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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결혼한 딸들의 고백, "친정엄마 미안해"

by 이윤기 2013.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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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고혜정이 쓴 <친정 엄마>

 

설날에 '친정엄마'한테 다녀오셨는지요? 이번 설은 주말과 겹쳐 딸들이 '친정엄마'에게 여유있게 다녀올 수 있는 연휴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연휴에도 '친정엄마'에게 다녀올 수 없을 만큼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분도 있을 테고, 아니면 친정엄마가 벌써 돌아가신 분들도 있겠지요.

 

지난 설날 고향에 계시는 '친정엄마'에게 신경질만 내고 싸우다 오셔서 후회하신 분들 많으시지요? 혹은 설날이 아니라도 친정집에 도착가면 마음과 다르게 서로 다투는 분들도 있겠지요? 고혜정이 쓴 <친정엄마>는 바로 세상의 모든 딸들과 모든 친정엄마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아내가 친정엄마와 함께 있는 동안 가장 많이 한 말이 바로 "엄마 때문에 내가 못살아"하는 말 입니다. 그런데 아프고 힘들어하는 엄마이지만 가만히 보면 그 말은 결국 "그래도 엄마 때문에 내가 살아"하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 말에 담기 뜻을 알기 때문인지 '친정엄마'는 딸이 아무리 "엄마 때문에 못산다"고 해도 빙긋이 웃기만 할 뿐입니다.

 

 

엄마 때문에 내가 못살아

 

"신이 인간을 만들어놓고 일일이 다 보살펴 줄 수 없어 엄마라는 존재를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살아볼수록, 나이가 들수록 너무나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서 가장 흔한 것을 소중하게 들고 다니는 이가 바로 엄마이다." (본문 중에서)

 

인용문은 작가 고혜정의 '친정엄마'가 정읍에서부터 보따리에 싸온 김치, 장조림, 홍어회, 멸치볶음, 콩조림, 굴비 등 반찬과 더불어 감자, 파, 고추를 비롯한 흔하디흔한 야채들을 귀하디귀하게 싸가지고 온 것을 보고 타박한 것을 후회하는 이야기 다음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대부분의 '친정엄마'들은 친정집을 다녀가는 '딸년'에게 보따리, 보따리 챙겨서 보냅니다. 꼭 시골살이를 하는 친정엄마가 아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트에 가면 다 살 수 있는 것들도 보따리에 챙겨담습니다. 요즘은 택배가 생겨서 명절이 아니어도 '딸년'이 생각나면 한 상자씩 챙겨서 보내기도 합니다.

 

세상의 딸년(?)들은 어떤 것은 고맙게 받아오지만, 어떤 것은 식구도 없고 애들은 잘 먹지도 않는데 뭐 하러 주냐고 타박을 놓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고는 늘 후회하지요. 만약 그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기라도 했다면 그 후회는 더 커지기 마련입니다.

 

고혜정이 쓴 <친정엄마>에는 "엄마 미안해"라는 글이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한 번도 말하지 않아서 미안해.

힘들 때 왜 날 낳았냐고 원망해서 미안해.

엄마 새끼보다 내 새끼가 더 예쁘다고 말해서 미안해.

언제나 외롭게 해서 미안해.

늘 나 힘든 것만 말해서 미안해.

세상에서 가장 예쁜 딸 자주 보여드리지 못해서 미안해.

늘 내가 먼저 전화 끊어서 미안해.

친정에 가서도 엄마랑 안 자고 남편이랑 자서 미안해.

괜찮다는 엄마 말 100퍼센트 믿어서 미안해.

엄마한테 곱게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내가 잘나서 행복한 줄 알아서 미안해.

늘 미안한 것 투성이지만 그 중에서 가장 미안한 건

엄마, 엄마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건

엄마가 아니어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 글을 읽으면서 참 여러 군데서 제 아내를 발견하였습니다. 제 아내는 혼자 있는 '친정엄마'를 자주 보러 가지 못해서 늘 안타까워했습니다.  제가 그럼 "일요일 날 잠깐이라도 뵈러가자"고 하면, "엄마는 하룻밤 자고 가지 않으면 더 섭섭해 한다"고 그만두자고 하였습니다.

 

가끔 시간을 내서 '친정엄마'를 보러 가서도, 찾아 올 때 반가워하시던 마음이 싹 잊혀질 만큼 떠나는 딸과 외손자들을 보며 쓸쓸해하는 모습 때문에 혼자 계시는 모습을 보며 돌아오는 일이 안타깝고 마음 아파 차라리 자주 가지 않겠다고 했던 일도 있습니다. 

 

고혜정이 쓴 <친정엄마>에는 '늦기 전에'라는 글도 있습니다.

 

많이 물어보자.

많이 어리광 부리자.

둘만 여행을 가자.

둘만 찜질방에 가자.

둘만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엄마 냄새 많이 맡아보자.

함께 옆집 아줌마 흉 신나게 봐주자.

꽃무늬가 화려하거나 빛깔이 고운 옷을 사주자.

그리고 늦기 전에 많이 안아보자.

 

오랫 동안 병중에 계셨던  장모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제 아내는 이제 '친정엄마'에게 해줄 수 없는 일들입니다. 아내는 결혼 후에 '친정엄마'에게 갈 때면 늘 "뭘 사가야 하나?"하는 고민을 하였습니다.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도 잘 드시는 것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얼 사가도 늘 "뭐 하러 사왔냐?"고 하셨습니다.

 

여러 번 이런 경험을 하고 나서, 그 다음부터는 현금 드렸고 아내가 드리는 용돈은 대부분 외손주들 용돈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보내는 동안, 이제는 어떤 맛있는 음식도 잘 드시지 못할 만큼 많이 쇠약해지셨고 이젠 곁에 계시지도 않습니다.

 

고혜정이 쓴 <친정엄마>는 이미 2004년에 나온 책입니다. 그가 쓴 <친정엄마>는 세상의 모든 딸들과 그 딸들의 남편들이 함께 읽고 더 늦기 전에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딸 노릇, 사위 노릇을 시작하라고 깨우쳐주는 책 입니다.

 

<친정엄마>를 읽는 동안 아내의 '친정엄마' 뿐만 아니라 자기가 낳은 아들이 세상에서 가장 잘난 줄 아는 '우리엄마'의 모습도 수 없이 많이 만났습니다. 이번 설에 '친정엄마' 뵈러 가지 않으신 분들은 주말이라도 시간을 내보세요. 이젠 찾아 뵐 '친정엄마'가 없으신 분들은 <친정엄마>를 읽으며 마음과 기억에 담긴 '옛날'을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친정 엄마 - 10점
고혜정 지음/나남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