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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교육, 대안교육

오직 춤을 위해 살아있는 아이들

by 이윤기 2009.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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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능력고사나 논술과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책, 웬만한 어른들은 '용어풀이'를 참고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단어가 난무하는 책, 그다지 인생의 교훈이 되거나 귀감이 될만한 내용은 별로 없어 보이는 책, 그렇지만 브레이크 댄스에 푹 빠진 고등학생들의 고뇌와 열정은 가득 담긴 소설이 나왔다.

작가의 청소년기나 학창시절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바로 우리 주변에 있는 아이들의 삶을 그대로 옮겨놓은 실감나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어른들에게는 어려운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청소년기의 자녀를 두었다면 이해해야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바로 제 4회 사계절 문학상 대상을 받은 신여랑의 <몽구스 크루>가 그 책이다.

이 책에는 비보이, 비걸, 배틀, 루틴, 탈락, 핸드 글라이드, 나이키 프리즈와 같은 생소한 단어들이 가득 들어 있다. 따라서 또래 아이들이라면 다 알만한 내용인지 몰라도 웬만한 어른들은 책 뒷부분에 따로 있는 용어풀이를 열심히 읽어도 '나이키 프리즈'가 어떤 건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브레이크 댄스와 관련된 용어뿐만 아니라 <몽구스 크루>는 그들의 눈높이에서 톡톡 튀는 그들의 생생한 언어로 쓰여진 소설이다. 춤추는 아이들을 오랫동안 가까이서 만난 작가의 노력이 맺은 결실일 것이다.

신여랑이 쓴 <몽구스 크루>는 지진아에 왕따 그리고 사고뭉치인 형 오진구와 그의 정상적인 동생 오몽구가 브레이크댄스에 빠져들어 생기는 이야기이다.

고등학교 1학년인 오몽구는 인문계 고등학생이며 뛰어나게 공부를 잘 하지는 않지만 대충 모범생 부류에 속한다. 그러나 실업계 고등학교 2학년인 그의 형 오진구는 지진아에 가깝고 사고뭉치에 속한다. 그리고 동생 오몽구는 사고뭉치이면서도 엄마의 편애를 받는 진구를 도저히 형으로 인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몽구는 진구를 형이라고 부르지 않고 그냥 진구라고 부른다.

형제는 서로가 열등감에 휩싸여 있고 그것 때문에 서로가 갈등한다. 진구는 또래보다 뭐 하나 잘난 것이 없는 자신과 반대로 제 몫은 늘 척척 알아서 해 나가는 잘난 동생 때문에 열등감에 빠져 있고, 엄마는 그것 때문에 늘 진구를 감싸고 돈다. 다행히 진구에게는 춤에 재능이 있어 비보잉의 세계에서 알아주는 수준급 춤꾼이 되지만 동생 몽구에 대한 열등감은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반대로 몽구는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던 진구가 어느 날 춤에 빠져든 후에, 미친 듯이 몰입하며 자신만의 춤을 출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부터 최고라고 인정받는 진구 때문에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만다. 진구의 화려한 몸놀림과 신기에 가까운 춤을 보면서 항상 무엇이든지 자신보다 못했다고 생각했던 형이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자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몽구는 춤과 공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학교 성적도 어느 정도 유지해야겠다는 욕심 때문에 학교를 마치면 학원으로 달려가지만, 학원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늘 연습실에 가 있다. 형인 진구뿐만 아니라 함께 춤을 추는 친구들도 모두 몽구는 적당히 춤을 즐기다가 결국 자신의 길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젊음을 바쳐 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 아이들

그러나 다른 멤버들 역시 공부에 목숨을 걸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비보잉을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현실적인 수단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들 나름대로의 인생의 고민도 엿볼 수 있다. 특기자 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하려면 상을 많이 받아서 점수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춤이 좋아 춤에 푹 빠진 이들 역시 대학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안타깝다.

공부와 학교를 둘러싼 아이들의 고민과 어른들의 염려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과연 요즘 어른들은 이 소설에서처럼 아이들을 이해하는 사람이 많아졌을까? 아니면, 정말 이제는 뭐 하나만 똑 부러지게 잘하면 되는 세상일까? 하지만 아이들은 벌써 다 알고 있다.

"고등학교 자퇴한 서태지도 문화대통령 소리 들으며 사는데, 왜 꼭 대학에 가야 하나? 나는 정말 학교 가기가 싫다. 이 세상에서 학교 가기 좋아서 다니는 사람 아무도 없다. 그래도 가는 건, 대한민국 땅에서 고교 중퇴로 살아갈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몇 몇 천재들이야 다르겠지만." (본문 중에서)

"너 춤춘다며? 공부도 웬만큼 하는 것 같더니만, 아무래도 힘들지? 하긴 요샌 뭐든지 하나만 잘하면 되는 세상이니까. 열심히 춰라! 근데 너 춤은 잘 추냐? 대신 춤을 추려면 확실하게 춰! 그래야 뭐가 돼도 되는 거지, 어영부영했다간 낙동강 오리알 신세야!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본문 중에서)

아이들은 그래서 힘들다. 공부 말고 뭐라도 하나 똑 부러지게 잘하면 좋겠지만, 다른 걸 시작해도 자신이 천재가 아닌 아이들이 더 많다. 몽구는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진구와 같은 춤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진구는 죽자 살자 열심히 노력하기도 하지만, 몽구의 눈에 진구는 "무대를 들었다 놓는, 그리하여 보는 사람의 입이 쩍 벌어지고, 가슴이 세차게 뛰고 환호가 터지게 만드는" 타고난 춤꾼이다.

그런데, 몽구는 자신이 그동안 발견하지 못한 모습을 진구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공부와 춤 사이에 양다리를 걸친 몽구와는 다른, 진짜 춤꾼의 모습인 것이다. 몽구스 크루를 떠났다 돌아와 새로운 리더가 된 진구는 '베틀 오브 더 이어' 대회를 준비하면서 춤만 잘 추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춤에 관한 한 전문적인 연구를 팀원들에게 요구하는 학구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춤을 즐긴다, 연습은 놀이처럼...

뿐만, 아니라 대회에서 몽구스 크루의 순서를 앞두고는 팀원들은 모두 불러놓고 뛰어난 리더십을 드러내는 격려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몽구가 상상할 수 없었던, 구구단을 6단밖에 못 외는 진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거야, 바로! 웃어! 즐겨! 나는 좋아 죽겠어. 저기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무대가 있는데, 두려울 게 뭐야! 뭐, 우리 다 알잖아? 다른 팀들이 입 떡 벌어지게, 눈알 튀어나오게 잘한다는 거! 그렇지만 우리 쪼는 건 여기까지만 하자! 지금부터 우리 졸아붙은 심장에 빵빵하게 바람 넣고 간댕이 부은 개구리처럼 미치자! 행복하게 즐겁게, 오늘, 지금, 여기서 미치자."(본문 중에서)

<몽구스 크루>의 '몽구스'는 몸집은 작지만 사냥 실력은 최고인 사향 고양이과의 작고 날렵한 동물 이름인데, 책에서는 비보이들인 춤꾼 주인공들이 이 동물의 이름을 클럽의 명칭으로 사용한다. 몽구스라는 이름은 주인공 몽구를 연상시키지만, 작고 날렵한 사냥꾼에 걸맞는 춤 실력은 형인 진구를 닮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 책을 쓴 작가 신여랑은 "어떻게든, 대충 분위기를 풍기면 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작품의 모델이 된 비보이팀 '엠부크루'를 만나서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당혹스러웠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아이들이 춤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가졌으리라, 혹독하게 연습하리라, 그것이야 예상했지만 연습을 놀이처럼 즐길 줄은 몰랐다. 자신만의 춤 스타일을 찾아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고민조차 즐기는 아이들. 재능보다 무서운 것이 노력이고 노력보다 무서운 것이 즐기는 것이라고 했던가." (작가의 말 중에서)

시청이나 구청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수련관 강당이나 복도 한쪽 구석에는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춤에 푹 빠진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른들의 눈에는 모범생으로 보이지 않겠지만, 그들이 얼마나 진지하고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 깨닫고 이해하고 나면 그들이 추는 춤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춤이 좋은 아이들은 춤만 열심히 춰도, 음악이 좋은 아이들은 음악만 열심히 해도, 아무튼 아이들이 정말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면서도, 몇몇 천재들뿐만 아니라 대부분 아이들도 원하는 일을 하면서도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꼭 되었으면 좋겠다.


몽구스 크루 - 10점
신여랑 지음/사계절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