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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누가 군인들에게 살인면허를 주었는가?

by 이윤기 2011.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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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중순에 제가 일하는 단체 회원들과 오랫동안 계획하였던 오키나와 평화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고난과 아픔의 땅'의 오키나와를 돌아보는 평화여행 일정에는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의 강연도 포함되었습니다.

2004년도에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를 읽고 받았던 강렬한 기억 때문에 오키나와에서 살고 있는 그를 직접 만나는 일정을 강력히 추천하였습니다.

오키나와 여행을 앞두고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를 직접 만나 강연을 듣기 위한 준비로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었습니다.

저자를 직접 만난다는 기대 때문이었는지 다시 읽는 책에는 더 많은 밑줄을 긋게 되었고, 여러 페이지의 귀퉁이를 접었습니다.

작년에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와 호리 신이치로의 대담집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을 소개하는 글(서평기사 [책과 세상/책과 세상 - 생태, 환경] - 경제성장을 멈춰도 풍요롭게 살수 있다면?)을 썼습니다만, 평화운동가로서 사상가로서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의 진면목을 공부할 수 있는 책은 역시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입니다.

비록 오래된 책이지만, 헌법과 평화, 국가와 폭력, 성장과 발전의 본질, 제로성장과 대항발전, 선거와 민주주의, 군대와 민주주의, 경제와 민주주의 같은 주제를 관통하는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의 일관된 정치철학을 배울 수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전쟁, 교전권, 사람을 죽이는 권리

전쟁을 하는 권리, 바로 교전권입니다. 교전권이라는 것은 전쟁이라는 특별한 상황에서는 사람을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 다는 권리입니다. 말하자면 사람을 죽이는 권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전권이 없으면 군대라는 것은 존립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군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사람을 죽인다는 이 권리, 교전권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권리입니다. 군대가 군대이기 위한, 군대의 기본적인 '인권'인 것입니다. 인권이라고 하면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군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매우 중요합니다."

생각해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전쟁에 나가서 사람을 죽였다고 해서 체포되어 처벌 받게 된다면 아무도 군대에 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러미스 교수는 전쟁에는 물건을 운반하고, 굴을 파고, 건물을 짓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이 있지만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은 '상대방을 죽이는 활동'이라고 주장합니다.

제네바협정에 따르면 전쟁 중에 적의 군대를 죽인 것이 명백하여도 포로가 되었을 때 죽이거나 괴롭힐 수 없으며 재판에도 회부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전쟁이 끝나면 살인범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영웅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교전권은 근대국가의 기본적인 성격과도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국가는 어떤 조직도 가지고 있지 않은 '정당한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조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국가에 의해서 행사되는 폭력은 폭력이라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테러리스트가 레스토랑에 폭탄을 던져 몇 사람이 죽으면 심각한 폭력이라고 느끼지만, 국가가 전쟁을 일으켜서 수백, 수천 명이 죽은 경우에는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국가에 폭력을 행사할 권리를 부여한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러미스 교수는 국가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독점적 권리를 부여한 결과는 국가권력의 남용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합니다. 20세기, 100년 동안 국가에 의해서 살해된 사람은 외국인이나 적이 아니라 절반이상이 자국민이었다고 합니다.

"국가에 의해서 살해된 사람은 100년 동안 2억 331만 9000명, 즉 2억 명에 달합니다... 살해된 것은 외국인보다도 자국민 쪽이 압도적으로 다수입니다. 럼멜에 의하면, 국가에 의해서 살해된 약 2억 명 가운데 1억 2954만 7000명, 약 1억 3천만 명이 자국민이라는 것입니다."

"교전권, 즉 전쟁을 해도 좋다는 '살인면허'를 얻은 국가가 차례로 세계전쟁을 일으켜 타국민과 자국민을 대량으로 살해해왔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1989년에서 1998년 사이에 일어난 108건의 분쟁 가운데 92건이 내전입니다. 즉, 국가와 자국민과의 전쟁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래 필리핀 군대, 인도네시아 군대, 멕시코 군대는 모두 군대를 동원하여 자국민을 살해하였다는 것입니다. 코스타리카가 평화헌법을 만든 것도 침략전쟁 때문이 아니라 군부의 군사쿠데타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정부가 국민에게 가하는 폭력을 제한하기 위하여 평화헌법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국가와 군대는 자국민과 비전투원을 주로 살해했다

한편 국가가 살해한 2억 명은 대부분 비전투원이었다고 합니다. 훈련받은 전투원보다 훈련을 받지 않은 비전투원들이 더 많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국가에 의해 살해된 2억 명 중에 '정당한'(?) 전사자는 3402만 1000명이지만, 국가에 의한 민살(민간인학살)은 1억 6919만 8000명, 약 5배나 됩니다."

"국가에게 사람을 죽여도 좋다고 허가한 결과, 그 허가를 이용하여 국가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결국 국민들이 국가에게 '죽여도 좋다'고 허락하였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일본의 경우 군사적으로 가장 강성했던 시기에 가장 많은 일본국민이 폭력에 희생당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근본적으로 매우 폭력적인 사회인 미국은 베트남 전쟁이래 훨씬 더 폭력적으로 변하였다고 주장합니다.

"매년 몇 십 만의 사람들이 살인훈련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단히 큰 살인학교가 있어서, 미국에서 몇 백 만 명의 - 주로 남자들 - 사람들이 그 살인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그 살인학교라는 것은 물론 군대입니다."

군대의 가장 큰 목표는 죽이는 일에 관한 저항을 없애는 훈련을 하는 곳이라는 겁니다. 죽이지 못하는 인간을 죽이는 인간으로 훈련시키는 곳인 셈이지요. 그는 미국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살인과 테러, 총기사건은 모두 국가가 실시하는 체계적인(?) '살인훈련'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 지난 1월 16일 오키나와의 사키마 미술관에서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경제가 발전하면 빈부격차도 '발전'한다

러미스 교수는 '경제발전' 혹은 '발전'이라는 말에는 '착취'라고 하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합니다. 트루먼 시대 이래로 외국의 자본이 들어와 자연을 파괴하고 전통적인 문화를 바꾸고 착취하는 것을 '발전'이라고 여기는 기이한 현상이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바깥에서 자본이 들어와 자연을 파괴하고 전통적인 문화를 바꾸고 착취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발전이라고 부르면... 내정 간섭이 아니라 발전, 착취가 아니라 발전, 폭력적인 변화가 아니라 발전, 어떤 문화, 어떤 사람들이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능력을 해방하는 것과 같은 뜻이 됩니다."

따라서 이른바 근대화라고 하는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근대적 착취도 이루어지기 어려웠다고 말합니다. 유럽이 식민지를 처음 개척할 때만 하더라도 임금노동을 하겠다는 현지인이 없었다고 합니다.

"돈을 줄 테니 여덟시간 일하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들은 하려고 들지 않았습니다. … 그들에게는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매일 여덟시간이나 열시간씩 일을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까지 해서 사고 싶은 게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일하기를 거절했습니다."

식민지에서 강제노동이 이루어진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돈을 주고 일을 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강제노동을 시킬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었다는 겁니다.

아울러 간접적인 강제노동이 정책적으로 뒷받침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세금제도를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돈으로 세금을 내기 위해서는 돼지, 닭 그리고 농작물이 아니라 '돈'이 필요하였고 공장에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1930년대만 하여도 백과사전에는 이런 노동을 모두 '강제노동'이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산업화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유럽에서는 임금노동이 모욕으로 받아 들여졌다고 합니다. 1930년대 백과사전에 견줘보면 오늘날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후자의 강제노동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러미스 교수는 '경제가 발전하면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허상을 쫓는 일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제 3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은 발전이 부족하여 가난한 것이 아니라 경제가 발전하였기 때문에 자급자족의 경제를 빼앗기고 과거보다 훨씬 더 가난해졌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경제발전을 이루는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지구자원은 그런 경제 성장을 뒷받침 할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세상 모든 가족이 자동차를 한 대씩 갖게 되면 석유는 불과 수개월 밖에 지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장해도 모두 '부자'가 될 수는 없다

한편, 부자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것도 분명히 주지시켜줍니다. 돈이 힘을 발휘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돈이 없을 때만 힘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돈을 갖고 싶어 하는, 그렇지만 돈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때만 돈이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지요.

경제가 발전하고,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하여도 빈곤은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경제발전이나 기술발전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상품은 더 많은 사람들을 가난한 사람이 되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새로운 기술은 그 기술을 살 수 없는 사람들을 가난뱅이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러미스 교수는 빈부격차는 경제활동을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빈부격차는 오직 정치활동을 통해서만 해소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정책을 바꾸고 사회구조와 경제구조를 바꾸어야 빈곤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제로성장'과 '대항발전'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파이를 키워도 조각이 더 이상 커지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지구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대항발전의 첫째 목표는 곧 줄이는 발전입니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자는 것입니다. 각자가 경제활동에 쓰고 있는 시간을 줄이자는 것입니다. 가격이 붙은 것을 줄이자는 겁니다. 대항발전의 두 번째 목표는 경제 이외의 것을 발전시키자는 겁니다. 경제 이외의 가치, 경제활동 이외의 인간활동, 시장 이외의 모든 즐거움, 행동, 문화 그런 것을 발전시키다는 뜻입니다."

제로성장, 대항발전이 '희망'이다

일과 소비에 중독된 삶을 버리고, 값이 매겨져 있지 않은 즐거움, 사고파는 일과 관계가 없는 즐거움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러미스 교수가 주장하는 '대항발전'은 경제가 성장하지 않아도 좋으니 의미 없는 일, 세계를 망치는 일, 돈을 제외한 다른 가치가 나오지 않는 일은 줄여가자는 것입니다.

물건을 조금씩 줄여가며, 최소한의 것만으로도 별탈 없이 살 수 있는 인간이 된다는 뜻이며, 인간의 능력을 대신하는 기계를 줄이고, 인간의 능력을 증대시키는 도구 사용을 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TV를 켜고 '문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창조하는 것, 기계로 음악을 듣는 대신 악기를 다루고 춤을 추고 연극을 만든 것이 대항발전이라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대의민주주의는 속임수라는 것,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이 진짜 평등이라는 진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를 쓴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는 탁월한 안목과 학문적 깊이를 가진 뛰어난 '사상가'입니다. 국가의 폭력성, 경제성장의 허구성, 대의민주주의의 속임수를 이처럼 명확하게 드러내어 알기 쉽게 보여주는 책을 일찍이 보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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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 10점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녹색평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