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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마산앞바다, 아무나 수영할 수 있어야

by 이윤기 2023.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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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KBS1 라디오 <라이브 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2022. 6. 6 방송분)

 

수영할 수 있는 바다? 시민들이 수영하는 바다

야구장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록밴드 노브레인의 노래 “컴온컴온 마산 스트리트여” 가사 중에는 “콜라빛 나는 바닷물”이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어린 소년의 눈에 콜라빛깔처럼 오염이 심했던 마산만을 노래한 가사인데요. 그랬던 마산앞바다에 몇 년 전 ‘잘피’가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잘피가 돌아 온 마산앞바다를 앞으로도 계속 눈으로만 바라봐야 하는 지 함께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잘피는 바닷물 속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여러해살이풀로 건강한 연안생태계를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해양생물 중 하나입니다. 다양한 해양생물의 산란 및 서식지를 제공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며 해양생물들에게 산소를 공급해주는 이로운 새물입니다. 잘피는 환경오염이 심한 바다에서 살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잘피의 서식 여부로 오염정도를 판단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마산앞바다에 수질이 많이 깨끗해졌다는 걸 상징적으로 “잘피가 돌아왔다”는 이야기 할 때, “잘피가 돌아왔다”하고 표현하곤 합니다. 실제로 마산앞바다 연안에는 잘피뿐만 아니라 연어, 은어 수달이 돌아오고 있고, 새로 조성된 315해양누리공원에는 시민들과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315해양누리공원에 몰려든 시민들 중에는 푸른 물결의 바다, 숭어 떼가 뛰는 바다를 보며 참 좋아졌다고 느끼면서도 왜 이 바다를 눈으로만 바라보아야 하는지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 315해양누리공원이 조성된 이 바다에는 월포해수욕장이 있었습니다. 월포해수욕장은 원산의 명사십리에 비견되었는데, 물결이 잔잔하면서 물이 차지 않고, 멀리까지 수심이 얕았으며 모래가 깨끗하고 해변에는 창창한 송림이 쭉 늘어져서 문자 그대로 백사청송의 경치였다고 합니다. 이 월포해수욕장은 당시 마산 시민들에게만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름철이면 서울에서 임시 열차가 편성될 만큼 전국적인 명소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제 치하였던 1930년대 조선총독부가 중일 전쟁을 치르면서 전쟁 물자를 나르는 부두 매립해 버렸습니다. 해방이 되었지만 이 부두는 마산시민들에게 되돌아오지 않고 이번엔 국가항만으로 지정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1954년 가포해수욕장을 개장하였지만, 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섬 개발로 대표되는 산업화로 인한 오폐수가 쏟아지면서 불과 20년 만에 폐장되어 버렸고 1979년에는 어패류 채취와 수영이 금지되었습니다.

 

시인 이선관은 썩어가는 마산앞 바다를 보며 “바다에서/ 둔탁한 소리가 난다./ 이따이 이따이”, “어린교 아래로/ 빨간물이 내려간다./ 이따이 이따이” 하는 연작시 독수대를 남겼습니다.

 
이렇게 죽어가던 마산만이 다시 살아난 것은 2000년 이후 연안오염총량관리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수질개선 정책이 시행되면서부터입니다. 오랜 시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그리고 민관협력을 통해 조금씩 수질이 개선되었고, 드디어 잘피가 돌아오는 바다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2020년 환경의 날에 즈음하여 허성무 시장과 수영동호인들이 돝섬 앞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이벤트를 연출하였고, 2021년 가을에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315해양누리공원 앞바다에서 철인 3종 경기가 열려 90년 만에 월포해수욕장이 있던 바다에서 다시 시민들이 헤엄을 치는 장관이 연출되기도 하였습니다.

 
시인 이선관은 1996년 발표한 「마산은 항구지만 바다는 없다」라는 시에서 “오늘도 마산은 항구다./ 그러나 마산에 바다는 없다./ 마산은 항구지만 바다는 없다./ 없다.”라고 탄식하였습니다. 

 


다행히 1930년대 매립 이후 90년 만에 창원시가 해수부로부터 부두 관리 권한 일부를 되찾아와서 ‘315해양누리공원’을 조성하였고, 시민들은 시내에서 항구가 아닌 바다를 갖게 되었습니다. 아직 전체 공원 조성이 끝나지 않았고 민주주의전당 같은 공공건물들도 들어서기도 전이지만, 90년 만에 해안선을 되찾은 창원시민들에게 핫플레이스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315해양누리공원 앞바다는 여전히 바라만보는 바다입니다. 작년 가을 90년 만에 처음으로 사람이 들어가 헤엄치는 철인 3종 경기가 열렸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여전히 그림의 떡에 불과합니다. 부산만 하더라도 시민들이 해운대, 송정, 광안리, 다대포, 송도 앞바다에서 사계절 바다 수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창원에 사는 많은 바다수영 동호인들은 차를 타고 부산으로 바다 수영을 하러 가고 있습니다. 90년 만에 시민들이 항구대신 바다가 되찾았지만, 여전히 눈으로만 보는 바다이기 때문입니다.  


해양누리공원이 만들어졌는데도 여전히 일반 시민들은 바다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인데요. 그 이유는 시민들이 보기엔 공원처럼 보이지만, 이 바다는 여전히 해양수산부가 관리권한을 국가항만이기 때문입니다. 마산만 정체가 국가항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창원시는 아무 권한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바닷물이 깨끗해지고, 시민들이 헤엄칠 수 있는 바다가 되었어도 시민들은 해양수산부장관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마산 앞바다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해양신도시가 인공섬과 315해양누리공원 사이에 있는 좁은 바다는 큰 배가 다니는 항로도 아니고, 섬을 잇는 다리 때문에 배가 다닐 수도 없습니다. 

왜 잘피와 은어가 돌아온 이 깨끗한 바다물에 시민들이 발을 담글 수도 없고 수영을 할 수도 없을까요?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마산YMCA 회원들이 지난 5월 31일 바다의 날을 기념하여 여기 바다에 들어가 수영을 하고, 바다를 시민에게 돌려달라는 캠페인을 하였습니다. 

1시간 넘게 수영을 하는 동안 공원에 나온 시민들이 깜짝 놀라서 지켜보셨고, 수영을 해도 될 만큼 깨끗하냐? 여기서 수영해도 괜찮냐하고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아직은 시민들이 아무 때나 바다에 들어가 수영을 할 수는 없습니다. YMCA 회원들은 해양수산부가 이젠 이 바다를 창원시민들에게 돌려달라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이 바다에 들어갔습니다. 


YMCA 회원들은 세 가지 공개 요청을 하였는데요, 첫 번째는 국가가 90년이나 썼으니 인공섬 안쪽 바다 관리 권한을 창원시로 넘겨달라는 것이구요. 두 번째는 시민들이 1년내내 바다 수영을 할 수 있도록 깨끗한 수질을 유지시켜 달라는 것이구요. 세 번째는 창원에서 생활체육인구가 가장 많은 수영동호인들이 바다 수영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편의시설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왜 법을 어기면서 바다에 들어갔냐고 물었더니, 마산앞바다는 환경 운동하는 활동가들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늘 수질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야 하는데, 그럴려면 시민들이 1년 내내 바다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시민들이 늘 바다에 드나들면 바다가 얼마나 깨끗해졌는지 혹은 얼마나 나빠지는지를 그때그때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선관 시인은 마산은 항구지만 바다는 없다고 하였는데, 이제 월포 앞바다가 시민들에게 돌아왔습니다. 이 바다가 눈으로만 보는 바다가 아니라 물장구도 치고 수영도 하고 조그만 배도 탈 수 있는 그런 바다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