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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끼 절실한 노숙자가 인문학 공부를 한다고?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강좌가 처음 시작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미국 학자 '얼 쇼리스' 교수가 시작한 '클레멘트 코스'이다.


우리나라에도 서울시를 비롯한 수도권 자치단체와 대학, 사회교유기관에서 가난한 사람들과노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강좌를 개최하고있는데, 얼 쇼리스가 시작한 '클레멘트 코스'가 그 원조라고 할 수 있다.

'클레멘트 코스'란 미국에서 시작된 일종의 실험적 '사회교육' 으로 빈민과 노숙자들에게 인문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그들이 세상을 바꾸는 일에 나서도록 하는 프로젝트이다.

2007년에 열린 어느 대안교육 강연회에서 우연히 국내에서도 노숙자를 위한 인문학강좌를 비롯한 소외 계층을 위한 여러 인문학 강좌가 진행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행복한 인문학>은 바로 관악인문대학, 경기광역자활지원센터, 성프란시스대학, 구세군브릿지센터, 의정부교도소, 안양교도소를 비롯한 국내 여러 곳에서 개최된 인문학 강좌에서 격은 크고 작은 '사연'을 담은 책이다.

여러 지역에서 개최된 인문학 강좌는 실천인문학, 현장인문학, 평화인문학, 시민인문학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고, 참가자 역시 노숙인, 자활근로자, 교도소 수용자, 지역주민 등 다양한 사람들과 이루어졌다.

가난이 대물림되는 이유

열 세 사람이 쓴 인문학 강좌의 경험에는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누구도 이 강좌를 실제로 경험해보기전에는 인문학이 사람들에게 '힘'이 될 줄 몰랐다는 것이다.

"살 집과 가족과 일터를 잃고 떠돌면서 생의 밑바닥에 내던져진 사람들에게 한 편의 시가 무슨 의미가 있을지 나도 자신할 수 없었다. 한 편의 시, 한 줄의 글이 한 그릇의 밥과 한 덩어리의 빵만큼 중요한 것이라고 말해도 되는지 나는 속으로 걱정하고 있었다."(본문 중에서 - 도종환)

"당장 한 끼 식사, 하룻밤 잠자리가 절실한 처지인 사람들을 강의실에 데려다 앉혀놓고 '공부'를 하게 만들다니, 그게 과연 가능할까. 정상적인 일상생활도 감당할 능력이 없는 듯해 보이는 노숙인들에게 언필칭 대학교육 방식 수업이란 제대로 이루어지기나 하겠는가. 더구나 취업에 필요한 실용과목도 아니고 하필이면 인문학이라니? 요즘 이 나라 대학에서조차 일방적으로 내몰려 천대받고 있는 바로 그 인문학 과목들을 말이다."(본문 중에서 - 임철우)

도종환, 선생과 임철우 선생뿐만 아니라 소외 계층과 만나 인문학 강좌를 진행한 필자 모두가 처음엔 대개 비슷한 생각을 하였다고 한다. 다만, 얼 쇼리스와 같은 외국에서의 성공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반신반의하는 상황이었을 뿐이다. 그럼 이들의 이런 생각은 어떤 계기로 바뀌었을까?

한 강좌, 두 강좌 수업이 진행되면서 인문학 수업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사회를 새롭게 보는 경험을 통해 새로운 기쁨과 삶의 에너지를 찾아가는 수강생들을 만나면서 자신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하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이 폭력과 온갖 적대적인 사회적 조건들에 포위된 채 가난을 대물림하며 살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세상과 타자와 올바로 소통하는 방식을 배울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타자와 소통이 가능하려면 먼저 자신에 대한 성찰과 자존감을 스스로 확보해야 하는데, 바로 인문학이 그것을 가증하게 해줄 것이라고. 인문학이 가진 최고의 미덕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찰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그리고 이 성찰적 사고는 자신에 대한 자각과 함께 타자와 사회를 성찰하는 일로 이어짐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를 꽃피게 할 것이라고."(본문 중에서)

그렇다. 소외 계층은 인문학을 통해 성찰과 자존감을 회복함으로써 새로운 삶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성찰은 자기 삶과 자신이 속한 사회를 새롭게 돌아봄으로써, 가난을 비롯한 온갖 어려운 사회적 조건들이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런 성찰의 과정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통해 '자존감'의 회복으로 이어지게 된다.

철학자 우기동은 단순한 인문학 교육과정은 기능교육과 교양교육을 넘어서는 삶의 가치와 주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이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당한 요구이고 정당한 권리행사라는 것이다.

"이런 교육과정을 통해 어떤 상황에도 자기의 삶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지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인식하는 자아 존중감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삶도 그런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는, 그래서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공동체적 의식을 갖고 함께 살아가는 인문정신을 체득하게 하는데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본문 중에서)

"자신들의 무지 때문에 사회에서 어렵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이들도 이것이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파악하게 되었고 우리 민족이 분단된 것도 외세의 간섭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본문 중에서)

이처럼 인문학강좌는 단순히 교양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자각시키는 학문이었던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을 떨치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공안정권이 만들어낸 한국적 표현을 사용하면, 인문학 강좌는 '의식화'교육이었던 셈이다.

시민인문학은 의식화 교육인가?

이른바 의식화 교육의 세례를 입어 세상에 대하여 새롭게 눈뜬 경험 때문에 <행복한 인문학>을 읽는 동안 '의식화 교육과 별로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였다. 실제로 소외계층에 대한 교육은 이미 1970~80년대에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회과학이 중심이 된 의식과 교육이 활발하게 일어났던 적이 있다.

철학자 이병수는 의식화 교육과 인문학 강좌에서 진행한 철학교육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의식화라는 개념 자체는 우월과 열등의 이분법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억압적인 성격을 지닌다. 가르치는 자의 전문 지식과 피교육자의 생활 경험의 식견이 차등 없이 소통될 수 있는 교육방식에 대한 고민이 없으면, 결국 철학교육도 과거의 의식화 교육과 다를 바가 없게 된다."(본문 중에서)

그는 소외계층이 단순히 수동적인 수혜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주체적 인간으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을 통한 사회변혁은 전위의 지도를 받는 민중이 아니라 길들여진 자아를 거부하고 스스로 세상과 마주하면서 세상을 읽을 수 있는 자기 성찰적 능력을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해방되는 존재를 상정한다."(본문 중에서)

즉, 인문학교육은 의식화 교육이 지향하는 종래의 혁명적 방법을 통한 사회변혁이 아니라 교육을 통한 점진적인 전망과 아울러 삶의 현장을 새롭게 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일상적 삶'에 주목하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자 이병수는 소유가 지배하는 대신 소통적 관계가 일상이 되고, 통치 대신 자치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 권력 정치 대신 생활정치가 동력이 되고, 중앙과 지방 대신 지역과 지역이 연대하는 삶의 현장과 삶의 방식의 재구성에 주목하고 있다.

비이성적인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

또한 평론가 최준영은 '나눔'의 관점에서 시민인문학을 단순히 지식인의 지식 나눔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고 평가한다. 그는, 시민인문학이 소외 계층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은 생각과 마음의 변화뿐만 아니라 경제적 능력의 향상으로도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제4 섹터라고 불리는 '사회적 기업'에 주목하고 있다. 기술이나 전문지식이 없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빈곤 계층에게 적절한 일자리를 제공하고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이 양극화를 해소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양극화 시대의 화두가 빈곤의 문제 이기는 하지만, 경제적, 정치적 관점에서만 바라보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빈곤은 분배와 정책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인문학의 관점에서는 '관계의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양극화 시대를 해소하는 것은 사회시스템과 빈곤계층의 관계의 변화를 모색하는데 주목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성과 논리 대신에 비이성적 추진력과 열정적 감성으로 뭉친 '비인성적인 사람'들에 의해 세상은 진보한다는 것이다.

<행복한 인문학>은 도종환 선생의 추천사, 임철우 선생의 프롤로그, 최준영 선생이 쓴 에필로그 그리고 본론에 해당되는 3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는 글쓰기 - 행복한 삶 쓰기, 2부는 철학 - 세상살이 인문학과 삶의 철학, 3부는 역사 - 역사와 소통하는 인문학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 다른 곳에서 주제에 맞는 강의를 진행하였던 필자들의 '경험'과 '사연'이 담겨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날, 서울광장 노제의 제관을 맡았던 도종환 선생은 우리가 만나는 인생의 벽을, 자기 앞을 가로막는 벽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꾸면서 넘어가는 담쟁이와 같이 마주하자고 한다. 국민과의 소통을 닫은 '명박산성'도 담쟁이로 휘감아 넘어갈 수 있을까?

소통과 정의가 사라진 '명박산성'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 <행복한 인문학>에서 찾아낸 울림이 큰 글 한 줄을 마지막으로 소개한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는 정의가 아닐지 몰라도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은 결코 정의가 아니다."(본문 중에서)



행복한 인문학 - 10점
고영직 외 지음/이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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