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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그는 악법을 지키려고 죽은 것이 아니다

by 이윤기 2013.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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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담아 글을 읽고, 글을 쓰는 것으로 우리 시대를 대표할 만한 사람으로 나는 주저 없이 이현주 목사를 꼽는다.

 

그런 이현주 목사가 젊은 시절부터 보고 읽은 많은 책을 다 모아놓고 살다가 언젠가 놓아 버리는 삶을 깨닫고 그 많은 책을 다 내보내고 꼭 필요한 책만 남겼더니 ‘경’자 붙은 책만 남았더라고 한다. 대게 사람에게 바른 ‘길’을 일러주는 책은 몇 권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황광우가 쓴 <철학 콘서트>는 바로 ‘경’자와 반열에 들어가는 책을 쓴 공자, 노자, 예수, 석가와 ‘경’에는 조금 못 미치지만 세상을 뒤흔들어 놓은 ‘론’에 속하는 책을 쓴 플라톤, 애덤 스미스, 카를 마르크스, 소크라테스, 이황, 토마스 모어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지은이는 “한 권의 고전은 100권의 신서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동양과 서양을 대표하는 10인의 현자를 초대하여 독자들이 편한 마음으로 그들(그들이 쓴 책)을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철학 콘서트>를 썼다고 한다.

 

과연 그렇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마르크스가 쓴 자본론까지 단 한 권도 원전을 온전하게 읽어본 기억이 없다. 이유는?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유는 딱 한가지다. 시작해 볼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도 주변 사람들에게 책 꽤나 읽으면서 산다는 소리를 듣는 만큼 원전은 못 읽었지만, 누구누구가 풀어 쓴 무슨무슨‘경’이나, 무슨‘론’과 같은 해설서는 꽤 읽은 것 같다. 이런 저런 해설서만 찾아 읽은 것은 원전이 어렵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황광우가 쓴 <철학 콘서트>를 읽다보면 고전과 그 책을 쓴 현자들을 찾아 나서고 싶은 욕구가 마음으로부터 샘솟는다. 그래서 <철학 콘서트>를 소개하는 이 글 제목을 ‘현자 10인을 찾아가는 네비게이션’이라고 붙였다.

 

현자 10인을 찾아가는 ‘네비게이션’

 

<철학 콘서트>를 읽는 동안 가장 원전으로 읽고 싶었던 책이 바로 토마스 모어가 쓴 <유토피아>였었는데, 다행이 글쓴이의 당부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지은이는 자신이 쓴 책에서 소개하는 10인의 현자 중에서 소크라테스와 예수, 모어와 스미스를 먼저 읽으라고 권한다. 그리고 여력이 있으면 석가와 공자, 퇴계와 노자를 읽고, 플라톤과 마르크스가 가장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다.

 

<철학 콘서트> 소개는 황광우의 글로 다시 살아난 소크라테스와 토마스 모어를 만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소크라테스와 토마스 모어에 대한 기본 지식은 “악법도 법이다”와 “양이 사람을 잡아먹고 있다”가 전부이다.

 

독재정권이 권력을 휘두르던 학창시절에 ‘악법도 법이다’라는 논제를 가지고 동년배들과 토론을 벌이며, ‘악법은 고치고 바꾸어야 한다’는 결론을 쉽게 내렸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왜 그가 그렇게 말했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아무런 고민 없이 소크라테스가 틀렸다고 쭉 믿어 왔다.

 

<철학콘서트>에서 첫 번째 장은 바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까닭은?’. 첫 장은 소크라테스가 죽은 후에 씌어진 <소크라테스의 변명>, <향연>, <크리톤>, <파이돈>에 나오는 주요 장면을 모아서 엮어져 있다.

 

분명한 사실은 흔이 알고 있는 것처럼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기 때문에 지켜야한다는 신념에서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친구가 찾아와 탈옥과 망명을 권유하는 장면에서 황광우가 원전을 재구성한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렇다.

 

“나는 언제나 나의 이성적 사유에 입각해서 가장 올바른 것으로 판단되는 원칙만 따르며 살았네. 이 원칙 준수의 결과가 사형 선고일지라도 나는 원칙을 포기할 수 없다네.......사람들의 평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사유가 중요한 것이지. 어영부영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 아름답게 올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한 거야”(본문 중에서)

 

당시 아테네 법률은 국가의 법률과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전 재산을 가지고 다른 나라로 갈 수 있었으며, 그는 자신이 재판과정에서 죽음 대신에 고발자들이 권유했던 것처럼 충분히 ‘추방형’을 선택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선택하였다는 것이다. 다시 소크라테스의 목소리로 재현해보면 이렇다.

 

“내가 추방형을 자원했다면 법정은 나에게 합법적인 망명의 길을 터주었을 것이야. 그러나 철학하는 자유를 포기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달라는 것이 내 이성의 명령이었어. 이제 와서 법정의 판결을 거부하고 다른 나라로 도망하는 것은 미천한 노예나 하는 짓 아니겠는가?”(본문 중에서)

 

친구인 크리톤에게 하는 말이다. 소크라테스를 고발한 자들은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과 청소년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그를 법정에 세웠지만, 정작 판결을 앞두고 드러낸 본심은 그에게 “철학하는 일을 그만두면 무죄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철학하는 자유와 이성적 사유의 결과대로 살기 위하여 죽음을 선택한 것이지, 악법을 지키기 위하여 독배를 마신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죽음은, 철학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이성의 명령

 

플라톤이 기록으로 남긴 <파이돈>에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영혼이 몸에서 해방되는 사건이라고 논술하였다고 한다. 철학자란 자신의 이성적 사유에 따라 사는 것이며, 이성적으로 정의롭게 인생을 산 철인을 죽음을 의연하게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음성을 재현해보자

 

“참된 철인은 늘 죽는 일에 마음을 쓰는 자이고, 따라서 모든 사람 가운데 죽음을 가장 무서워하지 않는 자일세. 그들이 늘 육체와 싸우고 영혼을 정화하길 원했다면 사후세계에 도착하면 그들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 것이네. 만일 그가 참된 철학자라면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저승에 갈 것일세.”(본문 중에서)

 

소크라테스는 참된 철학자의 길을 간 것이지, 악법을 지키기 위하여 독배를 마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 너무나 분명해진다. 왜 젊은 그 시절에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의문을 같지 못했을까? 왜 그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를 아는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고, 흐릿하게 복사된 ‘문건’에만 매달리며 신념을 키웠을까?

 

내목이 짧으니 자를 때 유의해주게

 

자기 목이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라는 토마스 모어의 말은, 몇 년 전 국내에서 인류의 양심과 신념을 다룬 재판에 관한 이야기를 쓴 책 제목으로 인용되기도 하였다. 단두대에 올라가면서도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고 “내 목이 짧으니 자를 때 그 점에 유의해주게”라고 농담을 건네고 “내 수염은 반역죄를 저지른 일이 없는데”라고 말하며 수염이 잘리지 않도록 했다는 토마스 모어는 어떤 사람인가?

 

<철학 콘서트>를 쓴 황광우는 “죽음보다 자신의 영혼과 양심을 소중하게 여긴 영국의 소크라테스였다”고 한다. 모어는 ‘교황에게는 왕의 결혼을 재가할 권리가 없다’ 는 헨리 8세의 법령에 선서하는 것을 거부하고 반역죄로 체포되어 15개월간 런던탑에 갇혔다가 재판을 받고 죽었다고 한다.

 

모어 역시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망명을 권유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단두대형을 내린 재판정에서 탁월한 재치로 재판관들을 압도하였다고 한다. 1935년에 단두대에서 죽음을 맞은 토마스 모어가 20년 전에 쓴 대작이 바로 <유토피아>였는다는 것.

 

젊은 시절에는 ‘유토피아’라는 제목이 이상향이나 무릉도원처럼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꿈같은 이야기인줄 알았고, 토마스 모어 역시 그렇고 그런 '부르주아'인줄로만 알았다.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황광우가 쓴 <철학콘서트>라는 네비게이션을 켜고, 토마스 모어가 쓴 유토피아를 만나러 가보자. 독자들도 잘 알고 있듯이 ‘양들이 사람을 잡아먹고 있다’는 표현은 1500년대 영국 농민들의 처참한 삶을 고발하는 풍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독자들은 그 처참함이 그저 양모 값이 폭등하자 귀족들이 밀밭을 초지로 바꾸어 양떼를 키우기 시작하여 농토를 빼앗긴 정도로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법관이었던 토마스 모어 단순히 농토를 빼앗기는 것 보다 훨씬 가혹한 처벌이 있었기에 ‘양이 사람을 내쫓는 것이 아니라 잡아먹는다’는 비유를 하게 된 것이다.

 

농지를 잃고 쫓겨난 농민들은 부랑자로 거지로 떠돌았는데 이들에게 당시 영국정부가 가혹한 처벌을 하였다는 것이다.

 

“부랑자는 잡히면 태형을 당한다. 달구지 뒤에 묶어놓고 몸에 피가 흐르도록 때렸다. 부랑자로 두 번 잡히면 귀를 자르며, 세 번 잡히면 공동체의 적으로 사형에 처했다. 거지는 고용해줄 고용주를 만나지 못하면 용서 없이 반역자로 사형에 처한다. 부랑자 7만 2000명이 헨리 8세의 통치하에 사형되었다.”(본문 중에서)

 

토마스 모어는 이러한 불행의 원인을 당시로서는 매우 드물게 사회적 관계에서 찾고 있었다. 그는 부랑자, 거지, 도둑의 비참힌 삶이 그들의 개인적 불운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이 땅을 빼앗고 물건을 매점하여 대중을 궁핍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것을 고발하였던 것이다. <유토피아>에서 모어는 사유제산제 폐지를 주장한다. 그의 목소리를 재현해보면 이렇다.

 

“재산이 사유화되는 사회, 모든 것이 돈으로 평가되는 사회에서 정의와 번영은 불가능 합니다. 그래서 플라톤은 사람들이 부를 평등하게 소유하는 것을 거부한 아르카디아에 법률을 만들어주지 않았던 것 입니다. 모든 지성인은 건전한 사회의 필수 요건이 부의 균등한 분배임을 인정했던 것입니다. 사유재산을 폐지하지 않는 한, 부의 평등하고 정당한 분배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본문 중에서)

 

21세기에도 유효한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도시 사람들이 시골에 와서 2년 동안 농사를 짓다가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도농 순환의 삶이 표현되어 있으며, 주민 30세대 당 1명의 대표를 뽑아서 중요한 안건을 결정하도록 하는 지방자치제의 모형을 제안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남녀 관계없이 모든 시민은 농사를 배우고, 농사는 어린이 교육의 필수과목이며 사람들은 농사 이외에도 특수한 기술을 배우도록 되어 있었다. 모어는 농업 노동과 공업 노동, 도시와 농촌의 통합을 통해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통합적으로 수행하는 전인을 전제로 한 것이다.

 

유토피아에서는 하루에 6시간 일하고 8시간 잠자며 나머지 시간은 취미에 따라 자유롭게 보낸다. 일과 후에는 사람들은 교육을 받는데 여가를 활용하며 이 교육에 남녀의 차별이 없다고 한다. 또한 그는 화폐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고 한다. 그는 가난이 돈의 결핍을 의미한다면 화폐의 소멸은 가난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소로우, 간디, 니어링 부부를 비롯한 19세기와 20세기를 살다간 많은 자본주의를 거부한 삶을 현실에서 구현한 많은 자유로운 영혼들의 삶이 어쩌면 모어가 꿈꾸던 ‘유토피아’를 재현해보였던 것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미흡하기는 하지만 모어가 꿈꾸었던 주민자치제, 남녀평등은 실현되어가고 있고, 하루 6시간 노동은 스웨덴과 네덜란드와 같은 나라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이다.

 

<철학 콘서트>를 쓴 황광우는 화폐 없는 세상은 불가능하다는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며, 체 게바라의 말대로 불가능한 꿈을 꾸어 볼 일이요, 500년 전에 꿈꾸던 ‘유토피아’의 실현을 위하여 헌신해 보자고 제안하고 있다.

 

황광우가는 고전을 자신의 힘으로 소화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을 가진 이들에게, 돌아 돌아서 길을 찾아가는 잡다한 해설서를 던져버리고, 고전의 향연으로 직접 찾아가는 길을 열어주는 ‘네비게이션’ 역할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철학 콘서트 1 - 10점
황광우 지음/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