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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전화번호 7개 밖에 못외우는 멍청한 국민?

by 이윤기 2013.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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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휴대전화 번호 정책이 국민을 바보로 만들었다

 

여러분은 전화번호를 몇 개나 외우시나요? 스마트폰 사용자 529명을 대상으로 한 취업포털 잡코리아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외우는 전화번호는 평균 7.2개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한 번 세어보았습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우리집, 단체 사무실 2곳, 아버지집, 아버지 전화번호, 아내 전화번호, 직장 후배, 이모집 전화번호, 다른 지역 YMCA 대표번호 3개 여기까지가 전부입니다. 다 합쳐봐야 모두 10개뿐입니다. 저도 역시 대한민국 평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잡코리아 조사를 보면 연령대별로는 40대 이상이 8.8개, 30대, 7.8개, 20대, 7개 순으로 점점 줄어드는 경향성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이렇게 전화번호를 외울 수 없도록 된 까닭이 바로 스마트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 경험을 돌아보면 딱히 스마트폰 때문에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게 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전에도 휴대전화에 주소록에 전화번호를 입력해서 버튼을 누르지 않고도 전화를 걸 수 있게 된 뒤로 전화번호를 잘 외우지 않았으니까요.

 

 

아울러 그에 못지 않은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바로 잦은 휴대전화 번호 변경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화번호를 저장할 수 있는 휴대전화를 사용하면서도 처음에는 가족들, 부모님, 형제들, 같이 일하는 동료들, 가까운 친구 휴대 전화번호를 모두 외웠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외우는 것을 조금씩 조금씩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두 가지 이유인데 하나는 휴대전화 주소록에 전화번로를 저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바로 잦은 번호변경과 번호이동 때문입니다.

 

예컨대 저만 하더라도 처음 휴대전화를 사용할 때는 당시 LG에서 서비스하던 019 국번 전화번호를 사용하였습니다.(011에 비하여 싼값에 구입할 수 있었음) 그러다가 2~3년 후 휴대전화를 값싸게 교체하기 위하여 통신사를 바꾸었지요. 016으로 한 번 바꾸고 그 다음에는 011 국번 전화번호로 또 한 번 바꾸었습니다.

 

그 다음 전화기를 교체할 때는 011번호는 그대로 사용하였지만 뒷자리 번호가 000세자리에서 0000 네 자리로 바뀌었습니다. 이때 원하는 번호를 다른 사람이 이미 사용하고 있어서 전화번로를 아예 다른 번호로 통째로 다 바꿔버렸습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는 앞자리 번호를 010으로 바꾸었습니다. 대략 지난 14~15년 사이에 휴대전화번로를 얼마나 자주 바꾸었는지 모릅니다. 대략 평균 2~3년에 한 번은 휴대전화 번호가 바뀌었습니다. 영업일을 하시는 분들이나 전화번호를 바꾸면 크게 불편을 겪는 분들은 동일한 번호를 계속 사용하는 대신에 휴대전화 교체 때마다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였지요.

 

이런 일이 저 한테만 일어났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제 가족과 부모님, 형제들, 친구들, 동료들도 모두 이렇게 자주 전화번호를 바꾸었습니다. 그때마다 바뀌는 전화번호를 모두 따라서 다시 외울 수가 없었지요.

 

옛날을 한 번 돌이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휴대전화가 나오기 전에 사용하던 일반 전화는 멀리 이사를 가지 않으면 웬만해서는 전화번호가 바뀌지 않았습니다. 한 번 사용하던 번호를 평생동안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 아버지 집 전화만 하더라도 한 자리 국번, 두 자리 국번, 세자리 국번으로 바뀐 이후에는 20년도 넘게 한 번도 전화번호가 바뀌지 않았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5번 바뀐 전화번호...외우는게 기적

 

한 자리에서 두 자리, 두 자리에서 세 자리로 바뀔 때도 지역별로 일정한 규칙에 따라 동시에 바뀌었기 때문에 바뀐 전화번호를 기억하는 것이 하나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휴대전화 번호처럼 개인별로 다른 규칙을 가지고 바뀌는 것을 모두 기억하기란 어려울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지금도 외우고 있는 친구들이나 가족들 집 전화 번호도 20여년 간 바뀌지 않았습니다. 일하는 단체 전화번호들도 바뀐적이 없구요. 기억을 더듬어보면 옛날에 사용하던 일반전화번호 중에는 그냥 외우고 있는 번호가 더러 있습니다. 최근에 그의 전화할 일이 없는 이모집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는 것도 어렸을 때 외운 이후로 오랫동안 바뀌지 않는 집전화 번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휴대전화가 생기기 전에도 모든 전화번호를 외웠던 것은 아닙니다. 자주 사용하는 전화번호는 저절로 외워졌지만, 자주 사용하지 않는 전화번호는 수첩에 기록해두었지요. 사무실에도 전화번호 수첩이 있고, 주머니속에도 작은 전화번호 수첩을 넣고 다녔습니다.

 

사실은 이 전화번호 수첩이 휴대전화(스마트폰) 속으로 옮겨졌고, 여기에 자동으로 전화를 걸어주는 기능까지 생기면서 전화번호를 외울 필요가 더 없어졌지요.

 

자 다시 휴대전화 번호 이야기를 해볼까요? 지금도 아버지, 어머니가 맨 처음 사용하던 휴대전화의 세자리 국번전화번호는 기억이나는데, 010-****-0000 으로 바뀌 전화번호의 네자리 국번이 외워지지 않습니다. 제 아이들이나 친구들 휴대전화 전화번호도 이렇게 부분적으로만 기억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일부만 기억하는 것은 모두 잦은 번호 변경 때문입니다.

 

그럼 이 잦은 번호변경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바로 정부에 있지요. 정보통신부가 통신회사를 옮겨다니면 더 저렴한 비용으로 전화기를 교체할 수 있는 정책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 자리 국번을 네 자리 국번으로 바꾸고, 010번호 강제 사용도 추진하고 있지요.

 

좀 비약해서 말하자면 정부가 국민들이 서로의 전화번호를 외울 수 없도록 만든 것이지요. 우리가 다른 사람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스마트폰이라는 기계에 의존하게 된 탓도 있지만, 2~3년에 한 번 꼴로 전화번호를 바꿀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은 정부의 통신정책 탓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휴대전화기 속 주소록에 전화번호를 저장시켜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사무실에서 일반전화로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 때는 여전히 버튼을 눌러 전화를 하고 있습니다. 자주 전화를 거는 번호는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저절로 외워질 수 밖에 없는 상횡이지요.

 

만약 지난 10여년 동안 그렇게 자주 휴대전화 번호가 바뀌지 않았다면 1인당 평균 7개보다는 훨씬 많은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