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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4일이 왜 경남도민의 날이야?

by 이윤기 2024.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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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KBS1 라디오 <라이브 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2023. 9. 25 방송분)

 

경상남도가 올해부터 10월 14일을 도민의 날로 정하고 기념행사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1993년 폐지되었던 경남도민의 날을 20년만에 다시 부활시킨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새롭게 제정되는 10월 14일, 경남도민의 날이 도민들이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만한 날인지에 대하여 다른 도시와 비교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지난 21일 개최 경상남도의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경상남도 도민의 날 조례’가 제정되면서 올해부터 기념식과 축하공연이 개최된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여태껏 경남도민의 날이 없었는가 하고 의아해 하실텐데요. 사실 경남도민의 날은 이번에 처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1982년 10월 14일 지금은 창원시가 된 마산에서 경남에서는 처음으로 전국체육대회가 개최된 날을 기념하여, 이듬해인 1983년부터 10월 14일을 도민의날로 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념행사를 닷새 앞둔 1983년 10월 9일 미얀마에서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사건이 터졌습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이 방문 표적으로 북한이 폭탄테러를 일으킨 사건인데요. 당시 정부 인사와 수행원 등 17명이 목숨을 잃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하였는데, 희생자 장례식이 ‘경남도민의날’ 하루 전날인 10월 13일에 합동국민장으로 치러지게 되면서 제1회 경남도민의날 행사는 취소되었습니다. 이후 매년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 추모행사가 도민의 날과 겹치면서 행사는 매년 취소되었고, 10년 후에는 조례를 폐지하여 도민의 날이 없었던 겁니다. 

이번 도민의 날 조례 제정은 작년부터 시작되었는데, 12월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도민 여론조사에서 59.2%가 도민의 날 제정에 찬성하면서 빠르게 추진되었습니다. 도민의 날을 언제로 정할 것인지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3.15의거 기념일인 3월 15일, 진주대첩 승전일인 10월 10일, 경상도가 남북으로 갈라진 8월 4일, 도청이 창원으로 이전한 7월 1일 등이 추천되었습니다. 한편 도민들은 경상도가 남북으로 갈라진 1896년 8월 4일을 가장 선호하였지만, 경남도와 의회는 1982년 전국체전 마산 개최를 기념하는 10월 14일을 도민의 날로 확정하였습니다. 

 

도민 여론 무시하고...행사하기 좋은 날 골랐다?

경상남도는 10월 14일로 개정한 까닭을 설명하면서 “8월 4일이 취지는 좋으나 8월은 이상 기후로 인한 폭염과 휴가철로 인해 기념식이나 부대 행사를 하기 어렵고, 7월 1일은 창원시민의 날 및 지자체장 취임일과 겹치는 점, 3월 15일과 10월 10일은 일부 지역에 편중된 기념일이어서 배제했다”고 설명하였고, 아울러 “특정 시·군이나 지역에 편중된 기념일은 배제하고, 경남 재도약과 화합을 도모하자는 차원에서 중단된 도민의 날을 이어가기로 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1982년 전국체전 했던 날을 도민들이 기념해야 하는 도민의 날로 정한 것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인구 추계 자료를 보면 현재 경남 도민의 절반 이상은 1982년 이후에 태어났거나 1982년 이후에 경남으로 이주한 사람인데, 1982년 도민체전 개막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지금부터 서울, 부산, 광주시민의 날을 정한 취지와 날짜의 상징성을 살펴보면서 우리 경남과 비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서울입니다. 1994년 제정된 서울 시민의 날은 10월 28일인데요. 10월 28일이 무슨 날이야 하고 의아해 하실텐데...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일행이 개성을 출발에 한양에 도착한 날이 10월 28일이고, 한양 천도 6백주년을 기념하여 이날을 시민의 날로 정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부산시민의 날은 1980년에 제정되었는데요. 부산시는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부산포 해전에서 대승을 거둔 10월 5일을 시민의 날로 정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왜 그날로 정했냐하는 것인데요.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 부산진성, 수영성, 다대포성에서 수 많은 백성들이 왜군과 맞서 싸우다 순절하였고, 성이 함락된 후에는 주민들이 뭉쳐서 전국에서 처음으로 의병을 일으켜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항전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부산포 해전에서 왜군의 대선단을 전멸시켰으며, 조선 수군이 재해권을 완전히 장악한 승전 기념일을 부산시민의 날로 정한 것입니다. 

부산 시민의 날, 역사적 의미 담아 제정


잘 아시다시피, 부산시민의 날이 제정된 1980년이면 79년 부마 민주항쟁과 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혼란스런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되돌아봐도 놀라울 만한 시민참여 방식으로 시민의 날이 제정되었습니다. 시민의 날 제정을 위해 부산과 관련되는 각종 역사 자료를 수집하였으며, 시보와 반상회 홍보물을 활용하여 전 시민들에게 시민의 날 제정을 추진을 알리고 의견을 수렴하였다고 합니다. 아울러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공청회 개최, 새마을분과 위원회, 시정평가 교수단 등 여러 단위에서 시민 의견을 모아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6개 초안을 살펴보면 1안은 동래부사 송상현 공 순절일 5월 25일, 2안은 이순신 장군 부산포 해전 승전일인 10월 5일, 3안은 부산항 근대 개항일인 2월 27일, 4안은 부산시 승격일인 8월 15일, 5안은 부산시민헌장 제정일인 8월 1일, 그리고 6안은 부산직할시 승격일인 1월 1일이었다고 합니다. 여섯 가지 후보 안을 두고 위원회에서 장 시간 격론을 벌였지만 단일 안으로 합의하지 못하여 무기명 비밀투표까지 하였는데, 결론은 시민들의 찬성이 가장 많았던 10월 5일로 정했다는 것입니다.

 

시민총회, 개최하는 광주 시민의 날

다음으로 광주시민의 날은 5월 21일입니다. 1966년에 처음 제정된 광주시민의 날은 2010년까지 11월 1일이었습니다만, 2010년부터 날짜를 5월 21일로 변경하였으며, 민주·인권·평화 도시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5월 21일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총칼에 맞서 싸우던 광주시민들이 시민의 힘으로 계엄군을 몰아내고, 자치 활동에 나섰던 날을 기념하기 위해 5월 21일로 변경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광주시는 1980년 5월 당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도청광장에 모였던 ‘민주화·민족대성회’의 뜻을 이어받기 위해 2017년부터 전 시민이 참여하는 <시민총회>를 개최한다고 합니다. 시민총회는 시민의날 행사 기간동안 시민들이 제안한 정책을 놓고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토론을 한 후 찬반투표를 통해 정책반영까지 결정하는, 시민참여와 주민 자치를 통해 직접 민주주의의 전통을 되살리는 기념행사인데요. 

 

스위스의 직접 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늘 부러워하였던 스위스 주민총회와 같은 직접민주주의를 통한 공론장이 광주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 참 놀라웠구요. 더군다나 시민의 날 기념행사가 보고 즐기는 단순한 축제로만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도 너무너무 부러웠습니다. 전국체전 개최를 기념하는 경남도민의 날, 여러분은 좀 부끄럽지 않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