 하는 현장에는 오키나와 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일을 배우는 젊은 사람들만 아직도 오키나와 말을 사용하고 있다.

사키마 미술관 옥상에 올라가면 지금 쟁점이 되고 있는 후텐마기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오키나와 사람들 사이에는 자신들이 '일본인이다, 아니다' 하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본 본토의 사람들은 주로 아사히, 마이니찌, 요미우리 신문을 읽는다. 오키나와 사람들 중에도 이 세 개의 신문을 읽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아사히, 마이니찌, 요미우리 신문을 읽는 사람들과 오키나와 타임즈와 류큐 신보를 읽는 사람들은 세계관이 전혀 다르다.

류큐정부는 언어도 포기하고 모든 것을 본토가 원하는대로 양보했지만, 군사기지 설치는 반대하였다. 오키나와 대규모 전쟁이 일어난 것은 일본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군 기지가 있으면 보호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착각이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믿지 않는다. 군사기지가 있어서 더 안전하다고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오키나와에 군사기지가 있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지금도 일본정부와 언론에서는 중국과 북한이 있기 때문에 미군이 주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과 북조선의 미사일이 오키나와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 미군이 주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중국과 북조선의 미사일이 오키나와를 겨냥하고 있는 것은 미군이 주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기지가 없었다면 침략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본토에 있는 일본인들은 미군이 주둔하고... 자위대가 주둔하고 있으면 더 안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오키나와 주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군기지가 왜 오키나와에 있는가하는 질문에 미, 일정부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말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아시아의 지도를 보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남자가 나를 설득하려고, “가깝잖아요” “어디에 가깝다는 말이냐?”라고 물었더니 아무말도 못하였다. 말하자면, 필리핀이나 타이완과는 가깝습니다. 그렇지만, 일본이 타이완이 필리핀과 전쟁을 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가깝다는 말이 베이징이나, 평양을 말한다고 하면 오키나와 보다, 큐슈가 더 가깝다. 진짜 가까운 것은 나가사키가 더 가깝다. 오키나와가 전략적으로 더 중요한 장소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고백하자면, 젊은 시절에 미군 해병대원으로 오키나와에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해병대에 근무할 때 전략에 관하여 배웠는데, 군부대는 한 곳에 집중하면 안 된다고 배웠다. 미군은 기지가 집중되면 안 된다는 것을 진주만 공격을 받았을 때 여실히 느꼈을 것이다. 군사전략적으로 보았을 때 오키나와에 군사시설이 집중되어 있는 것은 바람직한 전략이라고 보기 어렵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는, 책을 소개하는 것이 하나의 버릇이다. <미국 제국의 비극>이라는 책이다. 어쩌면 한국에도 번역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찰스 존슨이라고 하는 사람이 쓴 책이다. 중국학, 일본학, 동아시아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다. 1960년대에 학생을 가르치면서 CIA 고문으로도 일한 사람이다. 그는 베트남 전쟁은 정당하다고 주장하였고,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나는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였다.

1995년에 3명의 미국인이 초등학교 여학생을 성폭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6만 명의 오키나와 시민들이 모여서 후텐마 기지를 둘러쌓다. 당시 오키나와 주민들은 폭발상태에 이르렀다. 당시 오키나와 지사도 학자였는데, 오키나와 지사가 ‘존슨’을 초청하여 미군기지를 모두 견학시켜주었다. 베트남전이 정당한 전쟁이라고 주장하였던 존슨은 미군기지를 직접 둘러보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가 전략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미국의 세계지배에 관한 글을 많이 쓰고 있다. 군사전략적으로만 본다면 오키나와에 왜 군부대가 많이 있는 것인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왜? 라는 질문을 해보니 오키나와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700여개의 미국군사기지가 유지되고 있더라.
 
미군기지가 세계적으로 많이 있는 것은 그 나라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제국으로서 세계를 지배하기 위하여 기지를 설치한 것이다. 카데나기지는 후텐마 기지보다도 훨씬 더 큰 규모이다. 카데나기지는 무기와 군사시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정집, 교회, 슈퍼, 카운슬링센터, 골프장, 리조트, 호텔, 교도소까지 있는 하나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와 있는 것이다. 카데나 기지는 그냥 미국이다. 사용하는 돈은 달러다. 한국에도 비슷한 상황인 장소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군대방송국이 있기 때문에 일반인도 군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리조트와 호텔에 대한 광고도 하고 있다. 이 라디오 방송으로 알게 되었는데, 알래스카, 하와이, 독일 알프스에 가면 비슷한 리조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키나와에 리조트가 있다는 광고를 다른 기지에서도 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미국병사는 휴가를 받으면 군용 비행기로 휴가지까지 보내준다. 미국인들은 본토뿐만 아니라 해외의 많은 기지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카데나기지 역시 작은 도시처럼 미국인들이 살아가고 있다. 기지 안에는 세가지가 없다. 노숙자, 고령자, 생산노동자가 없다. 막대한 소비를 하고 있지만 생산은 하지 않는다.

그들의 본업은 전쟁이다. 농담처럼 말하지만, 진짜 그들의 본업은 전쟁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본래의 직업이다. 사람을 죽일 것인가? 훈련을 할 것인가? 둘 중 하나다. 미군이 왜 오키나와에 주둔하는가는 이 책에 설명 되어 있다.

독일기지, 이탈리아기지, 영국기지가 있지만 오키나와는 다른 미군기지와는 다른 특별한 곳이다. 미군이 오키나와 사람들을 대하는 생각이나 의식은 다른 지역과도 많이 다르다.



오키나와는 지금도 미 해병대의 전리품이다?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가장 많은 사람들은 해병대, 공군이다. 전쟁을 하지 않을 경우 미국해병대의 1/3이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다.  20년 동안 복무한다고 하면, 여러 번 오키나와에 와서 근무하게 된다. 해병대 사람들이 바라보는 오키나와, 해병대의 오키나와 문화와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오키나와사람들이 바라보는 해병대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해병대원들이 사용하는 언어 속에는 오키나와 말도 섞여있다. 3년 정도 오키나와에 근무했지만 본국에서부터 오키나와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역사적으로 말하자면 2차 대전에서 미군이 침략해서 뺏은 땅이 오키나와이다. 2차 대전이 끝나고 1972년까지 오키나와는 미국이 식민지였고 미군에 의해서 지배 당하였다. 

해병대입장에서 보면, 오키나와는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1972년에 닉슨, 사토 총리의 회담으로 오키나와가 반환되었지만, 기지 밖을 반환하였을 뿐, 기지 내부는 여전히 미국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전리품은 일-미안보조약에 따라 일본에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 미 해병대는 ‘오키나와에서 나가고 싶지 않다’, ‘오키나와는 뺏은 땅이다.’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의, 세 번째 이야기는 일본 대외 정책에 관한 이야기이다. 일본에는 평화헌법이 있고 지지자들도 많이 있다. 4년전 동경에서 심포지움이 있었는데, 어떤 주부들이 저에게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러미스 선생, 평화헌법의 구조가 세계유산이 되면 아주 대단한 일이 아니겠습니까?”하고 말하였다.

저는 곱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다. “일미안보조약이 있는 이상 세계적으로 그런 평가를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주머니 두 분이 눈이 동그랗게 되어 깜짝놀라면서 “미군이 모두 떠나가면 일본이 위험해지지 않습니까?” 라고 질문하였다. 평화헌법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말한지 1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곧바로 이런 말을 한 것이다. 군대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과 군대를 없애야 한다는 생각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다.

이 두 아주머니는 극단적인 예 되겠지만, 여론조사를 해보면 반 정도는 평화헌법을 지지하지만, 다른 반은 ‘일미안보조약’을 지지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오키나와가 답이다.

평화헌법도 지키면서 미군기지가 있으면 안심할 수 있다는 이중적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일본사람들의 의식에서는 오키나와는 어떤 때는 해외라고 생각하고 어떤 때는 자국영토라고 생각한다. 자기들이 편리한대로 생각하는 것이다.

일미안보조약에 의하면, 일본의 영토내에 미군이 주둔해야 한다는 의무사항이 있다. 오키나와에 미군이 주둔하게 되면.그 의무사항을 이행하는 것이 된다. 문화적으로, 의식속에서 해외인 오키나와에 미군이 주둔하게 되면, 본토의 자연환경 을지킬 수 있다. 그러면서 평화헌법도 지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후텐마 기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 오키나와 신문에 매일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 기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문제 때문에 하토야마 총리가 사임하였다. 후텐마 기지 때문에 지금 총리도 사임 당할지 모른다.

일본정부와 미군은 헤노코라는 지역으로 옮길 계획을 세웠지만 헤노코에서 오신 분들과 지지자들이 기지를 세울 수 없도록 점거하고 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것은 세기적인 정권 교체이지만....‘현외’로 옮긴다는 공약이 있었다. 해외가 아니라 현외이기 때문에 본토로 옮긴다는 약속이었던 것이다. 총리 1년 즈음의 시점에서 오키나와로 찾아와서 총리가 현외 이전이 어렵다는 말을 하고 결국 총리직을 사임하였다. 

일본에서 주민운동으로 총리를 그만두게 한 것으로는 두 번째 사건이었다. 1960년대 주민운동으로 총리가 사임한 이래, 50여년 만에 일어난 두 번째 사건이다. 당시에는 안보조약을 반대하는 운동이 있었지만 안보조약이 연장되었기 때문에 당시 총리가 사임하였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미안보조약을 지지하지 않는다

하토야마 총리가 그만두고 난 후 미일, 방위조약에 대하여 여론 조사를 하였는데, 오키나와에서는 일, 미 안보조약을 지지하는 사람이 7%밖에 나오지 않았다. 본토에서는 60%넘게 찬성이 나왔다.

얼마 전에 오키나와 현 지사 선거가 있었는데, 후보 2명 모두 기지이전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민주당에서는 후보를 내지 않았습니다.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3%의 지지밖에 받을 수 없었다. 97%는 반대의견이라고 보면 된다.

동경에서 언론보도를 보면 헤노코에 이전하는 것에 대하여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도하고 있지만, 오키나와 사람들 93%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 오카다 관광장관이 방문했는데, ‘헤노코’이외에는 장소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정권도 오래 버티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일본 정부에서는 오키나와가 아니면 대안이 없다. 어디로 옮기더라도 결국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만약에 본토 사람들이 기지 이전을 반대하면 설치하지 못한다. 그런데, 오키나와에서는 93%가 반대하는 기지를 그대로 두고 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이제 이런 정부의 정책을 ‘차별’이라고 생각한다. 전에는 차별이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차별이라고 부른다. 경제붐이 일어났을 때, 일본에서는 여기저기 공항을 만들었습니다. 나가노, 이바라끼, 사가 등 공항을 만들어 둔 곳이 많이 있다. 마을과 많이 떨어져있기 때문에 이전할 수도 있지만, 이런 곳에 가서 주민들의 의견을 듣거나 찬성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키나와에는 계속 찾아와서 이전이 불가능하니 그냥 오키나와에 두자고 주민들을 설득하려고 한다.

선거결과를 보면 참 재미있다. 현재 지사는 ‘현 밖으로 가져가라“ 이전시키겠다. 다른 후보자는 ’국외(괌)로 이전하라”고 주장하였다. 결과적으로 현재 지사가 당선되었다. 두 가지 견해 중에서 괌으로 간다고 하면... 괌은 미국의 직접 지배하는 땅이다.  괌이전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오키나와 사람들의 민의가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키나와 사람들이 오키나와 밖으로 간다는 공약을 선택한 것은 본토에 대한 분노가 담긴 것이다. 국외 이전을 선택하지 않고, 현 외 이전을 선택한 것은....대단한 각성이 일어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본토의 평화지지자들에게 반발을 살 수 있지만, 오키나와 사람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2년전에 한국에서 온 평화운동가의 강연을 들었다. 오키나와가 희생양인 것처럼, 한국의 경우도 오키나와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일본정부나 본토 사람들의 생각과 오키나와 사람들과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다. 한국에서 오키나와에 관한 이야기를 접할 때 참고로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미군은 한국에 대해서도 ‘전리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미군이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것과 한국에 주둔하는 것을 비슷하게 생각하는가?

한국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런 생각이 깔려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군의 입장에서 볼 때 오키나와는 상륙해서 매일 매일 전투를 치르면서 뺏은 땅이라고 생각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좀 다르게 생각할 것이다.


질문 : 반대하는 93%중에서 오키나와에서 현지인과 본토인의 비율? 오키나와는 일본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 것인가?

오키나와에 본토인의 비율은 대략 10%정도 된다. 93%에는 본토에서 온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오키나와 사람들일 것이다. 미군이 지배할 때는 일본 식민지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미군의 식민지배가 강압적이었기 때문에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였고 일본인이 되려고 노력하게 된 것이다. 본토사람들과 같아지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일본의 평화헌법이 사라지지 않고...똑같은 일본으로 취급된다면...미군기지는 없앨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오키나와 말을 부활시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지만,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이다. 오키나와 독립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20%가 오키나와 독립운동을 지지한다.

질문 : 일본의 전쟁능력은 어디까지인가? 자위대의 전쟁수행 능력은 어디까지인가?

평화헌법이라고 하지만 방어만 하는 평화헌법이라는 것은 없다. 자위대는 첨단 장비는 많이 가지고 있지만, 60년 동안 전쟁을 하지 않았고 직업군인이기 때문에 전쟁은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미군은 늘 전쟁을 수행하고 있지만, 자위대는 전쟁을 실감하지 않고 않다. 자위대는 전쟁 수행능력이 떨어질 것이다. 

질문 : 헤노꼬 기지 이전 반대운동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헤노꼬 주민들의 반대운동은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생명을 지키는 모임에서 2000일 이상 현장을 지키고 있다. 헤노꼬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주민들 중에는 찬성하는 분들이 있다. 젊은 사람들 중에는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이 드신 분들은 대부분 반대한다.

시장 선거에서 과반수 이상이 반대표를 던졌다. 비폭력주의 운동을 하고 있다. 작업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반대운동을 하고 있다. 못을 치면 못을 뽑아내는 방식으로 방해운동을 하고 있다. 수년 동안 제자리 상태를 보고 있다.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의 강연은 해질 무렵까지 이어졌습니다. '대항 발전론'을 비롯한 여러가지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강연 시간이 길어져 질문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사키마 미술관' 옥상에 올라가서 후텐마 기지를 직접 봐야하는 일정이 남아있었고, 사키마 미술관이 문을 닫을 시간도 훌쩍 지났기 때문입니다.

"아사히, 마이니찌, 요미우리 신문을 읽는 사람들과 오키나와 타임즈와 류큐 신보를 읽는 사람들은 세계관이 전혀 다르다."는 러미스 교수의 이야기가 오랫 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오키나와와 일본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라는 그의 당부도 많은 한국사람들이 꼭 기억해두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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