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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봄 도다리 가을 전어? 진짜 도다리 철은 가을

by 이윤기 2018.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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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최헌섭과 박태성이 쓴 <최초의 물고기 이야기 - 신우해이어보>


<우해이어보>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쓰인 어보입니다. <우해이어보>약 200년 쯤 전인 조선 후기에 진해(지금의 마산합포구 진동면 일대)에 유배 온 담정 김려(1766~1822)라는 분이 쓴 책입니다. 담정이 쓴 <우해이어보>는 이미 몇 차례 번역본이 나왔지만, 일반 시민들이 읽기엔 어렵고 불편하였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최초의 물고기 이야기-신우해이어보>는 담정 김려의 <우해이어보>를 일반인들도 편하게 만날 수 있도록 쓰인 책입니다. 김려의 시대로부터 200년 후에 그의 발자취를 쫓으며 쓴  <최초의 물고기 이야기-신우해이어보>는 창원 출신 역사학자 최헌섭과 박태성이 썼습니다. 


두 저자는 200년 전 담정이 남긴 기록을 따라 '우해' 일원을 찾아다니며 당시 생활사를 이해하고, 우해 앞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 어민들의 삶을 되살펴보았더군요. 경남도민일보에 <신우해이어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글이 경상대학교 출판부를 통해 <최초의 물고기 이야기-신우해이어보>로 엮여 나왔습니다. 


<최초의 물고기 이야기>는 문절망둑에서부터 소라(황소라, 자주소라, 앵무소라)에 이르기까지 40여 종의 바닷물고기와 게, 조개, 소라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이 특별한 까닭은 그냥 책상 위에서만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동저자인 최헌섭과 박태성은 오랜 시간 동안 '우해이어보'에 등장하는 옛 진해 일대를 답사하였고, 실제로 낚시대를 드리우고 김려가 관찰했던 그 물고기도 잡았습니다. 이미 지난 200년 동안 수많은 물고기들이 옛 진해 앞바다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바다에서 잡을 수 없는 물고기는 어시장을 찾아가서라도 직접 보고 관찰하였더군요. 


저자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 40여 종의 물고기들을 지금의 시각과 지식을 바탕으로 새롭게 소개합니다. 김려가 '우해이어보'에 쓴 물고기 이름과 생김새 등이 틀림없는지 검증도 하고 한자와 우리말 그리고 지방 방언으로 물고기 이름과 특성을 알려줍니다. 


조선시대 마산 사람은 어떤 물고기를 먹었을까?


바로 그런 노력 덕분에 저자들은 200년 전 김려가 잘못 쓴 것을 고쳐 바로잡기도 하고, 김려의 시선으로 바라 본 200년 전 어부들의 고기잡이 방식 그리고 그 시대를 살던 어촌 사람들의 생활상을 마치 한 폭의 그림이나 옛 이야기처럼 전해줍니다. 


"흉년에 순무를 캐어 대갓집에 파는 노파와 처녀, 오징어 숙회에 이명주를 파는 들병이 노파, 매가리젓갈을 팔러 혼자 배를 목고 오는 고성의 아낙, 멀리 반성장에 정어리를 팔러가는 양섬 아낙의 모습에서 그들의 억척스런 모습을 읽어낸다."(본문 중에서) 


요리법을 소개할 때는 더욱 생생합니다. 저자들은 특별히 '감성돔 식해'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오늘 날에도 충분히 옛 맛을 재현할 수 있을 만큼 자세한 레시피가 남아 있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이곳 사람들은 가을이 지나갈 무렵에 감성돔을 잡으면, 비늘을 긁어내고 지느러미를 떼어 낸다. 머리와 꼬리를 자르고 내장은 버리고 깨끗이 씻어 배를 양편으로 가른다. 보통 배를 가른 감성돔 200조각에 희게 찧은 멥쌀 한 되로 밥을 해서 식기를 기다린 뒤에 소금 두 국자를 넣고 누룩과 엿기름을 곱게 갈아 한 국자씩 고르게 섞어 놓는다. 그리고 작은 항아리를 이용하여 안에는 먼저 밥을 깔고 다음에 감성돔 조각을 겹겹이 채워 넣고 대나무 잎으로 두껍게 덮고 단단히 봉해 둔다. 이것을 깨끗한 곳에 놓아두고 익기를 기다렸다가 꺼내 먹는다. 달고 맛이 있어 생선 식해 중에서 으뜸이다."(본문 중에서)


이 인용문은 원작인 김려의 <우해이어보>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두 저자들의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만 번역해서 들려주는 것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원작에 감성돔 식해 이야기가 나오자 가자미 식해, 오징어 식해, 청어 식해, 복어 식해에 관한 이야기로 넓혀 가는데, 여러 관련 서적이나 그림 등 여러 자료들을 적절하게 인용하곤 합니다. 




낚시 좋아하신다구요? 감성돔 식해 아시나요?


예컨대 볼락편에서는 한자로 '보라어'라 쓴 까닭을 문헌에서 찾거나 관련 자료를 토대로 짐작해보고, 볼락의 종류를 조피볼락(우럭), 불볼락(열기), 쏨벵이가 있고, 개볼락, 누루시볼락, 황점볼락 도화볼락, 세줄볼락, 탁자볼락 등을 함께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볼락편의 마지막엔 김려가 남긴 시를 번역하여 독자들에게 들려줌으로써 정취와 멋을 더해 마무리를 합니다. 


달 기울고 까마귀 우는 바다

한밤 밀물이 울타리 앞 두드릴 때

아마 볼락 실은 배가 들어왔나 보다

거제 뱃사람들 물가에서 떠들썩하네


저자들은 볼락은 '보라어'를 비롯한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 "쌀엿처럼 단맛이 나는 보랏빛 물고기"라고 원작을 뛰어넘어 멋지게 정의 하였더군요. 


서뢰라고도 불렀다는 쥐치 이야기도 흥미진진합니다만, 오늘 서평에서는 쥐치는 생략하고 '죽음과도 바꿀 만한 가치가 있는 맛'으로 불린다는 복어 이야기로 갑니다. 김려의 우해이어보에는 석하돈, 작복증, 나하돈, 황하복증 등 여러 어종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복어편에서 가장 재미있는 대목은 소동파와 옛사람들이 남긴 멋진 문장들이었습니다. 복어의 맛을 표현한 옛사람들의 문장이 이색적이고 유쾌합니다. 


"복어의 맛은 중국 송나라 소동파가 죽음과도 바꿀 만한 가치가 있는 맛이라고 했을 정도이다. 일본에서는 복어를 먹지 않는 사람에게는 후지산을 보여주지 말라고 할 정도로 그 맛을 일품으로 생각했다."(본문 중에서)


복어만큼 흥미로웠던 이야기가 또 있는데 바로 '병어'(석편자)편입니다. 허균이 쓴 짦은 편지 글이라고 하는데 오늘 날로 치자면 병어회를 먹고 쓴 맛 칼럼 같은 것입니다. 


"실처럼 잘게 회를 쳤더니 군침이 흐르더이다.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으니 국수나 먹던 창자가 깜짝 놀라 천둥소리를 냈습니다."(본문 중에서)


놀랍고 흥미로운 이야기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병어가 등장하는 여러 옛문헌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도 놀라웠습니다. 당나라 시인 맹호연과 두보의 시에도 등장하고, 이규보의 시에도 등장하며, <현산어보>나 서유구의 <난호어목지><신증동국여지승람> 같은 책에도 기록이 남아 있다더군요.




봄=도다리, 가을=전어? 진짜 도다리 제철은 가을이라는데


사람들의 상식을 흔들어 놓는 물고기 이야기들도 여러 번 등장하는데, 그중 대표적으로 소개할 만한 것은 도다리편입니다. 우선 우해이어보에서는 도다리를 '도달어'라고 하였는데, 가자미 종류의 하나라고 하였답니다. 


물고기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들도 고등어, 갈치, 꽁치처럼 도다리나 광어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사는 고장 사람들은 흔히 횟감으로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고 이야기 합니다. 도다리 회는 봄에 맛이 제일 낫고, 전어회는 가을이 최고라는 말이지요. 


하지만 <최초의 물고기 이야기-신우해이어보>를 쓴 최헌섭, 박태성에 따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도다리에 대한 상식은 여러 측면에서 오류 투성이입니다. 


"지난해 가을 끝자락에 고현 앞바다에서 꼬시락과 함께 낚은 녀석도 여러 자료를 비교해 봤더니 도다리가 아니라 문치가자미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이 녀석을 도다리라 부르고 횟집에서도 그렇게 팔고 있다. 봄에 한창 제철을 맞아 도다리쑥국에 들어가는 녀석이 바로 이 녀석이라니 도다리 행세하는 문치가자미가 도다리 철을 봄으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본문 중에서)


"도다리 행세를 하는 대표 어종이 가두리에서 키운 강도다리다. 봄철 횟집에서 도다리 횟감으로 내놓는 게 대부분 이 녀석인데, 도다리와 비슷하게 마름모꼴에 가깝게 생긴 몸통에 지느러미에 검은 띠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본문 중에서)


요약하자면 우리 고장 사람들이 도다리라고 알고 먹는 봄 도다리 회는 가두리에서 키운 '강도다리'이고, 도다리 쑥국에 들어가는 생선은 '문치가자미'라는 것인데, 쉽사리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담정 김려는 <우해이어보>에서 도다리를 가을 생선이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맛은 감미롭고 구워서 먹으면 더욱 맛있다. 이 물고기는 가을이 지나면서 비로소 살이 찌고 커진다. 큰 것은 3~4척이나 된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가을도다리 혹은 서리도다리라고 한다."(본문 중에서)


200년 전만 해도 도다리는 봄에 즐겨 먹는 생선이 아니었으며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늦가을에 즐겨 먹었는데, 그 까닭은 그 때가 되어야 살이 찌고 커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무튼 흔히 도다리라고 알고 먹고 있는 생선은 문치가자미와 강도다리라니 허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물고기에 대한 알쓸신잡... 우해이어보를 읽어보시라


그렇다면 진짜 도다리는 없는 걸까요? 없지는 않지만 귀하다고 합니다. 국립수산과학원 수산생명자원정보센터에서 낸 자료를 보면 도다리는 문치가자미와 함께 가자미과에 속하는데, 가을에 산란을 하고 1년에 10cm, 2년이 되면 17cm, 3년이면 21cm로 성장하며 성어의 크기는 30cm 정도라고 합니다. 


아무튼 바다에서 직접 잡지 않으면 횟집이나 도다리 쑥국 전문점에서 진짜 도다리 회나 진짜 도다리 쑥국을 맛보는 건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며 유난히 눈에 뜨인 물고기들에 대한 소개는 여기까지입니다. 더 많은 물고기들에 대한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최초의 물고기 이야기-신우해이어보>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우해이어보>에 나오는 '우해'는 당시 지명으로 '진해'였고, 지금의 행정구역으로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일대입니다. 제가 사는 마산 사람들의 200년 전 삶의 모습을 담고 있는 책인 것이지요. 바로 그 책을 읽고 말하자면 해설판으로 낸 책이 <최초의 물고기 이야기-신우해이어보>입니다. 


두 저자가 창원 혹은 창원에서 가까운 창녕에서 나고 자라서, 창원에서 공부를 하고 창원에서 창원 지역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라 더 반갑고 고맙습니다. 옛 사람이 남긴 내 고장 바다와 물고기 이야기를 오늘날 독자들을 위하여 더 쉽고 더 흥미롭게 그리고 더 과학적인 자료를 찾아 비교하면서 바로잡고 풍성하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라는 TV프로그램이 인기지요? 그 프로그램 패널인 황교익 선생의 고향이 바로 <최초의 물고기 이야기-신우해이어보>의 배경이된 '우해' 인근이라고 하더군요. 알쓸신잡 같은 지식이 필요하신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물고기에 대하여 아는 체 좀 하고 싶은 분들에게도 권해드립니다.



최초의 물고기 이야기 - 10점
최헌섭.박태성 지음/지앤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