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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퇴직금이 나라돈? 왜 내 맘대로 못쓰게 하나?

by 이윤기 2012.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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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가 퇴직금 중간 정산을 어렵게 하는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시행령 개정을 단행하였습니다. 오늘은 정부의 퇴직금제도 개정에 관하여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올해부터 회사가 외부의 금융기관에 근로자의 퇴직금을 의무적으로 적립해야 하는 ‘퇴직연금제도’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기존 퇴직금 제도의 경우 대부분 기업들이 장부상으로만 퇴직금을 적립해두고 있기 때문에 회사가 망하기라도 하면 근로자들은 수 년 혹은 수십 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아놓은 퇴직금마저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정부는 퇴직 연금제도가 도입되어 근로자들의 '퇴직금 부도' 사태를 이를 막을 수 있게 되었다고 퇴직연금 제도의 장점만 널리 홍보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하면 적립된 연금을 본인의 상황에 따라 일시금 또는 연금으로 받을 수 있어 개인의 필요에 따라 근로자의 노후 소득보장을 강화하고 다양화 할 수 있다고도 하였습니다.

 

실제로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 시행으로 퇴직연금 적립금은 무려 52조 4천억 원에 이르고, 전체 상용근로자의 40.5%인 370여만명이 가입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7월 26일부터 시행되는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에 맞추어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퇴직금 중간 정산을 까다롭게 제한하는 방향으로 대통령령을 개정하였습니다.

 

 

 

 

퇴직금 중간 정산 대통령(령) 허락 받아야 한다?

 

정부는 퇴직급여의 본래 목적인 노후소득 보장에 충실하기 위하여 퇴직금 중간 정산을 엄격하게 제한하기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무주택근로자가 본인명의의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전세보즘금을 부담하는 경우 1회에 한하여 그리고 본인 또는 배우자의 6개월 이상 요양을 요하는 질병, 파산선고를 받고 개인 회생 절차를 개시하는 경우, 임금피크제를 실시하여 임금이 줄어드는 경우 등이 아니면 퇴직금 중간 정산을 받을 수 없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대통령령으로 정해놓은 중간 정산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퇴직금을 찾아서 쓸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컨대 자녀의 대학등록금을 내야하는 경우, 자녀 결혼을 시켜야 하는 경우, 혹은 근로자의 배우자가 장사(사업)를 시작하는 경우 등 근로자 가계에 목돈 필요한 상황은 얼마든지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가 개인의 사유재산인 퇴직금에 대하여 지나치게 제한적으로만 중간정산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은 국민의 권리와 재산권 과도하게 제한하는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퇴직금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에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정부는 퇴직금은 근로자가 미리 저축을 해서 노후에 연금을 받아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기금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퇴직금이 노후 보장을 위한 돈일뿐만 아니라 자녀 학자금이나 결혼자금 같은 목돈 마련의 의미도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이런 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퇴직금 중간 정산을 과도하게 제한하여 근로자들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생각됩니다.

 

 

 

퇴직금으로 학자금, 결혼자금으로는 쓸 수 없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동안은 퇴직연금 가입 근로자가 퇴직할 경우 기존 퇴직급여를 현금으로 수령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개인형 퇴직연금제도로 이전하여 은퇴할 때까지 적립금을 운용하게 된다고 합니다. 몇 가지 예외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젊은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에는 퇴직금을 수령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민간금융기관들의 경우 2020년 8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개인형 퇴직연금 시장을 놓고 각축을 벌이게 되겠지만, 근로자들은 직장을 옮기면서 퇴직금을 목돈으로 받아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당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정부는 퇴직연금의 경우에도 국민연금과 같이 근로자의 노후소득보장에 국한하도록 사용범위를 강제로 제한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연금의 경우 연금의 절반을 사업자가 부담하지만 퇴직금의 경우 전적으로 근로자가 노동의 댓가로 받은 임금의 일부라고 보아야 하는데, 정부가 근로자의 임금 사용을 강제로 제한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기업에 다니거나 급여 소득이 충분한 근로자의 경우 퇴직금은 은퇴이후에 연금으로 받아도 아무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중소 사업장 혹은 영세 사업장에서 최저임금을 겨우 넘는 급여를 받는 근로자들의 경우 퇴직금 수급을 제한하게 되면 결국 은퇴 이후를 위하여 지금은 빚을 내서 살아야 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지금처럼 정부가 과도하게 퇴직금 중간정산을 제한하게 되면 자녀의 대학등록금은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이자를 꼬박꼬박 내야하고, 퇴직금은 금융기관에 맡겨놓았다가 은퇴 이후에나 받아 쓸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말하자면, 근로자들은 80조원이나 되는 퇴직금(자기 돈)을 금융기관에 맡겨놓고, 자녀 결혼자금은 퇴직금을 맡겨놓은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아 마련하고, 은퇴 후 퇴직연금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은행에서 빚을 내어 이자를 물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저 소득 근로자, 은퇴 이후보다 지금이 더 급한데...

 

이 어찌 기가막힌 일이 아닙니까? 정부가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하면서 퇴직금에 대하여 과도하게 규제하고 그 수급과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결국 퇴직금에 대한 근로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며, 나아가 근로자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노령화 사회에 대비하여 정부가 국가예산으로 국민들의 노후를 책임지기 위한 준비는 소홀히 하면서 임금소득으로 살아가는 근로자들의 임금 중 일부인 퇴직금을 은퇴 이후에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한 정책시행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퇴직금은 국가나 회사가 근로자들에게 공짜로 베풀어 준 보너스가 아니라 열심히 일해서 받은 월급의 일부입니다. 마땅히 퇴직금을 어떻게 쓸 것인지 근로자가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퇴직금이 회사에 적립되어 있던지, 아니면 연금의 형태로 외부 금융기관에 적립되어 있던지 상관없이 노후대비 뿐만 아니라 근로자들이 ‘목돈’이 필요할 때도 언제든지 찾아서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제와 제한을 풀어야 합니다.

 

국가와 사회 그리고 회사를 위하여 성실하게 일하고, 꼬박꼬박 납세자로서 국민의 의무를 다했다면 그들 근로자들의 기본적인 안정된 노후는 퇴직금과 상관없이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