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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여행 연수/자전거 국토순례

[통일자전거6]평양까지 백두산까지 달리고 싶다.

by 이윤기 2008.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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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임진각입니다. “이제 다 왔다”, “이제 다 왔다”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릅니다. 정말 다 왔습니다. 시원하게 쫙 뻗어 있던 통일로에 철책과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는 곳, 멀리 “통일의 관문”이라는 입간판이 서 있는 곳, 허가 받은 차량만이 지나갈 수 있는 곳 여기가 바로 임진각입니다.

마산에서부터 쉼 없이 600여km를 달려온 아이들이 탄 자전거가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곳 여기가 바로 임진각 입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이곳에 왔을 때, 역시 아이들은 왜 여기까지 패달을 밟으며 달려왔는지 깨닫게 됩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 한반도는 지금 상태로는 사실은 반도가 아니라는 것, 철책선으로 가로막힌 반도의 남쪽 땅은 사실은 섬이나 다름없이 고립되어 있다는 것, 우리는 비행기나 배를 타지 않으면, 다른 나라로 갈 수 없는 땅에 살고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을 실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힘겹게, 힘겹게 패달을 밟으며 가파른 오르막을 넘었던 아이들도, 가뿐하게 지치지 않고 패달을 밟아 임진각까지 달려온 아이들도, 이 곳에서면 모두 하나 같이 “백두산까지, 평양까지 내친김에 달리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우리가 타고 온 자전거로 강 건너 저쪽 땅을 달릴 수 없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며 함께 아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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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마산에서 임진각까지 달려온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각자가 모두 다른 이유로 임진각까지 패달을 밟고 달려왔습니다. 어떤 친구는 통일자전거 종주에 참가 신청했던 동생이 사정이 생겨서 대신 온 친구도 있고, 또 다른 어떤 친구는 엄마한테 용돈 5만원을 받아서 놀러가기 위하여 왔다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곳 임진각에서 아이들은 “아 ! 내가 통일을 위해 달려왔구나, 언젠가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이곳을 지나 달려가는 날이 하루 빨리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달렸구나”하고 깨닫게 됩니다.

청소년 종주단, 마침내 임진각에 서다

오후 1시 30분, 마침내 임진각에 도착하였습니다. 8월 6일 마산역 광장에서 출정식을 마치고 출발하여 꼭 6박 7일 만에 마침내 임진각 도착하였습니다. 한국YMCA 관계자들과 여러 부모님들이 마중 나와서 종주단원들을 뜨겁게 환영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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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YMCA연맹 이학영 사무총장이 격려사와 소태영 단장의 인사에 이어 청소년대표들이 4돌아가며 소감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돌아가며 소감을 나누는 시간에 그 동안 장난기가 다분했던 아이들이 진지해지기 시작했고, 심지어 훌쩍 훌쩍 소리를 내어 울면서 아쉬움을 표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조원들과 손을 맞대고 구호를 외치며 아쉬움을 달래는 팀들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할 만했어요. 저희를 도와준 로드가이드 형들이 참 고마워요.”
“평양까지 백두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 보고 싶습니다.”
“내년에도 통일자전거 행사를 하면 또 오겠습니다. 힘들지만, 재미있고 즐거웠습니다.”

결국 우리는 임진각에 도착해서 우리가 이곳까지 달려 온 공동의 이유를 함께 그리고 새롭게 발견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무리 패달을 밟아도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위하여 폭우를 뚫고, 뙤약볕 아래를 달려서 이곳 까지 온 것입니다.”

임진각에 도착하는 그 순간 아이들은 힘들었던 로드도, 불편했던 잠자리도, 복잡하고 비좁았던 샤워시설도 모두 잊어버린 듯 합니다. 아이들 마음속에는 자신이 세운 목표를 해냈다는 기쁨이 가득 차서 다른 것들은 모두 자리를 비킨 모양입니다.

마지막, 순서는 함께 윤회 악수를 하면서 아쉬움을 달랩니다.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손을 잡고, 어깨를 맞대며 헤어짐의 아쉬움을 나누었습니다. 새삼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손을 잡으며 눈을 맞추고 보니 일주일을 함께 보냈음에도 낯선 얼굴이 있다는 것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동안 힘들어하며 자주 뒤로 쳐졌던 아이들은 많이 익숙한데, 꾸준히 전체 페이스에 맞추어서 종주를 잘 한 친구들이 오히려 익숙하지 않았던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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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주 마지막 날인 오늘은 아침 무지개를 보며 산뜻하게 출발하였습니다. 날씨가 잔뜩 찌푸리긴 하였지만, 흔치 않은 아침무지개를 만나니, 무사히 임진각까지 갈 수 있겠다하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아침 6시에 일어나기로 하였지만, 많은 아이들이 기상시간 보다 일찍 일어났습니다. 종주 일정의 마지막 날이라는 기대와 설레임이 아이들을 일찍 깨운 모양입니다.

통일의 여명을 여는 새벽 무지개

새벽에는 구름사이로 햇살이 비췄지만, 6시에 일어나서 출발준비를 하는 동안 날씨는 다시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비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단체 사진을 찍는 동안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다행이 빗줄기는 굵어지지 않아 흐린 하늘이지만,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아침 ‘로드’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오전 7시 15분에 출발하여 시흥에서 부천으로 넘어가는 첫 번째 고갯길이 가파른 탓에 출발부터 애를 좀 먹었습니다. 시흥청소년 수련관에서 부천YMCA까지는 10km를 달렸습니다.

선생님 한 분이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다가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된 아이들의 대화입니다.

“야 니는 뭐가 제일 힘드노? 오르막길 힘들제?”
“나는 오르막 길 힘드는 건 참을 수 있는데, 혼자만 뒤로 처지는기 제일 힘든다.”

체력이 달려 오르막길을 만 날 때마다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오르막길이 다리가 아프고 오르기 어려워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아이들이 오르막을 싫어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혼자만 뒤처지는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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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를 마치고 9시에 부천을 출발하였습니다. 부천에서 임진각까지 이르는 길은 비교적 급한 경사가 없고 대부분 평지가 많았습니다. 시흥 청소년수련관을 출발하여 34.86KM 지점에 있는 일산지역난방공사 앞에서 오전 10시 30분에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오이와 쵸코파이 그리고 음료수를 간식으로 나누어 먹었습니다. 체력이 많이 소진되었을 테지만, 어제까지 힘들어했던 아이들도 대부분 임진각에 도착하는 마지막 일정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20여 분간 휴식을 마치고 10시 50분에 다시 종주를 시작하여, 12시 10분에 파주 통일공원에 도착하여 두 번째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임진각까지 약 7km가 남았다고 표지판에 씌어있었습니다. 아침에 시흥을 출발하여 4시간 동안에 60.11km를 달렸습니다. 아이들이 자전거에 많이 익숙해졌고, 높은 언덕길이 없으며 일요일이라 교통사정이 좋아서 자전거가 속도를 많이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밥 한 줄로 요기를 하고 임진각으로 다시 출발하였습니다.

두 번째 휴식하고 12시 40분에 임진각을 향하여 출발하여, 50분 만에 마침내 임진각 입구 ‘통일의 문’에 도착하였습니다. 청소년 종주단이 계획한 종주 거리는 611km 였습니다만, 중간에 폭우 때문에 60여km를 점프(자동차 탑승)한 탓에 실제 주행거리는 총 569.62km를 달린 것으로 자전거 속도계에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이번 종주에는 이북이 고향인 4명의 새터민 친구들이 함께 달렸습니다. 아이들은 이북에서 살다가 남한으로 와서 살고 있는 새터민 친구들을 만나서 조금도 서로를 다르게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지냈던 새로운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일주일간의 만남이었다고 여겨집니다. 정말 필요한 통일을 위한 산교육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바퀴 두 바퀴 스스로 패달을 밟고 바퀴를 굴려 임진각까지 달려 온 이 아이들에게 통일의 의미는 일주일전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이 잘 모르는 새 어른들이 자주 말하는 ‘남북의 화해와 협력’이라는 거창한 그 일에 작은 힘을 보탰습니다. 이렇게 통일 세대가 자라나서 가까운 장래에 ‘통일의 그날’이 꼭 오리라 믿습니다.

*** 이 글은 2007년 8월 6일부터 12일까지 6박7일 일정으로 진행한 YMCA 통일자전거 종주 참가기로 당시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