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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생명, 평화

가난한 자를 위하여 당신 땅 1/6을 내시오

by 이윤기 2013.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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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녹색성자 사티시 쿠마르의 <끝없는 여정>


"단지 걷는 일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은 이상주의자였습니다. 그는 두 다리가 신체에서 가장 창조적인 부위이고, 걷기가 에너지의 가장 창조적인 표현이라고 믿었습니다." (본문 중에서)

 

<끝없는 여정>은 인도 출신 평화운동가이자, 녹색운동가이며, 교육운동가인 사티시 쿠마르가의 여정을 스스로 기록한 회고록.  오늘날 '녹색운동의 성자'로 불리는 사티시 쿠마르가 있기까지 그 삶의 여정을 낱낱이 고백하고 밝힌 책이다.

 

승려나 녹색운동가·교육운동가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수행자의 육체적 욕망이나 그가 사랑을 나누었던 여인들에 관한 내밀한 이야기까지 솔직하고 담담하게 기록되어 있다.

 

[세속인에서 승려로] "당신도 '폭력' 휘둘러서 먹고 사세요"

 

사티시 쿠마르의 첫 번째 여정은 그가 아홉 살에 스스로 결심에 따라 자이나교 승려가 되어 어머니, 그리고 가족들과 인연을 끊고 세속적인 관심을 멀리한 채 지낸 9년간이다.

 

아홉 살에 출가하여 자이나교 비구 스님으로 살아온 9년 동안은 훗날 그가 간디 정신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는 밑거름이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자이나교 승려들에게 요구되는 신성한 의무인 탁발 수칙은 겸손과 인내를 배우게 하는 과정이었다.

 

▲ 닫혀 있는 문은 구태여 두드려 열지 말고, 오직 문이 활짝 열린 집만 찾아가라

▲ 기꺼이 주는 음식만 받아 오고, 음식을 주지 않아도 만나도 화를 내선 안 된다.

▲ 특별히 준비된 음식도 안 되고, 찾아 갈 것을 미리 알려서도 안 된다.

▲ 음식을 주든 주지 않든, 모두에게 축복을 빌어주어야 한다.

▲ 하나를 주면 4분의 1만 받아야 한다. 탁발 후에 다시 요리를 하게 해서는 안 된다.

▲ 음식을 탁발 할 때는 반드시 먹고 남은 것을 부탁해야 한다.

▲ 네 그릇은 여러 집을 거쳐 채우고, 오직 하루에 한 번만 찾아가라.

 

그러나 사티시 쿠마르가 처음 탁발을 나가 만난 젊은이는 그에게 "당신들은 건강합니다, 그런데 왜 당신 같은 승려들은 스스로 일을 해서 먹고 살 생각은 하지 않는 거죠?"하고 날 선 질문을 던진다. 아마도 이 질문은 훗날 그가 자이나교 승려를 그만두게 되는, 그리고 계율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승려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평신도 케발과의 만남도 계율에 대한 회의를 품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칼을 차고 다니며 구루와 승려들을 보호하는 케발은 승려들이 비폭력 계율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폭력'을 대신해 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우쳐 준다.

 

"당신들은 곡식을 키우고 음식을 요리하는 것도 폭력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음식을 탁발해 먹습니다. 만일 우리 같은 일반 신도들이 농사를 짓지 않고 요리를 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죠? 승려들이 폭력을 휘두르고 돈을 받아들이지 않는 대신, 그 일을 해줄 우리 같은 사람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키쇼라는 평신도가 전해준 간디에 관한 책은 자이나교 승려를 그만두고 환속하는 직접적 계기가 된다. 현세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없는 종교는 참 종교가 아니다. 종교가 인간을 인생과 현실에서 등 돌리게 하는 것은 현실도피다. 따라서 개개인은 삶 속에서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는 간디의 주장은 큰 울림으로 다가오게 된다.

 

[승려에서 부단운동가로] "가난한 자를 위해 당신 땅의 1/6을 내시오"

 

두 번째 여정은 열여덟 살 때 내면의 목소리와 억압적인 규율을 벗어나서 자이나교 승려의 길을 그만두고, 간디의 비전을 실현하고 평화로운 삶을 만드는 토지개혁운동에 참여하는 기간이다. 비노바 바베를 쫓아 수천 명이 넘는 사람들과 함께 인도 전역을 걸어 다니면서 불가촉천민들에게 땅을 나누어줄 것을 지주들에게 요청하는 운동에 참여했던 시기이다.

 

자이나교 승려에서 환속하는 것은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에게도 외면당하고, 정식교육도 받은 적이 없는 사티시 쿠마르는 일자리조차도 구할 수 없는 삶에 맞닥뜨린 후에 아쉬람을 통해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된다.

 

아쉬람은 '시람은 스스로의 노동으로 살아가는 곳'라는 뜻을 가진 말이라고 한다. 이 곳에서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자기 노동으로 살아가는 법을 익히고, 육체노동을 통해서 수행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아쉬람 동료였던 드와르코는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 그를 깨우쳐준다.

 

"당신이 승려였을 때는 머리로 명상만 해서, 손을 움직여 생산적인 일을 하는 건 상상도 못했겠죠. 하지만 이제는 정신과 육체, 머리와 손을 모두 이용해서 우리를 품고 있는 대지를 섬겨야 합니다. 대지를 섬기며 그 안에서 일하는 것이 바로 깨달음을 얻는 길이니까요. 이제부터 당신은 요리하기와 땅 갈기 그리고 물레 돌리기라는 세 가지 새로운 만트라로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중에서)

 

사티시는 아쉬람 생활을 하면서 '대다수 소작농들이 소수 대지주와 부자들에게 착취당하는데 몇몇 사람만이 아시람에서 자급자족하며 안락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많은 아시람 동료들이 부단운동(농민에게 토지를 분배하자는 운동)에 많은 시각과 노력을 쏟는 것을 보고 함께 참여하게 된다.

 

아쉬람 생활을 시작하면서 사티시는 비노바 바베와 함께 활동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끝없는 여정>에는 부단운동에서 참여한 사티시의 눈에 비친 비노바의 모습이 인상 깊게 그려져 있다.

 

"정부가 아니라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부단운동을 위한 연설에서 비노바는 지주들에게 "다섯 명의 아들이 있다면 나를 여섯째 아들로 생각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경작지의 6분의 1을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한다. 연설을 들은 한 지주가 1200㎢ 땅 중에서 4㎢만 기증하자 비노바는 다음과 같이 지주를 압박한다.

 

"내가 신전을 지을 땅을 원했다면 4㎢로 만족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땅을 원하기 때문에 당신이 가지고 있는 전체 토지의 6분의 1을 요구합니다." (본문 중에서)

 

결국 그 지주는 200㎢의 토지를 기증했고, 다른 지주들도 저마다 토지를 기증했다고 한다. 비노바는 자신이 펼치는 운동에 간디재단의 이익금을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고 인민들의 후원을 받아 토지 재분배 운동을 펼쳐나간다. 토지를 기증받은 농민들에게 원조를 요청한다.

 

"매일 한 번씩 한 주먹의 곡식을 항아리에 비축하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모은 곡식을 우리에게 기증해주십시오. 그런 여러분들의 원조가 없다면 우리는 토지의 공동 소유를 위한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을 먹여살릴 수 없습니다." (본문 중에서)

 

중앙의 재정지원을 포기하고 백성들의 원조만으로 운동을 이끌어가겠다는 결의는 농민들에게 토지개혁운동에 대한 책임감과 많은 감동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비노바에 얽힌 다른 일화 중에는 정의구현사제단 신부께서 시국미사에서 "촛불들은 대통령을 설득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과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마치 2008년 서울광장에 서있는 촛불을 향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의 바탕 위에 살고 있다. 그리고 현 정부는 국민들의 투표에 의해, 국민들 스스로 선택하여 세워진 것이야. 만약 우리가 정부의 변화를 원한다면 국가의 실질적인 주인인 투표권자들, 즉 국민들을 설득해야 해야만 합니다." (본문 중에서)

 

국민을 설득하는 것은 반드시 '비폭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항이나 반대는 또다른 형태의 폭력이며, 반대는 마음의 변화를 위한 싹을 자를 뿐이라는 것이다.

 

[부단운동가로 평화순례자로] 무일푼으로 소련과 미국 오가다

 

사티시 쿠마르의 세 번째 여정은 핵무기를 보유한 세계열강들의 핵무기 폐지를 주장하며, 인도에서 소련과 유럽의 프랑스·영국을 거쳐 아메리카대륙 미국 워싱턴까지 3만리가 넘는 평화를 위한 순례 길이다.

 

1962년, 당시 아흔 살의 노인이었던 버트런드 러셀이 런던에서 반핵시위 도중 체포되었다는 기사를 읽고 '나도 평화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바른 생각이라면 지체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그는 동료인 프라브하카와 함께 핵보유 강대국인 소련-프랑스-영국-미국의 수도를 순례하는 반핵 평화행진 여정을 무일푼으로 시작한다.

 

평화행진을 떠나는 두 사람에게 비노바는 비폭력을 따르는 자에게 합당한 두 가지 무기를 선물한다.

 

"첫 번째 무기는 어디를 가건 채식주의를 지키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단 한 푼도 몸에 돈을 지니지 말하는 것이다. 항아리는 비어있어야 속을 채울 수 있는 법. 참된 인간관계에 돈은 장애가 될 뿐이다. 돈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사람들에게 다가가 도움을 청해야 할 것이다. 도움을 받게 되었을 때 자네는 '저는 채소만 먹습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 이유를 물을 것이고, 그러면 비폭력과 평화에 대한 자네의 생각을 말하면서 그들과 친분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본문 중에서)

 

인도를 출발해 사막과 험한 산과 폭풍우와 눈 속을 헤치고, 소련을 비롯한 각국 정부의 온갖 방해 공작과 홀대에 당당히 맞서며 유럽을 거쳐 미국까지 1만㎞에 달하는 평화순례를 마친다. 감옥에도 갇히고 총으로 위협도 당하지만 마침내 핵무기를 보유한 4개국 지도자에게 '평화의 차(茶)'를 전달한다.

 

소련 차공장 노동자들이 "핵폭탄 발사 단추를 누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잠깐만 모든 행동을 멈추고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죽음이 아닌 삶을 원하는 평범한 우리들을 생각 할 수" 있도록 해달라"면서 전해준 차를 각국 정상들에게 준다.

 

믿으려 애쓰는 것과 정말로 믿는다는 것의 차이

 

"믿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정말 믿는 것은 누구에게나 놀라운 일을 일으킨다"는 사티시 쿠마르의 말은 무일푼으로 떠난 반핵평화행진과 이후 영국에서 살면서 펼치는 농촌공동체운동과 작은 학교 세우기 운동을 통해 거듭 확인되곤 한다. 부단운동과 반핵평화행진에서부터 슈마허대학 설립까지 그가 이룬 모든 일은 대부분 무일푼으로 '믿음'만 가지고 이루어진다.

 

네 번째 여정은 <리스전스>라는 잡지의 편집을 맡아 영국에 정착해 살면서 수많은 생태적이고 영적이며 교육적인 경험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다. 1973년부터 시작된 네 번째 여정에서 그는 유럽평화 운동가들의 공동체를 체험한 후, 영국에서 농촌공동체 운동과 더불어 자신이 사는 마을에 작은 중등학교를 세우는 일에 매진하고, 1991년에는 동지이자 스승인 슈마허의 영향을 받은 세계적인 녹색사상 연구기관인 '슈마허 대학'을 설립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사티시 쿠마르는 1991년 개교한 슈마허 학교는 바로 자신이 살아온 삶의 모든 경험을 쏟아 부을 수 있는 곳이었다고 한다.

 

"승려로서 갖추게 된 정신적인 토대와 부단운동을 하면서 갖게 된 사회문제에 관한 인식, 전 세계를 도보여행하면서 추구했던 평화에 대한 이상 그리고 <리서전스>를 운영하면서 터득한 환경에 대한 인식 등 그 모든 경험과 지식을 나는 '슈마허 대학'에 쏟아 부었습니다." (본문 중에서)

 

따라서, 독자 여러분은 <끝없는 여정>을 통해 그 모든 지식과 경험을 만날 수 있다.

  

 

끝없는 여정 - 10점
사티쉬 쿠마르 지음, 서계인 옮김/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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