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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고장난 교통카드, 1년 지났으면 버려야하나?

by 이윤기 2013.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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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가 있지만, 시간 여유가 있으면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시내버스를 자주 이용하려고 몇 년 전부터 교통카드 구입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구입당시 7000원을 주고 열쇠고리 모양의 OO비 교통카드를 구입해 자동차 열쇠와 함께 묶어 사용했습니다. 시내버스를 탈 때뿐만 아니라 창원시 공영자전거인 '누비자' 대여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등록해서 편리하게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버스에 탈 때 교통카드를 찍었더니 작동이 되지 않아 지갑에 있던 체크카드로 결재했습니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최근 아들이 고장 난 교통카드를 동네 편의점에서 교환받는 것을 보고, 저도 교통카드 제조사인 OO비 카드사에 전화를 걸어 교통카드 고장 접수를 했습니다.

 

 

구입 후 1년이 지나서 교환이 안된다고?

  

제 교통카드는 연말정산 소득공제를 받기 위해 등록을 해놨기 때문에 구입부터 충전·사용 기록이 OO비 카드사에 모두 남아 있더군요. OO비 카드사 상담원은 남은 잔액은 환불해줄 수 있지만 "구입 후 1년이 지난 교통카드가 고장 난 경우에는 환불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카드사 직원 : "고객님 교통카드는 현재 칩 오류로 사용이 불가능하십니다. 구입 후 1년 이내에는 새 카드로 교환해줍니다만, 1년이 지난 제품은 환불이 불가능합니다."

 

나 : "예. 그런데 제가 사용 부주의로 망가뜨린 것도 아니고 분실한 것도 아니며, 칩에 오류가 생겨서 사용할 수 없는 건데 왜 환불이 안 되지요?"

 

카드사 직원 : "회사 방침입니다. 누리집을 보면 이런 내용이 모두 공지돼 있습니다."

 

나 : "누리집에 공지했느냐 안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죠. 일반적으로 공산품의 경우 소비자보호법에서는 1년이 지났고, 소비자의 과실이라고 하더라도 고장 난 제품은 수리해주게 돼 있습니다."

 

카드사 직원 : "고객님 (이건) 저희 회사 방침입니다. 누리집을 보면 다 공지해놨습니다."(카드사 직원은 앵무새처럼 이 말을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권한이 없는 이 직원에게 따지는 저도 안타까웠습니다.)

 

나 : "지금 제가 회사 방침이 틀렸다는 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 교통카드는 제가 부주의하게 사용해 고장 난 것이 아니고, 칩이 저절로 고장 난 겁니다. 그럼 회사가 이걸 고쳐주든지, 고쳐줄 수 없다면 적절하게 보상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카드사 직원 : "고객님 정 그러시면 OO프로야구단 누리집에 가서 회원가입을 하시면 무료로 교통카드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쪽으로 안내를 해드리면 안 될까요?"

 

나 : "아니요. 저는 OO프로야구단에 회원가입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고장 난 제 교통카드를 교환해주시든지, 아니면 고쳐주시면 됩니다. OO프로야구단에 제 개인 정보를 팔아서 공짜 교통카드를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카드사 직원 : "고객님 (이건) 저희 회사 방침이라서 저희가 카드에 남아 있는 잔액은 다 환불해드릴 수 있지만, 1년이 지난 카드는 교체가 불가능합니다."

 

나 : "카드에 남아 있는 돈을 환불해주는 걸 마치 큰 선심 쓰는 것처럼 이야기하시는데, 그건 원래 제 돈이니까 당연히 돌려줘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교통카드는 '정상적인 사용 과정에서 저절로 고장이 난 것이니까' 제 책임이 아니라 회사 책임이지요. 회사 방침이라서 상담원께서는 권한이 없는 일인 것 같으니 책임자와 통화하게 해주세요. 회사 방침이 잘못됐다는 걸 알려드리고, 고치도록 요구해야겠습니다."

 

1차 전화 통화는 이렇게 마무리됐습니다. 저와 이야기를 나누던 상담원은 말문이 막혀서 더 이상 이야기를 못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이 문제를 책임 있게 처리할 수 있는 분과 통화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고, 상담원은 내부 논의를 거쳐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쯤 지난 후에 휴대전화로 전화가 왔습니다. 물론 고장 난 'OO비 카드'를 보내면 확인을 거쳐서 새 카드로 교환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고객님, 문자메시지로 보내드리는 주소로 고장 난 교통카드를 등기 우편으로 보내주시면 새 카드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카드사 직원은 회사 방침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더군요. '1년 지난 교통카드는 교환이 안된다'고 하면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그냥 순순히 포기하는가 봅니다. 이 회사에는 저처럼 따지는 사람들에게만 교환을 해주는 숨은 방침이라도 있었던 걸까요.

 

사업자의 책임, 5년 동안 유효하다

 

자, 그럼 '구입 후 1년이 지난 교통카드는 교환해줄 수 없다'는 이 카드사의 주장은 맞는 걸까요? 틀린 걸까요? 저는 뭘 믿고 따졌던 걸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카드사의 방침은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립니다.

 

관련 자료를 한 번 살펴볼까요?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래위원회 고시 제 2010-1호)에는 '교통카드'가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산품이나 전기통신기자재에 관한 규정이 있기 때문에 그 기준을 준용해서 적용할 수 있습니다.

 

공산품과 전기통신기자재에 관한 규정을 보면 품질보증기간 1년 이내에 생긴 고장의 경우 제품을 수리할 수 없다면 교환이나 구입가로 환불해줘야 합니다. 교통카드는 제품의 특성상 수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구입 후 1년 이내 제품을 교환해주는 OO비 카드사의 정책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1년이 지난 제품은 교환이 안 된다는 것도 옳은 것일까요? 물론 옳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공산품에는 부품보유기간이라는 게 있고, 품질보증기간 1년이 지났어도 부품 보유기간 이내에는 수리를 해줘야 할 책임이 사업자에게 있습니다.

 

이 기준을 교통카드에 준용해보면, 구입 후 1년이 지난 교통카드의 경우 수리를 할 수 없다면 '정액 감가상각한 금액에 10%를 가산하여 환급'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따로 기간을 정해놓지 않은 공산품의 경우 품질보증기간은 1년, 부품보유기간은 5년으로 하도록 돼 있습니다.

 

따라서 고장 난 교통카드에 대해 사업자는 최고 5년까지 책임을 지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예컨대 저처럼 교통카드 구입 후 3년이 됐다고 가정하면, '구입가격 7,000원 X 정액감가상각(2/5) = 2800원에 '10% 가산금'을 추가, 3080원을 환불받으면 됩니다.

 

'회사 방침'이라는 말에 작아지는 소비자들

 

그럼 왜 회사는 3080원을 환불하는 대신에 손해를 보면서 새 제품으로 교환해줬을까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저처럼 법과 기준을 들이대면서 따지는 소비자를 상대하는 것이 귀찮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3080원을 현금으로 환불해주는 것보다 그냥 자기 회사 교통카드로 교환해주고, 그 교통카드에 계속 돈을 충전해서 사용하는 게 장기적으로 회사에 이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후자의 가능성이 더 높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교통카드 회사에서는 왜 처음에 '구입 후 1년이 지난 카드는 절대 환불이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하고 회사 방침을 운운했을까요? 답은 뻔합니다. '소비자보호법'과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을 잘 모르는 대부분 소비자들이 '회사 방침'이라는 말을 들으면 민원을 순순히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구입 후 1년이 지났다고 하더라도, 공산품의 경우 일반적으로 5년 동안은 수리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기 때문에 수리를 요구해야 합니다. 만약 수리를 받을 수 없다면 구입 가격에 정액감각상각을 한 뒤 10% 가산금을 보태 환불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 꼭 기억해두세요. 고장 난 교통카드 1년이 지났어도 잔액은 물론이고, 구입 후 5년이 지나지 않았다면 사용기간에 따라 감가상각을 한 뒤 일부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을요. 교통카드 뿐만 아닙니다. 제품의 특성상 수리가 불가능한 공산품은 모두 이런 기준을 준용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