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1월 25~29일까지 '예비대학생과 함께 하는 자전거 제주 일주'를 다녀온 기록입니다. 4박 5일 동안의 자전거 일주와 한라산 산행 기록을 2회로 나누어서 연재하고, 자전거 일주를 하면서 깊어지는 젊은이들의 우정과 ‘결국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변화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공동체적 체험 기록 1회, 그리고 여행지에서 만난 인심 좋고 맛있는 집 소개 1회, 모두 4회로 나누어 올릴 예정입니다.
제주 해안도로 240km는 자전거를 타고, 한라산 성판악코스 왕복 19.2km는 걸어서, 대학생과 예비대학생들이 함께 4박 5일 동안 제주도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겨울 한복판인 지난 1월 25일부터 나흘 동안 자전거로 제주도 해안도로를 일주하고, 닷새째 날에는 눈 덮인 한라산을 올랐다.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YMCA 대학생 회원들이 기획하고 준비한 행사였는데, 고3 예비대학생 후배들과 함께하는 ‘제주도 자전거 일주’와 ‘한라산’을 등반하는 다소 무리한 등반을 하는 계획을 세웠다. 기자는 대학YMCA 회원들이 준비한 이번 행사를 지원하는 실무자로 함께 참여하였다.
대학-Y 회원들이 세운 애초 계획과 달리 고3 예비대학생 참가 신청자는 3명밖에 없었고, 오히려 대학생들이 더 많이 참가하게 되었다. 16명이 참가한 이번 제주도 자전거 일주에는 초등학생 1명, 예비대학생 3명, 대학생 2명, 대학Y 회원 7명, 실무자 3명이 참가하였다.
자전거 일주 이틀 전인 1월 23일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먼저 제주도에 도착한 2명의 실무자가 렌터카로 전체 코스를 답사하면서 시간 계획을 작성하고, 숙박 장소와 식당을 예약하였다. 1월 25일 자전거 일주단은 마산에서 출발하여, 부산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전 11시에 제주공항에 도착하였다. 마중 나온 선발대와 만나서 곧장 자전거 대여점으로 이동하였다.
제주항 근처에 있는 자전거 대여점에서 15대의 자전거를 빌리고 근처 식당에서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한 후에 인사를 나누고 ‘출발식’을 하였다. 이번 행사에서 처음 만나는 얼굴들도 있어 서먹하였는데, 출발식을 하면서 다 같이 인사를 나누고 도로주행에 대한 주의사항을 나눈 후에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기록을 위하여 출발 기념촬영을 하였다.
참가자 대부분이 평소 자전거를 일상적으로 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무리한 일정을 잡는 것보다 첫날은 가벼운 워밍업으로 짧은 구간을 달리기로 하였다. 전체 일정과 숙박 장소를 고려하여 첫날은 협재해수욕장이 있는 한림까지 해안도로와 일주도로를 번갈아 대략 40km를 달렸다.
아름다운 바닷길, 제주 해안로
기운차게 페달을 밟으며 제주항 근처 대여점을 출발하였지만, 평소에 자전거를 타지 않았던 참가자들은 용연과 용두암을 향해가는 언덕길을 만나면서 곧바로 주춤거리기 시작하였다. 자전거 일주에 대한 긴장감 때문인지 바다로 이어지는 ‘용연’에 도착하였지만, 다리를 건너서 경치를 구경하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잠깐의 휴식 후에 용두암에 도착하여 바닷가로 내려가 사진을 찍고 오는 동안 긴장도 풀리고 몸도 풀리는 듯하였다.
용두암을 출발하여 이호해수욕장-천연 돌염전-애월-한림으로 이어지는 일주도로를 달리는 동안 빼어난 제주 해안 경관을 보며 즐겁게 달릴 수 있었다. 첫날 제주시에서 한림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경사가 급한 오르막이 없어 초등학교 4학년 참가자도 무난하게 달릴 수 있었다. 해안도로를 따라서 왼쪽에는 낮은 돌담으로 구획이 지어진 농사짓는 밭들이 이어지고 오른쪽으로는 멀리 수평선이 바라보이는 제주바다를 보며 달렸다.
오후 1시 20분에 제주시를 출발하여, 오후 5시 20분에 협제 해수욕장에 있는 민박집까지 4시간 만에 도착하였다. 대략 40여km 구간을 4시간 만에 달렸으니 평균 10km 속도로 달린 셈이다. 자전거 일주 참가자들에게는 첫날 평균 속도 10km는 무난한 성적이었지만, 승합차에 배낭과 짐을 싣고 함께 따라온 지원팀 실무자는 느린 속도 때문에 많이 지겨웠다고 한다.
참가자는 모두 힘도 빠지고, 배도 고프고, 추위에도 지칠 무렵 도착한 협재해수욕장 앞바다는 이국적인 비취색 빛깔로 맞이해 주었다. 멀리서 협재해수욕장 앞바다를 바라보며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와 ~ 멋지다’, ‘야~ 바다 색깔 봐라’ 하고 감탄하였다.
마침 우리가 묵게 된 민박집 이층 창가에서는 해수욕장은 물론이고 석양이 내리는 ‘비양도’까지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해안가를 바라보면, “자전거 세워두고 사진 찍으러 가야지”하고 다짐을 하던 아이들은 막상 숙소에 도착하고, 해가 지면서 기온이 점점 떨어지자 아무도 사진 찍으러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다. 밥 먹고 씻고 쉬고 싶다는 것이 유일한 바람이었다.
첫날 묵었던 우리 숙소는 멋진 별장 건물 2층이었는데, 바닷가를 바라보는 경관은 빼어났지만 오랫동안 비워둔 집이라 보일러를 틀어놓아도 방이 쉽게 따뜻해지지 않아 밤이 늦어서야 따뜻해졌다.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숙소가 점점 좋아진다는 진행팀 이야기를 위안으로 삼으며 제주에서 첫 밤을 보냈다.
용수리 풍력단지, 마라도가 보이는 송악산
둘째 날, 토요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짐을 꾸리고, 오전 7시에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 해초로 끊인 해장국으로 식사를 하고 일정을 시작하였다. 한림을 출발하여 금능-고산-대정-중문으로 이어지는 둘째 날 일주코스는 하루 종일 60여km를 달리는 비교적 여유 있는 일정이었다.
용수리 풍력단지에 들러서 바람으로 전기를 만드는 대형 풍력발전기들을 구경하였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며 마치 머리 바로 위로 발전기 날개가 돌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가까이 다가갔을 때는 거대한 날개가 서서히 회전하면 쉭~ 쉭~ 하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커다란 날개가 돌아가는 발전기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잠시 동안이지만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대체에너지로서 풍력발전기에 관하여 이야기도 나누었다.
대정읍 산방식당에서 밀면과 고기우동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가파도와 마라도를 조망할 수 있는 송악산으로 향하였다. 송악산 아래 자전거를 주차하고 지원팀 승합차를 두 번으로 나누어 타고 송악산에 올라서 국토 최남단 마라도와 가파도, 깎아 지른 절벽과 탁 트인 바다를 구경하였다.
송악산을 지나 중문으로 가는 길은 언덕길이 많고 자동차가 많아서 짧은 거리이지만, 시간이 많이 걸렸다. 특히 산방산 오르는 언덕길은 경사가 심하여 대부분 참가자들이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고, 자전거 도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관광객이 탄 자동차가 많이 다녀서 위험하기도 했다.
오후 4시쯤 천제연 폭포 입구에 있는 민박집에 도착하여, 승합차로 정방폭포와 천지연 폭포, 쇠소깍을 비롯한 서귀포 일대를 구경하였다. 제주 올레에 소개된 외돌개 붕어빵도 맛보고 돌아왔다. 저녁에는 서귀포 매일 시장에 나가 생선회를 사다 식사를 하고 생선뼈를 얻어 와서 지리를 끓여 밥을 먹었다.
푸짐한 생선회와 '지리'를 먹어본 참가자들은 기자 더러 솜씨가 좋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한 것은 매일 시장 횟집 아저씨가 준 생선뼈와 머리 내장에 채소 노점 할머니가 챙겨준 재료를 넣고 푹 끊이고 간을 맞춘 것밖에는 없다.
매일 시장 채소 할머니는 횟집에서 얻은 생선머리와 뼈로 지리를 끓인다고 했더니, 무 하나, 청양 고추 다섯 개, 깻잎 한 줌, 미나리 한 줌, 마늘 열 쪽을 모두 합하여 2000원에 주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리’가 맛있었던 건 인심 좋은 채소 할머니 마음이 담겼기 때문이지 싶다.
*** 이 글은 2008년1월 25~29일까지 4박5일 일정으로 진행한 '예비대학생과 함께 하는 자전거 제주 일주' 참가기로 당시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