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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된 기독교?

[서평] 김은국이 쓴 소설 순교자

 

'KTX를 타고 가는 출장길에 김은국의 소설 <순교자>를 읽었다'고 페이스북에 쓴 글을 보고 곧바로 주문한 책입니다. 페이스북에 글을 쓴이가 늘 닮고 싶어하는 선배였던지라 책을 받자마자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단숨에 읽어낼 수 있는 가벼운 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웬만한 소설들은 단숨에 읽어치우는데 <순교자>는 그리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습니다. 긴 호흡이 필요하더군요.

 

<순교자>라는 제목 자체도 무거웠습니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남쪽 군인과 북쪽 군인이 평양을 번갈아 점령했을 때 일어난 '목사'들에 대한 고문, 학살 사건을 예상치 못했던 시각으로 다룬 무거운 문학 작품이었습니다.

 

소설 읽기를 즐기지 않는 편인데다가, '소설=허구'라는 등식이 깊이 새겨져 있다 보니 당장 눈앞의 현실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는 책, 당장 필요한 정보가 담긴 책, 아주 직설적으로 삶을 바꾸라고 충고하는 책에 늘 순위가 뒤로 밀리는 탓도 있었을 것입니다.

 

절반 넘게 읽다가 책상 위에 얹어둔 책을 1년여 만에 다시 읽기 시작해 겨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냈습니다. 1년 전 읽다가 책갈피로 표시해 둔 부분부터 다시 읽다보니 여러 차례 책장을 앞으로 넘겨 기억나지 않는 대목을 다시 확인하며 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종교, 권력 그리고 이데올로기


소설 <순교자>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화자는 이 대위입니다. 1950년 6월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군에 입대한 이 대위는 대학 강사를 지낸 이력 때문에 그해 10월 육군 특무대로 전속돼 평양에 파견됩니다.

 

평양에 파견된 이 대위는 육군 본부 파견대 정보국장인 장 대령의 지휘를 받는데, 전쟁 발발 직전 12명의 목사가 평양에서 순교한 사건을 조사하게 됩니다.

 

순교자 중에는 이 대위의 친구인 박 대위의 부친도 포함돼 있었는데, 사건을 조사 과정에서 순교자들의 신앙과 순교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의문에 봉착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대위의 상급자인 장 대령은 공산당에게 희생 당한 12명의 순교자들을 추모하고 기독교인과 평양 시민에게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한 대규모 추모식을 조직하라는 '명령'을 합니다.

 

처음 14명의 목사가 체포되어 12명이 순교했지만, 두 사람의 목사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 대위는 두 사람을 만나 실체적 진실을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12명의 순교자가 어떻게 죽었는지, 살아 남은 2명은 어떻게 살 수 있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오랫동안 아버지와 의절하고 지냈던 박 대위는 자신의 아버지가 순교자 중 1명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동요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습니다. 자신이 보기에 광신자였던 아버지의 순교를 당연한 신앙적 행동이었던 것처럼 받아들입니다. 아들 역시 아버지처럼 인간미가 결여된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신 목사가 보낸 편지를 통해 총살 직전 박 목사의 행적이 알려지면서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화해가 이뤄집니다. 박 목사가 아들을 지극히 사랑했다는 사실과 아들의 역사학과 자신의 신앙이 만나는 지점에 대하여 깊은 고민과 통찰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역사학자가 되려면 누구든 인간 역사의 특수한 사건들을 일단 초월해서 보편적인 것을 찾아봐야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인류 역사에 언제간 반드시 종말이 올 것인가 아닌가 하는 훨씬 큰 문제에 부딪힐 게 아닌가. 그러면 그는 역사가로서가 아니라 그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더 크고 엄청난 또 하나의 문제에 직면케 돼." - 본문 중에서

 

아울러 박 목사는 총살을 앞둔 마지막 1분간의 기도 시간에 "난 기도할 수 없어"라는 말을 남기 죽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박 목사는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 신에게 기대지 않은 채 절대 고독 속에 죽었다는 것입니다.

 

순교 현장서 살아남은 목사... 다행인가? 불행인가?

 

한편, 박 목사의 신앙심에 감동하고 따르던 젊은 한 목사는 총살을 당하기 직전에 기도를 거부한 박 목사의 행동에 충격을 받아 사형을 면하지만, 미치광이 같은 행동을 보이다가 요절하게 됩니다. 북한군 정 소좌가 틀어놓은 실체적 진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가 미쳐버렸기 때문이야. 돌아버린 거지. 미친개처럼 말야. 난 야만은 아니거든. 미친놈을 쏘지는 않아." - 본문 중에서

 

북한군에게 체포됐다가 살아남은 신 목사에 대해서는 신도들로부터 배신자라는 질타가 쏟아졌지만, 북한군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다른 목사들은 모두 비굴하게 죽었으나 신 목사만 당당하게 공산당에 저항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오히려 죽임을 당한 목사들이 배반자였다는 사실도 드러납니다. 

 

"그자는 유일하게 내게 대항했던 자였어. 난 당당하게 싸우는 걸 좋아해. 그자는 용기가 있었어. 내 얼굴에 침을 뱉을 만큼 배짱이 있는 친구는 그자 하나뿐이었어. 난 내게 침을 뱉을 수 있는 그자를 존경해. 그래서 그자만은 쏘지 않았던 거야. 사실은 쏘아버렸어야 하는 건데." - 본문 중에서

 

다른 12명의 목사가 죽음에 임박한 순간에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도 정 소좌의 입을 통해 드러납니다.

 

"그 배반자들은 빨갱이 들에게 매달려 울면서 살려달라고 애걸했다는 거야. 자기들은 공산당이 시킨대로 예배 때마다 이렇게 하고 저렇게 했다. 당신들이 약속한 흥정을 잊었는가, 라면서 말일세. 배반자가 누구누군지 다른 목사들이 알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어." - 본문 중에서

 

예컨대 신목사는 "자기가 거짓말을 함으로써 무언가 옳은 일을 했다고 믿고 있고, 지금은 굳게 입을 다뭄으로써 역시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지요. 바로 이런 소설 속 상황을 통해 저자는 독자들이 신앙의 참된 의미에 대해 고민하도록 합니다. 아울러 동시에 정치 혹은 이념 투쟁에 신앙이 어떻게 이용당하는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신 목사는 시종 신앙인으로서의 겸허하고 절제 있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신도들을 버려두고 피난 가지 않으며, 병든 몸을 이끌고도 절망에 빠진 노약자들을 돌보는 참된 신앙인의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극심한 절망과 고통에도 굴하지 않고 약한 자, 힘 없는 자들과 함께 하면서 신앙의 의미를 깨닫고 실천하는 숭고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입니다.

 

비겁하게 죽은 자는 순교자?, 당당하게 살아 남은자는 배신자?

 

한편 소설 전체를 끌어가는 화자인 이 대위는 신이 침묵하는 암울한 전쟁 상황임에도 인본주의를 추구하는 지식인이자 지성인의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소설 <순교자>를 쓴 저자 김은국은 독자들에게 과연 누가 진정한 순교자인가 혹은 누가 신을 배반하였는가 하는 질문을 반복해서 던집니다.

 

예컨대 공산당에게 굴복하고 비겁하게 목숨을 구걸하다 죽임을 당한 자들은 순교자로 추앙받고 죽기를 각오하고 공산당에 당당하게 맞서다가 뜻 밖에 살아 남은 자들은 배신자로 오해 받는 상황을 펼쳐 놓고 과연 누가 진정한 순교자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아울러 참혹한 전쟁 앞에서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인간의 양심보다 신이 더 우월한가? 하는 고뇌 깊은 의문을 제기합니다.

 

앞서 소개했듯이 <순교자>는 한국계 최초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재미 작가 김은국의 대표작입니다. 영어로 먼저 쓴 <순교자>의 원제목은 'The Martyred'(George Braziier Inc., N.Y.C., 1964)이며, 뒤늦게 우리말로로도 번역됐습니다.

 

아울러 세계 10여 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으며 국내에서도 영화와 연극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대중적으로도 인기를 모았기 때문에 미 전역에서 20주 연속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으며 '내셔널 북 어워드' 최종심에도 올랐다고 합니다.

 

<순교자>는 한국 전쟁을 다룬 다른 작품들과 달리 남북 간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다루기보다 신앙적인 구원과 인간이 당하는 고통의 문제 그리고 양심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서 한국전쟁 기간 동안에 일어난 남북 간의 대립 과정에서 미처 상상해보지 못했던 신앙과 양심의 문제에 맞닥드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 평론가와 유명 작가들이 남긴 <순교자>에 대한 찬사를 무시한다 쳐도 문학 작품이 주는 '힘'과 묵직한 '무게감'이 무엇인지 경험해 볼 수 있는 훌륭한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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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성의 전당 2018.09.12 19:4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신에 대한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 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아래는 책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

    수천 년간 어느 누구도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과 질문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어떤 존재라 할지라도 ‘존재’에게는 반드시 ‘시작’이 있었으며, 그러한 태생적 한계는 반드시 ‘끝’으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과 의문은, ‘신’을 추측하고 상상하여 존재적인 측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추측과 상상으로 만들어진 ‘신’에 대해서 묻고 있다면, 저의 견해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겠습니다.


    (질문) 그렇다면 ‘신’을 부정하시는 겁니까?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은 ‘존재’하지만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듭 말씀 드리지만 어떤 존재라 할지라도 ‘존재’에게는 반드시 ‘시작’이 있었으며, 그러한 태생적 한계는 반드시 ‘끝’으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시작이 시작되기 이전에 ‘아무것도 아닌 무엇’, 즉 존재를 존재하게 하는 알 수 없는 ‘무엇’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무엇’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가능케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은 아무것도 아닌 무엇으로서, 존재하지만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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