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YMCA 청소년 자전거 국토순례 ⑤] 평택에서 안산까지 65.7km 라이딩
청소년 자전거 국토순례 다섯째 날은 평택 숙소를 출발하여 안산 단원고 '기억 교실'에서 세월호 부모님들을 만나고 합동분향소를 거쳐 416합창단과 함께 하는 '기억문화제'를 마치고 9시가 넘어 숙소인 한양대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였습니다.
평택에서 안산시까지 라이딩도 비교적 무난하였습니다 가파른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들 라이딩 능력도 날마다 눈에 띄게 나아졌기 때문입니다. 오산시 오산맑음터 공원까지는 1시간 20여분이 소요 되었는데, 예정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은 코스가 어려웠던 탓이 아니라 도심은 물론이고 외곽도로까지 차들이 많았고 모든 신호등을 지키면서 주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자전거 국토순례를 하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체로 전 구간에서 경찰의 지원을 받게 됩니다. 지원 나오는 경찰분들은 현지 사정이나 본인들의 판단에 따라 주로 두 가지 주행 방법 중 하나를 제안 합니다. 한 가지는 "차량 통행에 최대한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모든 신호를 지키면서 정상 주행을 하라"고 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차량 흐름은 비교적 원만하지만 자전거가 모두 지나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다른 한가지는 자전거 주행으로 "도심 구간 정체가 길어지지 않도록 신호를 정지 시킨 후에 한꺼번에 자전거를 신속하게 이동"시키는 방법입니다. 신호에 걸린 차량들은 오래 기다려야 하지만 전체적인 자전거 통과시간은 오히려 줄어듭니다.
둘 중 어느쪽이 반드시 더 좋은 방법이라고 규정 하기는 어렵습니다. 현장 상황에 따라 여러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만, 대체로 앞의 방법이 더 안전한 편입니다. 대신 시간이 좀 많이 걸리고 흐름이 끊기는 것이 어려움이지요.
뒤의 방법은 시간이 많이 단축되는 대신에 약간의 위험을 무릅써야 하고, 일반 차량 운전자들로부터 '욕'도 많이 먹어야 합니다. 하지만 훨씬 안전하고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은 장점이구요. 결론적으로 다섯 째날 상대적으로 짧은 거리인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은 대부분의 구간을 신호를 지키면서 이동하였기 때문입니다.
아침 8시 30분에 오전 라이딩을 시작하여 오전에 36.4 km를 달려 수원YMCA가 운영하는 서수원주민편익시설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었습니다. 서수원주민편익시설에는 경기도 지역에서 참가한 청소년 부모님들과 가족들이 많이 나와서 환영해주었고 YMCA관계자분들이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며 아이들 더위를 식혀주었습니다. 수원YMCA에서는 시원한 오미자 음료를 무한 리필해줘 아이들을 기분좋게 해주었고 식사 후에는 아이스크림도 나눠주었습니다.
아이들을 만난 부모님들은 한 여름 뙤약볕에 새까맣게 그을린 아이들 얼굴을 보며 대견한 마음과 짠한 마음이 교차하는 듯하였습니다. 멀리서 달려나와 손자의 손을 잡고 격려하는 할머니, 아이들이 뙤약볕 아래 아무렇게나 던져 둔 헬멧을 챙겨 그늘로 옮겨놓는 엄마들, 아이들 자전거를 살펴보는 아빠들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전날 밤에 만들어 두었던 노란색 바람개비를 자전거에 달고 안산 단원고를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노란 바람개비에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그 가족들을 위로 하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오후 2시 30분에 서수원주민편익시설을 출발하여 불과 약 1시간 만에 20.1km를 달려 안산 단원고에 도착하였습니다.
안산 단원고에는 14~5명의 세월호 부모님들이 나오셔서 YMCA청소년 자전거 국토순례에 참가하여 단원고 기억 교실을 방문한 청소년들을 따뜻하게 환영해주었습니다. 사실 청소년 자전거 국토순례 일정에 안산 단원고 방문을 포함시킬 때 진행팀들은 여러가지 사항을 고려하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중 가장 큰 우려는 '천방지축'인 철부지 우리 아이들이 세월호 희생자 부모님들을 얼마나 진지하게 만날 수 있을지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단원고 방문을 앞두고 내내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조금 더 진진하게 이 분들을 만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물론 고민해도 뚜렷한 대책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진행팀의 걱정과 달리 아이들은 마냥 철부지들이 아니었습니다. 20여km를 달려와 단원고등학교 운동장에 자전거를 세웠을때부터 여느 날과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습니다. 휴식장소에만 도착하면 물을 달라고 아우성(?)치다시피 하던 아이들이 많이 차분해 졌습니다.
단원고 학부모들과의 만남...놀라울 만큼 진지한 아이들
현관 입구 그늘로 옮겨 자리를 잡을 때까지 작은 웅성거림이 남아 있었지만 따로 진행 실무자들이 아무말도 하지 않았는데, 몇몇 아이들이 먼저 "조용히 해봐 이야기 하시잖아"라고 주의를 환기 시키자 금새 작은 웅성그림조차 잦아들고 침묵이 흐리기 시작하였습니다.
300명의 십대 청소년들을 모아놓고 프로그램을 하다보면 가장 힘든 일이 모두를 조용히 시키는 일과 단체 사진을 찍는 일인데 국토순례에 모인 청소년 300명이 처음으로 긴 침묵의 시간을 갖고 부모님들의 소개와 인사를 경청하였습니다. 14~5명의 단원고 부모님들이 돌아가며 자기소개(2학년 O반 OOO 엄마, 아빠라고)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광주에서 안산까지 온 청소년들을 환영하고 격려하는 인사를 하였습니다.
"기특하다", "대견하다", "대단하다", "고맙다", "반갑다" 하는 인사말을 하시면서 끝내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분들이 여럿이었습니다. 자전거 타고 학교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우리 아들이 생각나더라는 말씀을 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이미 세월호 사고 이후 여러 차례 안산 단원고와 분향소를 방문 했었지만, 저 역시 2학년 OO반 OO 엄마, 아빠의 인사말을 듣는 동안 울컥울컥하다 끝내 눈물을 모두 삼켜내진 못하였습니다. 아이들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기억교실’을 둘러보러 올라갔습니다. 부모님들도 각자 자기 아이들이 지내던 교실로 올라 가셔서 국토순례 참가청소년들을 최대한 편안하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그 반 아이들 이야기, 선생님 이야기 세월호 사고를 둘러싼 잘못된 비난이나 오해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시고 인양과 실종자 수습 그리고 사고 원인 규명이 왜 중요한지 하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 교실을 둘러보고 단원고 아이들이 앉았던 책상에 앉아 부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훌쩍훌쩍 소리 내어 우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몇몇 청소년들은 저녁 시간 문화제 행사 때 세월호 부모님들로 구성된 416합창단 공연을 마친 후, 노래를 듣고 세월호 부모님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이야기 나누던 남자 아이 몇몇은 정말 ‘펑펑’울어 부모님들이 한참 동안 아이들을 달래야했습니다. 멋 발치에서 지켜보던 실무자들도 짠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단원고 교실을 둘러보던 아이들은 책상에 놓인 사연들을 펼쳐 읽어보고, 글을 남기고 마음에 새기더군요. 실무팀의 계획은 30분 정도 단원고 기억교실을 둘러볼 예정이었습니다만, 아이들이 교실을 나오지 않아 1시간이 넘게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단원고 방문을 마치고 나와 다시 자전거를 타고 화랑유원지 합동분향소를 방문하였습니다. 350여명의 청소년과 실무자들이 자전거마다 노란 바람개비를 달고 분향소를 방문하여 가슴에 달고 온 리본을 대형걸개그림에 붙인 후에 가족분들의 안내를 받으며 분향을 하였습니다.
가족대책위를 대표하여 재욱이 어머니께서 분향소 앞에 서있는 청소년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여러분 자전거를 타고 여기까지 오느라 힘 들었죠. 아니라고 하지 않아도 돼요. 힘들었을 때 정말 힘들 때 우리 몸에 힘이 들어 오는거 랍니다. 힘들게 자전거를 타는 동안 여러분들에게 힘이 생길꺼예요”
재욱 어머니 이야기를 들으며 어쩌면 지난 2년 넘게 수없이 자신에게 함께 어려움을 격고 있는 가족들이 서로 위로하며 나누던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 하겠습니다. 약속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분향을 마치고 뺏지와 팔찌를 선물로 받으며 아이들은 단원고에서 세월호 부모님들과 함께 외쳤던 구호를 다시 떠올렸으리라 생각합니다. 분향소가 있는 화랑유원지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안산문화광장까지 자전거로 다시 이동하여 ‘416세월호 문화제’를 진행하였습니다. 416합창단 공연과 청소년들의 공연을 이어가며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다시 새겼습니다.
평택을 출발하여 안산에는 일찍 도착하였는데, 숙소인 한양대게스트 하우스에는 밤 10시가 다 되어 도착하였습니다. 힘들게 정말 힘들게 자전거를 타고 안산까지 달려와 이미 ‘별’이된 단원고 친구들을 만난 청소년들이 “잊지 않겠다”던 “기억 하겠다”던 약속을 지킬 것이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