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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여행

일본 1200년 육식금지 메이지 유신때 깨졌다

by 이윤기 2014.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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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해 빠진 일본 여행기나 맛집을 소개하는 책이 아닙니다. 음식과 맛을 통해 근대 이후 일본 문화를 들여다보고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인도와 유럽에 이르기까지 문화 교류의 역사를 짚어보는 독특하고 흥미로운 책입니다. 저자 박상현은 시기적으로 근대 이후에 특별히 주목하는데 그 까닭은 "음식에 있어서 지나치게 먼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학문적 의미는 있을지언정 현재를 보는 방법은 아니"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근대의 음식을 살피면 지금 우리가 먹는 음식의 근원이 보이고, 심지어는 그 배경과 변화의 과정까지 보인다. 그런데 이를 살피다보면 번번이 암초를 만난다. 바로 일본이다. 마음 같아서는 슬쩍 돌아가거나 못 본 척 지나가고 싶은데, 그냥 돌덩어리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기에 그럴 수가 없다." (본문 중에서)

 

일본의 맛에 주목한 까닭은 근대 이후 우리 음식을 살피려면 '일본'이라는 암초를 피해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식민지배가 아니더라도 동아시아 음식의 이동과 교류에는 지리적으로 큐슈가 차지하는 역할이 컸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맛을 소개하는 책 제목이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가 된 까닭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의 소개와 책 제목으로 짐작하셨겠지만, 이 책은 근대 이후 일본의 음식문화 그 중에서도 특히 '규슈' 지역의 대표적인 음식에 얽힌 문화와 역사를 깊이 있게 다루는 책입니다. 독자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인터넷에 떠도는 여느 여행기나 맛집 소개와는 차원이 전혀 다른 깊이 있고 품격 있는 문화해설서라 할 만 합니다.

 

맛집의 전통에는 문화와 역사가 함께 담겨 있다

 

그래서 일본 음식을 탐구면서 '화혼양재'와 같은 일본의 근대화 전략에 주목합니다.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 근대화가 시작되고 '탈아입구'를 외치며 무차별적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지만, 일본 나름의 근대화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정신을 바탕으로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이는 '화혼양재'를 택했다. 서양을 미치도록 닮고 싶어 했으면서도 단 한 번도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 이러한 목표와 전략은 음식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본문 중에서)

 

예컨대 메이지 유신 이후에 일본 사회는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등의 음식을 닥치는 대로 받아들였고 서양 음식을 먹는 것을 근대화의 과정으로 이해하였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그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사건으로 '육식 금지 원칙 파기'를 꼽습니다.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를 읽으며 처음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인데 일본은 무려 1200년 가까이 가축의 살생과 육식을 엄격히 제한하는 '채식주의'(?)를 채택하였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675년 텐무 왕이 발표한 <살생과 육식을 금지하는 칙서>에 의거 소, 말, 개, 원숭이, 닭의 살생과 육식을 엄격히 제한해 왔다. 무려 1200년 가까이 지켜오던 이 원칙이 메이지유신 이후 깨졌다." (본문 중에서)

 

일본이 무려 1200여 년 동안이나 살생과 육식을 멀리하는 전통을 지켰다는 놀랍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 육식을 금지하는 전통이 무너지고 서양 음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메이지 유신, 육식금지 1200년 전통을 깨다

 

아울러 일본이 받아들인 음식 문화는 침략과 교류를 통해 한반도로도 유입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 한반도와 가까운 규슈 지역은 일본인이 좋아하는 향토음식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답니다. 앞서 밝혔듯이 저자가 일본의 맛과 규슈에 주목한 까닭인 셈입니다.

 

화혼양재의 대표음식은 무엇일까요? 바로 돈카스입니다. 140년 역사와 1500킬로미터의 여정을 그친 음식이 바로 돈카스라는 겁니다. 저자는 돈카스가 일본에 전해지는 과정을 상세하게 추적합니다.

 

"돈카쓰의 어원은 프랑스어인 코틀레트 혹은 영어식 표기인 커틀릿이다. 이른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이 가쓰레쓰고, 가쓰레쓰가 온전히 일본음식으로 변형되면서 돈카쓰라는 명칭이 정착되었다. 커틀릿이 돈카쓰가 되기까지는 근 60년 세월이 걸렸다." (본문 중에서)

 

이런 역사적 고증을 통해 재료가 쇠고기에서 닭고기로 닭고기에서 돼지고기로 바뀌는 과정, 일본식 빵가루가 덮이고 기름에 튀겨서 일본식 우스터소스를 얹어 젓가락으로 먹는 음식이 되는 과정을 자세히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1895년에 개업하여 지금까지 돈카스의 원조인 가쓰레쓰를 판매하고 있는 식당인 '렌카테이'(벽돌집)를 소개하고, 118년 된 이 식당의 근대 건축에 대해서까지 스토리텔링을 이어갑니다. 물론 118년 전통의 식당에서 원조 돈카스인 '가쓰레쓰'를 먹어 본 경험담도 빠지지 않습니다.

 

118년 역사와 전통이 있는 음식이라고 덮어놓고 맛있다고 소개하지는 않습니다. 118년 전 원형의 맛을 그대로 간직한 탓에 현대의 입맛에는 맞지 않더라고 솔직히 털어 놓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현대의 입맛에 맞는 '돈카쓰'집을 찾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내놓습니다.

 

118년 전통 돈카쓰... 솔직히 맛은 별로더라

 

그러면서 저자는 가고시마의 돈카쓰를 최고라고 추천합니다. 돼지고기의 품질과 신선도가 최고인 가고시마에서 돈카쓰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가추천하는 곳은 '마루이치'입니다.

 

"마루이치의 돈카쓰는 한마디로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는 맛이다. 비계와 살코기가 적당히 어우러진 등심의 단면에는 열로 활성화된 기름과 육즙이 자글자글한다. 한 입 깨물면 튀김옷을 뚫고 달고도 고소한 육즙고 기름이 봇물 터지듯 흘러나오고, 부드러운 비계와 야들야들한 살코기가 주거니 받거니 씹는 재미를 더한다." (본문 중에서)

 

돈카쓰를 이렇게 맛있게 표현한 글은 난생 처음입니다. 돈카쓰의 두께도, 면적도, 심지어는 밥의 양도 흔히 생각하던 그것의 1.5배가 넘는데, 맛까지 일본 최고라고 하니 군침을 삼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외양만 보면 빌딩 지하 식당가 한 켠에 자리 잡은 흔해 빠진 대중식당의 모습이지만, '가고시마 최고 등급의 흑돼지 등심을 사용하여 돈카쓰를 만드는 일본 최고의 돈카쓰집이라고 평가 합니다.

 

현란한 현악기를 연주하듯 한바탕 맛있는 돈카쓰 소개를 마친 저자 박상현은 음식이 때때로 역사의 일부분이자 중요한 증거가 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프랑스 음식인 코틀레트가 가장 대중적인 일본 음식인 돈카쓰가 된 과정에는 바로 화혼양재라는 일본 특유의 근대화 과정과 방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 박상현이 두번째로 역사와 여정을 추적한 음식은 인도에서 출발하여 일본에서 돈카쓰와 함께 '화혼양재'의 음식이 된 '카레'입니다. 카레의 역사와 일본까지의 여정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만, 제가 그다지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라 세번째 주제인 '돈코쓰라멘'으로 넘어 갑니다.

 

 

돼지 국밥과 닮은 돈코쓰라멘

 

인스턴트 라면을 포함하면 라멘은 오늘날 한국과 일본에서 가장 대중적인 면 음식입니다. 물론 한국에서는 자장면과 짬뽕이 있고, 일본에는 우동, 소바 같은 대중적인 면요리가 있지만 짧은 시간에 가장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은 것은 라멘입니다.

 

"라멘의 어원은 중국 간쑤성 란저우의 면요리인 납면"이라는 군요. 납면은 자장면처럼 반죽을 늘여 가늘게 뽑는 수타면인데 일본에서는 라멘으로 발전하였다고 합니다. 인스턴트 라면이 대세인 한국과 달리 일본에는 면을 직접 뽑는 라멘이 대중적인 음식으로 발달하였는데 소유라멘, 미소라멘, 시오라멘 그리고 돈코쓰라멘을 4대 라멘으로 꼽는다고 합니다.

 

돼지 등뼈와 사골을 우려낸 돈코쓰라멘은 저자가 특별히 관심을 가진 규슈 지역을 대표하는라멘이라고 합니다. 후쿠오카현 구루메에서 시작된 돈코쓰라멘이 규슈 전역으로 퍼져나갔다는 것입니다.

 

"돼지 등뼈와 사골을 강한 불에서 오랜 시간 끓여 낸 덕에 유백색의 진한 국물이 특징이다. 때문에 밥 대신 면을 말았다는 것만 제외하면 돼지국밥과 매우 유사한 음식이고, 따라서 경상도 사람들에게는 매우 친숙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본문 중에서)

 

일본에서는 후쿠오카식 돈코쓰라멘을 하카타라멘이라고도 부르는데, 하카타라멘은 하카타의 나카강 주변 야타이(포장마차)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후쿠오카의 유명한 라멘집은 대부분 포장마차에서 출발했다는 겁니다.

 

돈코쓰라멘의 대중적 인기 덕분에 후쿠오카에는 라멘 하나로 성공신화를 이룬 집들이 많다고 합니다. 돈코쓰라멘보다 더 가는 면을 살짝 익히고 넉넉한 양으로 노동자들에게 제공하던 '나가하메라멘'을 파는 '간소나가하마야'라는 라멘집은 장소를 옮겨가며 60년째 성업중이라고 합니다.

 

체인점이 진짜 맛집이라고?

 

후쿠오카의 대표적 '돈코쓰라멘' 전문점으로 명성을 얻은 '잇푸도'는 1985년에 문을 열었지만, 일본 유명 방송국에서 주최한 '라멘왕' 선발 대회에서 네 번이나 우승함으로써 일본 최고의 라멘집으로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창업주인 가와하라 시게미는 돈코쓰라멘의 원점에서 출발해 새로운 하카타라멘을 창조하겠다는 신념으로 자기만의 돈코쓰라멘을 개발했다.......다른 라멘 전문점이 마케팅에 힘을 쏟는 동안 잇푸도는 오로지 돈코쓰라멘의 맛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본문 중에서)

 

이런 노력 덕분에 잇푸도는 일본에서도 가장 완성도 높은 라멘 전문점으로 꼽히고 있으며, 전국에 65개의 지점이 있고 뉴욕, 홍콩, 싱가포르, 서울 등 해외에도 지점을 가진 라멘기업으로 성장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저것 따지는 까다로운 맛 칼럼니스트인 저자이지만 '잇푸도야말로 궁극의 돈코쓰라멘'이라고 단언합니다. 까다로운 맛 칼럼니스트가 '체인점' 음식을 최고라고 인정하는 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체인점 = 표준화된 보통 수준이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체인점으로도 최고의 맛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입니다.

 

후쿠오카로 여행을 갔다면 돈코쓰라멘 한 그릇 정도는 필수코스인데, 주저하지 말고 '잇푸도'를 찾아가 '궁극의 돈코쓰라멘'을 맛보시거나 아니면 60년 전에 만들어진 돈코쓰라멘의 원형을 맛볼 수 있는 '간소나가하마야'로 가보시라고 추천합니다.

 

400백 쪽이 넘는 이 맛있는 책을 모두 소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단탄멘, 교자, 잔폰, 오코노미야키, 구사아게 등의 맛있는 음식을 건너뛰고,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 '스시'편으로 갑니다. 뉴욕 맨해튼에만 스시 레스토랑이 300곳이 넘는 오늘날, 스시는 세계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지만, 제대로 된 스시를 먹을 수 있는 곳은 역시 일본이라고 하는 것이 저자의 지론입니다.

 

도쿄 긴자에 있는 '스키야바시 지로'(다큐멘터리 스시 장인 :지로의 꿈)라고 하는 일본 최고의 스시 집과 당시 82세의 스시 장인 오노 지로를 소개하는데 여러 페이지를 할애합니다. 특히 '스시 장인 : 지로의 꿈'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스시를 요리하는 과정을 오케스트라에 비유한 설명이나 영화에 삽인 된 '야사 하이페트'라는 바이올린 장인의 연주에 대한 화려하고 감동적인 평가는 스시와 바이올린이라는 이질적인 만남에서 빚어낸 감동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진짜 맛있는 스시가 일본에 있는 까닭

 

유명 스시요리가 전 세계로 진출하고 있지만 최고의 스시야는 여전히 일본에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입니다. '스키야바시 지로'와 같은 최고의 스시가 일본에 있는 이유는 바로 '소비자의 수준'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감각은 경험을 통해 구체화되고 예민해지며, 까다로운 고객은 그보다 더 까다로운 요리사를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평생 스시를 먹어 온 일본인의 수준이 최고의 스시 맛을 만들어 만들어 낸다는 것이지요.

 

"일본에는 회전스시 전문점에서부터 수십 년 경력의 장인이 운영하는 에도마에스시 전문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시야가 있다. 가격 또한 스시 한 점에 50엔인 곳이 있는가 하면 '스키야바시 지로'처럼 1500엔이 넘는 곳도 있다. 무려 서른 배에 이르는 가격 차이는 재료와 요리사의 수준에서 비롯된다." (본문 중에서)

 

바로 이점에 주목하면 맛있는 스시 집을 찾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라는 겁니다. "형편이 허락하는 한 가장 비싼 스시야에 가면 가장 맛있는 스시"를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규슈를 여행할 때도 가이드북이나 입소문에 의존하기보다 주머니 사정에 맞춰 가장 비싼 곳으로 가면 그뿐이라는 것입니다.

 

돈카쓰와 돈코쓰라멘 그리고 스시, 겨우 세 가지 음식을 통해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소개하는데 너무 많은 지면을 사용하였네요. 오니기리, 우동, 소바, 오뎅, 에키벤 같은 아주 대중적인 음식들과 일본 식문화 결정판이라는 '료칸요리'에 이르기까지 역사와 문화를 함께 버무린 군침도는 이야기가 가득한 책입니다.

 

겨우 이렇게 소개하고 끝내야 하는 것이 정말 아쉬운 책입니다. 규슈로 여행을 계획했다면 필독해야 할 책입니다. 규슈가 아니어도 일본을 여행하거나 일본 문화(특히 음식을 중심으로)를 들여다 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꼭 읽기를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음식과 맛 이야기에 생활과 문화와 역사를 잘 버무려 담는 새로운 시도를 성공시킨 멋진 책입니다.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 10점
박상현 지음/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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