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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어미는 "삼겹살만 봐도 눈물이 난다"는군요.

by 이윤기 2009.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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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부모 품을 떠날 때...

올해 3월
고등학교에 들어간 아이가 지난 수요일 학교 기숙사에 들어갔습니다. 처음부터 기숙사 입소를 희망했지만, 곧바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가, 중간에 그만두고 나간 아이가 있어서 빈자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지지난주 월요일 학교에 등교한 아이가 점심시간쯤 아내에게 전화를 해왔다고 합니다. 기쁘고 들뜬 목소리로 "엄마, 기숙사에 자리났다는데요. 담임 쌤이 부모님 '동의'하면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데요? 엄마, 저 기숙사 들어가도 되지요?"

아내는, 아이가 원하던 일이었기 때문에 그러라고 했다고 저 한테도 전화를 해주더군요. 언제부터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는지 물었더니, 내일이나 모레까지 입실해야 한다더군요. 기숙사 입실이 급하게 결정되는 바람에 월요일 저녁 늦은 퇴근 후부터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아들녀석이 덮을 이불이 필요한데 사러 갈 곳도 마땅치 않아 가까이 사는 아버지댁에 선물로 들어 온 이불을 가지러 갔습니다. 아내는 속옷과 양말, 세면도구, 체육복 등 아이가 기숙사로 가지고 갈 물건을 챙겼습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 온 아들녀석은 책과 참고서를 가방 가득 챙겨담았구요.

화요일, 오후 수업을 마치고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서 짐을 싣고 학교로 갔습니다. 제가 일하는 단체는 방학중에 대학 기숙사를 빌려서 연수를 하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그런 기숙사를 상상하고 아들이 지낼 학교 기숙사엘 갔었는데, 역시 대학 기숙사와는 비교가 안 되더군요.

4명이 생활하는 방안에는 2층 침대 두 개, 침대에 붙은 서랍장, 책꽂이, 작은 사물함, 그리고 옷걸이 헹가가 전부였습니다. 참 썰렁하더군요.

"아니 무슨 기숙사에 책상도 없어?" 하고 혼잣말을 했더니, 아내가 핀잔을 줍니다.
"어차피 기숙사는 잠만 자는 곳이래! 야간 자율학습 끝나고 12시 넘어서 기숙사 들어와서 잠만 자고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서 등교 준비해서 다시 나가다는데 뭐 !"



삼겹살만 봐도 눈 물이 나는 아내

아들을 기숙사에 들여 보내고 온 다음 날, 냉동실에 들어있는 삼겹살을 보는데 눈물이 나더랍니다. 채식하는 부모를 둔 아들녀석이 삼겹살을 좋아해서, 가끔씩 아내가 생협에서 돼지고기를 사다 냉장고에 넣어둡니다. 아내는 아들이 좋아하는 삼겹살을 구워먹이지 못하고 기숙사에 보낸 것이 아쉬웠을까요? 


아니면, 부모 품을 떠나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컸기 때문일까요? 아들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고부터 집에서 통학을 할 때도 9시 30분이 넘어야 돌아옵니다. 그런데, 아들이 기숙사에 들어간 첫 날 밤에 아내는 초저녁부터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면서 퇴근하면 일찍 집으로 오라고 전화를 했더군요.

초등 6학년인 작은 아들도 형이 기숙사로 간다고하니 못내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더군요. "아~ 그럼, 이제 매일 나 혼자 자야 되는거지요?" 하고 여러 번을 묻더군요. 그러나, 겁이 많은 작은 아들은 생각보다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자다가 저희 방으로 찾아오는 일 없이 잘 자고 일어납니다.

지난, 주말 나흘 간 기숙사 생활을 한 아들이 빨래감을 챙겨서 집으로 왔습니다. 아내는 군대가서 첫 휴가 나온 아들을 맞이하는 어머니만큼 반가워하더군요. 주말 동안 이것 저것 챙겨 먹이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였습니다.

기숙사에서 입고 지낼 체육복도 한 벌 새로 사주고, 일주일 동안 지낼 수 있도록 양말과 속옷도 새로 넉넉하게 준비해두었더군요. 같은 부모이지만, 역시 자기 배 아파서 낳은 어미 마음은 분명 다른가 봅니다.

세월이 참 빠릅니다. 아들녀석이 어느새 부모 품을 떠나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치원에 입학하고 나서 얼마 후에 엄마, 아빠와 떨어져서 혼자 잠을 자겠다고 하던 아들이 어느새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중간에 기숙사에서 탈락하는 일이 없다면, 지금 부모품을 떠나서 살기 시작하여 대학과 직장 그리고 결혼까지  앞으로 쭈욱 계속될지도 모릅니다. 주변에 많은 분들이 비슷한 경험을 들려주시더군요.

사람은 인생에서 두 번 독립한다.

지난주 내내 "날려보내기 위해 새들을 키운다"던 도종환 선생님 싯 구절이 자꾸 머리 속을 맴돌았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사람은 인생에서 두 번 독립하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독립은 자식으로서 그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독립은 자식이 부모 품을 떠나기 시작하면 자식에게서 독립하는 것 입니다. 

제가 제 부모 품을 떠 나오던, 첫 번째 독립 때는 느끼지 못했던 그런 아쉬움과 기대가 교차합니다. 소수의 아이들만 들어갈 수 있고, 친구들과 지내는 기숙사 생활이 좋아 집을 떠나는 아들은 아마 어미와 아비 마음을 알기는 어려울 것 입니다. 저도 그 시절에는 몰랐으니까요?

월요일 아침, 다시 기숙사에 들어가기 위해 이런 저런 짐을 챙겨 책과 옷가방을 들고 나서는 아들이 안쓰러웠는지, 학교까지 태워주고 오면 안 되겠냐고 묻더군요. 저는 안 되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앞으로 매주 집에 올 때마다 빨래감를 가져왔다가 새로 옷가방을 챙겨가게 될텐데, 그 때마다 학교까지 태워주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아이가 기숙사 생활 2주째를 보내고 집에 온 날 입니다. 아이는 여전히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집에서 함께 지낼 때보다 엄마의 '애정표현'을 덜 어색해합니다. 일주일 동안 지낸 이야기를 하느라고 꽤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나누더군요. 서로가 서로에게서 독립하는 일에 조금씩 더 익숙해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