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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민주주의와 불평등 그리고 지방소멸

by 이윤기 2022.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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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KBS1 라디오 <시사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2021. 7. 12 방송분)

 

오늘은 지난 7월 9일 금요일에,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에서 개최한 사회포럼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부마항쟁 42주년을 기념하는 사회포럼, 올해는 민주주의 진전이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가? 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는데요. 이날 토론회에서 이슈가 되었던 민주주의와 불평등 문제 그리고 지방소멸 문제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사실 이번 토론회의 주제가 ‘민주주의 진전이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할 있는가?로 정해진 것은 올봄에 온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LH사태와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부동산 투기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민주주의가 정착되면 불평등도 함께 줄어드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기조강연을 맡은 대구 가톨릭대학교 전강수 교수님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습니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부마민주항쟁으로부터 4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우리사회의 민주주의가 많이 진전된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주의가 진전된다고 해서 경제적 불평등이 저절로 해소되지는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전강수 교수는 21세기 자본으로 유명한 토마 키케티를 인용하면서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선거제도는 반드시 조세 재정 제도로 보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민주주의를 기본 토대로 종합부동산세와 같은 조세 제도 그리고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 개발이익환수제도 강화, 지역균형발전 추진, 토지공공임대제 도입과 같은 재정 제도가 보완되어야 부동산 투기를 막을 수 있고,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강수 교수는 이날 기조 강연에서 헨리 조지의 지공주의 사상에 기초하여 불평등 해소 방안을 제안하였는데요. 지공주의는 물, 공기처럼 토지에 대해서도 모두가 평등하게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상입니다. 130년 전 헨리 조지가 쓴 <진보와 빈곤>을 인용하여 오늘 우리사회의 모습을 다시 돌아 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민주주의는 한 때 국가적 행복의 근원이라고 신뢰 되기도 했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국민은 전반적으로 부패의 증가에 익숙해 있다. 가장 불길한 징조는 사람들이 청렴한 공직자가 없다고 생각하고, 또 청렴한 공직자가 있다면 이는 자기의 기회를 이용할 줄 모르는 바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부패가 만성화되고, 공공심이 소멸되고, 명예와 선생과 애국심의 전통이 약해지고, 법이 무시되고, 개혁의 가망이 사라지면, 고통 받는 대중 속에서 화산과 같은 힘이 생겨 어떤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을 계기로 하여 사회를 산산조각 내고 만다. 이런 와중에 강력하고 분별없는 자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대중의 맹목적 욕구 또는 대중의 광포한 열기를 이용하여, 이미 활력을 상실한 민주주의라는 형식을 제쳐 놓게 된다.”

130년 전 미국을 보고 쓴 글인데, 국가 전체의 부는 점점 증가하는데도 불구하고, 사회적 불평등은 점점 심화되는 1970년 대 이후 고도성장을 이룩한 한국 사회 특히 부동산 투기로 휘청거리는 우리 사회를 보고 쓴 글 같다는 생각이 들어 섬뜩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결국 민주주의가 정착되어도 저절로 불평등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조세제도와 재정제도를 활용하여 불평등을 잘 해소할 수 있을 때, 민주주의도 제대로 꽃피울 수 있다는 확신을 다시 한 번 갖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세션에서은 오늘날, 심각한 불평등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지방소멸에 관하여 토론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이날 토론자로 KBS 시사기획 창, 지방은 어떻게 사라지나를 취재하고, 특집 다큐 소멸의 땅을 연출했던 이형관 기자가 참가하였는데요, 장기간에 걸친 현장 취재와 빅데이터 분석의 결과물 통해 지방 소멸의 심각성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LH사태에서 보신 것처럼, 수도권에는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대규모 주택공급정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만, 지방에서는 빈집이 속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주택 10채 중 1채는 빈집이고, 수도권의 빈집률은 4.93%이지만, 지방의 빈집율은 10.65%나 된다고 합니다. 지방은 급격한 인구감소 때문에 계속해서 빈집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앞으로 30년 후에는 우리나라 지방 시군구의 46%가 소멸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이른바 지방소멸 위험지수라는 것이 있는데, 이 값이 0.5 아래로 내려 가면 인구 감소로 지방자치단체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고용정보원의 조사 결과 작년 5월 기준으로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42%가 소멸 위험지역으로 분류되었다고 합니다. 지난 2014년만 하더라도 79곳이었는데, 2016년에는 84곳으로 늘었고, 2018년에는 89곳으로 늘었으며, 2019년에는 105곳까지 늘어났다고 합니다.

105곳의 인구 소멸 위험지역 가운데, 92%인 97곳이 비수도권 지방 도시이고, 소멸 위험 순위를 보면, 1위가 경북 군위군, 2위가 경북 의성군, 2위는 전남 고흥군, 4위는 저희 지역인 경남 합천군이라고 합니다. 시 단위로 보면 전북 김제시, 경북 문경시, 경남 밀양시 순서이며, 광역도시에서는 부산 영도구, 부산 동구, 부산 중구, 부산 서구 등이 위험 지역에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지방소멸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우리나라 전체의 출산율 저하와 인구감소도 원인이지만, 더 심각한 원인은 지방에 살던 사람들이 끊임없이 서울과 경기도,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불평등 측면에서 보면 출산율 저하보다 더 심각한 것이 수도권으로의 인구 순 유출 현상입니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수도권 인구는 전체 인구의 28%에 불과하였는데, 2000년에는 46.3%, 2010년에는 49.2%로 늘어났으며, 2019년에는 50%를 초과하여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토 면적의 11.8% 밖에 안 되는 수도권에 50%가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인구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기형적인 왜곡현상과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통계 자료를 보면 더욱 심각한데요, 수도권은 우리나라 경제력의 2/3, 국세 수입분의 3/4을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심각한 집중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서울과 수도권에서 코로나-19가 급속하게 확산되고 4차 대유행으로 번지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수도권 집중 현상에 따른 부작용과 병리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KBS에서 수도권 집중현상의 원인을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사람들은 일자리와 교육 때문에 수도권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하였답니다. 실제로 2019년 한 해 동안 전국의 지방도시에서 모두 48만명이 수도권으로 이동하였고, 이 가운데 56%는 2030세대 청년들이었습니다.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같은 시기 19~34세 청년 인구가 수도권으로 이동한 자료를 보면, 경남은 1만 2613명, 대구 1만 2293명, 부산 1만 2003명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수도권 집중 때문에 수도권은 잇 따른 공급정책에도 주택보급률이 더 늘어나지 않고, 그 결과는 집값 폭등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수도권에 집과 땅을 가진 사람들은 가만히 있어도 점점 더 부자가 되고 있고,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임금 소득이 늘어나도 집값, 땅값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기 때문에 점점 더 빈부격차가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함께 토론자로 나선 경남대학교 안차수 교수께서는 문화적 측면에서 지방소멸의 위험을 짚어주셨는데요. 지방소멸의 위험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지방교육의 붕괴와 지역 언론이 붕괴되고 있는 현실을 이야기하였습니다. 항간에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지방대학이 붕괴할 것이라고 했는데, 현실은 순서와 상관없이 지방대학이 붕괴하고 있었습니다. 지방대학의 충원율은 75%이고, 전문대는 59.6% 밖에 안 되기 때문에 결국 학생 미충원은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 우리 정부의 대학지원은 전체 220개 대학 중에 상위 세 군데 대학에 무려 17.9%가 지원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언론사의 경우도 서울 집중 현상이 심각한데, 지상파 방송 종사자 숫자만 봐도 전체 1만 4000명 중에 1만명 이상이 서울에서 일하고 있고, 경기도가 284명, 경남은 132명에 불과하였습니다. 안차수 교수는 특단의 대책과 함께 문제 의식을 가진 지방 사람들의 인식 전환이 없으면 회복하기 어렵다고 진단하더군요.

요약해보면, 2003년 참여정부가 시작한 지방혁신도시가 그나마 수도권 집중 현상을 막고, 공공기관이 이전한 도시에 인구가 늘고 산업이 성장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 실증적으로 확인된 만큼 2기, 3기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더 강력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아울러 지방이 살아나려면, 청년들이 태어나서 자랐던 지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측면에서 지방민들의 식민성이 극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전국 어디나 다 만들 수 있는 이건희 컬렉션 미술관이 아니라 민주화의 도시, 노동자 도시 창원에만 가능한 전태일 미술관, 노동 미술관과 같은 지역성을 완벽하게 내세우는 컨텐츠로 차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