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독립운동가 김명시, 고향의 봄 이원수는 몇번 마주쳤을까?

by 이윤기 2018. 12. 29.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서평] 허정도가 풀어 낸 도시 이야기<도시의 얼굴들>[각주:1]


지금은 그 이름조차 온전히 지켜내지 못한 근대도시 마산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 온 저자 허정도가 쓴 <도시의 얼굴들>에 나오는 첫 문장은 매우 강렬합니다. 


“장소를 피해가는 삶은 없다. 출생부터 죽음까지 생의 한 순간도 장소를 벗어날 수는 없다.” (본문 중에서)




아울러 저자가 예를 든 것처럼 “첫사랑의 속삭임”은 물론이고, 태어난 곳, 어린 시절 뛰어 놀던 골목길, 처음 소품을 갔던 곳, 처음 수학여행을 갔던 곳, 그녀를 처음 만난 곳과 결혼식장 그리고 신혼여행을 갔던 곳, 아이가 태어 난 병원......그리고 숨을 거둔 곳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은 장소에서 장소로 이어지고 그 중 어떤 장소는 강렬한 기억으로 나와 다른 사람에게 각인되곤 합니다. 


<도시의 얼굴들>은 바로 장소에 새겨진 사람들의 삶을 담은 책이고, 사람들이 장소에 새겨 놓은 흐릿한 기억들의 재구성입니다. 저자는 스물일곱 젊은 나이에 건축사가 되어 좋은 건축물들을 설계하였을 뿐 아니라 시민운동가로서 그리고 지역을 대표하는 도시 연구자로서도 대안과 실천을 끊임없이 쏟아냈습니다. 


저자는 건축과 도시전문가로 오랫동안 ‘도시의 공간 변천’을 연구하고 기록해 왔는데, 이번엔 도시와 건축에 관한 이야기대신 그곳을 거쳐 간 사람들에 주목하였고 그들의 발자취와 그들이 걸었던 길을 쫓아 이 책에 담았습니다. 


“20세기 전반 60여 년, 마산이라는 한 도시에 남긴 16인의 흔적”을 도시와 건축에 탁견을 가진 저자가 여러 사람들과 함께 발굴한 자료와 문헌들을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질문하는 방식’의 상상력을 보태는 것으로 입체감을 높여놓은 새로운 형식의 도시스토리텔링입니다. 


등장인물은 모두 16명. 마산사람들도 모르는 이가 많지만 잊지 않아야 할 사람들로 옥기환, 명도석, 김해랑, 독립운동가 김명시, 시인 백석, 마지막 왕 순종, 국어학자 이극로, 김수환 추기경 그리고 이원수, 김춘수, 천상병, 나도향, 임화와 지하련 같은 문학가들 그리고 이름 모를 산장의 여인이 그들입니다. 



민족해방운동사에서 마산을 대표하는 단 한 명을 꼽으라면, 김명시


독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이는 누구일까요? 저자 허정도는 일반 독자들이라면 “백석과 나도향 그리고 임화와 지하련 같은 문학가들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을 것이라고 예상하더군요. 하지만 제가 독자들에게 가장 소개하고 싶은 이는 ‘김명시 여장군’입니다. 마산에서 열여덟까지 살았던 이 분은 러시아를 거쳐 중국 대륙과 만주벌판을 무대로 민족 해방을 위해 싸웠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혁명가입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었고, 3.1만세운동 때 얻은 부상 후유증으로 어머니를 잃었다. 사회주의 계열 항일투쟁에 뛰어들어 무려 12년이나 일제의 감옥에 갇혔던 김형선이 오빠였고, 1930년대 부산과 진해에서 적색노조운동을 이끈 김형윤이 남동생이었다. 김명시는 오빠 김형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본문 중에서)


어머니와 형제가 모두 독립운동과 사회주의운동에 뛰어들었던 굉장한 집안이었지요. 김명시는 러시아 유학을 마치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고, 스물여섯에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7년간 신의주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고 나와 1939년부터 팔로군에 입대하여 대륙을 누볐다고 합니다. 


조선의용군에 합류하여 김무정 장군과 함께 목숨을 걸고 전장을 누볐다고 합니다. 흔히 여성독립운동가라고 하면 남자들을 뒷바라지 하였을 것이라고 짐작하겠지만, 김명시 장군은 남자와 꼭 같이 총을 쏘고 훈련 받고 전투에 참가하였습니다. 여성부대를 따로 조직하여 지휘한 여장군이었다는 겁니다. 


영화 <암살>을 통해 여성독립운동가들이 전설 같은 투쟁이 꽤 많이 알려졌지만 여전히 흔한 이야기는 아니지요. 최근에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 소개한 여러 책들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도시의 사람들>이 가진 특별함은 바로 아래와 같은 인용문에 있습니다. 


“김명시는 1907년 동성리 189번지(오동동 문화광장 무대 자리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김명시가 살았던 때의 동성동은 지금과 사뭇달랐다. 예전에 그 많았다는 요정도 지금의 아구찜 식당도 당시에는 없었다. 다닥다닥 붙은 나지막한 초가 사이로 거미줄처럼 얽힌 좁고 굽은 흙투성이 길뿐이었다. (중략) 소녀 김명시가 책보자기를 등에 둥치고 집과 학교를 오갔던 길은 어디였을까? 김명시의 집에서 학교까지는 대략 700여 미터, 소녀 걸음으로 15분 정도의 거리였다.”  (본문 중에서)


저자는 김명시가 살았던 동네와 흔적에 주목합니다. 어떤 역사학자도 ‘소녀 김명시의 등굣길’을 상상해보지는 않았을 겁니다. 독자들은 100여 년 전 김명시의 등굣길을 따라가면서 당시 마산의 모습을 함께 떠올리게 됩니다. 


“등굣길 김명시는 동성동 골목에서 빠져나와 공사 중인 불종거리를 건넜다. 없던 길을 새로 내는 공사여서 잘려나가거나 철거된 집들 때문에 길 주변이 어수선했다. 불종거리를 건너서는 다시 골목길로 들어갔다.(중략) 이 길을 조금 걸어 나가면 작은 십자로가 나온다.(중략) 여기서 보통학교로 가려면 직진 길과 우회전 길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다섯 쪽 가까이 이어지는 김명시의 등굣길을 이야기를 따라 가다보면, 100여 년 전 마산의 도심의 입체적인 모습과 만나게 됩니다.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 가다보면 마산공립보통학교의 만세운동 역사에까지 닿습니다. 김명시가 6학년으로 편입했던 그 해 봄에 마산공립보통학교에는 이원수가 2학년으로 편입하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서로 얼굴이라도 익힌 사이였을까?”


허정도가 이끄는 이야기는 조선공산당 제 1회 유학생으로 선발된 김명시를 쫓아 모스크바를 거쳐 중국대륙과 만주 벌판으로 이어지고, 해방 후 동지들과 함께 봉천에서 서울까지 걸어 온 귀국길도 따라갑니다. 해방 후 4년 뒤 부천경찰서 유치장에서 “수도 파이프에 자신의 치마를 찢어서 걸어놓고 목을 걸고 앉은 채로 자살했다”는 비통하고 안타까운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집니다. 


언론인 정운현도, 역사학자 강만길 일제강점기 민족 해방운동사에서 마산을 대표할 수 있는 단 한명을 꼽으라면 바로 김명시 장군이라고 했답니다. 하지만 지금 마산에서는 그 이름조차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습니다. <도시의 얼굴들>을 통해 마산 사람들의 기억에 ‘김명시 장군이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란'을 찾아가는 시인 백석의 마산 길


열여섯 명 중에 딱 한 명만 더 독자들에게 소개한다면 누구를 해야 할까? 밑줄 쳐진 곳을 다시 읽으며 오랫동안 고민하였습니다. 김수환 추기경, 꽃의 시인 김춘수, 김주열 열사, 시인 백석 그리고 임화와 지하련에도 눈길이 멈추었습니다만, 개화기 최고의 모던보이였다고 하는 백석의 사랑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월북 문인들의 작품 해금되면서 남한에서 가장 새롭게 조명 받는 작가는 바로 백석입니다. 그를 다룬 논문과 책이 1천여 편을 넘겼다는군요. 평북 정주가 고향이고 동경 유학을 다녀와 조선일보 기자로 일했던 백석이 뜬금없이 마산을 세 번이나 다녀간 까닭은 무엇일까요? 한 편의 영화 같은 아릿한 짝사랑을 찾아가는 길에 마산을 거쳐 갔다고 합니다. 


1936년 1월, 2월, 12월 모두 세 번 통영을 찾아갔는데, 그 때 마산을 거쳐 통영으로 갔다는군요. 한 해 전 여름에 처음 만난 통영 여인 란(박경련)을 만나기 위해 무려 세 번이나 통영을 갔답니다. 지금처럼 교통이 편리한 시절이 아니었기에 여간 애끓는 마음이 아니었다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한 해전 여름 친구의 결혼식 축하연에서 란을 처음 만난 후에 마음을 빼앗겼고, 모두 네 번 통영을 찾아갔는데 그 중 한 번은 부산을 거쳐 갔고, 세 번은 마산을 거쳐 갔다고 합니다. 


“서울역에서 출발한 백석은 삼랑진에서 기차를 갈아탄 후 구마산역에 내렸다. 통영으로 가는 배을 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하필 그날은 란이 서울로 가는 날이었다. 선창에서 내린 란이 구마산역으로 올라가고 있을 때 백석은 배를 타기 위해 구마산역에서 선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불종거리에서 지나쳤다. 백석은 몰랐고 란은 알았다.”  (본문 중에서)


운명 같은 엇갈림이 마산 불종거리에서 있었고 백석과 란은 그후 다시 만나지 못합니다. 란이 친구의 아내가 되었을 때도. 한편 통영에서 백석은 ‘란’을 생각하며 ‘통영’이라는 시를 씁니다. 그날 쓴 시 ‘통영’ 백석이 남긴 시 중에 유일하게 마산이 등장한답니다. 

“구마산의 선창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중략) 내가 들은 마산 객주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

저자는 1936년 구마산역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마산포를 향해 걷는 백석의 모습을 실감나게 재구성 해냈습니다. 


“역에서 나와 불종거리에 들어선 백석의 헤어스타일은 여전했다. 올백으로 넘긴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중략) 백석이 왔던 1936년 1월 초, 이원수는 형무소 안 독방에서 1월말의 석방을 기다리며 떨고 있었다. 가던 발걸음을 잠깐 멈추고 담장 안으로 눈길을 돌려봤을까?(중략) 이 기와집 맞은편 모퉁이에 격자형 사각 유리가 촘촘한 미닫이문의 단층 거물이 있었다. 시인 임화와 소설가 지하련의 집이었다. 두 사람은 이곳에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그때가 백석이 왔을 즈음이었다.”  (본문 중에서)


임화가 마산에 머물 때 백석의 시를 비판하는 평론을 썼는데, 어쩌면 백석이 포구를 향해 걸으면서 보았던 바로 그 집에서 썼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백석은 한 해 동안 마산을 거쳐 세 번이나 통영을 찾아갔지만 청혼은 거절당하고 끝내 그녀와는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와 인연이 어긋난 후에 쓴 여러 편의 작품에 ‘란’의 잔영이 오래도록 스며있습니다.


시인 김춘수의 장인, 마산의 대표적 민족자본가 허당 명도석


세 번째로 소개하는 이는 마산에서 한 평생을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로 살았던 허당 명도석 선생입니다. 이 책에 소개된 인물들만 해도 허당보다 더 유명하거나 더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던 사람들이 있지만 평생을 오롯이 마산에서 살았기에 각별히 마음이 갔습니다. 


“허당 명도석은(1885~1954) 중성동 64-2번지(지금의 불종거리 동광교회 건너편)에서 태어났다.(중략) 3.1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서른다섯 살 때였다. 3월 10일 추산정 만세 시위에는 사전 모의부터 가담했다. 3월 12일에는 지역인사들과 거사를 계획하고 필요한 자금을 댔다.” (본문 중에서)



3.1운동에 깊이 뛰어든 명도석은 동아일보 창간주주, 신간회 참여와 마산지회 임원으로 활동, 조선어사전편찬회 발기인 그리고 몽양이 주도한 건국동맹 경남대표에 이르기까지 한 평생을 자수성가한 민족자본가이자 독립운동가로 살았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또 다른 주인공 시인 김춘수는 그의 사위입니다. 


“8월 16일 밤에는 70여 명의 인사들이 모여 ‘해방 축하 마산시민대회’를 열기로 했다. 축하 행사는 바로 다음 날 열렸다. 장소는 공락관이었다. 8월 17일 밤, 해방에 들뜬 사람들이 빼곡이 자리를 메운 축하 행사가 열렸다. 마산의 실질적인 자치권력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마산위원회’ 결성대회를 겸했고, 위원장으로 허당이 추대됐다.”  (본문 중에서)


이 책에는 허당 명도석의 건국준비위원회 출근길이 마치 어제 일처럼 입체적이고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다른 역사책이나 인물 평전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기록이지요. 


“건준 마산위원회는 불종거리 끝자락쯤에 있었다......옛 한일은행 마산지점이 있던 곳이었다. 건준 사무실로 사용할 때의 건물 1층은 마산식당이었다. 불종거리 동광교회 건너편이었던 허당의 집에서 500~600m로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본문 중에서)


저자 허정도는 불과 500~600m, 10분 거리를 독자들을 이끌고 가면서 허당 선생의 집과 정원, 출근길 옷차림과 집 앞 우물, 마산 갑부이자 민족주의 독립운동가였던 남전 옥기환의 집과 길 건너편 마산형무소, 거리의 크고 작은 점포들과 마산 최초의 한국인 의사 김형철이 설립한 삼성병원과 그의 인술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내지는 않았지만, 그는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로서 한 길을 걸었습니다. 전쟁 중에 친일 반공세력에게 고초를 당한 후에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곡기를 끊었다고 합니다. 봉암로 변에 세워진 커다란 기념비를 처음 보았을 때 ‘허당 명도석’이 누구인지 궁금했던 기억이 납니다. 허정도가 쓴 <도시의 얼굴들>을 통해 해방 후 45년이 지나서야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은 명도석의 삶을 새겨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시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건축가, 사람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 지식인” 허정도가 풀어 낸 마산 이야기 <도시의 얼굴들>들, 마산에 살고 있거나 마산을 거쳐 간 사람들 그리고 마산과 아무 인연이 없지만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숨겨진 이야기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그의 작업을 읽고 제대로 따라만 해도 훌륭한 결과물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까닭은 문화적 도시재생을 위한 거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마산을 재생하기 위한 “스토리텔링을 주장하는 이도 많았고 이용할 사람도 많았지만, 스토리를 발굴하고 엮어 낼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더 먼저 더 깊이 고민한 자신이 <도시의 얼굴들>을 썼습니다. 


마산이 아닌 다른 <도시의 얼굴들>을 기록하는데도 길잡이가 될 만한 결실입니다. <도시의 얼굴들>을 쓴 허정도는 짧고 간결한 문체로 쓴 맛깔 나는 문장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습니다만, 그는 글을 쓰는 능력뿐만 아니라 말 재주 또한 탁월합니다. 이 시대 마산을 대표하는 구라를 꼽는다면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걸출한 이야기꾼입니다. 


그런 점에서 <도시의 얼굴들>은 혼자서 책으로만 읽고 넘어가기엔 굉장히 아쉬울 수 있습니다. 저자를 직접 초대하여 ‘수다모임’이나 독서모임을 열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일정이 허락하면 흔쾌히 승낙하리라고 봅니다. 글로 못다 쓴 이야기, 문헌이나 자료가 부족하여 책에서 담지 못한 사연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도시의 얼굴들 - 10점
허정도 지음/지앤유




  1.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송고하기 전에 쓴 원본 서평입니다. 명도석 선생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