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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커피숍이 혁명 발원지? 다음 발원지는 SNS

by 이윤기 2011.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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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송인혁이 쓴 <화난 원숭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사람만이 희망이다>, 시인 박노해가 쓴 유명한 수필집 제목입니다. 박노해 시인이 쓴 책 제목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세상의 변화를 꿈꾸고 보다 나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늘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때때로 사람 때문에 좌절하거나 절망하는 일이 있지만, 그래도 결국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하고 말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사실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가진 것이 '사람'밖에 없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돈과 권력이 없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사람밖에 없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사실 새로운 힘과 변화의 씨앗은 그냥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이후에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은 '조직화된 시민'에게서 비롯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강조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근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비롯되는 '창조적인 에너지'와 '혁명을 만드는 변화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매우 흥미로운 책을 읽었습니다.

다음세대재단이 추최하는 비영리단체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받은 책 <화난 원숭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입니다. 송인혁이 쓴 이 책에는 '숨어버린 내 안의 열정과 창의성을 찾아가는 혁신 이야기'라는 긴 부제도 달려 있습니다.

이 책은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문화와 도구가 본질적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아울러 아울러 본질적으로 달라지는 소통의 문화가 조직의 혁신을 만든다는 것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글쓴이 송인혁은 KAIST 전산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삼선전자에서 일한 경력이 있습니다. 솔직히 책 속에 제시된 기업 내부에서 일어나는 혁신과 변화의 사례가 삼성전자 혹은 삼성그룹의 것들이라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된 것은 이 책이 사람들 사이에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소통의 문화인 SNS(소셜네트웍서비스)를 주제로 한 책이고, 삼성 못지 않게 경직된 내 주변 시민사회조직을 비춰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당신, 혹시 화난 원숭이로 살고 있지 않나?

먼저 이 책 제목에 있는 '화난 원숭이' 이야기부터 소개하겠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화난 원숭이'는 '만성화된 부정적인 태도' '학습된 무기력에 빠진 사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실험자가 한 무리의 원숭이들이 있는 우리에 바나나를 매달아놓고, 원숭이들이 바나나를 가지러갈 때마다 찬물을 뿌려서 훼방을 놓았습니다. 원숭이들이 바나나를 따려고 할 때마다 반복해서 물을 뿌려대자 결국 원숭이들은 아예 바나나를 따려고 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원숭이가 우리에 들어와 바나나를 따러 올라가자 고참 원숭이들이 버럭 화를 내며 신참 원숭이를 제지하더라는 것입니다. 고참 원숭이들의 강력한 제지 때문에 신참 원숭이들도 바나나를 따려는 시도를 포기하였고, 나중에는 바나나를 따러 가다가 직접 찬물을 뒤집어 쓴 원숭이가 한 마리도 남지 않았지만, 어떤 원숭이도 바나나를 따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믿기지 않는 이 이야기는 게리 하멜과 C. K. 프라할라드 교수의 논문에 소개된 화난 원숭이 실험 결과입니다. 글쓴이는 회사라는 영리조직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화난 원숭이 효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글쓴이는 회사가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것마저 경우에 따라서는 개인을 더 무기력하게 만들고 협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제가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은 것은 영리조직인 삼성전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제가 속해있는 비영리조직, 비정부조직들도 모두 비슷한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글쓴이는 조직의 딜레마라고 불리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사람이 많이 모여 만드는 조직은 구조적으로, 혹은 태생적으로 정체될 수밖에 없는 특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글쓴이는 '생일 패러독스'라는 재미있는 확률 통계를 보여줍니다.

36명의 사람이모여 있을 때 생일이 같은 날일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라는 질문인데, 대체로 사람들은 36/365를 상상하기 때문에 대략 10%쯤 될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실제로 생일이 겹칠 확률은 80%정도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생일과 다른 사람의 생일만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간에도 생일을 비교해야 하므로 36명이 모여 있으면 모두 630번을 비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성원 수가 조금만 많아져도 경우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며 커뮤니케이션은 그 이상으로 어려워진다는 것이지요.

"열 사람이 함께 영화를 보러 가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서너 명이 모여 있을 때는 모두가 아직 보지 않은 영화가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여기에서 한두 명이 더 많아져서 대여섯 명이 넘어가기 시작하면 '난 그 영화 봤는데… 다른 영화를 보면 안 될까?'라는 이야기가 나올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진다. 모인 사람이 열 명이면 모두가 보지 않은 영화를 찾기란 매우 어렵다." (본문 중에서)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을 나누어 조직을 만들지만 이 조직 역시 규모가 커질수록 경직되고 분업화돼 집단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성난 원숭이가 된다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개인의 입장이나 개성과는 상관없이 조직이 요구하는 역할에 따른 정체성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거대한 조직 속에는 창의적인 개인, 새로운 시도를 하는 개인은 존재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이런 정체를 막기 위해 조직은 상벌, 인센티브와 같은 제도를 통해 경직성을 극복하려 합니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런 제도가 협력보다는 경쟁을 촉발시키기 때문에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혁신을 생각하는 100마리째 원숭이도 있다

그런데 이 책에는 또 다른 원숭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새로운 변화를 상징하는 100마리째 원숭이 이야기입니다. 몇 년 전에 <100마리째 원숭이가 되자>라는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했는데, 이 책에서도 '변화와 혁신'의 사례로 소개하고 있더군요.

 '100마리째 원숭이 이야기'는 일본 고지마 섬에서 영장류를 연구하면서 발견한 변화현상을 말합니다. 연구원들이 먹이로 준 고구마의 흙을 털어서 먹던 원숭이들이 어느 날부터 물에 씻어 먹기 시작했고, 마침내 5년 후에는 대부분 원숭이들이 고구마를 물에 씻어 먹더라는 이야기입니다.

글쓴이는 처음 고구마를 물에 씻어 먹은 '이모'라는 이름을 가진 원숭이와 그의 혁신적인 행동을 따르는 친구와 어미(추종자들이)가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면서 혁신을 제안하는 사람보다 그런 제안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야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내적 동기는 인접한 인관관계에서 발생한다. 인접한 인간관계는 직장 동료나 학교 급우처럼 물리적으로 가까이 생활하는 사람일수도 있고, 회사나 학교의 동아리 구성원일 수도 있으며 물리적으로 가까이 연결되어 있지는 않지만 온라인으로 관심사를 공유하는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일 수도 있다." (본문 중에서) 

글쓴이는 바로 이 개인들의 인접한 인간관계 속에 '변화의 씨앗'이 숨어 있다고 여러 번 강조합니다. '주도성' '전문성' '목적성' 같은 내적 동기의 요소가 발휘되는 것도 바로 인접한 인간관계 속에서 가능하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면서 글쓴이는 새로운 소통의 도구인 '온라인'과 'SNS'를 강조합니다. 특히 SNS의 본질은 관계라는 것에 주목합니다. 뿐만 아니라 SNS를 통해 맺는 관계에 주목하면 '주도성' '전문성' '목적성'을 가진 사람을 찾아낼 수 있고, 그들을 회사라는 조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담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혁신, 제안자도 중요하지만 추종자가 있어야 한다

글쓴이는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18분의 기적' TED 강연 사례, 그리고 이 강연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퍼뜨리는 5000명의 자발적인 번역 자원봉사자들에 주목하면서, 네트워크를 통해 세상의 아이디어가 '공명한다'는 확신을 전해줍니다.

이 책은 모두 5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제4장 'Creative Movement'에서는 글쓴이가 몸담았던 삼성전자에서 경험한 '자발적인 개인이 주도하는 연결'이 이끈 조직의 변화 사례들을 소개합니다.

책 속에 담겨 있는 'TED 영상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 'TED 영상을 모여서 보는 모임' '플래시몹 프로젝트 만들기' 그리고 '빨간 풍선 프로젝트' 등은 새로운 연결과 협력의 사례들입니다. 글쓴이는 이런 경험들을 통해 '화난 원숭이'로 살아가던 많은 사람들이 '이모' 원숭이가 되고,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기꺼이 100마리째 원숭이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글쓴이는 '창의성은 개인에게 있지 않다'는 결론을 내놓습니다. 모든 새로운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이에는 빈 공간이 존재 하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이 존재하고, 우리의 바람과 욕망들이, 그리고 아이디어와 창의성이 존재하고 있다. 기업은 개인의 창의력을 키우는 쪽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람과 사람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생각과 통찰력을 자유롭게 꺼내놓을 수 있을지, 그리고 그렇게 창발된 생각들을 어떻게 잘 수렴하도록 할지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본문 중에서)

스티브 잡스 역시 창의성은 '연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창의성은 새로운 경험의 연결에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글쓴이는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혁신이 일어났다는 증거를 찾아냅니다.

르네상스, 신대륙의 발견, 종교개혁, 절대왕정시대, 계몽주의, 아메리카 혁명, 프랑스 대혁명, 나폴레옹 시대, 산업혁명 등의 과학·철학·사상 등에 폭발적인 혁신이 일어난 것은 바로 사람과 사람의 새로운 만남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합니다.

14세기에서 17세기까지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해 술에 취해서 살아가던 유럽 사람들이 17세기에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마음을 열고 새로운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술 대신 커피를 마시면서 사람들은 더 많이 만나서 생각을 나눌 수 있게 됐으며, 오늘날 SNS와 같은 소통의 열풍이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커피숍에 모여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함께 모인 다수와 공유했고,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커피숍 모임을 통해 퍼져나갔다. 생각이 서로 닿는 사람들끼리는 다시 회동을 해서 만났고 생각들을 발전시켜가며 토론했다. 이처럼 계몽주의 운동의 이면에는 커피숍이 있었다." (본문 중에서) 

"커피숍을 통해서 가치 있는 아이디어나 사상들이 커져가기 시작했고, 이것은 결국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 함께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변모시킬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해보자고 의지를 불태웠던 것이다. 이것은 결국 프랑스 혁명, 영국 혁명을 이끌어낼 정도로 거대한 물결로 번져갔다." (본문 중에서)

오늘날 SNS를 통해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다양한 정보와 감정, 그리고 통찰들이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커피를 매개로 유럽 문명에 일대 폭발이 일어났던 것과 비슷한 일이 전 지구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미국에서는 1780년대 커피 하우스를 연상시키는 '커피 파티'라고 하는 새로운 시민 정치 운동이 시작됐다고 하니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생각과 생각이 연결되고, 마음과 마음이 닿을 수 있도록 하는데 가치가 있다. 우리는 믿는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돼 있다. 가치는 연결에서 비롯되며, 그모든 가치들은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 (본문 중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잘 연결될 수 있고, 연결의 과정과 그 사이에서 의미를 끌어낼 수 있도록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글쓴이는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혁신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도 누군가와 연결됐을 때,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화난 원숭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 10점
송인혁 지음/아이앤유(i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