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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왜 맨날 우리는 기적만 바라야 하나?

by 이윤기 2014.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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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가 일어 난 다음 날인 4월 17일(목)  한 달 전부터 계획된 목포 출장을 갔다가 거창을 거쳐서 19일(토) 오후 늦게 마산으로 돌아왔습니다. 목포에서 예정된 출장 일정을 마친 후에  전국에서 모인 동료들과 사고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 체육관을 다녀왔습니다. 


한 달 전부터 계획된 일정은 오전 한나절 동안 목포 지역 명소를 방문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너무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사고 현장 가까이 왔으니 현장 상황을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는 진도 체육관이라도 가보자는 제안이 있어서 함께 다녀왔습니다. 


진도로 가는 길은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흐린 날씨에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사고 후 사흘 째 되는 날이었는데, 뉴스로 보는 것 보다 현장 상황은 더 안타깝고 답답하였습니다. 체육관을 가득 메운 난민 같은 실종자 가족들,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수 많은 카메라와 방송과 신문 기자들, 그리고 또 기자들 만큼 많은 경찰과 관계 기관 공무원들 그리고 수 많은 자원봉사자들로 뒤엉켜 복잡하였기 때문입니다. 




체육관 무대 에서는 해양경찰청장이 브리핑을 하고 있었고, 실종자 가족들, 기자들이 몰려 경찰청장에게 끓임없이 질문하고, 질책하고 요구하는 상황이 계속되었지만 희망적인 소식은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순간순간 '오열'하는 가족들이 나올 때마다 분위기는 더 숙연해지더군요. 


실종자 가족 중에 한 분이 나와서 마이크를 잡고 배에 타고 있는 아이가 '구조를 요청하는' 카톡을 보냈다면서 그 내용을 읽어주어서 더욱 비통한 분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근처에서 구조 작업을 하고 있는 해경 대원들과도 휴대전화 통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카톡 내용을 그대로 믿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누구도 답하지 못하는 세월호 내부 구조 계획...


해양경찰청장이 그동안의 구조 활동 진행 경과와 앞으로의 구조활동 계획에 대하여 비교적 자세한 설명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 배안으로 들어가서 구조활동을 할 수 있는지 묻는 가족들의 질문에는 누구도 속시원한 답을 해주지 못한즌 답답한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함께 간 동료들과 한 시간이 좀 넘도록 체육관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현장을 지켜보았습니다. 가족들의 요구는 '신속한 구조 활동' 딱 한가지 뿐이었습니다만, 해양경찰청장은 여러 가지 현실적 어려움과 고충을 설명하기 바빴고 끝내 속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하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아무 노력도 할 수 없었고, 마음을 담아 기도만 하다 진도체육관을 뗘나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2박 3일 동안 차를 운전해서 출장을 다녀오면서 긴 시간 라디오를 들었습니다. 사무실에서 일을 할 때였으면 이렇게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없었을텐데, 차를 운전해서 출장을 다녀오는 바람에 마산-목포 3시간, 목포 - 진도 1시간, 진도 -거창 4시간, 거창 - 마산 3시간, 2박 3일 출장을 다녀오는 동안 무려 10시간 이상 라디오 방송을 들었습니다. 


사고 둘째 날 목포로 갈 때는 정규 방송 중간중간에 긴급속보와 뉴스가 반복되었고, 다음 날 거창으로 이동할 때, 그리고 마산으로 돌아올 때는 정규방송이 이어졌지만, 방송은 온통 세월호 사고 소식과 국민들의 안타까운 마음, 비통한 마음을 전하고 나누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더욱 기가막히고 안타까웠던 것은 국민 모두가 '기적'만 바라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이른바 세계 10위이 경제 대국이라고 떠벌리는 이 나라 정부에  '과학과 상식'에 따른 구출 계획 같은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기적'만 바라는 나라가 정상국가인가?


사흘 동안 10시간 넘게 들었던 라디오 방송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라디오는 정규 프로그램 진행을 중단하고, 추모와 무사귀한을 염원하는 내용으로 방송을 진행하였습니다. 뉴스부터 쇼프로까지 모든 진행자들은 한결 같이 '기적을 위해 기도하자'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반복하였습니다. 


노래 한 곡 듣고 나면, 기적을 바라는 청취자와 국민들의 사연을 읽어주고, 또 노래 한 곡 듣고 나면 진행자가 '무사귀환과 안전을 위해 국민 모두가 마음을 모으고 기도하자'는 이야기로 숙연한 분위기를 더 하였습니다. 간간히 책임자 처벌과 정부의 무능한 대응을 질타하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결국은 '기적이라도 바라자'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선박 밑바닥에 구멍이 나면 바닷 물 속에서 용접도 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수준의 조선 기술을 가진 나라에서 눈앞에 빤히 보이는 난파선에 있는 사람을 단 한 명도(스스로 빠져 나온 사람을 빼고) 구해내지 못하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입니까?


왜 이 나라는 2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다름없이 국민들에게 '기적이 일어 날 수 있도록' 기도만 해달라고 할까요?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뻔히 눈 앞에 있는 바다에 빠진 제 나라 국민을 구해내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를 믿고 세금을 내고, 군대를 가고, 일(근로)을 해야 한단 말입니까?


4년 전 천안함 사건 때 온 국민이 그 만큼 '기적'을 위해서 기도했는데도 아무 소용이 없었으면, 적어도 4년 동안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제 나라 국민을 구해낼 수 있는 최소한의 시스템이라도 만들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권력을 가진 자들이 말하는 것 처럼 정말로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위기 대응 메뉴얼에 따라 사고 상황에 즉각 즉각 대처하고, 위험에 빠진 국민들을 구출해 낼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아니 선진국이 아니라도 그냥 정상국가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닐까요?


국민을 위험에 내모는 나라, 위험에 빠진 제 나라 국민을 구해내지 못하고, '기적'을 위해서 국민들에게 기도나 해달라고 하는 한심한 나라에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정말 답답합니다. 이런 나라를 어찌 정상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온갖 규제를 풀면서 '안전 기준'도 낮춰버리고(이명박 정부 때 노후선박 도입 기준을 완화하였다더군요), 꽃다운 생명이 목숨을 잃어도 쥐꼬리 만한 보상금으로 떼울 수 있는 나라(징벌적 손해배상이 이루어져야 함)를 어떻게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멀리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아야 하는 국민들이야 기적이라도 염원하며 기도하고 마음을 모아야 하겠지만, 적어도 정부와 해양경찰청을 비롯한 재난 기구들은 기적만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되는 것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