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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교육, 대안교육

소설책으로 공부했는데...도쿄대 합격자수 1위

by 이윤기 2015.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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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하시모토 다케시가 쓴 <슬로리딩>


<슬로리딩>은 2013년 101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한 하시모도 다케시 선생이 100세가 되던 해인 2012년에 쓴 책입니다. 그는 생애 절반인 50년을 효고현에 있는 사립 나다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지냈는데, 이 학교는 일본 최고의 사립 학교이자 입시 명문 학교라고 합니다.


입시교육과 서열화를 반대하는 사람으로서 '입시 명문 학교'와 그 교육 밥업을 소개하는 것이 찜찜하기도 했습니다만, 주입식 암기교육으로 입시 명문 학교를 만들려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 책을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하시모토 선생님은 1934년에 당시 후기학교였던 나다중학교에 부임하여 나카 간스케가 쓴 <은수저>라는 소설 책을 중학교 3년 동안 읽게 하는 '전대미문'의 수업을 시작하였는데, 이 수업의 결과 대학진학에 놀라운 성과를 냈다고 합니다.


"1962년에는 은수저 2기생들이 나다학교 최초로 교토대 합격자수 일본 내 1위를, 1968년에는 사립고 최초로 도쿄대 합격자수 일본 내 1위를 기록했다." - 본문 중에서


우리나라 고등학교들과 입시학원들이 내건 <서울대 합격 OO명> 같은 광고 현수막이 떠올라 손발이 오그라듭니다만, 지방의 후기학교였던 나다교에서 이런 성과를 기록하였다는 것은 어쨌든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소설책으로 공부했는데...도쿄대 합격자 수 1위?


도쿄대 합격자수 일본 내 1위 같은 겉으로 드러난 성과 말고도 그의 은수저 학습방법에서 뭔가 배울만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고안한 은수저 수업법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예를 들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연놀이나, 100가지 일본 시를 카드로 만들어 맞추는 놀이를 실제로 수업 시간에 해 보는 수업법이죠. 이렇게 '샛길'로 빠지는 사이, 아이들이 배우는 즐거움과 재미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고안해 낸 수업법입니다." - 본문 중에서 


바로 이 수업이 <은사의 조건> <기적의 교실> 같은 책과 여러 매체 통해 '슬로리딩'으로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자 역시 나다교는 '죽어라 공부만 시키는 주입식 교육의 최전방'은 아니었다고 강조합니다.


다만, 이 학교는 한 번 교과 담임을 맡으면 중학교와 고등학교 6년 동안 같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에 교사의 재량이 그만큼 넓었다는 것이 전대미문의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을 뿐이라고 합니다.


이 책의 첫장은 100세를 앞둔 2011년 6월, 27년 만에 나다교의 교단에 서서 토요강좌라는 특별 수업을 진행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2001년 6월 당시 나다중학교 학생들에게 옛날처럼 <은수저>를 교재로 수업을 했다고 합니다.


98세의 늙은 국어교사는 아이들에게 놀다와 배우다라는 두 단어에 대한 생각을 묻습니다. 아이들의 대답은 단순합니다. "놀다는 좋아하지만 배우다는 싫어합니다"


놀다는 좋아하고 배우다는 싫어한다는 것은 아이들이 배우는 즐거움을 깨우치지 못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단순히 "그렇게 말하지 말고 논다는 기분으로 배우면 되지"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한 답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깨우쳐주는 '슬로리딩' 수업을 실현해 보여줍니다. 아이들에게 놀다(아소부)와 배우다(마나부)라는 단어를 보고 생각나는 것이 뭐가 있는지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자 아이 하나가 평범한 답을 내놓습니다.


"둘 다 히라가나 세 글자로 마지막에 '부'가 붙습니다"라고 답하는데, 그는 이 때를 놓치지 않고 "훌륭한 지적이야! 정말 그렇구나!"하고 칭찬하며 다소 과장된 반응을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문을 품는 일에서부터 생각의 폭이 크게 확장된다"고 강조합니다.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국어수업...당연한 것도 다시 생각해보라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질문과 대답으로부터 생각의 확장이 일어난다는 것이지요. 예컨대 '아소산' '아소해'처럼 '아소'가 붙은 산 이름 바다 이름이 있는데, 부가 붙으면 놀다가 되고, 마나에도 부가 붙으면 배우다가 되며, 부가 붙는 단어를 떠올려보면 부 동사 컬렉션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곧장 '부'가 들어가는 동사를 세기 시작하고, 어떤 아이들은 일본어 50음순을 따라 세면서 동사를 찾아냅니다. 하시모토 선생님은 일본어 50음순을 암기하는 아이들에게 반대 순서로 암기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놀이와 배움을 섞어 놓아 흥미를 북돋움니다.




저자는 정말 중요한 것은 배우는 과정이 재미있어야 하고, 아이들의 흥미를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어른들이 놀이의 요소를 '제대로' 던져주기만 하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것을 배워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독특한 수업은 점점 더 확장됩니다. 그는 자주 시험을 치렀지만 점수로 경쟁시키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수업시간에 배웠던 내용으로 자주 시험을 쳤지만 학생들끼리 답안을 교환해 채점하게 하고, 점수에 대해서 채점자와 이야기 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생각보자 점수가 낮다고 느껴진다면 그 이유에 대해 채점자와 이야기를 해 보세요. 너무 점수가 빡빡한 거 아니냐고." - 본문 중에서


이 부분에 참 공감이 갔습니다. 점수와 채점의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법, 서로 다르게 느끼는 것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잘 쓰고 못 쓰고는 없다, 쓰기만 하면 모두 만점


이 시험은 점수가 몇점이든 모두 만점이었고, 성적에 반영되지도 않았다고 하더군요. 한 달에 한 권씩 과제 도서를 선정해서 줄거리와 독후감을 쓰는 시험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어떤 애기든 쓰기만 하면 만점"으로 처리하였고, 암기를 통해서 답할 수 있는 출제를 하지 않고 생각을 확장해야 하는 출제를 하였기 때문에 암기식 시험공부에만 매달리지 않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벼락치기 시험 경험을 회고하면서 "금방 도움이 되는 것은 금방 쓸모가 없어진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국어교사인 그는 국어 실력이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문과 이과를 가릴 것 없이 모든 과목에서 설명이나 지문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생활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도 국어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국어실력 = 생활능력인 것입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자신의 입장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는 인관관계의 기본적이고 중요한 국면에서 국어실력과 독해력은 원하든 원치 않든 시험을 받게 됩니다." - 본문 중에서


그가 은수저 수업을 시작하게 된 것도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이런 사실을 깨닫고 느낄 수 있게 돕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합니다. 아울러 학생들의 마음에 평생 남을 수 있는 살아있는 수업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시작하였다고 하더군요.


"저는 교과서를 완전히 버리기로 했습니다. 소설을 읽으면 폭넓은 지식을 쌓을 수 있습니다. 지식이 쌓여가는 즐거움을 통해 국어에 대한 흥미를 되살릴 수 있었습니다." - 본문 중에서


그가 은수저를 선택한 것은 여러 가지 폭넓은 지식을 얻을 수 있고, 그 과정을 통해 국어과목에 대한 학문적 흥미를 높일 수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랍니다. 그의 은수저 학습노트를 보면 <슬로리딩>의 핵심은 샛길로 빠지기입니다.


"예를 들어 <은수저>에 쥐 계산법이 등장하면 해설문을 1월에 암컷과 수컷 2마리가 12마리의 새끼를 낳고, 2월에 어미와 새끼 모두 12마리씩 새끼를 낳으면, 12월에 쥐의 수는 276억 8257만 4402마리가 된다"는 식으로 단어 자체의 의미를 굳이 설명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요" - 본문 중에서


예컨대 은수저 수업은 수학 수업으로도 확장되며 소설 내용에 '막과자'가 등장하면 막과자를 직접 먹어보는 식으로 아이들이 재미있어할 만한 '샛길'을 많이 만들어 수업을 확장하였다는 것입니다.


샛길이 많을수록 인생도 풍요롭다


그는 수업 뿐만아니라 인생에서도 샛길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샛길이 많을수록 인생이 풍요로워지고 지식의 폭도 넓어진다는 것이지요" 예컨대 앞만보고 달려가는 인생은 단조롭고 재미 없는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샛길이라는 것은 결국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를 말합니다. 이 샛길은 실로 일상생활의 다양한 부분에 감춰져 있어요. 중요한 것은 그 점을 깨닫느냐 못 깨닫느냐, 그것 뿐입니다." - 본문 중에서


말하자면 국어수업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도 <슬로리딩>하는 방식으로 살아야 삶이 풍요롭게 된다는 것이지요. 무엇이든 의문을 품고 자기 나름대로 주체적인 사고를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가 고안한 <은수저> 샛길 수업 중에는 시를 암송하는 수업도 있고 학생들에게 시를 짓게 하는 수업도 있더군요. 그가 아이들의 시를 평가하는 방식은 남달랐습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시를 잘 지었는지 아닌지는 따지지 않겠다. 글쓴이의 노력자체를 평가할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시의 완성도는 일절 따지지 않았습니다.......또한 한 편밖에 쓰지 못한 아이도, 10편 이상 완성한 아이도 점수 차이는 두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한 편밖에 못 썼지만 게으름을 피웠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시를 쓰는 동안 더 많이 고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 본문 중에서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남들이 시 10편을 쓸 동안 1편 밖에 쓰지 못한 아이가 격었을지도 모를 힘듦을 이해하는 교사였기 때문에 그의 <은수저> 수업이 성공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좋은 문장을 위해서는 많이 써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백론이 불여일작'이라고 말합니다.


"쓰고 쓰고 또 쓰면서 쓴다는 행위에 대한 절대적 반감을 제거했을 때 비로소 문장 작법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되는 것이지요." - 본문 중에서


잘 쓰고 못 쓰는 것을 따지지 말고 가능한 많이 쓰고 가급적 손으로 쓰는 것이 좋다고 강조합니다. 이해하지 못해도 읽어보고, 해석하려고 노력하기 전에 읽는 것을 즐기라고도 충고합니다.


시 10편 쓴 아이보다 1편 밖에 못쓴 아이가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국어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목에는 영어교육에 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일본도 우리나라 만큼 영어 교육 열풍이 있었는지, "영어를 배우기 전에 국어 실력을 키우라"고 강조합니다. 자신의 경험으로봐도 국어 성적이 좋은 학생이 영어성적도 좋았다고 합니다.


한편 이 책에는 100세를 앞둔 늙은 교사의 지혜가 담긴 교사론도 나옵니다. 그는 교사로서 자신을 연마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교사의 일이란 자신의 인간성을 학생들과 직접 부딪치고 공유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교사가 교사로서 자기 자신을 열심히 연마해 나가면 그 진심은 반드시 아이들의 가슴속에 전달됩니다." 


또 자신이 만약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공립학교 교사로 갔다면 <은수저>수업과 같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수업을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고백 합니다. 예컨대 입학과 취직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인생에서 어떤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때가 되지 않으면 알수 없는 법"이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99세에 <슬로리딩>을 쓰면서 두 가지 인생 목표를 밝힙니다. 하나는 남은 생애데 대한 목표인데 100세를 넘기는 것은 물론이고 108세 차수, 111세 황수를 누리고 120세 대환력을 목표로 살겠다고 하였습니다만 안타깝게도 2년 후인 10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른 목표는 다시 태어나도 은수저 수업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었습니다. 그는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도(혹은 다른 누구라도) 은수저 수업을 잘 할 수 있도록 <은수저 연구노트>를 새로 만들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에게 배움의 즐거움은 100세를 넘어서도 계속되었더군요.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대로 해냈다"는 의미에서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자신의 삶을 평가하였습니다. 외길로 쭉 가는 것이 아니라 수 많은 샛길이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 말이 오랫 동안 여운으로 남는 멋진 책입니다.



슬로리딩 - 10점
하시모토 다케시 지음, 장민주 옮김/지식트리(조선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