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KBS1 라디오 <라이브 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2024. 4. 8 방송분) |
지난 주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 동안 4.10 국회의원 총선거 사전투표가 이루어졌습니다. 사전투표율이 OO%로 어느 때보다 유권자들의 관심이 높은 총선이 치러지고 있는데요. 여전히 OO%의 유권자들은 아직 투표를 하지 않으셨는데요. 많은 분들이 4월 10일에 투표를 하시겠지만, 나 한 명 투표한다고 뭐가 바뀌겠어하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 오늘은 세상을 바꾼 한 표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단 한 표 차이로 세상이 바뀐 가장 큰 사건은 독일에서 있었습니다. 1923년 8월 23일 독일 취리히에서는 독일 국가 사회주의 노동자당( NSDAP), 일명 나찌당의 당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이날 선거에서 세계를 뒤 흔들어 놓은 그 유명한 분이 당대표로 선출되는 데요. 청취자 여러분도 잘 아시는 바로 그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유태인 학살을 포함하여 히틀러가 일으킨 전쟁 때문에 5000만 명 이상이 희생을 당하였지요. 그늘 이날 당내 선거에서 단 한표 차이로 당선되었습니다.
히틀러는 단 1표 차이로 당선되었다
히틀러는 당대표가 된 후에 민주공화제 타도와 독재 정치 강행, 베르사유 조약 폐지, 민족주의와 반(反)유대주의 그리고 백화점과 다국적 기업 공격 등을 포함한 25개 조항으로 된 나치당의 당 강령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날 한 표 차이로 당대표가 된 히틀러가 바로 권력을 잡은 것은 아니지만, 그로부터 10년 후 독일총리로 임명되는 결정적인 정치적 기반이 되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당시 힌덴부르크 독일 대통령은 1929년부터 본격화된 대공황으로 경제 혼란을 수습하기 위하여 1933년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하였고, 총리로 임명된 히틀러는 보수파와 군부의 협력을 얻어 좌파(공산주의) 세력과 반대파를 감금, 납치, 암살, 고문, 불법적인 재판과 처벌 등의 방법으로 탄압 합니다.
총리로 임명된 히틀러는 기존 바이마르 공화국의 무능함을 강조하여 인기를 모은 뒤 1933년 7월 일당독재 체제의 기틀을 확립하였습니다. 이듬해 8월 힌덴부르크가 죽은 후 국민투표를 실시해서 총리와 대통령의 지위를 겸하게 되었고 그 지위를 총통(Führer)이라 칭하였으며 전권 위임법에 의해 바이마르 공화국은 종말을 맞이했고 제3제국이 시작되었습니다.
제3제국이 건국되지 각 지방 의회가 해산되고 사민당은 불법화되었으며, 각종 단체와 조합들이 나치당의 하부조직으로 바뀌었습니다. 동시에 나치 조직 내부의 권력 재편에 착수하면서 군대를 나치당원에 융합시켰으며, 완벽한 권력 장악으로 명실상부한 독일의 독재자가 되어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 모든 재앙의 출발은 1923년 8월 23일 당대표 선거에서 히틀러가 한 표 차이로 당선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단 1표차 역사가 바뀐 사례...영국, 프랑스, 미국에서도 있었다
여기까지 들으시고, 그건 그야말로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텐데요. 이렇게 한 표 차이로 역사가 바뀐 일은 또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영국 사례를 말씀 드려보겠습니다. 17세기 잉글랜드 연방의 독재자였던 크롬웰도 투표로 선출된 독재자입니다.
올리버 크롬웰은 1645년 왕당파를 상대로 한 네이스비 전투에서 의회파의 승리로 이끈 후, 크롬웰에게 통치권을 부여하는 원로회의에서 91대 90, 단 1표 차이로 승리하면서 대영제국의 독재 권력자로 집권하게 됩니다. 또한 1649년 폭정을 휘두르던 찰스 1세 국왕 처형여부를 결정하는 의회투표에서도 찬성과 반대는 68대, 67, 단 1표 차이로 단두대에서 처형되었습니다.
히틀러을 당대표로 뽑은 선거는 당내 선거이고, 크롬웰에게 통치권을 부여한 선거는 원로회의 선거가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선거에서도 실제 1표 차로 당락을 가르는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1839년 미국 매사세츠 주지사 선거 때 있었던 일인데요. 이날 선거에서는 당시 현직 주지사였던 에드워드 에버렛과 도전자인 마커스 몰튼이 맞붙었다고 합니다. 이날 선거에서 에드워드 에버렛은 단 1표 차이로 아깝게 낙선하였는데요. 더 안타까운 것은 투표 당일 하루 종일 다른 사람들의 투표참여를 독려하느라 정작 자신이 투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깜빡하고 마감 시간이 지난 후에 투표소에 도착하는 바람에 주지사 선거에서 낙선하였습니다.
유권자들에게 투표 참여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선관위에서 만든 카드 뉴스를 보면 1표 차이로 역사가 바뀐 사례는 더 많이 있습니다. 1776년, 미국 의회에서 공용어를 결정하는 투표에서 단 1표 차로 독일어 대신 영어를 국어로 채택되었다고 하구요. 1875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왕정체제를 유지할 것인지, 지금과 같은 공화국으로 전환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투표가 의회에서 결정되었는데, 공화제 전환 353표, 왕당파 유지 352표로 프랑스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187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선거인단 의석수에서 단 1석 차이로 리더퍼드 헤이즈 대통령이 당선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지방선거...똑같이 득표하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국내 선거에서도 이런 비슷한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2002년 6월 13일 지방선거 때 경기도 동두천시 상패동 기초의원 선거에서 두 명의 경쟁 후보가 똑같은 득표를 하였는데, 선거법에 따라 연장자인 후보가 당선된 일이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2002년 지방선거 때는 전국 8개 선거구에서 1표 차이로 당락이 갈렸습니다. 또한 2006년 지방선거 때는 3명의 시의원을 뽑는 충주시 가선거구에서는 2002년 선거에서 1표 차이로 낙선했던 시의원 후보가 이번에는 1표 차이로 3위에 턱걸이 하여 당선되기도 하였습니다.
2008년 6월 강원 고성군수 보궐선거에서도 1표 차이로 당락이 엇갈린 사례가 있었습니다. 1차 개표에서 두 후보가 똑같은 표를 얻었으나 재검표 결과 1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에도 16대 총선 때 경기도 광주에서 후보가 3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내 한 표로 세상이 달라지겠어”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단 1표로 당락이 바뀌고 그 결과 역사와 운명을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은 욕한다고 바뀌는 것이 아니라 딱 1표 밖에 없는 유권자들이 1표씩, 1표씩 투표를 해야 마침내 바꿀 수 있습니다. 아직 투표하지 않으신 분들 4.10에 꼭 투표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