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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연구/민간단체소비자운동의 형성과 활동성과

지역 민간단체 소비자운동의 형성과 활동성과-24

by 이윤기 2022.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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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헤나 염모제 피해구제 활동

  우리나라에서 영구염모제는 약사법 제2조 제7항의 나목에 따라 의약외품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반영구염모제나 일시염모제는 화장품으로 분류한다. 헤나(Henna, Lawsonia inermis lythraceae)는 인도, 네팔 등에서 자라는 열대성 관목 식물의 잎을 말린 가루로 염모제나 문신염료로 이용되며, 물이나 아로마오일과 혼합하여 문신염료 또는 두피 염모제의 원료로 사용되었다. 문신염료나 염모제 상품으로 만들어지면서 짙고 빠른 염색을 위해 원제품에 공업용 착색제(파라페닐렌디아민 등) 또는 다른 식물성 염료(인디고페라엽가루 등)을 넣기도 하는데, 이러한 물질로 인해 발진, 가려움, 착색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한국소비자원, 2018).


  한국소비자원이 처음으로 헤나 염모제의 위험을 경고한 것은 2005년 7월에 발표한‘헤나 문신·헤나 염모제 안전성 실태조사’를 통해서이다. 당시 헤나 문신이 젊은 층에서 인기를 끌었고, 천연성분으로 알려진 헤나 염모제도 모발건강에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소비가 증가하던 때이다. 보통 염모제 수입을 위해서는 안전성과 관련한 자료를 제출해야 하지만, 2개국 이상에서 판매된다는 증명서를 제출하면 독성자료 제출을 면제받고 수입되었다. 한국소비자원 보고서(2005)에도 미국(FDA)는 천연헤나에 대해 화장품 중 머리카락 염색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었고, EU에서도 헤나문신에 사용되는 염료가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소비자원이 헤나 염료 19종(문신 11종, 염모제 8종)을 조사한 결과 12종에서 PPDA성분이 검출되었으며, 17종에서 니켈, 6종에서 코발트 성분이 검출되었다. 또한 제품표시 자체가 없거나 제품명만 표기되어 ‘소비자가 심각한 부작용을 당하더라도 치료비 등 손해배상을 받기 어려운 실정임’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화장품 또는 의약외품이 아닌 상태로 미용실, 네일아트, 스킨 아트 등으로 불량제품이 유통되면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가 위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였다. 그러나 결과조치는 헤나 염료에 대한 규정 마련과 기준초과 제품에 대한 회수, 판매금지 및 관리감독 강화를 정부(식품의약품안전청)에 건의하고, 언론매체를 통해서만 소비자들에게 홍보하는 소극적 대응에 그쳤다(한국소비자원, 2005).


  한국소비자원이 천연 염모제로 알려진 헤나의 피해사례를 구체적으로 알리고 소비자들의 주의를 촉구한 것은 2005년 첫 실태조사 발표 후 13년이 지난 2018년 12월이었다. 2015년 이후 한국소비자원 위해감시시스템 소비자기본법에 따라 전국 62개 병원, 18개 소방서 등 80개 위해정보제출기관과 1372소비자상담센터 등을 통해 위해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평가하는 시스템(CISS, Consumer Injury Surveillance System)
에 접수된 헤나 관련 위해 사례는 총 108건이었으며, 2015년 4건, 2016년 11건, 2017년 31건, 2018년 62건으로 급증하였다. 품목별로는 헤나 염모제가 105건(97.2%), 성별로는 여성이 98건(90.7%), 연령대는 40~50대가 52건(73.2%) 을 차지하였다. 

 

부작용은 피부발진, 진물, 가려움, 착색 등 여러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났는데, 가장 많은 피해 유형인 ‘피부착색’이 64건(59.3%)을 차지하였다(한국소비자원, 2018). 피부착색이란 헤나 염모제 사용 후 이마, 얼굴, 목 부위로 진한 갈색 색소침착이 나타나 검게 착색되어 수개월에서 수년간 지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당시만 해도 헤나는 천연원료를 사용하여 부작용이 없는 제품으로 알고 있는 소비자들이 많았고, 사업자들도 소비자들이 부작용이 없는 천연제품으로 오인하도록‘모발이 굵어지고’, 건강한 모발로 회복’, ‘모발 성장 촉진’, 탈모 예방’,‘무독성’,‘무자극’,‘인체무해’등의 문구를 포함한 표시·광고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성분에는 접촉피부염 등을 일으킬 수 있는 화학첨가제가 포함되어 있었다(한국소비자원, 2018).


  마산YMCA 시민중계실에서 헤나 염모제 피해사례에 집중하게 된 것은 자원상담원 회장이었던 한OO이 피해 당사자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2016년 무렵에는 얼굴 피부가 검게 착색되는 엄청난 피해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피해구제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한국소비자원의 헤나 염모제 및 문신염료 관련 위해사례 분석 보고서(2018)에도 피해구제 대책은 없고, 피해 발생을 막기 위한 소비자들의 전 성분 확인 권장, 제품 사용 수칙 준수, 사용전 페치테스트, 사용 시간 준수 등의 주의사항뿐이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에 2017년 한 해 동안 접수된 염모제 관련 피해사례는 모두 455건이었고, 부작용을 호소하는 상담은 151건, 그중 87명(57.6%)은 병원 진료를 받았으며, 색소침착(피부변색)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는 32건이었다. 이들은 머리, 얼굴, 목까지 색소침착이 확대되어 레이저 시술 등 장기간의 치료를 받아야 했고, 외출 등 사회활동을 하기 어려워 우울증을 호소하는 등 피해가 커졌지만, 정확한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위한 의사 소견서를 받기가 쉽지 않았다. 의사가 소견서를 작성할 때 염색약 부작용임을 적시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았고 제조업자나 보험회사의 경우 제품명까지 밝히지 않으면 책임을 회피하여 피해구제가 어려웠다(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2018).


  한편, 2017년 5월 마산YMCA 시민중계실은 소속 자원상담원 한OO이 헤나 염모제 사용 후에 피부착색이 일어나는 부작용을 겪게 되면서 적극적으로 피해구제에 나서게 되었다. 한OO은 종합병원인 OO대학 병원에서 염모제로 인한 피부착색이 일어났다는 진단과 소견을 받고, 2018년 3월, 자신이 가입하고 있던 OO화재보험에 실손보험 지급 신청을 문의하였으나 보험사 창구에서 서류 접수조차 거절당하였다. 

 

여러 차례 보험금 청구신청과 보험사의 접수 거절이 반복되었으나, 마산YMCA 소속 소비자상담원임을 밝힌 후에 서류 접수가 받아들여졌고, 마침내 2018년 4월에 치료비와 후유장애보험료 등 1,400여만 원을 지급받았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염모제 피해자들은 염색제 부작용임이 적시된 의사의 진단서를 받는 것이 어려워 실손보험 신청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보험회사들도 피부미용시술이라는 핑계로 손실 보상을 회피하는 가운데, 마산YMCA 시민중계실 한OO 상담원이 처음으로 실손보험금 지급 사례를 만들었다. 다음은 한OO의 피해사례와 대응 과정이다. 

  2002년 무렵부터 염모제를 사용해왔던 피해자 한OO은 2017년 5월 천연염색이라고 광고하는 헤나염색약을 사용하여 두 차례 염색을 한 후, 두피와 이마에서 얼굴부위로 피부에 검정색 색소침착이 일어났다. 원인을 알 수 없었던 초기에는 큰 병이 생긴 줄 알고 걱정을 많이 하였고, 얼굴 피부가 검게 색소침착이 되어 외출하기도 어려웠으며, 사람을 만나는 것도 기피하게 되었다. 피부과 전문병원에서 진료하였더니 색소침착으로 30~40회 레이저시술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레이저 시술의 경우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기 때문에 소비자가 회당 5~30만 원의 진료비를 부담하였고, 실손보험에 가입되어 있어도 보험회사는 보상을 거절하였다. 

 

당시 보험회사는 “레이저 시술이 미용시술로 분류되기 때문에 치료목적이 아니면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보상을 거절하였다. 레이저시술 15회 시술 후에도 차도가 없어 OO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며 보관하고 있던 염색약으로 페치테스트를 받아 양성 반응이 나왔다. OO대학병원에서 패치테스트 양성 반응과 염모제에 의한 피부색소 침착이라는 의사 진단서를 발급받아 OO보험에 실손보험을 청구하여 약 1,400여만 원의 치료비를 실손보험금으로 지급받았다. 

 

이와 별도로 사업자의 책임을 묻기 위한 손해배상도 요구하였는데, 사업자는 약값으로 5만 4천원을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턱 없이 적은 손해배상을 받아들일 수 없어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였으나 1차 소액심판에서는 패소하였다. 그러나, 다수 소비자들이 한국소비자원을 통한 피해구제신청을 하고 소비자분쟁조정이 진행되면서 사업자측의 적극적인 합의 요청이 있었고, 헤나염모제 피해 사실과 손해배상 합의 금액 비공개를 조건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2018년 5월 31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주최한 ‘염모제 등 화장품 안전관리 방안 소비자 포럼’에서 한OO 상담원이 피해와 실손보험금을 지급받은 사례를 발표하자 한국소비자원이 발간하는 소비자시대를 비롯한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고, 전국에서 유사한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의 피해구제 상담이 집중되었다. 부산, 대전 지역에서는 피해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한OO 상담원을 초청하여 사례를 듣고 실제로 약 35명의 피해자들이 보험사에 실손보험 청구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피해 소비자 모두가 실손보험에 가입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제조사와 유통회사에 손해배상을 받아야 했다. 


  실손보험과 별도로 손해배상을 받기 위하여 2019년 3월 14일에는 전국에서 헤나 염모제 피해로 상담을 신청한 30명의 피해자들이 마산YMCA에 모여 사례를 공유하고 대응방안을 논의한 후 한국소비자원에 집단으로 피해구제신청을 하였다.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각각 소비자들의 피해 정도에 따라 조정 결정을 하였는데, 2019년 12월 9일에 인터넷 쇼핑몰에서 헤나 염색약을 구입하여 사용하고 피해를 입은 소비자 백OO에게 2,545만 원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 결정을 받은 것을 비롯하여 모든 피해자에게 조정 결정이 이루어졌다. 

 

한국소비자원의 손해배상 조정 결정 후 헤나 염색제 제조, 유통회사들이 적극적으로 합의를 시도하였는데, 피해 정도에 따라 300~500만 원 혹은 1,000~2,000만 원의 손해배상이 이루어졌다. 제조·유통회사들은 합의 과정에서 피해사실 공개와 합의 금액에 대한 비밀준수를 요구하여 개인별 손해배상 금액을 확인하지는 못하였다. 한편 소수의 피해자는 사업자가 폐업하거나 손해배상 여력이 없는 영세한 사업자인 경우도 있었고, 개인이 실손보험조차 가입하지 않은 경우 보험료 지급도 못 받는 안타까운 사례도 있었다. 


  마산YMCA 시민중계실에는 2018년 5월부터 2019년 연말까지 약 71건의 헤나 염모제(안면 피부색소 침착) 피해사례가 접수되었고, 실손보험 청구 절차, 한국소비자원 피해구제 신청, 사업자와 손해배상 및 합의 과정을 상세히 안내하고 서류 준비와 접수를 지원하였다(<그림 3>).
 


  특히 실손보험료 청구는 전국에서 최초로 사례를 만들어 유사한 피해를 당한 소비자들이 실손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마산YMCA 피해구제와 상담사례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를 통해 전국의 소비자단체로 확산시켰다. 아울러 30여 명의 유사 피해소비자를 모아 한국소비자원 피해구제 신청과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 손해배상 조정 결정을 이끌어냄으로써 소송을 거치지 않고 사업자와 합의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실손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소비자들은 치료비를 본인이 부담해야 하였고, 영세사업자가 판매한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들은 제대로 손해배상을 받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다(<표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