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동네 고르긴 쉬워도 이웃까지 선택할 순 없다

by 이윤기 2014. 10. 23.
728x90

1994년 지방자치제 시작 이후 많은 주민자치 운동, 풀뿌리 지역운동을 꿈꾸던 시민사회 활동가들과 지역 활동가들이 '마을만들기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좋은 동네 만들기, 어떤 지역에서는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형태의 마을만들기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을만들기 운동 붐이 일어난 뒤 10년 이상 지금,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그 시작은 성대하였으나 성과는 미미하였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책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는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사회 곳곳에서 이루어졌던 마을만들기 운동에 대한 평가서 같은 책입니다.


전국의 마을 현장에서 나름대로 다양한 성공과 실패 사례를 경험했다는 7명의 활동가들과 전문가가 모여 앉아서 자신들의 경험을 펼치고 생각을 나눴던 집담회의 결과물이라고 합니다.


토론 모임을 만들어낸 하승우(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를 비롯하여 권단(옥천살림 활동가), 김상철(노동당 서울시당 사무처장), 김신범(노동환경건강연구소), 김정찬(네트워크 고리 대표), 박영길(청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주방 책임자), 한채윤(성소수자를 위한 단체 '비온뒤 무지개 재단' 활동가)가 이 책의 공동 저자입니다.


각자의 활동현장과 일터가 있는 사람들이 한 달에 한 번식 만나 4시간 이상씩 웃고 수다 떨었던 내용을 정리한 내용이 바로 이 책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입니다. 마을, 공동체, 생활세계처럼 평소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들이 많이 등장하였기 때문에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당신의 마을은 잘 만들어지고 있습니까?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마음에 새겨진 이야기들,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 그리고 저자들에게서 배운 좋은 아이디어와 생각들을 골라서 맛배기로 들려드리겠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 중 하나는 권단이 이야기한 '결사체와 공동체'에 대한 정의였습니다.


"공동체라는 말이 너무도 흔하게 쓰이지만 잘못 쓰이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인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인다. 그렇게 해서 어디 들어가 산다. 이런 형태는 결사체의 성격이 강해요. 공동체는 그리 쉽게 만들어지는게 아닙니다." (본문 중에서)


공동저자인 권단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공동체라고 이해하고 있는 이런 모임은 공동체가 아니라 결사체라는 것입니다.


"공동체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한 시공간에서 오랫동안 부대끼며 살면서 천천히 만들어지는 거예요" (본문 중에서)


이런 공동체는 생활세계 즉, 삶터에 기반을 하고 있으며, 다툼, 갈등, 화해, 우애 같은 것들이 뒤섞이면서 자연스레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단체, 기업, 기관 등과 같은 결사체와 공동체는 이런 의미에서 뚜렷하게 구별된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이런 결사체들이 튼실하게 체계를 구축하면서 공동체, 즉 생활세계를 관장하고 점령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공동체와 결사체는 도시와 농촌 간에도 차이가 드러나는데 도시에서는 동아리나 모임 등은 익숙하지만 공동체는 잘 이루어지지 않고, 농촌에서는 공동체는 자연스레 형성되지만 결사체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특징을 보인다는 겁니다.


공동저자인 권단은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마을 기업 같은 최근의 흐름에 대해서도 비판적입니다. 예컨대 "협동이 없는 조합과 사회가 없는 기업, 마을이 없는 기업이 곳곳에 출현하면서 협동과 사회와 마을을 억압하는 구조로 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협동없는 조합, 사회 없는 기업, 마을 없는 기업


우선 지방자치제니 행정구역이니 하는 용어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이 그의 지적입니다. 예컨대 지방이라는 말은 중앙과 지방을 나누는 말이니, 지방자치보다는 지역자치라고 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구요.


"또 자치제를 한다면서 행정구역은 또 뭡니까. '자치구역'이란 말이 맞지요. 이것은 우리나라 자치제도 자체가 미성숙한 채로 혼용되어 있다는 것을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행정구역 통폐합이라는 말을 쓰잖아요. 그것은 자치제를 모욕하는 말이거든요. 자치가 아니라 국가의 관치, 행정 관료들의 관치구역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지요." (본문 중에서)


지방자치 역사가 20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관치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지방자치를 한다면서 '행정구역'이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관치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이지요.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명박 정부 때부터 추진하고 있는 행정구역 통합은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짓인 겁니다. 자치구역을 합치는 일은 지역주민의 필요와 뜻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지 행정(관치)의 편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주민투표조차 실시하지 않고 이루어졌던 마산-창원-진해와 같은 통합 '반 자치'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있습니다. 마산-창원-진해 세 자치구역을 하나의 자치구역으로 통합하는 데 주민투표 같은 가장 기본적인 절차조차 거치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졸속'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를 쓴 일곱 명의 공동저자 가운데 권단이 말한 내용에 특히 공감되는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마을을 두 가치 측면에서 주목해 보아야 한다는 주장에도 깊이 공감하였습니다.


"하나는 자본이 마을이라는 삶터를 상품으로 등극시킨 것이고요. 다른 하나는 권력이 더 이상 불온한 힘을 갖지 못하도록 자족하는 마을로 표딱지를 붙여놓은 것이지요." (본문 중에서)


예컨대 정부가 추진하는 마을만들기의 경우 경쟁을 통해 의지가 있는 마을에만 상도 주고 사업비도 주겠다는 것인데, 마을 간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 기본 맥락이라는 겁니다.




마을에 순위 매기는 것으로 살기 좋은 마을 만들 수 있을까?


최우수 마을, 으뜸마을, 버금마을' 같은 딱지를 붙이는 것도 모두 삶터를 순위 경쟁의 대열로 옮겨가는 증거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렇게 선정된 마을에 돈이 들어오고 자본의 시스템이 자리잡으면 마을조차 상품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현재의 마을만들기 사업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결합하여 어떤 의도를 가지고 시작했으며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그들의 시도는 작은 마을까지 자본주의 시스템을 확장하는 것인데, 마을까지 빼앗기지 않으려면 권력과 자본에 제어되지 않는 자치공간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전국 여러 곳에서 '자치공간'인 마을을 지키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고, 이 책의 공동저자들은 집담회에서 공유한 다양한 경험을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옥천신문, 옥천살림, 옥천순환경제 공동체,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성소수자인권운동 등에 관한 구체적 사례와 경험 나눔이 필요하신 분들은 직접 책을 읽는 수고를 하셔야 합니다.


공동저자들의 이야기 중에서 마음에 오래 남는 내용만 몇 가지 더 골라서 소개해보겠습니다. 책을 읽으며 '김상철은 도시에서 마을만들기 운동이 잘 되기 어려운 까닭을 제대로 진단하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1/4 가량이 2년 내에 집을 옮긴다고 그래요. 그래서 5년, 10년이면 마을 전체가 물갈이되는데 마을을 만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중략) 그 다음에 던진 질문이 서울이 세계에서 가장 노동 시간이 긴 도시라는 점입니다." (본문 중에서)


오랫동안 마을을 이루고 사는 사람이 없고, 직장을 다니느라 마을에 머물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무턱대고 마을만들기 사업을 펼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시도라는 것입니다. 이른바 뉴타운 개발 때문에 서울의 26%가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었고, 도무지 마을을 상상할 수 없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안타깝지만 현실이라는 겁니다.


"마을이 소위 살기 좋은 곳이 되면 집값이 오르죠. 집값이 오르면 가장 가난한 사람들부터 쫓겨나기 시작합니다. 마을이 누구를 품고 어떻게 유지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있을까요?" (본문 중에서)


한채윤이 지적한 마을만들기 운동의 역설적 측면입니다. 내 집이 없고, 직장 때문에, 집값 때문에, 아이 교육 때문에 이사를 끊임없이 다녀야 하는 현실도 어렵지만, 기껏 좋은 마을을 만들었더니 집값이 올라서 떠나야 하는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2년마다 이사 다니는 사람들과 마을 만들 수 있을까?


따라서 저자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마을만들기는 하나의 표준 모델을 따라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의 모델을 고집하게 되면 결과적으로는 주민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두 네 번의 집담회를 정리한 이 책은 누구를 위한 마을인가, 마을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을의 관계망은 잘 만들어지고 있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마을은 어떤 모습인가? 이렇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마을의 관계망에 관한 이야기에도 눈에 띄는 대목이 있습니다. 흔히 지역운동이나 마을 운동에서 이름이 알려지면 군수나 조합장, 군의원으로(도시에서는 시의원, 구의원으로) 진출하는 일이 많은데 바람직한 방식이 아니라는 견해입니다


"군수나 군의원이 되면 한 사람에게 집중되잖아요. 그 사람이 도드라지게 되고 그 사람에게 의존하게 되지요. 그런데 옥천에서 지역사회 운동을 추동했던 이들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려 해요. 되도록 다양한 사람들의 힘을 모아 같이 가려는 거죠. 사람이 중심이 아니라 공론장이 중심이 되는 거죠." (본문 중에서)


모임의 대표가 된다는 것은 권력을 얻는 것이 아니라 논의의 장을 펼치는 사람이며, 논의의 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방향을 모아서 일을 해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을은 권력 지향적인 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수평적인 리더십이 발휘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지 않으면 군수나 군의원이 된 사람에게는 과부하가 걸리기 십상이고, 공론장을 벗어난 연줄을 이용해서 쉽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잡을 수 있으며, 공적인 리더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공론장'을 만들고 유지시켜야 한다


집담회에서 쏟아져 나온 이야기를 모아 엮은 책이라 지금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마을만들기에 대한 비판이 자주 터져나옵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장에서는 저자들이 생각하는 마을의 모습을 펼쳐놓습니다. 생산과 소비가 만나는 마을, 정치적의 이슈나 의제로부터 멀어지지 않기, 마을끼리 연대하고 협력하며 체계와 투쟁할 수 있는 마을, 마을의 공공성 담아내기 같은 것들을 이야기 합니다.


마을이라는 그릇에 모든 것을 담아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일상적인 논의의 틀을 유지시켜 나가는 '공론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겁니다. 책을 읽으며 어떤 조직이든 이런 '공론장'이 없다면 그 조직을 살아있는 조직이라고 보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을을 자치와 자립이 가능한 생활권 중심의 지역사회여야 하고, 외부의 도움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아야 하며, 이런 자치와 자립이 가능한 마을들이 힘을 모아야 자본과 체계에 빨려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치와 자립이 마을을 만들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꼭 기억해야 할 구절이 있어 마지막으로 소개합니다. 마을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늘 새겨두어야 할 문장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어느 동네에서, 어떤 집에서 내가 살지는 내가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지만 우리는 이웃을 선택할 수 없어요. 누가 우리 옆집에 이사올지 선택할 수 없는 거지요." (본문 중에서)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다툼이 일어나는 일만 생각해봐도 딱 그렇다. 아래층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마을에서 어떤 일을 도모하는 것이 다른 결사체보다 훨씬 어려운 것은 바로 이웃을 선택할 수 없는 한계가 밑바탕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우연히 이웃으로 살게 된 사람들과 만나서 서로 신뢰를 쌓고 공공성을 회복하고 '공론'을 형성해 나가면서 무언가를 도모할 수 있어야 대안적인 삶을 꿈꿔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활동가들의 집담회를 엮은 책이라 현실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많은 책입니다. 특히 막대한 예산을 받아 전국 곳곳에서 유행하는 마을만들기에 대한 비판은 자주 등장합니다. 각자의 현장 오랜 활동에서 얻은 경험과 통찰은 빛이 납니다. '마을'에서 어떤 일을 꿈꾸는 활동가라면 이 책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보다 더 나은 참고서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 - 10점
권단 외 지음/삶창(삶이보이는창)





728x90

댓글1

  • 유현 2015.02.16 19:09

    뽀로로 뽀통령이 전한다는 아파트 층간소음예방캠페인 사뿐사뿐 콩도 있고,가벼운 발걸음 위층 아래층 모두모두 한마음 기분까지 서로서로 좋아하는 너도좋아 나도좋아 나비처럼 가볍게,뛰지말고 모두함께 걸어보라는 말도 있습니다.
    또 위기탈출 넘버원에서 나오는 아파트 층간소음예방에 도움주는 두꺼운 슬리퍼랑 층간 소음 줄여주는 에어 매트도 전부 다 있으며 앞으로 이사를 갈 때는 반드시 층간소음예방에 도움이 되는 두꺼운 슬리퍼를 구입을 할 것입니다.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