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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국립병원 터에 세금으로 친일작가 노래비?

by 이윤기 2012.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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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와 국립마산병원이 대중음악 작사가이자 가수인 반야월의 노래 <산장의 여인> 노래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창원시가 추진하고 있는 반야월의 노래비 건립 문제에 관하여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1917년 마산에서 태어난 작사가이자 가수인 반야월은 <산장의 여인>, <소양강 처녀>, <울고 넘는 박달재> 등을 작사하였으며 지난 3월 26일 향년 95세를 일기로 사망하였습니다.

 

반야월은 1937년 전국가요음악 콩쿠르에서 1등을 하면서 가수 겸 작곡가로 활동을 시작하였고, 1942년부터 본격적인 작사가로 활동을 시작하여 5000여 곡의 가요를 작사하였다고 합니다. 그가 만든 노래인 <울고 넘는 박달재>, <삼천포 아가씨>, <만리포 사랑> 등은 전국 14곳에 노래비로도 만들어져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제 치하를 보내면서 <결전 태평양/ 1942년 이재호 작곡>, <일억 총 진군/ 1942년, 이재호 작곡>, <조국의 아들-지원병의 노래"(1942년, 이재호 작곡)> 등을 작사하였으며,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그는 지난 2010년 6월 이주영 한나라당 의원 초청간담회에서 공개적으로 친일 행위에 대하여 인정하고 사과의 뜻을 밝힌 일도 있다고 합니다. 

 

 

노래 <산장의 여인> 얼마나 알까?

 

사실 창원시에서는 친일 인사들에 대한 기념사업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옛 마산에서는 <선구자>로 널리 알려진 작곡가 조두남 음악관을 추진하다가 조두남의 친일 행적이 논란이 되어 끝내 마산음악관으로 개관하였습니다.

 

또 이은상 문학관을 세우려고 하다가 역시 친일 논란과 유신독재 찬양 행적이 문제가 되어 결국 마산문학관으로 개관되었습니다.

 

지난해에도 아동문학가 이원수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시민의 세금으로 친일작가에 대한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것에 반대하는 광범위한 시민여론에 부딪쳐 기념사업 추진을 중단하고 예산을 반납한 전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창원시가 친일행위가 명백한 대중가요 작사가인 반야월의 <산장의 여인>노래비 건립을 또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가열되고 있습니다.

 

마산합포구는 반야월이 사망하기 전인 지난 3월 12일 문화예술인, 교수, 도·시의원 등 16명으로 구성된 '산장의 여인 노래비 건립추진위원회'(이광석 위원장)를 구성하고, 관련 예산을 확보하여 노래비 건립을 추진해 왔습니다.

 

특히 마산합포구청장은 반야월의 친일 행위에 대하여 잘 알고 있지만, “노래비는 반야월이 아닌 ‘산장의 여인’이라는 노래 자체와 그 배경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며 지난 6개월 동안 노래비 건립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습니다.

 

마침내 창원시는 9월 4일 국립마산병원과 산장의 여인 노래비 건립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였으며, 국립마산병원 인근 병원 소유의 터에 노래비를 세우고 2500∼3000㎡ 규모의 공원을 조성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시는 9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내년 실시설계에 들어가 2013년 말까지는 완공한다는 계획입니다.(위 사진 이광석 노래비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 김천태 국립마산병원장, 박완수 창원시장, 조광일 마산합포구청장)

 

창원시, 친일파 빼면 기념사업 할 것이 없나?

 

시민사회의 무관심 속에 <산장의 여인> 노래비 건립사업은 일사천리로 추진되고 있었는데, 마침 지난 18일 문순규 창원시의원이 ‘친일파 반야월 기념사업 중단’을 촉구하고 나서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창원시를 친일찬양도시, 친일기념도시로 만들어서는 안 되며, 더군다나 창원시가 친일파 기념사업을 시민 혈세로 추진하는 것은 더욱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한편, 문의원의 이런 주장에 대하여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마산합포구는 "반야월이 작사한 노래를 기리는 비가 다른 지역에도 많이있고, 반야월 개인을 기리는 비가 아니고, 노래에 얽힌 이야기가 있어 비를 세우자는 것"이라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다른 지역에 세워진 반야월이 작사한 노래를 기념하는 비석은 대부분 2008년 친일인명사전 발간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비교대상이 되기 어렵습니다. 또 노래 <산장의 여인>과 노래를 만든 <반야월>을 분리해서 생각하자는 것은 요즘 유행하는 ‘유체이탈’화법에 해당됩니다.

 

반야월의 친일 행위에도 불구하고 <산장의 여인>이라는 노래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비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국가 소유인 <국립마산병원> 터에 ‘친일파의 노래비’를 세우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하물며 국민이 낸 세금으로 친일파의 노래비를 세우겠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 도대체 <산장의 여인>이라는 노래를 아는 시민들이 얼마나 될까요? 그 노래가 과연 9억 원이나 되는 세금을 들여서 기념해야 할 만큼 문학적, 음악적 가치가 있기는 한 것일까요?


일본 극우파들이 보기에 친일파 반야월의 노래비를 세우면서 동시에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외치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울까요. 친일파 반야월의 노래비를 건립하는데, 시민이 낸 세금을 써서도 안 되고, 친일파 노래비가 국가 소유의 국립마산병원 터에 세워져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