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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국적 바꾼 성공, 안현수 보기 좋다

by 이윤기 2014.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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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동계 올림픽에서는 국적을 바꿔 또 다시 한 번 성공 신화를 쓰고 있는 빅토르 안(안현수)이 단연 화제의 인물이 되고 있습니다.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선수가 탁월한 기량을 선보이며 날라운 경기 능력을 보여주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국 대표팀의 부진 때문에 더욱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지난 주에는 한국 대통령까지 나서서 '안현수 선수의 사례'를 언급하였는데, 마침 러시아 대통령은 쇼트트랙 경기에서 우승한 안현수의 사진을 페이스북 메인화면으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안현수의 러시아 국적 취득의 결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들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국내 여론과 언론의 보도는 예상 밖으로 우호적입니다. 안현수에 대한 질타보다는 격려가 많고 그가 더 좋은 성적을 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압도적이었습니다. 비록 제 주변 사람들의 의견이기는 하지만, 안현수가 꼭 금메달을 땄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아마 빙상연맹이 불합리한 국가대표 선발과 운영으로 안현수를 국가대표에서 탈락시켰고, 바로 그것이 이유가 되어서 빅토르 안이 러시아로 국적을 바꾸고 마침내 러시아 국가대표가 되었기 때문일겁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국민들 일반 정서가 안현수를 국적을 버린 '배신자' 취급을 하지 않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물론 안현수가 걸출한 쇼트트랙 선수인 탓도 있겠지만, 어쨌든 국적을 바꾼 선수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은 예상하기 어려웠던 일입니다. 


저 역시 빅토르 안의 성공이 보기 좋습니다. 학교 교육을 통해 국민은 늘 국가를 위해서 어떤 불이익이라도 감수해야 하는 것처럼 배웠었는데, 절박한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국가를 버릴 수도 있다는 사례를 성공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국가라는 상징적 기구를 위해서 개인의 무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늘 마뜩치 않았는데, 빅토르 안의 사례는 국가가 개인에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 국가를 바꿀 수도 있다는 새로운 발상으로 이룩한 성공이 신기합니다. 


국가를 상징적 기구가 아닌 국민의 총합이라고 보아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국가를 국민의 총합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결국 개인은 다수를 위해서 희생해야 하고, 불합리한 희생을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빅토르 안의 사례만 놓고보면 반대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국가가 개인에게 불이익을 강요하면 개인이 그 불이익을 감수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지요. 


제 나라 국민을 귀하게 여기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난관이 있겠지만, 복지제도가 부실하고 국민의 노동을 천시하는 국가라면 그런 국가의 국민으로도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까지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지나친 비약이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대한민국은 개인들에게 국가를 위한 희생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나라입니다. 아울러 자본과 기업을 국가와 등치시켜서 기업을 위한 희생을 국가를 위한 희생으로 둔갑시키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하지만 자본과 기업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지 않습니다.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는 나라가 있으면 기업을 옮기고, 세금을 적게 낼 수 있는 나라도 자본을 옮겨갑니다. 결국 노동자인 국민만이 꼼짝없이 국가를 위해서 희생하는 나라였든 셈입니다.


노동자인 국민이 국적을 바꾸는 것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겁니다. 하지만 부자이거나 권력을 가진 국민들은 쉽게 국적을 바꾸거나 이중 국적을 가진 일이 비일비재하더군요. 빅토르 안의 경우에도 탁월한 쇼트 트랙 실력이 없었다면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고 국가대표가 되고 특별한 혜택을 받을 수 없었겠지요.


하지만 이 문제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인식이 바뀐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익을 위해서 개인이 더 이상 희생하지 않아도 되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국가(적)를 바꿀 수도 있다는 새로운 발상이 더 많이 퍼져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이 놈의 나라가 제 나라 국민을 귀하게 여길 때까지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