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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국토순례, 다섯 번째 완주의 행운을 누리다~

by 이윤기 2014.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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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YMCA 전국 연맹이 주최하는 제 10회 자전거 국토순례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한국YMCA  청소년 자전거 국토순례는 2005년 '청소년 자전거 평화 종주단" 행사로 시작되었습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 간은 자전거 국토순례를 통해 전국적인 모금 활동과 캠페인을 통해 3년간 자전거 6000대를 북한에 지원하였습니다. 


북한통일자전거 보내기 캠페인이 끝난 뒤인 2008년부터 3년 간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전국적인 행사는 중단되고 지역별로 자전거 국토순례를 이어갔습니다. 마산YMCA의 경우에도  2008년 1월 25~29일까지 청소년 제주 자전거 일주를 진행하였습니다. 


전국 규모의 청소년 자전거 국토순례가 다시 시작된 것은 2011년부터 입니다. 2011년 전국적인 규모의 자전거 국토순례가 다시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마산, 광주, 안양 등 경기도 지역 YMCA들이 각각 진행해 왔던 경험의 축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011년에 전남 강진을 출발하여 임진각까지 가는 제 7회 청소년 자전거 국토순례가 진행되었고, 이후 4년 동안 매년 여름 청소년 자전거 국토순례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제 8회는 경남 창원을 출발하여 임진각까지, 제 9회는 전남 여수를 출발하여 임진각까지 그리고 이번 제 10회는 전남 목포를 출발하여 임진각까지가는 일정을 진행하였습니다.


어제 임진각에서 제 10회 청소년자전거 국토순례 해단식을 하면서 선후배 동료들로부터 예상하지 못했던 축하 세레모니를 받고 나서야 자전거 국토순례에 참가하여 다섯 번째 완주를 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전거 국토순례에 처음 참가한 것은 지난 2007년 이었습니다. 한국YMCA 제 3회 청소년 자전거 평화종주단 출발 장소가 마산으로 정해지면서 지역 모금과 캠페인 행사 진행을 위한 실무를 맡은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역 행사 준비와 진행 실무를 맡은 김에 자전거를 타고 임진각까지 가겠다는 도전을 결심하였고, 당시 중학교 2학년(지금은 군 입대 중) 이었던 첫째 아이에게도 국토순례 참가를 권유하였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자전거를 탔지만 국토를 종단하는 장거리 라이딩은 이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긴장도 많이 하였고, 고생도 많이 하였습니다. 


평소에 등산과 달리기를 꾸준히 하였고, 자전거 국토순례 출발을 앞두고 한 달 전부터 연습을 시작하였지만, 막상 국토순례에 참가해보니 쉽지 않더군요. 아무튼 지난 2007 마산을 출발하여 김해 - 부산 - 경주 - 대구 - 구미 - 김천 - 대전 - 평택 - 부천을 거쳐 임진각까지 가는 자전거 국토순례에 참가하여 첫 번째 전 구간 완주에 성공하였습니다. 





당시 아들과 같이 갔던 국토순례 참가 후일담은 경남도민일보 기사에도 나왔었는데, 요즘 입는 자전거 바지도 입지 않은 채 집에서 입던 반바지를 입고 '철티비'를 세워 놓고 찍은 사진이 남아 있네요. 당시의 유일한 강점은 지금보다 젊었었다는 것 밖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때 홍보팀을 맡으면서 오마이뉴스에 국토순례 전 기간 동안의 현장 스케치를 기사로 송고하였던 덕분에 지금도 그때 기록을 다시 볼 수 있어 참 소중하네요. 오랜 만에 당시에 쓴 글들을 다시 읽어보니 기억이 새롭고 한국YMCA 청소년 자전거 국토순례를 취재한 공적 기록물이기도 하지만, 제 개인의 사적 기록물로도 의미가 있네요. 



2008년부터 지역별 자전거 국토순례가 진행되었던 3년 동안에는 마산YMCA의 경우 2008년 1월에는 대학Y 회원들과 청소년들이 주축이 되어 함께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다녀왔습니다. 


2007년 임진각까지 갔었던 경험으로 16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제주도 일주를 하고 한라산 겨울 등반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후 2년 동안은 실무적인 준비 역량 부족으로 국토순례를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였지요.  



다시 청소년 자전거 국토순례에 참가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1년 전국 규모의 행사가 다시 부활되면서부터 입니다. 2007년 제 7회 대회에는 마침 중학교 2학년이 된 둘째 아이와 함께 참가하였습니다.


첫째 아이가 중학교 2학년 이었을 때 제 3회 청소년 자전거 평화종주단에 함께 참가했었던데, 둘째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제 7회 자전거 국토순례가 전국 행사로 부활되어 부자가 함께 참가하게 된 것입니다. 

둘째 아들과는 2007 ~ 2010년까지 3년 동안 자전거 국토순례에 함께 참가하여 매년 임진각까지 자전거를 같이 탔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 둘째는 올해부터 자전거를 타지 않고 홍보팀에 자원봉사 스텝으로 참가하여 사진 촬영과 영상 제작에 힘을 보탰습니다.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니 마치 다섯 번의 꿈을 꾸었던 것 같습니다. 전국적인 자전거 국토순례가 중단되었던 3년을 빼고보면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다섯 번 완주를 한 셈입니다. 


행운이 따랐던 탓으로 다섯 번의 자전거 국토순례에 참여하는 동안 한 번도 고장이나 자전거 펑크로 자전거 타기를 중단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다섯 번 국토순례를 완주하는 동안 다섯 번 모두 전 구간을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2011년부터는 철티비 대신 MTB로 바뀌었고, 자전거 용품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으며 국토순례 기간이 아니어도 자전거 타기는 중요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자전거 운동이라고 부를 만한 일도 조금씩 늘여가고 있는 중이지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다섯 번의 자전거 국토순례를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선후배 동료 스텝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YMCA가 아니면 해 낼 수 없는, 엄두도 내기 어려운 이 엄청난 프로젝트를 치뤄내는 50~60여명의 지원 스텝들이 있었기때문에 모두 다섯 번이나 완주 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지요. 



글을 쓰는 동안 한 여름 뙤약볕 아래를 함께 달렸던 고마운 얼굴들이 스쳐갑니다. 모양 빛나지 않은 곳에서 굿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국토순례를 지원해주던 많은 동료들이 떠오릅니다. 국토순례의 꿈을 함께 꾸고 실현해 낸 동역자들, 임진각에서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던 그들에게 감사와 고마움을 전합니다. 


돌이켜보니 지난 10년 동안 YMCA 청소년 자전거 국토순례에 스텝으로 참여하는 동안 공적활동과 사적활동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남다른 의미가 아주 많았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