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KBS1 라디오 <라이브 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2024. 10. 21방송분) |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가정해체, 가정폭력 등으로 집으로 돌아가기 어렵거나 가족과의 갈등으로 자발적으로 집에서 나온 청소년을 '가정 밖 청소년'이라고 부르는데요. 가출 이후엔 거주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고, 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높기 때문에 단기, 중장기 청소년 쉼터들이 이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가정 밖 청소년들이 청소년 쉼터에 입소하기 위해서는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여성가족부 업무 지침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올해 초 발표된 국회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2020년을 기준으로 가출 경험이 있는 청소년은 11만 5700여 명으로 추산됩니다. 이 추산 자료는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1년 청소년 통계>에서 조사 대상 학생 400만명 중에서 1년 내 가출 경험이 있는 학생 비율 2.9%로 추산한 것인데요. 당시 조사에는 이미 학업을 중단한 청소년들이 제외되었기 때문에 실제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당시 여가부에서는 “가정 밖 청소년은 자신의 주거 환경을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고, 쉼터 등 입·퇴소가 잦아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하였습니다.
한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발간한 <2020 위기청소년 현황 및 실태조사 기초연구>는 만 12~19세 위기청소년 600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해당 조사인데, 응답자 중 66.3%가 한 번 이상 가출을 경험했다고 응답하였습니다. 복수응답이 이루어진 이 자료에 나타난 청소년들의 가출실태를 살펴보면, 학교 밖 청소년들의 가출 계기는 가족과의 갈등이 63%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자유로게 살거나 놀고 싶어서 44.5%, 가족의 폭력을 피하려고 30.8%로 나타났고, 친구나 선후배 권유, 학교다니기 싫어서, 공부에 대한 부담감, 학교폭력, 가정형편이 각 10% 미만으로 조사되었구요.
가출 후 지낸 장소를 묻는 질문에는 친구 또는 선후배의 집이 72.5%, 여관·모텔·월세방 등이 41.2%, 청소년 쉼터가 37.7%, 찜질방·고시원·PC방이 32.9%로 조사되엇으며, 건물이나 길거리 노숙 경험도 23%가 응답하였습니다. 이밖에는 친척집, 가출팸, 인터넷모임 등이 각 5% 미만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청소년복지지원법에 따라 지원하고 있는, 가정밖청소년이 24시간 머물 수 있는 청소년쉼터는 2023년 2월 기준 전국 137개소입니다. 137개 시설 전체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1367명이 전부입니다. 국회입법조사처 추산대로 가정밖청소년 규모가 11만 5000여명이라고 하면 전국에 흩어진 청소년쉼터에 입소할 수 있는 인원은 전체 가정밖청소년의 1%도 안 되는 셈입니다. 나머지 아이들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앞서 말씀 드린 청소년정책연구원의 조사대로라면 여관·모텔·월세방, 찜질방·고시원·PC방, 빈건물이나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청소년들이 부지기수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가출청소년 1%만 청소년쉼터에 입소 할 수 있어
그런데, 지난 7일 국회입법조사처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가정밖 청소년이 청소년쉼터‘에 입소하기 위해서는 소관 정부 부처인 여성가족부의 업무 지침에 따라 72시간 내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가정폭력 피해자를 비롯하여 보호자에게 연락할 수 없는 청소년들이 쉼터 입소를 포기하거나 다시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가출청소년을 실종아동으로 간주하고, 청소년쉼터 입소의 자발성 여부와 관계없이 보호시설의 장이 이를 인지한 경우 경찰에 지체 없이 신고하도록 규정하여 혼선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여성가족부는 ‘2024년 10월 8일 보도 설명 자료를 통해, 민법 제914조 친권자의 <거소지정권>에 따라 가정 밖 청소년의 입소 사실을 보호자에게 연락하는 것이지 보호자의 동의를 구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궁색한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에서는 보호자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과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성가족부의 이런 무책임한 가정 밖 청소년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이며 대책을 마련하고자 하는 국회입법조사처나 청소년 단체의 문제제기의 취지를 헤아리지 못하는 동문서답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울러 여성가족부는 ‘가정폭력 및 학대로 인한 가출 등의 경우에는 보호자 연락 원칙의 예외를 적용하여 별도의 연락을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하였는데요. 그러나 청소년쉼터에서 여성가족부 지침에 따라 입소 청소년을 실종아동으로 신고하는 경우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피해를 증명하기 어렵거나 신고를 꺼리는 청소년은 결과적으로 경찰을 통해 보호자에게 연락이 된다는 것을 간과한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소년 가출 이유 1위, 가족과의 갈등
실제로 여성가족부에서 시행한 가정 밖 청소년 실태조사 결과를 봐도 가장 많은 청소년이 ‘가족과의 갈등(70.6%)’, ‘가족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49.4%)’를 가출의 이유로 꼽고 있습니다. 가정 내 보호자와의 갈등, 그리고 가정 폭력을 경험한 청소년 입장에서 보호자에게 연락한다는 것은 보호자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도망쳐 나온 청소년의 거처 정부기관이 알려주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가정 폭력을 피해 집을 나온 청소년에게 가해 보호자의 등장은 그 자체만으로 공포와 불안을 야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현실을 무시하고 낡은 법률에 기대어 가정복귀를 당연시하는 사회적 압력과 친권자의 거소지정권 행사 때문에 사실상 폭력이 벌어지는 가정에 다시 끌려가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가족과의 갈등이나 가정폭력을 피해 집을 나온 가정 밖 청소년들 다수가 정부 예산으로 운영하는 안전한 청소년쉼터 이용을 포기하게 되고, 훨씬 더 위험한 여관·모텔·월세방, 찜질방·고시원·PC방을 떠 돌거나 빈건물이나 길거리에서 노숙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성가족부가 ‘친권자의 거소지정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입소사실을 보호자에게 통보하는 하는 것’일 뿐 ‘청소년쉼터 입소 시 보호자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며 청소년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쉼터 입소 사실을 통보 받은 가해 부모가 청소년의 가정복귀를 요구하는 경우 쉼터에서는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청소년쉼터에서 일하는 청소년 활동가들은 가정 밖 청소년이 청소년쉼터를 떠나는 자발적 퇴소 의사를 인정하는 것처럼, 청소년의 보호자 통보 거부의사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오늘까지 전국의 53개 청소년 기관, 단체들이 국가의 무책임한 청소년 정책 때문에 가정밖 청소년들이 폭력, 혐오와 차별이 존재하는 거리로 떠밀려 나지 않도록 하루 빨지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성가족부가 하루 빨리 변명 대신 대안을 마련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