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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칼럼

기후위기 시대, 채식 확산을 위한 인식 개선 꼭

by 이윤기 2021.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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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부터 창원 KBS1 라디오 <시사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 채식주의자를 대하는 인식 변화가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채식주의자를 대하는 인식도 바뀌었을까?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전 세계가 대혼란을 경험하고 있는 가운데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세계를 해석하는 생명운동가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와 변종 바이러스의 출현은 인간의 환경파괴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오늘은 생태환경운동의 일환으로 고기대신 채식을 시작하는 식단의 변화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지구온난화와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가 생태계의 기본질서를 무너뜨리고 있고, 그로 인한 여러 가지 위험 신호 중 하나가 바로 코로나19 바이러스라고 보는 시각입니다. 그 인과관계가 명확히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환경파괴와 기후변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 생활 현장에서 일어나는 변화 중 하나는 채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10여 년 전부터 시작된 이른바 웰빙 문화가 확산되면서 여성들과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채식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확산되어 나왔습니다만, 최근에는 공공기관들이 앞다투어 채식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경상남도, 창원시, 경상남도 교육청 채식 식단 도입

경상남도 서부청사는 주 2회 채식의 날을 정하였고, 울산광역시도 주 1회 채식의 날을 정하고 학교 급식에도 월 3회 채식 및 채식 선택제를 시행한다고 합니다. 창원시의 경우도 적극적으로 채식 식단을 도입하여 시청 구내식당은 지난해 12월부터 매월 8일과 22일일을 채식의 날로 운영하고 있고, 관내 관공서, 공공기관, 기업체는 올해 2월부터 그리고 올해 8월부터는 초중고대학도 동참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창원시는 직원 1명이 월 2회 채식 식사를 할 경우 연간 338톤의 탄소감축 효과가 있고, 소나무 51212그루를 심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이와 함께 경상남도 교육청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경남 교육청은 매월 첫째, 셋째 수요일을 전 직원 채식의 날로 정하였고, 2회 전 직원 채식의 날을 선정하였고, 학생들의 채식 급식 확대를 위하여 경남교육청 제 2호 정책숙의 의제로 채식 급식 확대를 선정하고 이를 추진하기 위한 <공론화추진단>을 구성하였습니다. 

사실 경남교육청의 대응이 그렇게 빠른 것은 아닙니다. 인근 울산교육청의 경우 관내 231개 학교가 매달 2번 채식 식단으로 급식을 하고 있고, 한 달 내내 채식 급식을 원하는 학생들에게는 따로 채식 식단으로 급식을 제공한답니다. 울산의 경우 관내 246개 학교 중 69곳이 채식 선택 급식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경남보다 먼저 시작한 전북, 울산

전북 교육청은 2019년부터 주 1회 ‘고기 없는 급식’을 해오고 있습니다. 전북의 경우 2011년부터 채식의 날 시범학교 운영을 시작하였고, 2017년에는 105 학교로 늘어났으며, 2018년부터는 학교장이 자율로 채식의 날을 운영하도록 해오고 있습니다. 인천시의 경우도 올해부터 채식 선택 급식 시범학교를 운영할 예정이며 2024년까지 전체 학교의 1/5 이상을 채식 선택 급식이 가능하도록 정책 방향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아울러 육식을 좋아하고 채식 급식을 싫어하는 학생들이 채식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후변화 환경교육과 함께 채식 교육도 확대하고 있습니다. 광주의 한 중학교 사례인데, 재학생 159명 중 70%이상이 채식에 반대하다가 채식 전문가의 강의를 듣고 83%가 채식 찬성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예컨대 채식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는 채식 영양 교육과 함께 환경 교육이 동시에 이루어질 때 인식의 변화가 빠르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공공기관과 학교를 중심으로 빠른 변화가 시작되고 있지만 아직도 일반 시민들의 인식 변화는 많이 더딥니다. 예컨대 채식주의자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집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일입니다. 많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사실 채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 자체가 흔치 않습니다.  

사실 저도 약 20년 전부터 다양한 수준의 채식주의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짧게 기간 동안 이른바 비건으로 살았고 약 15년 가까이 소, 닭, 돼지, 오리를 비롯한 육류를 먹지 않는 부분 채식을 하였으며,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덩어리 고기를 먹지 않는 비덩주의자로 또 어떤 때는 가급적 채식주의자로 살아왔습니다. 

15년 간...채식주의자로 살았던 경험

제가 스스로 채식주의자라고 자처하는 것은 채식 자체는 먹는 대상에 대한 선택의 문제이지만, 채식주의는 먹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방식과 가치관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생명에 대한 고통을 전제로 하는 먹거리, 입을 거리에 대한 문제이며 또 폭력적이고 정당하지 못한, 생태적이지 않은 문화에 대한 선택적인 거부행위이자 생명에 대한 감수성의 문제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저의 채식주의는 양심적 병역거부나 세계적인 식량과 기아문제와도 모두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20여년 간 다양한 수준의 채식을 실천해오면서 정말 많은 불편과 어려움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낯선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될 때, ‘채식주의자라고 커밍아웃을 하고나서 받게 되는 질문과 어설픈 영양학 지식을 동원한 설득 시도’였습니다. 첫 질문은 호기심으로 시작합니다. 왜 채식을 하느냐고? 어디 아픈데가 있냐? 육류에 알러지가있냐? 체질에 문제가 있냐? 이런 질문들입니다. 

이른 질문들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대답하고 지구환경과 건강을 위해 채식을 한다고 대답하면 십중팔구는 설득시도가 시작됩니다. 아픈데도 없는데...왜 고기를 안 먹냐? 고기를 안 먹으면 영양 불균형이 심각해진다. 지방과 단백질이 부족해서 건강이 나빠질꺼다. 뭐 이런 주장들을 참고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채식주의자들은 대부분 채식만으로로 충분한 영양공급이 가능하다는 채식 영양학을 공부해야 하고, 채식을 하면서도 근육질 몸을 유지할 수 있다는 증거와 사례들을 공부해야 했습니다. 

 

 

채식주의자를 대하는 자세... 나와 다른 남으로 인정했으면

10여 년 전만 해도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5%가 가축을 사육하는 과정에서 나온다”는 저의 주장은 환경운동가들조차 설득하기 어려웠습니다. 환경운동가들이 탈핵 캠페인이나 4대강 댐 반대 캠페인을 마치고 소주 한 잔에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오랫동안 채식주의 혹은 채식주의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지 않는 대부분의 육식주의자들의 공격을 피하는 비결도 있습니다. 내가 왜 채식을 하는 지 설명하는게 번거로운 식사자리에서는 “한약을 먹는데...한의사가 고기를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라고 말하면 아무도 저에게 고기를 권하지 않더군요. 제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채식을 선택했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강과 영양불균형에 관한 걱정을 이야기하는데... 한약 먹는다고 하면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이것은 바로 나와 다른 남을 받아들이는 ‘관용’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한약을 복용하는 동안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자신들도 모두 경험하는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지만,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건강하게 살기 위하여 채식을 하겠다는 별난 사람은 자신과 다름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어떻게든 자신과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노력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사회에 채식 문화가 확대되는 것은 이런 측면에서도 아주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이나 성소수자 혹은 피부 색깔이나 외모가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채식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이해해주는 사회 문화적인 인식 변화가 시작되는 신호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15~6년 전에 약 보름 동안 영국과 프랑스의 시민단체 활동을 견학하러 갔던 일이 있습니다. 그 때 참 놀라웠던 것은 프랑스나 영국의 공공기관이나 시민단체와 함께 하는 모든 식사 모임 전에는 저희 일행 중에 채식주의자가 있는지 꼭 확인하고, 반드시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사 준비를 함께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더욱 놀랍고 안타까웠던 것은 저희 일행을 보름동안 안내했던 한국 여행사와 현지 한국인 가이드는 단 한 번도 일행 중에 채식하는 사람이 있는지 묻지 않았고 식사 때 채식인을 배려하여 메뉴를 정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20년 가까이 채식주의자로 살고 있고, 한국에서 태어나 50년을 훨씬 넘게 살고 있지만, 식사 모임에 앞서서 ‘채식하는 사람이 있는 지?’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모임은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일이 없습니다.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르겠는데...10년 쯤 전에 민주화운동 단체가 주최하는 국제 행사에 갔더니 외국인 채식주의자를 배려하여 최선을 다해 준비한 점심식사가 ‘뷔페’라고 하여 주최측도 아닌 제가 얼굴이 화끈 거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외국 손님을 초청해놓고 뷔페에 여러 음식을 차려놨으니...알아서 고기는 먹지 말고, 곡식과 야채와 채소만 골라서 먹으라고 하는 것은 손님 접대가 아니라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가 휩쓸고 지나가는 2021년 한국에도 그리고 제가 사는 경남과 창원에도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그 일환으로 채식 보급이 늘어난다고 하니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단순히 고기대신 야채와 곡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채식주의자를 대하는 인식 변화가 함께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2015년 채식을 포기한 저는 지금은 "가급적 채식주의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다시 비건이 되는 날을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