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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여행 연수/자전거 국토순례

5학년 초딩들도 강진 -임진각 620km 달리다

by 이윤기 2011.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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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YMCA 자전거 국토순례에는 전국에서 143명이 참가하였습니다. 그중 전국 최연소 참가자 3명은 모두 마산에서 참가한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입니다.

세 명은 모두 YMCA 유치원인 아기스포츠단 출신들이고 부모님이 모두 YMCA 생활협동운동 모임인 등대 촛불로 참가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오늘은 전국 최연소 참가자인 초등 5학년 세 명의 국토순례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소연이, 건모, 승재는 모두 초등 5학년인데 여자 아이인 소연이 이야기부터 들려 드리겠습니다.


묵언 수행 하듯 자전거를 탄 소연이

소연이는 국토순례 둘째 날부터 우리팀의 마스코트로 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애초부터 소연이 체력으로 자전거 국토순례를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좀 있었는데 첫날부터 자꾸만 뒤쳐지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둘째 체력이 뒤쳐지는 소연이는 둘째 날부터 전체 대열의 맨 선두에서 진행대장과 함께 자전거를 탔습니다. 

가끔씩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타나면 선두 대열에서 뒤쳐져 후미로 밀려날 때도 있었지만, 웬만해서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자전거를 탔습니다. 전체 대열의 맨뒤로 쳐졌을 때도 "버스 타고 갈래?" 하고 물으면 말없이 고개만 옆으로 살레살레 흔들곤 하였습니다. 



늘 전체 대열의 선두에 있었기 때문에 소연이는 사진에 많이 찍혀습니다. 진행대장을 포함하여 자전거 국토순례단 전체를 찍은 사진에는 어김없이 소연이 모습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자전거 타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체력이 모자라는 아이들을 선두에 새워두고 집중 관리한 덕분에 소연이는 사나흘이 지나면서부터 경사에 맞춰기어조작도 익숙하게 해내더군요.

작은 키에 몸집 보다 큰 자전거를 타고 웬만해서는 포기하지 않는 소연이 모습은 모든 참가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언니, 오빠들, 어른들, 선생님들 모두가 소연이를 볼 때마다 "소연아 힘내 !", "소연이 화이팅!" 하고 응원해주었습니다. 



사흘 째 되는 날 아침에 만났더니 새까맣게 탄 얼굴, 콧잔등에 허물이 벗겨지고 있더군요. 그래도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소연이는 마치 묵언 수행하는 수행자처럼 말 대꾸도 하지 않고 자전거를 탔습니다. 누가 물어도 말로 대답하지 않더군요. 꼭 필요한 말만 빼고 모든 의사표시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좌우로 흔드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말할 기운도 아껴서 자전거를 타는데 온 힘을 쏟아붓고 있는 것 같더군요. 그렇다고 끝까지 자전거를 타겠다고 고집을 피우지도 않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고 나면 미련없이 '버스'를 타기도 하였습니다. 군산에서 공주로 가던 날 저와 함께 대열 맨 후미로 쳐졌습니다. 쏟아지는 폭우를 맞으며 1시간 넘게 자전거를 탔습니다.



목적지 공주 한옥 마을을 10여km 남겨 두었을 때 버스를 타겠다고 하더군요. 더 이상 다른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자신이 가진 모든 에너지를 온전히 자전거를 타면서 소진해 버린 아이가 이젠 '버스'를 타야겠다고 하는데 10km 밖에 안 남았으니 끝까지 가보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소연이는 마치 자전거로 수행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어떨 때는 '한비야'씨가 연상되기도 하였습니다. 딱히 어떤 점이 닮았다고 표현할 수는 없는데, 초등 5학년 밖에 안 된 녀석이 힘들다는 말 한 번 하지 않고 묵묵히 패달을 밟는 모습을 보며 여러 번 '한비야'씨를 떠 올렸습니다.

소연이가 미소를 보여주고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은 임진각을 하루 남겨 둔 부천YMCA에 도착하였을 때입니다. 다음날 오전에 55km만 달리면 자전거 국토순례가 끝나는 날 이었지지요. 저녁 식사를 하러 식당에 온 소연이는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웃음을 날리기 시작하더군요. 초등 5학년 여자 아이의 모습을 조금씩 되찾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누구라도 1분 안에 친구를 만드는 말라깽이 건모

또 다른 초등 5학년 1명은 건모입니다. 건모는 겉 보기에 말라깽이 입니다. 눈으로만 보면 저 몸으로 과연 임진각까지 갈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 건모는 2월생으로 일찍 입학하여 5학년이 되었기 때문에 나이로만 따지면 4학년들과 동갑입니다.

초등 5학년 3인방 중에서도 그야말로 최연소 참가자입니다. 건모는 힘들면 힘들다, 지치면 지친다고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아이입니다. 넘치는 에너지를 가진 아이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파른 언덕길을 넘어가면 힘이 닿는 만큼 자전거를 타고 올라갑니다. 그러다가 힘이 부치면 그냥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갑니다.



가파른 언덕길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는 속도도 별로 빠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가는 것보다는 그래도 타고 가는 것이 빠릅니다. 건모는 자전거를 끌고 오르막길을 오르다가도 힘이 좀 모아졌다 싶으면 다시 자전거를 타고 올라갑니다. 힘들다는 이야기를 수 없이 하고 몇 킬로 남았냐는 질문도 수백 번 하였지만 '버스'를 타겠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건모는 에너자이저입니다. 자전거 탈 때는 힘들어 죽겠다고 했다가도 휴식 시간이 되면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합니다. 조장이나 당번을 따라 생수나 음료, 간식을 받으러 함께 다니고, 다른 참가자들과도 허물없이 어울리는 아이입니다. 마치 다람쥐처럼 가벼운 모습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사람들과 어울리더군요. 건모는 처음 만난 사람과도 금새 친해지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택에서 찜질방을 숙소로 사용하던 날, 사우나 냉탕에서 중, 고등학생 형들이랑 어울려 물장난하고 노는 초딩은 건모 밖에 없었습니다. 구김살 없는 건모는 먹을 것이 있는 곳을 잘 찾아다니고 남는 간식이 있으면 재빠르게 하나라도 더 챙겨먹는 생존 능력이 탁월한 아이입니다. 늘 에너지가 넘치기 때문에 힘들어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웃음과 에너지를 나눠주는 역할도 많이 하였습니다.

중학생 같은 초딩 5학년 승재

성재는 키가 좀 작은 것만 빼고나면 중학생 형들과 비교해도 체격이나 체력으로는 조금도 뒤쳐지지 않았습니다. 힘으로도 중학생들에게 별로 밀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뭘 해도 중학생 형들에게 뒤쳐지는 일이 없었습니다.

광주시내를 지나 518국립묘지로 가던 날 빗길에 미끄러져 넘어져는데 헬멧이 깨져버렸습니다. 헬멧을 쓴 덕분에 다친 곳은 없었지만 초등 5학년이면 놀랄만도 한데 이 녀석은 어른처럼 툴툴 털고 일어나서 그냥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겁니다. 휴식 시간에 넘어질 때 부딪힌 곳이 아프다는 이야기는 했지만 그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는 젼혀 하지 않았습니다. 




승재는 강진을 출발하여 임진각까지 가는 동안 한 번도 버스에 타지 않았습니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타나도 한 번도 대열에서 뒤쳐지는 일도 없었습니다. 중학생 형들도 한 두번씩은 대열에서 밀려나 후미로 쳐지는 일이 있었는데 승재는 늘 자기자리를 지키면서 자전거를 탔습니다.

워낙 자전거를 잘 타다보니 소연이나 건모 만큼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는 않았습니다. 건모나 소연이는 함께 국토순례에 참가한 어른 참가자들에게 "대견하다" "대단하다" 하는 칭찬을 많이 들었는데, 승재는 그러말을 들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어른들 누구도 승재가  초등 5학년 밖에 안된다는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자전거를 잘 탔기 때문입니다. 



전국 143명 자전거 국토순례 참가자 중에서 최연소 참가자였던 초딩 5학년 소연, 건모, 승재는 모두 전남 강진에서 임진각까지 620km를 완주하였습니다. 너무너무 힘들 때는 잠깐씩 버스를 타기도 하였고, 자전거가 고장나서 할 수 없이 버스에 타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완주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무도 그런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아이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초등 5학년 밖에 안 된 이 아이들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주일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 힘들었던 순간은 다 잊어버렸는지, 임진각에서 해산식을 마치고 기차를 타고 마산으로 내려오면서 내년에도 자전거 국토순례에 다시 참가하겠다고 약속하는 아이들이 참 대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