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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세상에 이름없는 잡초는 없다.

by 이윤기 2008.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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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를 다녀와서 우편물을 정리하다가 ‘황소걸음’이라는 출판사에서 보내온 두꺼운 책 한권이 있어서 “어? 황소걸음, 이 출판사에는 아는 사람이 없는데, 누가 책을 보냈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봉투를 뜯어보았습니다.


봉투 속에는 표지에 예쁜 풀꽃 사진이 있는 책 한권이 있었습니다. 표지를 찬찬히 살펴보았더니 ‘풀꽃지기가 들려주는 재미난 풀꽃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풀꽃 친구야 안녕?”이라는 정겨운 제목의 책 한권이었습니다.

책 표지에 적힌 지은이의 이름을 보는 순간 지난 봄 창원 봉림산에서 풀꽃 공부를 시켜주셨던 ‘풀꽃지기’ 이영득 선생님 얼굴이 책 표지위로 겹쳐집니다. 역시 이 책은 풀꽃지기 ‘풀꽃 아줌마’ 이영득 선생님이 쓰신 책이었습니다.

지난 봄 어느 토요일 오후에 재미난 이야기꾼인 풀꽃지기에게 “정병산은 군인들을 훈련하던 곳이라는 뜻을 담아 일본 사람들이 군사지도를 만들며 붙인 이름"이라며 ”신라시대에 세운 ‘봉림사’라는 절 이름에서 유래한 봉림산이라는 지명이 더 나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 만나는 사람마다 정병산이 아니라 봉림산이라고 알려 주었답니다.

또 그날 풀꽃지기와 함께 ‘갈퀴덩쿨’을 따다가 예쁜 풀잎 그림을 그려본 후에 너무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라 올 봄과 여름 행사 때 여러 번 써먹었답니다. 4월에는 하동군 평사리 지리산 생명나눔터 주변의 갈퀴덩쿨도 많이 꺾었고요. 5월에는 마산 팔용산 등산로에 있는 갈퀴덩쿨도 많이 꺾어다가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풀꽃 그림을 그렸습니다. 

참가자들의 흥미를 돋우는 풀꽃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갈퀴덩쿨을 꺾어오라는 말씀을 하시면서도 갈퀴덩쿨을 꺾는 것을 너무나 미안해하시던 풀꽃지기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에 저도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마다 갈퀴덩쿨을 꺾어오는 대신에 참가한 회원들이 풀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키워주려고 애를 썼습니다.

경남지역의 여러 YMCA 아기스포츠단 선생님들과 풀꽃기행을 함께 한 후에 산 아래 국수집에서 국수를 나누며, “선생님 풀꽃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책 한권 내셔야하겠네요” 했더니, “예 지금 책 내는 작업이 진행 중이에요. 곧 책이 나올 거예요”하시던 그 책이 한 여름에 독자들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 책은 다른 식물도감이나 야생화를 소개한 풀꽃 책과는 많이 다릅니다.

첫째, 동화작가인 풀꽃지기가 쓴 책에는 아름다운 우리말이 살아 있습니다. ‘비교해보기’라고 하지 않고 ‘견주어보기’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풀꽃 이름들이 모두 아름다운 우리말로 되어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테구요.

둘째, 이 책에는 풀꽃에 대한 단순한 소개가 아니라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를테면 ‘쇠뜨기 - 소가 정말 잘 뜯어 먹을까?’, ‘꿩의밥 - 꿩의밥을 먹으면 꿩이 되나요?’, ‘짚신나물 - 두루미가 준 선물’, ‘사위질빵 - 장인 장모 사랑’ 이런 제목으로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풀꽃 아줌마는 어린 시절 풀꽃을 많이 먹었다는 이야기처럼 여러 곳에 풀꽃지기의 어린 시절 경험이 담겨 있고, 또 어떤 이야기에는 그동안 어린이들, 어머니들과 함께 다녔던 풀꽃 기행의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른 책에 비하여 풀꽃 하나를 소개하는 데 많은 사진과 글이 담겨있습니다.


(※ 언론노조 총파업을 지지하는 의미에서 블로그 사진을 흑백으로 포스팅합니다.)


셋째, 이 책은 비슷한 이름 비슷한 모양의 풀꽃을 견주어 볼 수 있도록 배려하였습니다. 봄, 여름, 가을로 나누어 놓은 이 책은 맨 처음 소개하는 것이 ‘풀꽃 악기’라는 부제가 붙은 냉이입니다. 이야기에는 풀꽃지기가 아이들과 함께 악기를 만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줄기에서 열매자루를 조금씩 찢었어요. 그러면 냉이 열매가 아래로 처지거든요. 열매 자루를 다 찢은 다음, 꽃대 아래쪽을 잡고 비비듯 살살 돌렸어요. 그랬더니 냉이 열매가 서로 부딪히면서 ‘차르르차알찰’하는 작은 소리가 났어요.”

이런 이야기와 함께 담긴 사진에는 6종류의 냉이 사진이 나옵니다. 다닥냉이, 말냉이, 황새냉이, 개갓냉이, 나도냉이, 미나리냉이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모양과 이름이 비슷한 꽃마리와 꽃바지를 함께 소개하였고요.

제비꽃을 소개한 꼭지에서는 삼색제비꽃, 노랑제비꽃, 고깔제비꽃, 남산제비꽃, 궁근털제비꽃, 졸방제비꽃, 흰젖제비꽃, 콩제비꽃을 비교해 볼 수 있답니다. 가을에 볼 수 있는 억새, 갈대, 달뿌리풀을 한 꼭지에서 비교해서 소개하기도 하였고요.


모양과 이름이 비슷한 풀꽃 친구들을 헷갈리지 않고 제 이름을 찾을 수 있도록 비교해서 소개한 풀꽃지기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답니다.

넷째, 풀꽃친구 하나 하나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애기똥풀’을 소개하는 꼭지를 찾아보면 엄마 젖을 먹은 아기의 똥은 샛노랗다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풀꽃지기가 직접 여러 번의 풀꽃 기행에서 찍은 사진으로 애기똥풀의 푸리잎, 애기똥풀 꽃봉오리, 애기똥풀 진액의 모습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꽃이 피었을 때의 모습뿐만 아니라 꽃이 피기전의 모습과 꽃이 지고 나서 열매가 맺은 모습까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소개하였습니다.

책을 내면서 쓴 머리말에서 풀꽃지기는 특별한 쓰임이 없거나 예쁜 꽃이 피지 않으면 이름도 없는 줄 알았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 이름 없는 풀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름을 알고 나니, 진짜 동무가 되었구나!’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사람도 풀꽃도 서로 만나면 서로 소개하고 이름을 알아야 진짜 친구가 되는 가 봅니다.

이름없는 잡초는 없다.

지난해 여름 임항선(마산역~마산항까지 철도구간) 답사를 함께 하면서 철길에 자라는 풀꽃의 이름을 알려주시던 선생님께서는 들판에 자라는 풀꽃을 ‘잡초’라고 부르면 우리는 모두 ‘잡놈’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하시며, 우리가 이름을 모를 뿐이지 모두가 제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깨우쳐주시던 일이 생각납니다.

이 책과 함께 가을 나들이를 나가시면 가을에 피는 풀꽃 털진득찰, 도깨비바늘, 도꼬마리, 쑥부쟁이, 꽃향유, 물봉선, 솔새, 산국, 감국, 억새, 갈대 그리고 달뿌리풀 등 새로운 풀꽃 친구들의 이름을 알고 친해질 수 있습니다.

털이 많고 진득진득 하고 찰싹 달라붙는다고 털진득찰 이라는 이름이 붙은 꽃 몇 송이를 뜯어 면 티셔츠를 입은 아이의 목둘레를 예쁘게 꾸밀 수 있는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작가소개를 보면 풀꽃 이야기책을 쓰신 이영득 선생님은 동화작가입니다. 1964년 경북 울진의 작은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지금은 김해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풀· 우리 꽃을 사랑하는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풀꽃 사랑을 퍼뜨리는 강사이기도 합니다.

이영득 선생님은 아름답고 신비스런 자연을 볼 때, 어린이 친구들이 풀 냄새 땅 냄새 맡으며 숲에서 뛰어 노는 걸 볼 때 더없이 행복하다고 씌어 있습니다.


풀 냄새, 땅 남새를 맡으로 숲으로 나가시기 전에 들꽃지기가 들려주는 재미난 풀꽃 이야기를 한 번 읽어보세요.  들판의 풀꽃들과 더 친해질 수 있을 테니까요. 


※ 2004년 9월에 오마이뉴스에 올렸던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