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읽기 - 교통

대중교통 활성화 안 되면...파업 해도 해결 안돼

by 이윤기 2024. 3. 21.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창원 KBS1 라디오 <라이브 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2023. 4. 24 방송분)

 

지난 4월 19일 창원 시내버스 689대가 일제히 운행을 중단하여,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는데요. 다행히 창원시의 중재로 하루 만인 20일부터 운행을 재개하였습니다. 오늘은 매년 반복되고 있는 창원 시내버스 파업 문제에 관하여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먼저 시내버스 파업을 바라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파업이 시내버스 노동자들의 고유한 권한이라는 것입니다. 시내버스 파업으로 불편을 겪는 시민들이나 이를 취재하는 기자분들이 가지는 공통된 첫 번째 인식은 “파업으로 인한 시민의 불편”에 관한 부분입니다. 시내버스 파업을 지켜보는 시민들과 언론의 반응을 보면, “준공영제에도 멈춘 창원 시내버스...공익성 담보 없인 반복 우려”라고 보도하였고, 또 다른 지역 신문은 “매년 파업 벼랑 시민 피로감 누적… 근본대책 찾아야”라고 보도하였습니다. 

물론 갑작스런 시내버스 파업과 운행중단으로 매일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36만여명의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시민들이 겪는 불편 못지않게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파업 할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2014년 한국노동법학회가 주최한 국제 학술 대회 참가한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의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파업과 같은 쟁의행위는 그 자체로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현대 유럽 국가에서 노동자들의 파업을 다루기 위해 형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며, 파업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 행위 등 형법상의 문제가 아니라면 파업 자체는 범죄 시 할 수 없다는 견해를 피력하였습니다.

 

시내버스 파업...시민 불편해도 노동자 권리

코로나 기간 동안 ‘눈 떠보니 선진국’이란 말이 크게 유행하였지만, 우리사회는 여전히 노동자들의 파업을 불온시하는 경향이 남아있고, 파업하는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악법이 남아 있습니다. 이른바 ‘노란봉투법’ 제정이 더딘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민들이 “편리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우리의 시민권이지만” 동시에 “노동자의 파업은 그들이 가진 마지막 권리”라는 것을 똑같이 중요하게 전제하고 파업 문제의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루 만에 중단된 지난 19일 파업이 지속되었다면 큰 혼란과 불편이 생길 수도 있었습니다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창원시의 적극적인 중재로 하루 만에 파업이 철회되었다는 것인데요. 매년 파업이 반복되는데도 창원시민들은 시내버스 파업 문제에 대해 조금씩 관심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느냐하면 그건 바로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매일 시내버스로 통학이나 출퇴근하는 시민은 36만명이지만, 승용차를 이용하는 시민은 세배나 많은 94만명이고, 택시를 이용하는 승객은 19만명입니다. 즉 창원시의 수송분담율은 승용차가 60%, 택시가 12%이고, 대중교통인 시내버스의 수송 분담율은 24%에 불과합니다. 즉 시내버스 이용 승객이 매년 줄어들고 있고, 줄어드는 만큼 승용차 구입이 늘어나기 때문에 시내버스 파업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과 관심도 동시에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막상 현실에서는 전혀 엉뚱한 문제로 시내버스 파업에 따른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있었는데요. 바로 지난 19일 시내버스 파업으로 인하여 생긴 승용차 교통체증으로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컸다는 것입니다. 시내버스가 멈춘 지난 19일 출근과 등교 시간, 평소에는 집에 세워져 있던 승용차들이 한꺼번에 도로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버스로 출근하던 가족들과 버스로 등교하던 아이들을 승용차에 태워 직장이나 학교로 태워주기 위해 차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왔기 때문인데요. 평소 승용차로 출퇴근 하시던 많은 분들이 시내버스 파업이 있던 날 지각을 했다며, 또 다른 불편을 호소하였습니다. 

 

공공교통 활성화 안 되면...파업 해도 해결 안돼


한편, 시민들은 창원시의 경우 대중교통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준공영제를 도입하였고, 벌써 2년이나 되었는데, 파업이 지속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작년만 해도 준공영제 운영에 877억원이나 되는 예산을 쏟아부었고, 2018년 연간 398억원이었던 재정지원금이, 2019년 432억원, 2020년 506억원, 2021년 634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데도 파업사태가 매년 반복된다는 주장입니다. 

준공영제 시행 후에 예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거리 두기’가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그로 인하여 시내버스 승객이 크게 줄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내버스 회사의 적자 만큼 준공영제에 따른 지원금이 늘어났는데요, 문제는 코로나 3년 동안 줄어든 승객이 앞으로도 늘어날 가능성이 없어 만성적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 승용차 등록 댓수는 약 4만대 정도 증가하였는데, 2019년부터 4년 간은 무려 9만대가 증가하여 2023년 현재 65만대의 승용차가 운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BRT를 도입하고 시내버스 노선 개편이 이루어져도 창원시의 대중교통정책은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져나오기 어렵습니다. 준공영제로 900억 가까운 예산이 투입되지만 승용차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고, 시내버스 승객은 늘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승객이 늘어나지 않으면 또 다시 재정적자가 증가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고, 적자 폭이 커지는 만큼 시내버스 노동자들의 임금과 처우개선도 어려울 것입니다. 

 

버스가 승용차보다 빨라야 대중 교통 살아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결국 시내버스 승객을 늘일 수 있는 교통정책의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한데요. 시내버스 승객이 늘어나는 선순환이 시작되면 재정적자가 줄어들고, 적자가 줄어들면 노동자들의 근무조건도 개선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대중교통 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시내버스 승객을 늘이면서, 동시에 승용차 운행을 불편하게 하는 교통정책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시민단체가 3~4년 주기로 시민들의 시내버스 만족도 조사를 하고 있는데요. 창원시민들이 시내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승용차를 구입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목적지까지 가는데 승용차에 비해 시내버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것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경남대학에서 창원대학까지 승용차로 이동하면, 도로비를 내야하는 마창대교를 건너지 않아도 34분이면 가능한데,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아무리 빨라도 1시간 7분이 걸립니다. 

 

두 배가 넘는 시간 차이를 줄이지 않으면 버스 승객이 늘어나기 어려운데요. 창원시의 경우 이런 노력이 너무나 더디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버스 운행시간을 단축하고, 승용차 운행을 억제하려면 편도 2차선 이상 모든 도로에 버스중앙전용차로제를 도입하는 것, 지하철과 같은 1회 이상 환승을 전제로 한 운행시간 단축 같은 획기적인 대중교통 우선 정책을 도입하지 않으면 선순환 구조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처럼 모두가 시내버스를 기피하고 사회, 경제적 약자들만 울며겨자먹기로 불편한 시내버스를 이용하고, 각자도생하듯이 승용차를 몰고 나오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면 지구상에서 가장 불편한 도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