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KBS1 라디오 <라이브 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2024. 5. 20 방송분) |
읍면동 민관협치 기구이자 주민자치 대표 기구인 <읍면동 주민자치회> 운영 규정하는 <주민자치회 및 주민자치센터 설치·운영에 관한 조례>가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나라 지방자치와 주민자치 역사를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창원시가 예고한 주민자치회 및 주민자치센터 설치·운영에 관한 조례 개정안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와 주민자치 역사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4년마다 시장과 도지사, 시의원과 도의원 등을 선출하는 지방자치제는 1991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가 처음 시작된 것은 건국 직후인 1949년부터였습니다. 시장, 읍장, 면장을 지방의회에서 선출하였고, 동장과 이장은 주민이 직접 선출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지금보다 훨씬 주민참여와 주민자치가 강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단체장을 임명제로 바꾸고 지방의회도 폐지시켜 버렸으며, 1972년 독재정권이 만든 유신헌법에서는 “지방의회는 조국 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구성하지 않는다”는 부칙을 넣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87년 민주항쟁 이후 제정된 제6공화국 헌법에서 유신헌법의 독소 조항이 삭제되고, 1988년 지방자치법을 전면 개정하여 30년 만에 지방자치가 부활됩니다.
1991년 지방의회를 구성하였고, 1995년부터는 단체장을 시민이 직접 선출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읍면동 단위의 주민자치는 2003년부터 주민자치위원회가 구성되면서 되살아나기 시작하였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3년이 되어서야 읍면동의 민관협치 기구이자 주민자치 대표 기구인 <주민자치회>로 전환이 시작됩니다. 5.16군사 쿠데타로 중단된 읍면동 주민자치가 50년 만에 부활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50년만에 부활한 읍면동 주민자치회... 조례 후퇴
창원시는 2019년부터 주민자치회 시범 운영을 시작하였고, 2021년 55개 읍면동 주민자치위원회가 모두 <주민자치회>로 전환하여 주민자치위원들이 중심이 되어 마을 자치 계획을 세우고, 주민 총회를 개최하여 자치 계획을 승인 받고, 주민자치센터를 운영, 마을신문 발간, 마을 축제 개최 등 다양한 자치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과 비교해보면 창원시의 주민자치회 전환은 다소 늦은감이 있지만, 그동안 주민자치와 주민자치회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창원시의 노력은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뒤지지 않았습니다.
2019년부터 주민자치회 전환을 시작하면서 창원시에서는 주자치회가 중심이된 마을자치를 지원하기 위하여 주민자치위원 읍면동 단위로 교육과정을 개설하여 현장을 지원하였고, 코로나 기간동안에는 다양한 비대면 온라인 교육과정을 마련하였습니다. 아울러 주민들이 직접 자치 계획 수립, 마을 비전 등을 만들 수 있도록 전문 강사와 컨설팅을 지원하였습니다. 이런 창원시의 노력과 지원을 통해 지난 3~4년 사이에 읍면동 단위에서 다양한 모범 사례가 만들어졌고, 전국주민차지 박람회 등에서 모범 사례로 선정되어 여러 차례 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창원시가 <주민자치회 및 주민자치센터 설치·운영에 관한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개정안을 살펴보면, 첫째 주민자치회위원의 자격을 18세 제한, 결격 사유에 창원시 공무원과 성범죄자를 추가, 자진하여 사임한 경우 2년간 위촉 제한을 두도록 하였습니다.
두 번째로는 주민자치회 선정위원회를 구성하는 내용을 추가하였으며, 기존 추첨 방식에서 위원회 추천과 추첨을 절반씩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세 번째는 주민자치회장 및 부회장의 임기를 한 차례 연임할 수 있도록 하고, 주민자치회 사무장의 자격을 위원 중에서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민자치회 설치·운영을 지원하는 관련 법인 또는 단체를 지원하는 규정을 삭제하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추첨과 추천 절반씩... 위원장, 부위원장 연임 가능
우선 바람직한 개정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현직 창원시 공무원과 성범죄자를 위원으로 참여할 수 없도록 한 것이며, 찬반이 엇갈릴 수 있지만 한 번만 할 수 있었던 주민자치회 회장과 부회장을 1회 연임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임기가 단임인 경우는 대통령 밖에 없는데, 대통령도 4년 중임 개헌 여론이 높은 것을 감안하면 주민자치회장과 부회장을 1회 연임하는 것은 장점이 많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위원의 자격을 18세 이상으로 제한한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소개되는 주민자치회 운영 모범 사례를 보면, 청소년들이 위원으로 참여하여 어른들의 시선으로 발견할 수 없었던 마을의 문제를 발굴하고, 청소년의 입장에서 해결한 사례들이 많이 있습니다. 참정권 확대 운동을 하는 청소년들은 16세 선거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이미 여러 선진국에서 16세부터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저는 주민자치회를 민주주의 학습장으로 이해한다면 나이 제한을 두지 않고 청소년들의 참여를 권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개정안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주민자치위원 선발하는 방식을 심각하게 후퇴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주민자치위원 선출은 주민이 직접 선거를 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일정한 자격을 갖춘 주민이면 누구나 위원 공모에 참여할 수 있고, 공평하게 추첨을 통해 선발하고 있어, 결격 사유가 없는 모든 주민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정안은, 주민자치위원의 절반만 지금처럼 추첨으로 뽑고, 절반은 읍면동장이 5명 이내의 위원선정위원회을 구성하여 절반을 뽑도록 변경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선정위원은 읍면동장과 관내 주요기관, 단체 또는 주민자치회에서 추천하는 5명으로 구성되는데요. 주민자치회가 실질적인 주민대표기구로서 행정과 대등한 거버넌스 관계를 구축하려면, 선출과정에서 주민의 대표성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읍면동장이 주도하는 선정위원회가 주민자치 위원 50%를 추천하게 되면 대표성을 잃게 될 것이 자명합니다.
현재의 추첨제 방식으로 인하여 위원 선발이 어려웠다거나 혹은 위원회 운영에 문제가 생겼다거나 하는 부작용이나 잘못된 점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민주주의 기본 원리에 반하는 새로운 선발 방식을 도입하는 것은 매우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방자치와 주민자치 역사로 보면 창원시는 5.16군사 쿠데타 이후 60년 만에 주민자치를 되살리기 위한 첫 발걸음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아무런 부작용이 없는 추첨제 방식을 버리고, 밀실 공천을 연상시키는 추천위원회 구성으로 돌아가려는 시도가 창원시 의회 심의과정에서 꼭 바로잡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