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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아버지 고향 어딘지 왜 물어보냐고?

by 이윤기 2022.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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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KBS1 라디오 <시사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2021. 9. 27 방송분)



지난봄 민간 싱크탱크를 지향하는 희망제작소에서 ‘지역차별언어’ 때문에 피해나 불편을 경험하였는지를 조사하였습니다. 희망제작소 후원 회원과 일반 시민 450명을 상대로 조사하였는데, 응답자 10명 9명이 지역차별언어로 피해를 경험하였다고 응답하였다고 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고 있는 지역차별 언어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먼저 차별의 의미를 한번 되새겨 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차별금지법에서는 성별, 장애 여부, 나이, 언어, 출신 국가,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 지역, 용모,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여부,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 학력, 고용 형태, 병력, 건강 상태 그리고 사회적 신분으로 차별하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에도 언어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대체로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 때문에 차별해서는 안되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실생활에서는 지역차별적인 의미가 포함된 차별언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응답자의 12%는 일상적으로 언어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고 답하였고, 자주 차별을 경험한다는 응답자가 27%, 보통이다 18%, 가끔 경험한다 35%였으며, 전혀 경험한 일이 없다는 응답은 8%에 불과하였습니다. 

언어차별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비슷한 조사가 국가인권위위회에서도 진행되었는데, 바로 2019년에 진행된 <혐오 표현 국민인식조사>입니다. 1200명이 참여한 국가인권위 조사에서 응답자의 64.2%는 혐오 표현을 경험하였다고 응답하였고, 이 중 74.6%는 특정 지역 출신을 혐오하는 표현을 가장 자주 경험하였다고 응답하였습니다. 그 밖에도 여성, 노인, 이주민, 성소수자, 페미니스트에 대한 혐오 표현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각각 60 ~ 70%사이였으며, 남성과 장애인에 대한 혐오표현을 경험하였다는 응답은 각각 58%, 59%로 조사되었습니다. 

지역차별 언어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한 혐오 표현 만큼 심각하지는 않지만,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 의식 없이 더 폭넓게, 더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또 다른 측면의 문제가 있습니다. 예컨대 지역차별언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지역차별언어 때문에 누군가는 불편하게 느낀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청취자 여러분들도 입에 익은 표현일텐데, 가장 대표적인 지역 차별 언어로 꼽을 수 있는 것이“서울에 올라간다”, “창원에 내려간다”는 표현이 있을 거구요. 서울을 일컬어 서울지역 혹은 서울 지방이라고 하지 않고 “중앙”이라고 하는 표현도 대표적 사례입니다. 또 여의도 면적의 몇 배라고 표현하는 서울 중심적인 표현도 흔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표현으로 ‘전라디언’ 홍어, 개쌍도와 같은 혐오 표현은 훨씬 심각한 차별언어로 평가되지만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 참가한 시민들은 우리가 평소에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고 사용했던 표현들도 지역차별언어로 꼽았는데요. 한 번쯤 새겨볼 만한 표현들입니다. 

아버지 고향 어딘지 왜 물어볼까?

이를테면, 창원이 고향이면 부모님이 농사짓겠네, 마산이 고향이면 부모님이 고기잡이하시는가? 너희 지역에 스타벅스 있어? 같은 표현들을 지적하였고, 사투리가 귀엽다, “오빠야 ~ 해봐”와 같은 표현들도 차별언어라고 지적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 있습니다. 20-30대 젊은이들이 꼽은 이해할 수 없는 질문에는 “아버지 고향이 어디지?”와 같은 질문이 있었고, 더 흔한 표현으로는 “어디 사람이세요?” 하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이 연구를 수행했던 희망제작소 연구자들은 어디 사람인지 묻기보다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라고 제안하더군요.  

사람들이 편견을 가지고 많이 사용하는 지역차별언어로는 “충청도 사람은 속을 알 수 없어”, “전라도 사람들은 뒤통수를 친다, 경상도 사람들은 보수적이다. 서울사람들은 깍쟁이다. 대구 남자는 남편감으로 빵점이다. 충청도사람들 박쥐같이 여기붙었다저기붙었다 한다, 부산사람은 말할 때 화가 많다” 와 같은 표현들이 지적되었습니다. 

청년들이 꼽은 대표적인 지역 차별 중에 하나는 사투리를 고치라는 압박이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영남지역 모 국립대학은 취업을 앞둔 학생들을 위해 ‘표준어 구사능력 향상과정’이라는 강좌를 개설하였고, 서울, 경기지역 취업을 위해 사투리 교정 학원을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사투리와 관련해서는 “경상도 사투리 귀엽다” “사투리로 말해봐”라며 억지로 사투리를 시키거나, “블루베리 스무디 해봐”라며 사투리 억양을 구경거리처럼 취급하는 것도 지역차별언어 사용 사례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사투리가 무식해보인다고?

그 밖에도 “사투리는 무식해보인다.”, “사투리는 비전문적인 느낌이다.”, “서울말 이젠 잘 하네”, “사투리 많이 고쳤네”, “한 2~3년 지내면 표준어 쓸 수 있을 거야”, “노래할 때는 사투리 안 쓰네”, “경상도 출신인데 왜 경상도 사투리를 안 써?”, “너는 사투리쓰니까 PT발표는 하지마라” 와 같은 표현도 차별언어로 꼽혔습니다. 

사실, 사투리나 방언이라는 표현도 차별과 비하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보니 최근에는 사투리 대신에 ‘지역어’라는 표현을 권장하기도 합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지역어에는 표준어에 없는 다양한 감정과 의미가 담겨 있는 소중한 우리 문화가 담겨 있기 때문에 지키고 보존해야 한다며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희망제작소 연구자들은 사투리를 고친다는 표현 자체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차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사투리를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는 사회적 신호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누군가 꼭 필요해서 표준어를 배워야 한다면, 사투리를 고친다가 아니라 표준어를 익힌다고 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지역차별표현을 쓰는 사람들 대부분은 상대방을 차별하기 위해 이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겠지만, 상대방이 이런 말들로 상처를 입고 차별을 느낀다면 존중과 배려의 차원에서라도 문제 의식을 갖는 편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표현을 쓰는 사람들이 나쁜 사람이라거나 이런 표현을 꼭 시정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역 차별 언어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이런 표현을 듣는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하며, 여러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책을 보면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자신도 느끼지 못한 채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불평등한 구조가 너무 공공연하고 공기처럼 당연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우리를 둘러싼 말과 생각을 다시 훓어보는 작업이 거듭되어야 온전한 평등을 꿈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세한 차별언어를 감지하는 언어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언어 감수성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기 때문에 늘 공부하고 깊이 생각하면서 노력하면서 고쳐나가야 합니다. 

특히 지역에 사는 우리들부터 ‘서울에 올라간다’와 같이 스스로를 낮춰왔던 언어습관을 고쳐나가고 그동안 지역차별적인 언어표현이 불편해도 참고 받아들였다면, 이젠 불편하다고 말하고, 함께 고쳐나가자고 먼저 제안해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