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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집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좋은 집에 살수 있다

by 이윤기 2011.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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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이동일이 쓴 <황토집 바로짓기>

웰빙주택, 황토집, 흙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자신이 사는 집을 직접 짓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여러 종류의 집짓기 책이 나오고 있다.

고제순이 쓴 <일주일 만에 흙집 짓기>나 오래 전에 나온 정호경 신부가 쓴 <손수 우리집 짓는 이야기>와 같은 책들은 읽는 이에게 '당신도 할 수 있으니 한 번 시작 해보라'고 권하는 책들이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조금만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다면서 집짓기를 권한다.

돈이 없으면서도 좋은 집(비싼 집 말고 '생명'이 있는 집)에 살고 싶어 하는 내 친구는 오래 전부터 전세금을 찾아서 땅 값 싼 곳으로 이사 가 직접 집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건축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여러 가지로 연구하더니, 얼마 전에는 한 일간지에 나온 '스트로베일하우스' 소개 기사를 스크랩해 와서는 '볏집으로 집을 지으면 돈이 많이 안 든다'며 자기 집도 볏집으로 짓겠다고 하였다.

그때 친구가 보여준 기사에는 스토로베일하우스도 7~9일 교육과정을 마치면 집을 지을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그래서 이동일이 쓴 <황토집 바로 짓기>도 책 제목만 보고, 이 책만 읽으면 '황토집을 지금부터 바로 지을 수 있다'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그런 뜻이 아니다. 이동일이 말하는 '바로 짓기'는 지금 바로가 아니라 '똑바로'라는 뜻이 담긴 '바로'였다.

그는 요즘 유행하는 황토방 아파트는 말할 것도 없고, '건강주택'이라는 의미에서 많이 보급되고 있는 집들이 소재만을 강조하여 건축의 일반 요소들을 무시한 채 어설프게 지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구조체(뼈대)없이 황토벽돌로만 집을 짓거나 귀틀집 형태로 황토집이 지어지기도하고 통나무와 흙으로 짓는 목심구조도 나와 있지만, 벽돌로만 짓는 집은 강도를 높이기 위하여 재료에 불순물이 들어가고, 귀틀집이나 목심흙집은 나무와 흙이 수축하면서 생기는 틈을 오랫동안 보수해야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귀틀집이나 목심구조로 만들어진 집들은 대부분 일시적인 숙박공간이나, 아쉬람으로는 손색이 없지만, 가족이 생활하는 살림집으로는 부족한 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황토집 바로(正) 짓기

이동일은 뼈대와 지붕을 짜는 방식은 전통에 근접하면서도 황토벽돌을 쌓고 창호 및 단열을 현대화할 뿐만 아니라 한옥의 공간구성에 현대식 주방과 화장실 등을 배치하고 현재적인 건축 소재들을 결합해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소재만을 강조하는 황토주택이나 이질적인 요소들을 일체화시키지 못하는 개량 한옥, 퓨전 흙집은 우리 살림집의 원형을 현대적으로 계승한다는 의미를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 시점에서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우리 집'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개념이 필요하다. 우리 살림집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현대한옥'이고,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대안 건축이라는 의미에서 '현대흙집'이다." - 본문 중에서

이동일이 쓴 <황토집 바로 짓기>는 우리 살림집 전통을 이어받아 현대적으로 계승한 집짓기를 하기 위해 씌어진 책이다. 즉 전통한옥과 현대주택의 좋은 점을 잘 조화시켜 만든, 집짓기에 대한 오랜 연구와 실천의 산물이다.

지은이는 1986년 성균관대학교에서 제적된 후 서점운영, 독서회, 청년회, 노동상담소 활동을 하였으며,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 노동운동에 참여하였다. 1995년부터 건축 일을 시작하였으며, 1996년 (주)하우징그룹 행인에서 일하며 용인, 이천 등지의 전원주택 건설에 참여하였다.

1999년 행인흙건축을 설립하여 이천시 솟대전원마을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40여동의 현대 한옥, 현대 흙집을 신축하였다고 한다.
<황토집 바로 짓기>에는 그동안 지은 40여동의 현대한옥 건축의 변화과정이 모두 나와 있다. 제 4장에는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지어진 현대한옥이 사진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이 기간 동안 건축양식으로서 현대 흙집의 태동과 대중화를 위한 실험 그리고 현대한옥의 확산 과정을 거쳐서 이제는 어느 정도 정형화된 현대한옥, 현대흙집 틀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제 5장에는 상세한 도면, 사진과 함께 복층, 단층, 그리고 지붕의 형태에 따라서 구조별, 유형별 현대한옥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그가 살아온 이력으로 알 수 있듯이 <황토집 바로 짓기>를 쓴 이동일은 집에 대한 생각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로지 삶의 편리성과 재산증식 가능성에 따라서 아파트 평수를 늘려가는 방식으로는 '좋은 집'에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집의 가치는 '사용가치'로 판단해야

집에 대한 그의 생각은 한마디로 '교환가치'를 버리고 '사용가치'에 주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대를 이어 살아가는 사용가치 중심의 한옥과 교환가치를 중시할 수밖에 없는 양옥의 차이는 집을 바라보는 가치관의 차이로 이어지기 때문이란다.

나라와 민족마다 생김새와 언어 그리고 음식과 의복이 다르듯이 '집'은 민족 구성원이 기후와 환경에 적응하며 만들어낸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산물이라고 규정한다. 즉, 집은 그 시대 생활과 의식, 문화를 담아내는 총체적 문화유산이라는 것이다.

생활과 의식, 문화를 담는 문화유산으로서 집을, 현대에 맞는 '우리 집'으로 정형화하기 위한 지은이의 연구는 크게 세 가지 기준 요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말하자면, 전통한옥을 현대한옥으로 시대에 맞게 발전시키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세 측면을 고려하면서 실제로 집을 지어왔다는 것이다.

"첫째는 '집의 배치와 공간구성'이라는 내용적 측면이다. 둘째는 그 내용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틀 즉, '뼈대와 지붕모양'이라는 형식적 측면이다. 셋째는 '난방 및 건축 소재'로서 기능적 측면이다." - 본문 중에서

첫 번째로, 집의 배치와 공간 구성이라는 내용적인 측면에서 대청마루(거실)와 방을 중심으로 하여 주방과 화장실 등 기능적 공간을 배치하는 것으로 한 채 안에서 '공간과 채 나눔'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옛 한옥의 사랑채, 안채와 같은 구분처럼 방이나 거실, 주방이라는 공간 개념 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채'로 독립성 또한 보장하는 공간 구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우리 살림집 정신의 내용(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으로서 뼈대와 지붕 모양(집의 형식)을 현대적으로 계승해야 하는데, 집의 골조를 이루는 뼈대와 지붕 모양이 한옥을 구성하는 핵심이라는 것이다. 기둥, 도리, 보의 사괘맞춤으로 견고하게 짜 맞추어진 뼈대는 철물과 피스로 조립하는 서구 목조주택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 또한 집의 규모와 용도에 따라 처마길이와 모양이 다른 여러 가지 지붕도 한옥이 가진 특징이라고 한다.

세 번째로, 난방과 건축소재의 측면에서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흙, 흙집 기능을 대안 건축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인이 생활하기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단열기능과 창호 기능을 갖추기 위하여 황토벽돌로 벽체를 쌓는 방식을 도입하였으며, 황토벽돌 이중 쌓기는 전통한옥과 현대한옥을 구분하는 핵심적 요소라고 한다.

특히 대안건축으로서 흙집을 짓기 위해서는 회나 시멘트 경화제를 사용하지 않은 흙벽돌, 즉, 흙 본래의 성질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모양이나 강도, 규격화와 대량생산이 가능한 '진공 압착식 황토벽돌'이 적합하다고 한다. 흙집 본래 기능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대 주택과 같은 단열기능을 담아내는 것으로 현대한옥에도 살림집으로서의 위상을 갖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통한옥을 계승하는 '현대한옥'

이동일이 쓴 <황토집 바로 짓기>에는 전통한옥을 계승하는 현대한옥의 공간구성, 난방과 설비방식의 변화, 뼈대, 처마, 지붕의 가구(짜 맞추기)방식의 변화, 기와를 비롯한 지붕 소재의 변화, 한옥으로 2층 집 짓기, 현대 한옥을 위한 벽 만들기, 창과 문, 황토미장과 모르타르, 천장과 구들, 마루 만들기 그리고 현대식 주방과 화장실 설치에 이르는 과정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전통한옥의 내용과 형식, 의미를 계승하는 현대한옥으로의 변화를 끼워 넣기 식의 부조화가 아닌 '전통과 현대의 변증법적 통일'로 승화시키고자하는 지은이 철학이 담겨있다.

"현대 한옥은 밖에서 보면 한옥이되, 내부 공간은 현대주택이고, 기능은 흙집인 주택으로 거듭난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아울러, 현대한옥을 짓기 위한 의미에만 매달리지는 않는다. <황토집 바로 짓기>에는 기초공사에서부터 현대한옥을 시공하는 과정이 상세한 사진과 더불어 소개되어 있다. 책만 보고 누구나 바로 시작할 수는 없겠지만,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거나 흙집 짓기, 나무집 짓기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책만 보고도 얼마든지 '현대한옥'을 지을 수 있다.

집을 직접 지을 수 없는 경우라도 한옥이 가지는 불편함(난방, 소음, 외풍)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현대한옥'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또 구조, 지붕, 벽체, 창호, 마감을 비롯한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유형별 건축비용도 예시하고 있다.

생태건축을 지향하는 이들에게는 현대한옥의 수세식 화장실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지만, 현대인의 보편적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집을 흙과 나무로 지으려고 하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