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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여행

수상한 부부의 유럽 3500km 자전거 여행

by 이윤기 2015.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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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최광철이 쓴 <집시 부부의 수상한 여행>


2014년 여름, 오스트리아에서 영국까지 유럽 5개국 3500km를 석 달동안 캠핑을 하며 자전거로 여행. 2015년 여름, 유럽 여행에 의미를 더하여 광복 70주년을 기념하며 실크로드의 종착점인 중국 시안을 출발하여 일본 도쿄까지 4000km 동북아 평화 순례.


지난 6월 22일 원주에서 저자 최광철 선생을 만나 그가 유럽을 여행하면서 경험한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하였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집시 부부의 수상한 여행>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였습니다. 책을 받아들고 원주에서 대구를 거쳐 마산으로 내려오는 동안 그의 여행기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수상한 여행>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은퇴한 부부가 함께 오스트리아에서 영국까지 유럽 5개국 3500km를 석 달동안 캠핑을 하며 자전거로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책과 인터넷으로 찾아 볼 수 있는 유럽 여행기는 더러 있습니다만, 이 부부의 여행기는 몇 가지 부분에서 확실하게 다릅니다.


첫째 나이든 부부가 함께 석 달 동안 유럽 횡단 여행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닙니다. 일주일 혹은 열흘이나 보름쯤 패키지 여행을 다녀오는 것은 더러 봤습니다만, 석 달 동안 장기 여행을 서로를 잘 아는 나이든 부부가 함께 하는 것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라더군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로를 잘 아는 나이든 부부'라는 겁니다. 서로를 잘 아는 나이든 친구도 쉽지 않다더군요.


둘째 나이든 부부가 자전거를 타고 유럽을 석달이나 여행하는 것도 흔한 일이 아닙니다. 부부가 모두 자전거를 타는 일도 흔치 않고, 자전거를 같이 탄다고 해도 3500km나 되는 장거리 여행에 나서는 것도 쉬은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셋째 자전거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하는 것도 흔하지 않지만 캠핑까지 하면서 여행하는 것은 더욱 흔한 일이 아닙니다. 자전거를 타고 장기간 여행하는 하면서 캠핑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으로는 7년 반 동안 87개국 9만 5천킬로미터를 혼자서 여행하고 <가 보기 전에 죽지 마라>를 쓴 이시다 유스케 뿐입니다.


젊은 부부 혹은 부부가 될 가능성이 높은 커플이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다니는 것은 본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젊은 부부도 아니고 나이든 은퇴 부부가 자전거를 타고 캠핑까지 하면서 여행하는 일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더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10년 혹은 15년 후에 내 모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강하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은퇴 부부 자전거 타고 캠핑하며 90일간 유럽 3500km 횡단


저자인 최광철 선생은 원주시 부시장을 끝으로 38년 동안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퇴임하였습니다. 퇴임 하자마자 곧장 자전거를 타고 유럽 5개국 3500km 횡단 여행에 나섰습니다. 2014년 6월 30일자로 퇴임하고 7월 16일 오스트리아 빈으로 출국하였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미 저질러진 일이고, 돌이킬 수 없는 현실로 굳어져 버렸다. 불현 듯 나도 모르게 '계획을 원점으로 되돌릴 만한 명분은 없을까? 아니면 출발 일자를 무기한으로 늦출 만한 구실은? 하고 궁리에 빠지기도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대단한 용기'라고 운을 떼고는 걱정스런 조언을 늘어놓으니 어쩐지 외롭고 우울하다" - 본문 중에서


젊은 시절부터 해외로 배낭여행을 다니던 여행 마니아도 아니었고, 자전거 경력도 고작 10년에 불과하였더군요. 국내에서 몇 차례 장거리 여행을 경험하기는 하였지만 캠핑도 그다지 익숙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책을 읽다보니 출발 할 때까지 유럽 자전거 여행 코스도 정확히 확정하지 않았더군요. 그런 때문인지 여행계획을 세워놓고 준비하다가 두려운 마음이 들어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중간에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1월에 미리 비행기표를 사두는 배수진을 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유럽 여행은 자전거 세계 일주를 위한 첫 걸음이기도 하더군요. 지구 한 바퀴 4만km, 세계 일주를 꿈꾸는 그는 비교적 자전거 타기에 쉬운 유럽에서 시작하여 올해는 동북아 여행을 하고 앞으로 미국을 비롯한 남북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대륙으로 이어지는 세계 일주 여행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그가 오스트리아 빈을 출발하여 영국의 대서양 연안까지 3500km 코스를 잡은데는 나름대로의 몇 가지 원칙이 있었더군요.


"유럽에도 수 많은 자전거 길이 있다. 그 중에서 한 개의 노선만을 선택해야 하므로 남들이 좀처럼 갈 수 없고, 오랜 역사와 문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루트로 가닥을 잡았다." - 본문 중에서


유럽 여행 서적과 인터넷으로 수십번 이상 유럽의 자전거 길을 헤매다닌 끝에 그가 정한 여행코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발해 독일의 로만틱 가도와 마인 강, 라인 강, 모젤 강을 거슬러 오른다. 그다음 룩셈부르크를 경유해 프랑스로 들어가 도버 해협을 건넌 영국 서쪽 대서양까지 횡단하는 루트다." - 본문 중에서


이 코스의 거리가 대략 3500km, 서울과 부산을 여덟 번 가는 거리이며, 쉬는 날을 제외하고 하루 50km 석달을 달려야 하는 코스입니다. 아울러 여행기간을 석달로 정한 것은 '솅겐 조약에 따라 90일 이내에서 자유롭게 국경을 이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서울과 부산을 여덟 번 가는 거리... 90일 동안 자전거로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여행에서 가장 무모했던 것은 숙박 예약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여행에서 여러 가지 아찔한 일들이 벌어지거나 혹은 예기치 못한 호의와 친절을 베풀어주는 사람들을 만난 것도 사실은 숙박 예약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이야기 때문에 여행기가 더 흥미로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약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자전거 여행의 특성 때문입니다. 자전거가 고장이 난다든지, 펑크가 난다든지 혹은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에 예약해놓은 숙소에 제날짜에 도착하지 못하는 일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고, 그럴 경우 다음날, 그 다음날 예약도 모두 줄줄이 변경하거나 취소해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간 무모해 보이는 무작정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었더군요.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그 때문에 생긴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독자들을 긴장하게 만들기도 하고, 미소짓게 만들기도 하며 저런 행운을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부러운 마음도 생기게도 합니다.


독자들에게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은 이들 부부가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도 아니었고, 독일어나 불어를 하는 사람들과는 손짓 발짓으로 소통해야 하는 실력으로 석 달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왔다는 것입니다.


또 국내에서는 유럽 자전거 지도책 조차 구입하지 못하였으며, 구글 지도를 살펴보며 코스를 계획하였으며, 오스트리아 빈을 출발하여 첫 번째 캠핑장 조차 예약하지 않은 채 출발하였다는 것도 비슷한 여행을 꿈꾸는 독자들에게 위로가 되는 일들입니다.


이들부부가 출발하는 모습을 한 번 볼까요? 산악 자전거 두 대에 각각 여섯 개씩의 가방을 주렁주렁 메달았습니다. 앞뒤 바퀴와 핸들바, 뒷 바퀴 위쪽에 거치대를 부착하여 여섯 개씩의 가방을 메달았는데, 자전거를 빼고 각자 25kg의 짐을 싣고 달린 것입니다.


25kg이면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 한 명을 늘 태우고 다닌 것과 같은 것이지요. 메트와 침낭 그리고 텐트, 코펠 등 캠핑장비를 다 챙겼으니 아무리 줄였다고 해도 이 정도 무게가 나가는 것은 당연하지요. 막상 유럽에 도착하여 여행을 다닐 때는 현지에서 구입한 식료품 등을 메달고 다녔을테니 출국 때보다 훨씬 더 무거운 짐을 싣고 다녔을 것이 분명합니다.


처음엔 고작 하루 50km? 라고 생각하였지만, 자전거에 주렁주렁 메달린 가방과 짐의 무게를 생각해보니 '고작'이라는 단어가 쏙 들어갔습니다. 매일매일 50km를 쉬지 않고 달린 것이 용하다 싶더군요.




위기의 순간에 늘 도움이 손길이 찾아왔다


그들 부부가 여행을 떠나며 새로 만든 명함에 'Bike Bohemian'이라고 새긴 것도 충분히 이해 할 만합니다. "잠은 캠핑장에서 자고, 밥은 직접 해 먹고, 예약은 못하고, 세부적인 코스는 정해지지 않았"으니 집시 생활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인터넷 지도를 활용해 길을 찾아다닐 계획으로 여행 출발 전에 해외 인터넷 무제한 이용 서비스를 신청했지만, 빈에 도착한 첫날 인터넷 서비스를 개통하는 것부터 난관에 부딪히더군요.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에서 한국인 젊은이의 도움을 받아 겨우 개통에 성공하지만, 핫스팟 기능도 이날 처음 익혔다고 하더군요.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한 다음날 숙소에서 한 시간 이상 달려 도나우강을 찾아간 뒤 강변에 있는 '유로벨로' 자전거 길을 찾아냅니다. 일상을 벗어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고 조금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 있어야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90일 간의 여행동안 적지 않은 모험이 다가옵니다. 출발 첫날부터 자전거가 고장납니다. 출발전 국내에서 자전거를 점검하고 떠났을 텐데 빈을 출발한지 한 시간쯤 되어 변속기가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 겁니다. 어렵게 어렵게 정비센터를 찾아가서 수리를 마쳤는데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난감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무리한 운행은 삼가시고...기어 줄도 교환하고, 늘어진 체인도 조정하고, 비틀어진 기어 변속기도 제 위치를 잡았습니다." - 본문 중에서


3500km 여행을 출발한 지 1시간 만에 수리센터에 가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난감할까요? 하지만 집시 부부의 여행과 모험은 시작일 뿐입니다. 여행의 중요한 고비고비마다 자전거가 고장나는 불운이 닥치기 때문입니다.


"길을 잘못 들어 고속도로로 들어가는 바람에 혼쭐이 나기도 했고, 덩컹거리는 운하 길, 풀밭, 자갈길을 며칠씩 달리기도 했다. 또 펑크가 여섯 번 나고, 스탠드와 짐받이가 부러지고, 브레이크도 고장 났다." - 본문 중에서


지도를 보고 어렵게 찾아 간 캠핑장이 만원이라 한 밤중에 지친 몸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른 캠핑장을 찾아 다니기도 하고, 새벽까지 춥고 외진 숲속을 헤매다니기도 합니다. 캠핑장을 찾지 못해 어렵게 어렵게 찾아간 호텔에서는 이유없이 숙박을 거절 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난감한 일만 경험하지는 않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두 번이나 예정에 없던 민박을 하게 됩니다. 도흐문으로 가는 길에 있는 무바즈 마을에서 마르틴 가족에게 빈방과 음식을 대법 받기도 하고, 에스블리에서는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난 신혼부부가 침실과 집을 통째로 빌려주는 행운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시작이 반 이라는데... 출발부터 자전거 고장은 뭐야?


지도를 찾는 여행자를 목적지까지 안내 해주는 경찰관, 자동차로 복잡한 길을 안내 해준 어르신, 가던 길을 멈추고 여행자의 길을 찾아주고 떠난 자전거 타는 젊은이, 정원에 텐트를 치게하고 음식을 대접해준 아주머니... 그리고 자전거 길에서 만난 수 많은 여행자들이 집시부부의 여행을 응원해준 사람들입니다.


책을 읽다보니 정말이지 "위기의 순간엔 언제나 도움의 손길이" 찾아오더군요. 약간은 무모해 보이는 여행이었지만, 90일 간의 유럽 자전거 여행이 책 한권으로 엮을 만큼 많은 이야기꺼리를 만들었다니, 어쩌면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은 약간의 무모한 계획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최광철 안춘희 부부의 여행기를 읽으며 비슷한 여행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중에는 저도 포함됩니다. 외국어를 못해도 예약을 하지 않고도 유럽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약간은 무모한 자신감에 불을 지펴주었기 때문입니다.


<집시 부부의 수상한 여행>을 읽고나니 아직 출발도 하지 않은, 오는 8월 2일부터 시작되는 중국 – 한국 – 일본으로 이어지는 자전거 집시 부부의 동북아 평화 순례 4000km 여행기가 기다려집니다.


집시 부부의 수상한 여행 - 10점
최광철 지음/책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