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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100권은 읽어야 책 1권 쓸 수 있다

by 이윤기 2012.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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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언어 사용과 도구 사용의 역사가 일치를 보인다고 한다. 인간을 규정하는 큰 특징 중 하나인 언어를 '읽기, 듣기'라는 관점에서 깊이 들여다보는 세미나에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세 사람의 석학이 참여하였다.

 

누구라도 이들이 언어를 최고의 도구로 활용한다는데 동의할 만한 세 사람은 바로, 평론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다치바나 다카시, 임상심리학자인 가와이 하야오, 그리고 일본 현대시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시인 다니카와 순타로다. 이들 세 사람이 만나서 각자 생각을 풀어 놓은 책을 펴냈다.

 

우리 시대 일본을 대표하는 '달인' 세 사람이 쓴 <읽기의 힘, 듣기의 힘>은 '그림책․ 아동문학 연구센터'가 주최한 제 10회 문화세미나(2005년 11월 20일) '읽기, 듣기'에서 발표하고 토론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죽기 전에 몇 권을 더 읽을 수 있을까

 

다치바나 다카시의 첫 인사는 "일생동안 몇 권의 책을 읽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어려서부터 책벌레였던 다치바나는 학교도서관과 시립·현립 도서관, 책대여점과 대형서점 그리고 도쿄의 고서점을 두루 섭렵하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 그는 늘 돈이 부족하여 마음껏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인생에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여 너무나 안타깝다고 한다.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남은 인생에서 앞으로 몇 번 식사를 할 수 있는지를 계산해 한끼 한끼를 소중히 여기며 즐긴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먹는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내 고민은 인생 동안 앞으로 몇 권의 책을 읽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이들은 읽기와 듣기의 영역을 단순히 책(문자)을 읽거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좁히지 않는다.

 

"사람들은 글자를 읽을 뿐만 아니라 표정을 읽고, 시의 여백이 갖는 행간을 읽으며, 경기의 흐름을 읽는 등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까지 읽어내고 있다."(본문 중에서)

 

말하자면, '읽다'라는 말에는 분명하게 언어로 정리할 수 있는 것만이 아니라 비언어적인 것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듣다'라는 말도 다르지 않다.

 

"침묵을 듣거나 송풍을 듣거나 향을 피워 냄새를 맡을 때에도 '듣다'라는 단어를 쓴다. 즉 인간의 의식에 호소하는 내용을 자신에게 투영하는 움직임을 '듣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읽기와 듣기는 자칫 지성의 작용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눈이나 귀는 모두 우리 몸의 내부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몸의 작용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밤에 꾼 꿈을 읽어냄으로써 의식의 저변에 자리한 것을 깨닫거나, 어떤 음악의 한 소절을 듣고 떨리는 그리움을 느끼는 등, 몸은 때로 머리보다 똑똑하다"는 것이다.

 

임상심리학자인 가와이 하야오는 '읽는다는 것, 듣는다는 것 그리고 산다는 것'은 모두 몰입의 과정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듣는 것이 본업인 가와이는 "멍청해 보일 정도로 묵묵히 듣는 태도는 상담하러 온 사람의 현재 생각과는 전혀 다른 측면을 발견하고 주목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속에 자신을 온전히 몰입하여야 제대로 카운슬링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비평을 위한 독서가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책에 온전히 몰입해서 읽는다는 것이다. 책도 스스로 몰입해서 읽으면 몸이 반응을 보이며, "정말 좋은 책을 읽으면 겨드랑이에서 땀이 나온다"는 구와바라 다케오와(일본 판타지 문학연구가) 같은 이도 있었다고 한다.

 

가와이에 따르면, 읽는 것과 듣는 것은 모두 온전한 몰입을 통하여 온 몸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진짜로 읽는다는 것은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읽는 것이며, 듣는다고 하는 것 역시 들리지 않는 것까지 듣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 들리지 않는 곳에 사람의 삶이 놓여있다는 것이다. 임상심리학자인 그는 읽는다는 것과 듣는다는 것을 한 사람의 삶에 온전히 몰입하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책을 쓰는 일은 읽기와 듣기의 결과물이다. 다독과 다작으로 유명한 다치바난 다카시는 1940년에 태어나 지금까지 70 ~80권정도 책을 썼는데, 글을 쓰는 일은 쓰기 전에 많은 책을 읽는 것, 그리고 충분한 이야기를 듣는 것의 결과라고 말한다.

 

"글을 쓴다는 작업은 먼저 충분한 자료가 확보된 다음에 그 자료를 통해 스스로 무언가를 생성하여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 IO(Input, Output)비가 높을수록 많은 정보가 쌓여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한다.

 

"대체로 100대 1정도의 IO비가 아니면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없습니다. 따라서 책 100권을 읽어야 책 한 권을 쓸 수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본문 중에서)

 

듣기·읽기는 온전히 몰입하기

 

읽기뿐만 아니라 듣기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만약, 어떤 연구자가 한 편의 논문을 쓰기 위하여 100편의 논문을 읽었다고 한다면, 그는 연구의 100분의 1만 글로 옮긴 것이기 때문에 직접 만나서 궁금한 부분을 철저히 캐물으며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듣기는 그냥 단순히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알아듣는 것'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듣다'라는 말은 동시의 '알다, 이해하다'라는 말로, '듣기'의 본질은 '이해하다는 것' 입니다… 단순히 귀로 듣는 것과 머리로 듣는다는 것의 차이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 (본문 중에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소리가 뇌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경로로 전해진 여러 가지 정보와 지식, 사람 머릿속에 있는 기억 등이 모두 합쳐져서 이해하는 단계에 이른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듣는다는 것은 이해하는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시인인 다니카와 순타로는 몰입하여 읽는 상태를 '숲에게'라는 시로 표현하였다.

 

읽는 사람의 눈은
꿈틀거리는 문자의 숲을 헤집고 들어간다.
읽는 사람의 귀는
페이지마다 가만히 내리는 빗소리를 듣는다.
읽는 사람의 입은
반쯤 벌어진 채 할 말을 잃고
읽는 사람의 손은
어느새 주인공의 팔을 잡고 있다
읽는 사람의 발은
돌아가려다 이야기의 미로에 길을 잃고
읽는 사람의 마음은
어느덧 보이지 않는 지평선을 넘는다.
- 본문 중에서

 

'사랑에 빠진 남자'라는 시에서 그는 읽기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그날 밤 연인에게 키스를 거절당하고 그는 생각한다.
이 세상은 읽어야 하는 것투성이야
사람의 마음 읽기에 비해
책읽기는 누워서 떡먹기군

그러나 언어가 아닌 것을 읽어내기 때문에 비로소
사람은 언어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 본문 중에서

 

말하자면, 읽기는 문자뿐만 아니라 표정, 흐름, 행간을 읽어야 하는 것이고, 듣기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몰입하여 듣는 것', '이해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읽기와 듣기 그리고 깨달음

 

다니카와의 사회로 진행된 대담에서 세 달인은 읽기와 듣기에 관하여 토론하면서, 읽기와 듣기에도 깨달음과 같은 단계가 있다고 말한다. 읽기의 깨달음을 다치바나는 "머리에 무리해서 집어넣으려 하지 않아도 집중적으로 보는 동안에는 반드시 남는다"고 한다. 뇌의 어딘가에 "저장된 내용이 어떤 계기를 만나면 문득 되살아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가와이는 듣기의 깨달음을 진검승부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 생각해 보기도 하고 화를 눌러보기도 하면서 참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이제는 승부를 내야 할 때 자신의 반응에 온전히 기댄다는 것. 마치 축구선수가 슛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할 때 코치의 안색을 살피지 않는 것과 같이 몰입하여 듣고 난 후에는 감각에 기대어 반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좋은 시 구절이 탄생하는 순간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머릿속에서 다듬고 다듬어져 나온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갑자기 떠오른 것", "그 전 단계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쌓이고 쌓인 것이 하나로 정리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시대의 읽기와 관련하여 세 달인은 넘쳐나는 정보 홍수 속에 살아가려면,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그것은 실제로 삶을 살아온 사람의 경험에 의해 터득되는 '지혜'와 같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이란 실제로 삶을 살아온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경험에 의한 지혜와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지혜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지식을 제대로 컨트롤 할 수 없습니다." (본문 중에서)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인터넷 세상에서도 정보 또한 삶 속에서 갖게 되는 만남으로 여기고, 그 안에서 나름의 선택기준을 마련해 그동안 쌓아온 지혜를 활용한다면 정보와 지식을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언어를 최고의 도구로 활용한다는 세 사람은 동시에 읽기와 듣기의 함정에 관하여 독자들의 주의를 당부한다. 예컨대 문자가 있으면 편리할지언정 마음의 움직임을 한정 짓는 단점이 있다는 것. 문자로 산을 알고 나면, 산을 느끼는 감성이 퇴화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문자가 없는 켈트족이나 미국 선주민(인디언)도 문자에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련된 감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듣기가 가진 함정에 관하여도 주의를 환기시킨다. "말이란 모든 언어 세계에서 표현되는 것으로, 그 언어 세계를 벗어난 체험은 말로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 책읽기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책만 읽어서는 알 수 없는, 실제로 몸을 움직여 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 주변에 가득"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우리 삶의 다양한 만남은 말하기와 쓰기 그리고 읽기와 듣기로 이루어져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우리가 사는 이 현실세계는 언제나 만남의 연속"이라고 하였다. 언어 전문가인 세 달인이 쓴 <읽기의 힘, 듣기의 힘>은 '마치 국어교과서 제목처럼 느껴지는' 말하기, 쓰기, 읽기, 듣기를 통해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기에 딱 어울리는 책이다.

 

 

읽기의 힘, 듣기의 힘 - 10점
다치바나 다카시.가와이 하야오.다니카와 순타로 지음, 이언숙 옮김/열대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