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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시민운동의 희망, 대중노선의 부활에서 찾아야

by 이윤기 2009.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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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운동의 희망은 대중노선의 부활에서 찾아야 한다"며, 평생 대중운동을 실천하며 살았던, 시민운동가 故 황주석 선생을 기억하는 모임이 열립니다. 그를 따르던 후배들과 그가 이 세상에 만들어두고 간, 운동 모형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풀뿌리, 주민자치, 생활공동체 운동에 대한 그의 뜨거운 열정을 기억해내는 자리입니다.


시민운동의 희망, 대중노선의 부활에서 찾아야 한다.

[서평] 시민운동가 황주석이 쓴 <마을이 보인다, 사람이 보인다>


사회적 신뢰와 건강한 뿌리를 만드는 가치 변혁적 소공동체 운동의 지침서 "사람이 보인다. 마을이 보인다."(모심과 살림 연구소. 2005년 10월)

개인적인 관계만 놓고 보자면 나는 이 책을 소개하는 글에 객관성을 담아 쓸만한 사람이 못된다. 저자가 일생을 통하여 '가치변혁적 소공동체'를 일구고 가꾸어온 YMCA운동의 현장 중 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한편 '가치변혁적 소공동체운동'에 대한 과도한(?) 신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필자는 보는 이에 따라서 저자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혹은 잘 모르는 사람이기도 하다. 저자인 황주석의 조직론을 여러 차례 그를 통해 직접 듣기도 하였고 그가 쓴 많은 글을 읽었으며, 그의 실천론에 맞추어 YMCA를 통하여 가치변혁적 소공동체의 확산을 꿈꾸고 실천하기기도 하였다. 

대중노선, 가치변혁적 소공동체 운동을 만나다.

1970년대 후반 저자인 황주석이 이념적, 운동적 한계가 분명한 YMCA를 선택한 이유는 필자가 1992년 대학 졸업과 구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의 붕괴와 함께 맞이한 사회주의운동 이념적 혼란기에 조직적, 이념적, 운동적 한계가 분명한 YMCA를 선택한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나는 필자를 잘 아는 편이다. 저자인 황주석을 배우고 닮으려는 노력을 많이 하였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지만 나는 실상 그에 대하여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자식이 몇 인지 그의 부모가 누구인지 개인 황주석에 대하여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의 아내가 YH 노조의 위원장 이었으며, 부천시의원을 지내고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는 최순영이라는 것 밖에는... 그래서 나는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책을 출판한 '모심과 살림연구소'의 서문에도 나오듯이 "저자의 생각과 실천이 단지 YMCA나 기독교운동의 특수한 사례로만 머물 것이 아니라 여전히 유효한 그 진정성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 자원으로 공유되고 확대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1999년부터 암에 맞서 투병하고 있는 그의 사회운동에 대한 진정성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시민운동의 태동기로부터 다양한 분화와 발전이 이루어진 지금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제기되는 비판은 바로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지적이다. 그런데 30년 이상을 사회운동의 현장에서 지낸 저자는 단 한 번도 대중과 함께하는 원칙을 놓친 적이 없다.

저자가 1980년 마산에서 시작한 '사랑의 Y 형제단' 운동은 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섬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자들의 소공동체운동으로 확산되었으며, 80년대를 거치면서 마산과 창원의 노동현장으로 퍼져나갔다. 마산, 창원지역에서 87년 6월 항쟁과 88년 노동자 대투쟁의 가운데에는 '사랑의 Y 형제단'운동을 통해 훈련된 지도력들이 대거 참여하게 되었다.

그가 있는 곳에는 늘 시민이 있었다.

그가 마산을 떠난 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마산, 창원 지역 노동운동의 많은 활동가들이 아직도 그를 기억하고 있다. 지난 7월 경남도민일보에는 '마산 노동자의 영원한 형제 황주석'이라는 특집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비인강암 이라고 하는 희귀병으로 투병중인 그의 삶을 소개한 특집기사는 아직도 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였다.

1990년대 한국의 지방자치역사에 주민참여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있는 '담배자판기 설치 금지 조례제정운동'은 주부중심의 등대생협운동이 만들어낸 빛나는 성과중의 하나이다. 저자는 주부중심의 등대생협운동을 가치변혁적소공동체의 모델로 삼아 매주 만나서 공동체의식을 함께 나누고 책읽기, 영상활동, 건강활동 등 일상활동을 통해 공동체의 토대를 갖추었다.

그리고 가치변혁적 소공동체운동인 '등대'모임을 기반으로 담배자판기조례제정운동뿐만 아니라 가족회의운동, 미디어일기쓰기, 의정지기단 활동 등을 펼쳤으며 이러한 운동의 모델은 주민참여형 자치운동의 대표적 사례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주민운동의 뿌리를 만드는 탁월한 조직가인 그에게 '주민 없는 운동'은 없었다.

지난 2001년 마산에서 열린 '현단계 시민운동의 점검과 전망' 세미나에서 황주석은 "이슈중심의 시민운동은 주로 반대·폭로·대안제시의 방식으로 언론을 활용함으로써 언론에 의해 성장해왔으며 이미 언론에 의해 그 문제점을 지적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폭로중심의 운동은 네 눈의 티만 강조되며 자아성찰·운동적 영성이 약해 전략적 흥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고 운동의 건강성도 해치게 된다"면서 "끊임없는 이슈 선점 경쟁은 상호연대에 대한 불신과 시민사회의 상처를 낳아 사회와 운동권 모두에게 마이너스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황 국장은 또 "현 시기 시민운동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어느 순간 대중이 사라지고 소수 엘리트가 주도하게 된 것"이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중노선의 부활'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2001년 2월 26일 경남도민일보)

이러한 맥락에서 책의 서문에 소개된 저자의 운동론에 대한 평가는 더욱 주목 할만하다.

"우리가 저자 황주석의 조직론과 그 실천에 주목하는 것은 그것이 희망의 근거, 즉 사회적 신뢰와 공동체라는 시민사회의 건강한 뿌리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전인적 성장과 공동체적 가치를 일상적 삶의 기반으로 둔 기초공동체를 통해 구현하려는 그의 이론과 실천은 철저하게 사회운동의 뿌리에 대한 것입니다."- 마을이 보인다 사람이 보인다 서문 중에서

최근 전국적으로 유행하는 마을 만들기 운동에 대하여 '만들기'보다 '이루기'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이루기'라는 말은 주체와 대상이 하나가 되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의미가 강하다는 것이다. 이런 세심함은 책의 여러 곳에서 그대로 묻어난다. 조직운동가로서 저자의 노하우가 고스란히 소개되어 있는 것이다.

공동체적 가치를 일상적 삶의 기반으로

공개강좌를 여는 시점부터 기초공동체모임인 등대를 조직하는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공개강좌의 강사교섭을 잘 할 수 있는 방법, 조직을 이끌어가는 힘이 되는 상징을 세우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다양한 자신의 모든 경험을 털어놓고 있다.

기초공동체를 민주적 그물형 대중조직으로 엮어가기 위해서는 작은 공동체 모임 속에 생식세포와 같은 완전성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포의 유전인자가 생명체의 형식과 내용을 결정하는 것과 같이 조직이 지향하는 가치를 담고 있는 유전인자도 그 조직의 틀과 활동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완전성을 담은 기초공동체가 그물처럼 퍼져나가는 사회운동 대중조직의 현실가능성을 입증해보여 주고 있다.

황주석이 말하는 소공동체는 현실을 거부하고 산속으로 들어가서 그들만의 꿈을 실현하는 외톨이 같은 공동체가 아니다. 가치변혁적 공동체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는 도시 속 공동체를 말한다. 주거와 생활의 공간이 다르지만 가치 있는 삶을 지향하는 꿈과 희망을 같이하는 공동체를 말한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곳곳에서 '희망의 공동체'를 일구어 나갈 것을 제안하며 이러한 소공동체를 하나의 나라로 바라본다. "전인성, 역사성, 사회성, 공공성, 연대성, 분체성, 방어성, 자율성"을 갖춘 나라를 세우라고 설득하고 있다.

많은 시민운동의 현장활동가들이 전문성을 갖추기 위하여 앞 다투어 대학원 진학을 하는 등 답답한 시민운동의 돌파구를 찾아 나설 때, 변혁적 소공동체운동의 현장에서 30년을 보내온 선배가 전문성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던지는 해결책은 기본기를 잘 다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전문성은 이론이 아니라 이를 실천하는 힘입니다. 우리는 사상가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기서 사상가적 삶이란 '나 이렇게 살 거야'라는 자각과 그에 맞는 사상을 말 한다. 이러한 사상을 실천하며 살라는 것이다.

운동의 전문성 즉 프로패셔널에 대한 그의 정의는 "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능력도 있지만, 운동 전체를 위해서 자기 한계를 정하는 사람"이라는 주장이다. 한계가 있는 사람만이 운동의 자기영역을 분명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성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하는 '힘'

세상을 모두 책임지는 듯한 운동은 결국 성공하지도 못하고 세상 모든 이슈를 다 감당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희망의 인프라를 만드는 조직운동은 첨예한 대립의 전선에 서 있지 않기 때문에 이슈를 세울 때에 자기 한계를 분명히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 차례 김남주 시인의 '전사1'라는 시가 생각났다. 여기서 '전사'는 때로는 저자인 황주석이기도 하였고 때로는 그가 참여하였던 가치변혁적 소공동체인 '사랑의 Y 노동형제단'이기도 하고 '등대생협'의 촛불(주부)이기도 하였다.

일상생활에서 그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이름 빛내지 않았고 모양 꾸며
얼굴 내밀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시간엄수가 규율엄수의 초보임을 알고
일분 일초를 어기지 않았다
(중략)

그리고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먼저 질서와 체계를 세워
침착 기민하게 처리해 나갔으며
꿈속에서도 모두의 미래를 위해
투사적 검토로 전략과 전술을 걱정했다

이윽고 공격의 때는 와
진격의 나팔소리 드높아지고
그가 무장하고 일어서면
바위로 험한 산과 같았다
적을 향한 증오의 화살은
독수리의 발톱과 사자의 이빨을 닮았다
그리고 하나의 전투가 끝나면
또 다른 전투의 준비에 착수했으며
그때마다 그는 혁명가로서 자기 자신을 잊은 적이 없었다.

책의 발문에서 오재식(전 월드비젼 코리아 회장)은 그를 '희망의 인프라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이상익(한국도록공사 감사)은 그를 '개척자'라고 하였다. 책 속지에 나와 있는 저자 소개 글처럼 "개인의 전인적 성장을 토대로 한 가치변혁의 기초공동체를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건강한 사회변화를 이울 수 있다는 것을 바닥에서 묵묵히 실천해 온 지은이의 삶과 생각이 YMCA운동을 넘어 사회의 보편적 자원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해본다." 


※ 이 글은 2005년 12월 26일에 '오마이뉴스'에 쓴 글 입니다. 당시 황주석 선생은 비인강 암으로 투병중 이었습니다. 2007년 2월 14일 영면한 황주석 선생 2주기, 서울에서 열리는 故 황주석 선배를 기억하는 모임에 함께 참여하지 못하는 아쉬움 마음을 담아 블로그를 통해 이 글을 다시 포스팅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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