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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강남 다음이라는 창원 사장님 이렇게 망가졌다

by 이윤기 2014.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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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 사람들은 서울 강남 다음으로 가장 번화한 상업지역으로 창원 상남동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국내 경제가 휘청거린다고 할 때도, 장기불황으로 소비 심리가 위축됐다고 언론이 호들갑을 떨 때도 창원 상남동은 '불야성'을 이뤘던 곳입니다. 밤마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뜩이고, 새벽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 이 동네의 겉모습만 보면 '이곳은 불황과 거리가 멀구나'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의 그늘을 직접 발로 뛰며 조사해온 책 <상남동 사람들>의 저자들은 창원 상남동 역시 빛과 그늘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짙은 그늘에서 허우적거리는 자영업자들이 매일매일 무너지고 교체되고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확인시켜 줍니다.

 

<상남동 사람들>의 공동 저자인 여영국은 1988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울산과 함께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메카로 불리던 마창노련의 핵심사업장이었던 '통일중공업' 해고 노동자 출신 경남도의원입니다. 1986년 통일중공업에서 노동조합 활동으로 해고된 뒤 수차례 수배와 구속을 당했으며 2010년 제9대 경남도원원에 당선될 때까지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운동에 헌신해온 활동가였습니다.

 

이 책의 또 다른 공동 저자인 정부권은 여영국과 고등학교 동기동창이며, 함께 통일중공업에 근무했던 노동운동 동지였으나 개인 자영업을 시작한 뒤 실패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블로그 활동과 한 인터넷 신문의 편집장을 지내기도 했으며 비정규직 노동자·청년실업자·영세자영업자 등 서민의 애환을 다룬 글쓰기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노동운동가의 눈에 비친 영세자영업 실태

 

두 사람 모두 마산과 창원에서 시민사회운동·노동운동·민주화운동에 참여해 온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활동가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저 역시 두 사람의 공동 저자를 잘 알고 있습니다. 직접 활동을 함께해 본 일은 없지만, 가까운 곳에서 서로의 활동을 지켜봐 온 동지들이기 때문입니다.

 

여영국·정부권이 쓴 <상남동 사람들>은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간됐고, 여느 출마 예정자들의 책처럼 '출판기념회'도 열었습니다. 하지만 저자들이 책 머리에 밝히고 있듯 '선거용'으로 쓴 책은 아닙니다. 독자들 역시 <상남동 사람들>을 읽어보면 선거 때마다 쏟아지는 '출판기념회용' 책은 아니라는 것은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공동 저자들은 2012년 겨울부터 시작해 1500여 명이 넘는 자영업자들 직접 만나 설문조사를 하고, 인터뷰를 한 끝에 두 가지 결과물로 정리 해냈습니다. 첫 번째는 2013년 5월에 만든 '자영업자 실태조사 보고서'이고, 두 번째 결과물이 바로 <상남동 사람들>입니다.

 

2013년 5월 자영업자 실태조사 토론회 때 공개한 실태조사 보고서에는 요란한 네온사인에 화려하게만 보이는 전국 최고 상권, 창원 상남동 자영업자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활발한 상권으로 이름난 이곳에서 23%의 자영업자들이 월 100만 원 미만의 소득에 허덕이고 있었다. 물론 9%는 월 500만 원 이상의 소득을, 심지어 1000만 원 이상 3000만 원까지 소득을 올리고 있다는 자영업자도 1%에 달했지만 대다수 자영업자들의 벌이란 것은 그들의 흘린 땀과 노력에 비해 실로 보잘것없는 것이었다."(본문 중에서)

 

2013년에 만든 자영업자 실태조사 보고서는 과학적인 통계자료를 활용한 객관적인 분석으로 여론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했지만, 딱딱하고 재미없는 분석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애환과 삶을 가슴으로 느끼도록 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한 편의 소설같기도 하고, 르포 문학 같기도 한 <상남동 사람들>을 쓰게 됐다고 합니다.

 

저자들은 자영업자들이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권리금·임대료 문제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을 집중적으로 기록했다고 합니다. 독자들의 가슴에 다가가기 위해 요즘 유행하는 말로 '스토리텔링'을 한 것이지요.

 

일자리 잃은 노동자들, 자영업에 뛰어들었지만...비정규직보다 못한 영세자영업자

 

책 <상남동 사람들>은 "노동시간당 임금으로 따지면 비정규직 노동자보다 훨씬 못한 게 자영업자 다수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는 책입니다. 특히 영세자영업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보다 못하다는 사실과 그 까닭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노동문제의 근본 모순이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번 자영업 실태조사를 통해 노동시장의 불안정과 비정규직 노동시장의 확대가 자영업시장의 강도 높은 출혈 경쟁의 배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노동시장의 그림자가 곧 자영업시장이었다."(본문 중에서)

 

아울러 저자들은 탐욕스러운 재벌들이 도시마다 진출시킨 대형마트와 영세한 동네 골목상권까지 빨대를 꽂아 넣는 가맹점 사업 그리고 이른바 '갑을관계'까지 자영업시장을 둘러싼 여러 가지 구조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짐작하시다시피 이 책은 최대한 매출을 숨기고 탈세를 일삼는 소득 수준이 상위 10%에 속하는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하위 90%에 속하는 영세자영업자들의 삶을 담고 있습니다.

 

 

 

영세 자영업자들의 삶은 심각한 불황과 매출 부진으로 인한 개업·폐업의 반복 그리고 조금 장사가 잘 된다 싶으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높은 임대료와 이중계약서, 권리금 약탈, 갑의 횡포 등으로 피폐한 상태입니다.

 

'그해 겨울' '지하점포의 남자'라는 소제목으로 시작하는 첫 구절은 "지독하게 추운 겨울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소설 작법에 대해서 잘 모르기는 하지만, 이 책에는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생생한 장면 스케치가 많이 등장합니다.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소설과 같은 흡입력과 감동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아마 그것은 저자들이 자영업자 실태조사에서 만난 영세 상인들의 삶을 꾸미지 않고 담았음에도 이미 그들의 삶 자체 소설처럼 파란만장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파업투쟁? 노동자 임금 올라야...자영업자 매상 오른다

 

이 책에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자주 등장하는 사람은 김석훈이라는 40대 가장입니다. 김석훈은 젊은 시절 권투선수였으나 생계를 위해 선수 생활을 포기하고, 자영업에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여러 자영업을 전전하면서 불안한 삶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는 왜 자영업자가 됐을까요. 김석훈이 자영업자가 된 까닭은 다른 많은 사람들이 영세자영업을 선택하게 된 이유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특히 IMF 초기 상황은 아주 열악한 것이었다. 기업들이 도산하고 정리해고가 전사회적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양질의 일자리는 고사하고 적은 임금에 고된 일자리도 그리 흔치 않았다."(본문 중에서)

 

"아마 획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프랜차이즈의 성장은 계속되겠죠. 사실은 퇴직자들, 실업자들의 존재가 이 사업의 원천인 거죠."(본문 중에서)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이 OECD 평균인 15.9%를 훨씬 넘는 28.6%나 되는 것은 IMF 시기를 거치면서 일자리를 잃은 수많은 중도 퇴직자들이 자영업 시장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프랜차이즈 자본이 그들의 퇴직금을 빨아들이며 문어발처럼 성장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권투를 그만둔 김석훈씨는 피자가게 점원에서부터 시작해 프랜차이즈 회사의 오픈점장을 거친 뒤 장사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마침내 퇴직금과 위로금 1000만 원에 여기저기서 도움을 받아 4000여만 원을 투자해 꿈을 품고 치킨·피자집 사장님이 됩니다.

 

처음엔 1년을 그럭저럭 장사가 됐지만, 서서히 그의 자영업에도 IMF의 후폭풍이 닥치기 시작합니다. 직장에서 밀려나온 퇴직자들이 앞다퉈 피자집, 치킨집을 개업하는 경쟁자들이 된 것이지요. 결국 3년을 버티지 못하고 접었다고 합니다.

 

다음에는 김석훈씨는 상남동에서 호프집을 열었다가 접고, 그다음엔 변두리로 나가 족발·보쌈집을 열었다가 실패하고, 결국 다시 피자집 점장으로 되돌아갑니다. 하지만 장사의 꿈을 접지 못하고 2년 만에 다시 돈까스집을 열게 되지요. 돈까스집으로 착실하게 기반을 닦아 가던 중에 그는 장유신도시에서 체인점을 해보자는 동업 제안을 받고 뛰어들었다가 다시 한 번 빈털터리가 되고 맙니다.

 

저자들은 김석훈의 짧은 성공과 거듭된 실패 경험 그리고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한 부업이었던 퀵서비스 배달원 생활, 이후 장례지도사가 되기 까지의 '인생'을 좇습니다. 그러면서 프랜차이즈와 자영업자 간의 갑을관계 문제, 권리금 문제, 비정규직 문제를 실감 나게 드러냅니다.

 

 

목숨과도 같은 자영업자 권리금 노리는 악마들

 

책 <상남동 사람들>의 저자들은 용산참사와 같은 참혹한 '권리금 전쟁'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다만 용산참사와 같은 집단적 피해가 발생한 게 아니기 때문에 여론의 주목조차 받지 못할 뿐이라고 합니다.

 

"작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까지 권리금을 내고 자영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땅주인들이 건물을 헐고 재개발을 하겠다고 한다. 개중에는 이제 겨우 장사 시작한 지 몇 달밖에 안 된 자영업자도 있다. 여러분 중에 누군가가 당사자라고 한다면 어찌하겠는가?"(본문 중에서)

 

상남동에서 갈비집을 하고 있는 송상호씨와의 인터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대한민국 곳곳에서 용산과 같은 권리금 빼앗기 농간이 벌어지고 있고, 창원 상남동 역시 예외가 아니라고 합니다.

 

건물주와 결탁한 부동산 중개인들이 농간을 부려 벼룩의 간을 빼먹는 '권리금 빼앗기'가 현실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책에는 횟집과 삼겹살집을 하다가 권리금은 고스란히 날리고 쫓겨난 전숙희·김미영씨의 사례를 그녀들의 살아 온 인생 이야기와 함께 소설처럼 들려줍니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4월의 태양이 빛나던 2012년 어느 날, 겨울 산처럼 하얗게 샌 머리를 이고 초로의 한 여인이 OO세무서 현관 앞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어 저자들은 기가 막히는 사연을 이어갑니다.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권리금 문제만이 아니더군요. 저자들은 장사가 좀 된다 싶으면 천정부지로 치솟는 월세를 감당해야 하는 자영업자들의 신세를 '현대판 소작농'에 비유합니다. 농사가 잘 되면 지주에게 많이 빼앗기고, 농사가 안 되면 굶주려야 하는 소작농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지요.

 

토지에 묶인 농노처럼 꼼짝없이 당하는 현대판 농노의 대표격은 '편의점주'라고 합니다. 외부에 정보를 공개하면 3억 원의 위약금을 물린다는 불합리한 강제 계약과 매출 마진 35%를 가져가는 본사의 수탈구조. 거기에다 그만두고 싶어도 마음대로 그만둘 수 없는 '노예계약'과 하루도 쉴 수 없고, 24시간 문을 열어야 하는 강제노동 계약까지. 가장 최악의 자영업이 바로 24시 편의점이라고 설명합니다.

 

편의점 자영업자는 꼼짝 못하는 현대판 농노

 

이 책 후반부에는 거제에서 24시간 편의점을 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통한 청년 자영업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청년은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 조선소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정리해고로 일을 그만두고 편의점을 시작했다가 끝내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1970년에 전태일 열사가 비참한 노동현실을 고발하며 산화했죠. 그처럼 이 젊은 청년도 온몸으로 전국 수십만 가맹점주들의 삶과 고통을 고발한 겁니다. 우리가 이 청년 자영업자의 참혹한 죽음에 애도를 표하지만,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의 삶과 죽음을 발견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에 회초리를 드는 게 먼저입니다."(본문 중에서)

 

저자들은 젊은 청년을 죽음으로 내모는 불합리한 영세자영업자 문제는 정리해고·명예퇴직·비정규직 등 노동문제, 일자리 문제와 일란성 쌍둥이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드러내 보여줍니다. 일터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이 영세 자영업에 뛰어들어 현대판 농노로 전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깨닫게 해줍니다.

 

아울러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을 두고 '귀족노조' 운운하며 욕하고 비난하는 영세자영업자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도 일깨워 줍니다. 저자들은 소위 '귀족노동자'들이 월급을 많이 받아야 자영업자들의 가게로 와 매상을 올릴 수 있다는 노-자(노동자-자영업자) 연대의식을 강조합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만 해도 자영업자에 대한 인식은 다소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들이 소득을 감추는 탈세를 일삼으면서 "어렵다, 어렵다"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막연히 '그래도 월급쟁이보다는 낫겠지'라고 생각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책 <상남동 사람들>을 읽고 난 뒤에는 직장에서 쫓겨나 자영업을 시작한 영세자영업자의 삶이 '현대판 농노'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 뇌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이야기'는 힘이 세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습니다. '사는 이야기'에 소설적 형식을 차용한 이야기의 힘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체험으로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의 제목은 조금 아쉽습니다. 물론 저자들은 창원시 상남동에서 만난 영세자영업자들의 삶을 생생하게 드러냈지만, 사실 대한민국 어느 도시를 가도 똑같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굳이 '상남동'이라는 특정 공간을 제목에 달아놔 독자들의 관심을 제한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선거를 앞두고 현직 도의원이 출간한 책이라 '선거용'이라는 오해를 피할 길 없겠지만, 올해 가을 <상남동 사람들>이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한다 해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상남동 사람들 - 10점
여영국.정부권 지음/청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