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읽기

집은 왜 사용설명서가 없을까?

by 이윤기 2023. 8. 1.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창원 KBS1 라디오 <라이브 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2022. 8. 22 방송분)

 

 

우리가 상품을 사면 가격 여부에 상관없이 으레 따라오는 것이 있는데요. 바로 사용설명서입니다. 우리가 구입한 해당 상품의 특성이나 내용, 사용방법, 사용상의 주의해야 할 사항을 비롯하여 그 제품을 사용하는데 필요한 설명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매일 살고 있는 집은 왜 설명서가 없는가 하는 문제를 함께 짚어 보겠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집안을 둘러보면 옷장, 침대, 소파, TV, 냉장고, 세탁기를 비롯하여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작은 완구까지 그리고 부엌에서 사용하는 프라이팬이나 냄비 같은 경우에도 대부분 사용설명서가 첨부되어 있는데, 딱 하나 사용설명서가 없는 것이 있는데 바로 집자체입니다. 

 

남해군이 만든 내집 사용 설명서


집은 다른 가전제품이나 가구 같은 공산품에 비하면 훨씬 더 비싼 공산품이기도 하고, 짧게는 1~2년에서 길게는 50~60년 이상까지 거주하는 최고가 공산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집을 구입하고 사용설명서를 제공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주택은 평생에 한 두 번 정도 구입하는 상품이고, 동시에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을 들여서 구입하는 중요한 상품인데도 그 집을 구입하면서 사용설명서를 주고받지 않습니다.

소비자들이 주택에 관한 정보를 얻는 것은 건설업체의 브랜드, 그리고 복잡한 청약안내와 분양광고 혹은 부동산 중개업자의 말을 믿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새 아파트의 경우 모델하우스 등을 둘러보고 구입을 결정하기는 하지만, 모델하우스에도 실제 주택은 모델하우스와 다를 수도 있다는 주의문구가 부착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 이후에 분가하여 처음 주택에 세를 들어 살았고, 그 후 건축하고 10~20년이 지난 아파트로 세번 이사를 하였는데, 제가 살았던 어떤 집도 집에 세를 들어가거나 집을 구입할 때, ‘사용설명서’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TV, 냉장고는 과도할 만큼 상세한 사용설명서가 있는데, 집은 왜 사용설명서가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오고 있습니다. 

 

건물 기계장치 고장나면 찾아 볼 메뉴얼이 없다

특히 최근에 제가 근무하고 있는 YMCA 회관에 수도 펌프가 고장이 났을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YMCA 회관은 새로 지은지 5년쯤 되는 건물인데도 건물사용설명서가 없습니다. 평소에 문제의식이 있었던 저는 건물을 완공했을 때, 시공회사에 왜 건물사용 설명서를 안주느냐고 물었었는데, “사무총장님 그런 건 없습니다.”하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건물 사용하다가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주시면 됩니다.”하는 친절한 답을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새 건물에 살아보니, 수도 펌프가 고장이 나거나 밤에만 켜지도록 설정되어 있는 건물 외등 타이머 설정이 바뀐다거나 하는 크고 작은 불편한 일이 있을 때마다 시공회사에 전화를 하는 것은 서로에게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또 LED 등을 교체하거나 화장실이나 현관에 있는 직부등 같은 것을 교체하면서 일일이 기술자를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는데, 몇 와트 제품을 구입해야 하는지, 몇 볼트 제품을 구입해야 하는지를 확인하기가 어려워 애를 먹었던 경험도 있습니다. 

 

찰리 윙이 쓴 <내 집 사용설명서>


물론 아파트의 경우는 관리사무소가 있기 때문에 형편이 좀 다르기는 합니다만, 지금 제가 사는 아파트에 처음 이사를 왔을 때, 이전 거주자가 집안에 인터넷 배선함이 있는데도 인터넷 선을 방마다 노출해서 설치해놓은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이사하면서 배선함으로 인터넷을 연결하였습니다만, 역시 설명서가 없었기 때문에 인터넷 연결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장비를 구해와서 어느 선이 어느 방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모두 새로 확인을 하는 번거로운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최근 여러 가지 어렵고 불편한 상황을 겪으면서 왜 주택사용설명서는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여러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2020년 이후에 서귀포시를 비롯한 몇몇 시군에서 ‘내집 사용설명서’를 교부하고 있었고, 경남에서도 남해군과 합천군 등에서 새집에 입주하는 입주자들에게 “내집 사용설명서”를 교부하고 있었습니다. 

 

남해군에서는 군청이 내집 사용설명서 배포

남해군이 당시 전국 최초로 건축민원팀 특수시책 사업으로 하여 만든 내 집 사용설명서는 군내에 새로 사용승인된 단독주택들이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내집사용설명서는 주택을 사용하면서 발생되는 재난 및 위급사항에 대한 대응법, 주택관리 정보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 지혜까지 담아 건축주들이 한 번 쯤은 겪게 되는 불편함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안내하였습니다. 합천군이 만든 우리집 사용설명서도 겨울철 배관 동파·보일러 고장·정전시 대처법, 전기 안전사용 요령, 화장실 악취제거법과 같은 유익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것은 남해군이나 합천군의 ‘내 집 사용설명서’역시 새로 지은 집에 입주하는 건축주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내용은 담았지만, 각각의 주택마다 다른 설계와 다른 자재를 사용하여 다른 시설을 설치한 것에 딱 맞는 맞춤형 설명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새로 지은 집이라도 어떤 집은 상수도를 사용하고, 어떤 집은 지하수를 사용하며, 어떤 집은 도시가스를 쓰고, 어떤 집은 LPG 가스를 사용하는 등 서로 다른 집들에 딱 맞는 설명서가 건축주에게 제공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한편 2015년 경기도 남양주시가 모 대형건설사에서 짓는 아파트 시공회사와 협력하여, ‘우리 집 사용설명서’를 책자와 CD로 제작해 입주민에게 배포하였고, 여러 아파트에서 사용설명서 배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사용설명서에는 입주할 때 일어날 수 있는 필요한 정보를 담아 품질보증서와 함께 아파트 단지의 개요, 입주생활에 관한 사항, 단지와 세대내부 시설·설비 및 관리에 관한 사항, 세대 내 생활 관련 사항, 주변 편의시설이나 기반시설 등 주위 환경에 대한 정보까지 제공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 법으로 정한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아닌 경우에는 이런 사용설명서 교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집 사고 팔 때...내집 사용설명서도 인수인계 해야...

아파트의 경우도 점점 첨단 설비가 갖춰지고 있습니다. 과거 자동차는 기계장치였지만, 요즘 자동차는 전자제어시스템으로 바뀐 것처럼 공동주택도 고도화·첨단화되고 있습니다. ‘스마트 홈’이라 불리는 자동제어시스템과 원격제어시스템화 되는 등 주택에 전자제어시스템이 도입되고 있지요.  

 

환기, 기밀, 단열 문제도 재료의 문제로만 다뤄지는 것이 아니라 건강과 에너지의 절약의 차원으로 확대됐고, 저에너지 주택, 나아가서 제로에너지주택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소음의 문제도 바닥 구조와 마감 재료와 구법의 연관관계와 화장실 설비 소음을 위한 다양한 방법 등의 도입으로 변화했습니다. 화재와 피난에 따른 다양한 설비와 공간, 피난방법 문제도 발코니의 확장과 관련하여 변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사용 방법을 넘어서서 필요한 설비의 유지관리 및 보수 방법 등에 대한 설명이 있으면 간단하게 고칠 수 있고, 어떤 회사의 어떤 제품으로 시공했는지 그리고  서비스업체에 대한 정보가 있으면 편리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택이나 건물을 설계한 건축사와 건물을 시공한 전문가가 사용자를 위해 자세한 설명서를 만들어주고, 집주인이 바뀌면 다음 주인에게 꼭 전달하게 법과 제도를 바꾸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국민 권익보호와 주택 사용자 편의 증진을 위해 꼭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