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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자가 새로운 길을 찾아낸다

인류 역사에서 인간이 걷기 시작한 것은 손을 이용하여 도구의 사용을 가능하게 한 가히 혁명적인 변화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은 걷는 것을 얼마나 좋아할까?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 걷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한 발짝도 걷는 것을 싫어하기도 한다. 크리스토프 라무르가 쓴 <걷기의 철학>에서는 걷기와 생각하기는 밀접하게 연관된 행위라고 말한다.

 

약 200만 년 전 인류가 걷기 시작하면서 팔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으며, 도구를 사용하고 사물을 운반하였을 뿐만 아니라 몸짓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직립으로 이루어지는 인류의 걷기는 뇌의 발달과 그와 연관된 지적 발달을 가능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프 라무르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걷게 된 것은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천성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루소를 인용하여 "우리의 첫 철학 스승은 우리 발"이라는 것이다.

 

"걷기와 생각하기는 밀접하게 연관된 두 행위다. 둘 다 몸과 정신을 동시에 이용하고, 정상을 목표로 삼으며, 노력을 필요로 하고, 마지막으로는 늘 이러한 고생을 100배 이상 보상해주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실제로 아이들에게 있어 걷기를 배우는 시기와 언어를 습득하는 시기가 일치한다는 것은 걷기와 생각하기가 밀접하게 연관된 행위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우리는 시속 3~5km 속도로 걸을 때 현실에 존재하는 여러 사물의 형태와 다양성에 주목할 수 있기 때문에 말하자면 인간의 눈은 걷기에 최적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걷기와 생각하기는 분리할 수 없다는 견해는 철학자 몽테뉴에게서도 발견되어진다. 몽테뉴는 몸과 신이 일치한다고 믿었다. 그에 따르면 사유는 뒤얽힌 혈관, 섬유, 정맥, 힘줄을 타고 의식까지 전진하며, 사유는 고유한 신경체계이자 독특한 물리적 구성물로 존재하기 때문에 몸이 걸으면 정신 또한 따라 걸으며, 한 번의 걸음으로 몸과 정신이 함께 움직인다는 것이다.

 

"뇌는 근육을 움직일 때만 작동한다"는 에밀 시오랑의 견해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한 발짝도 걷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일까?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그건 아닌 것 같다. 크르스토프 라무르가 쓴 <걷기의 철학>은 생각하고, 돌아보고, 성찰하는 삶이란 것이 걷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에 착안하고 있을 따름이다.

 

길을 잃어야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모두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 그의 책은 먼저 걷기와 관련 있는 낱말들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예컨대, 측량, 느림, 노력, 리듬, 숭고, 겸허, 관광, 순례, 시위, 산책, 원정과 같은 단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사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관광'이라는 단어를 펼쳐보는 대목에서 눈에 띄는 구절이 있다. 가이드와 함께 승용차와 버스를 타고 식견 있는 해설이 뒷받침해주는 관광대신 도시에 발을 딛고 서서, 공기를 숨쉬며, 도시에 자신을 노출시키며 친해져보라고 권한다.

 

가이드마저 버려두고 차를 나와 도시를 누비다 보면서 길을 잃어 보라는 것이다. 그로인해 길을 잃지 않았더라면 결코 보지 못했을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관광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순례, 시위, 원정과 같은 단어들에서 발견하는 걷기의 의미도 새롭다. 순례라 이름 붙인 걷기는 성스러운 장소를 향해 걷는 성스러운 걸음이다. 시위라 이름 붙은 걷기는 정치적인 걸음이다. 걷기를 통해 투쟁하는 것으로, 말하자면 시위란 발로하는 투표일 수 있다는 것이다.

 

행군으로 이루어지는 전쟁을 위한 걷기가 바로 '원정'이며, 로마인들이 만든 뛰어난 도로망은 원정을 위한 길이었으며, 영토확장과 지배를 위한 길은 결국 대규모 침략을 위한 길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걷는 것이 가장 빠르다

 

걷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것은 차가 꽉 막히는 길에서 막힌 길이 뚫리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차라라 차에서 내려서 걷는 것이 더 빠르다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기술의 진보가 과연 시간을 절약 하는가 혹은 인간을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가와 같은 보다 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이반 일리치의 답이다.

 

<걷기의 철학> 두 번째장 제목은 '소요철학식 고찰'이다. 소요철학이란 말은 산책하며 철학하는 사람, 혹은 걸으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듣던 제자들을 이렇게 부르던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크리스토프 라무르는 뛰어난 걷기철학자로 이반 일리치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자동차가 먼 거리를 짧은 시간에 이동할 수 있게 해준다는 생각을 뒤집는 참된 추론 말이다.

 

"차로 집에서 직장까지 가는 데는 5분이 걸린다. 자동차가 등장하기 전, 걸어서 갔더라면 30분이 걸렸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일리치에 의하면 이 계산은 불완전하다. 여기에는 최종 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다른 값들이 빠져 있다. 사실 우리는 차를 구매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시간도 계산해야 한다."(본문 중에서)

 

그는 일리치를 인용하여, 차 값과 유지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노동시간을 고려하여 다시 계산해보면, 직장까지 걸어 갈 때보다 차를 타고 가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이런 계산방식을 적용한다면 결국 가장 빠른 이동수단이 바로 걷기라는 것이다.(이런 계산 방식을 적용해도 요즘 내 생각엔 자전거가 가장 빠른 이동수단이다)

 

걷기에 대한 '소요철학'에서 가장 공감되는 부분은 걷기와 달리기의 근본적인 차이를 비교해 놓은 것인데, 지은이는 걷기와 달리기의 구분은 양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둘 중 하나는 시간을 압축하고 줄이려 하며, 시간에 대해 일종의 폭력을 행사한다. 달리는 사람은 가능한 한 빨리 가려고 애쓴다. 다른 하나는 시간의 흐름에 맞춰 어우러지며, 시간의 가장 내밀하고 근본적인 리듬을 흉내 내려한다. 걷는 사람은 자신과 세상의 맥박 사이의 일치를 추구한다."(본 문중에서)

 

걷기와 달리기에 차이를 비교해보면 이렇다.

 

- 달리는 사람이 조급하다면 걷는 사람은 한가하다.
- 달리는 사람은 시간에 쫓기고 걷는 사람은 시간을 들인다.
- 달리는 사람은 초시계에 의거하지만, 걷는 사람은 시간이야 아무래도 좋다.
- 달리는 사람에게는 도착이 아름답지만, 걷는 사람에게는 여정과 길이 아름답다.

 

그는 걷기와 달리기가 양립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논리를 가진 활동이라는 것이다. 걷는 동안 인간의 몸은 늘 발을 통해 언제나 땅과 닿아 있으며, 몸이 허공에 떠 있는 순간 걷기는 달리기로 넘어가게 된다고 한다.

 

숲에서 길을 잃지 않는 방법

 

<걷기의 철학> 세 번째 장은 여러 철학자들을 통해 걷기 행위와 분리되지 않는 철학적 사유에 관하여 만나게 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여러 철학자 중에서 데카르트의 '방법'과 키에르케고르의 '사고여행'이 눈길을 끈다.

 

데카르트가 발견한 길을 잃지 않는 '방법'은 사유체계에서 길을 잃지 않는 방법과 숲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방법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관념의 질서 속에서 우리를 인도하는 방법과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 길을 찾아 숲을 벗어나는 방법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여행자들이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은 물론, 이쪽저쪽 빙빙 돌며 방황하는 것 역시 금기인 것과 마찬가지다. 대신 가능한 한 가장 똑바로 한 방향으로 걷되 비록 처음에 그 방향이 단지 우연히 정해진 것일지라도 절대 하찮은 이유로 방향을 바꾸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할 경우 비록 원하는 곳에 다다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어딘가에는 결국 도착할 것이며, 그곳이 숲 한가운데보다는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본문 중에서)

 

데카르트는 사유 활동이 무엇인지에 대한 많은 영감들을 걷기를 통해 발견하고 있다. 그는 철학은 생각이 질서 속을 걷는 행위라고 보았기 때문에 길을 읽을 수도 있고, 광대하고 숭고한 풍경을 발견하기도 하고 막다른 골목에 설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하찮은 이유로 방향을 바꾸지 않아야 결국 어딘가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프 라무르는 키에르케고르가 남긴 철학 우화를 통해 비범한 상상력과 연상 작용으로 이루어내는 기묘한 산책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바로 아버지와 아들이 손을 잡고 방바닥 위를 걸어 다니며 하는 산책 말이다.

 

"그들은 도시의 대문을 통해 나가서 근처의 별장용 성을 방문했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해안으로 향하거나 거리를 산책하곤 했다. 방바닥 위를 왔다 갔다 하면서....... 행인들에게 인사를 했으며, 자동차들은 시끄러운 소리로 그의 목소리를 덮으며 지나갔고, 가게의 사계절 과일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맛있어 보였다."(본문 중에서)

 

작품 속에서 요하네스의 아버지는 모든 것을 너무 정확하고 생동감 있게 이야기했기 때문에 삼십분 정도 방안을 산책하고 나면 마치 하루 종일 바깥에 있었던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얼핏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보상이었지만, 행선지의 위치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걷기 여행이었다고 한다.

 

키에르케고르는 풍부한 상상력, 그리고 추상적 관념 세계에서의 능숙한 움직임과 같은 능력을 얻게 된 과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스스로를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투사할 수 있는 것은 자유로운 사유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프 라무르는 <걷기의 철학>을 통해 "걷기와 철학은 본질에 대한 취미와 높은 것의 추구라는 점에서 맞닿아 있다"고 설명한다. 걷기와 철학은 모두 인류를 강하게 만든다고도 한다. 오늘 당신은 얼마나 걸었나? 오늘 당신은 얼마나 생각했나? <걷기의 철학>으로 자신의 삶을 한 번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걷기의 철학 - 10점
크리스토프 라무르 지음, 고아침 옮김/개마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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