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과 세상/책과 세상 - 교육, 대안교육

프레이리, 호튼 민중교육 100년을 말하다

by 이윤기 2009. 6. 19.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서평] 파울로 프레이리, 마일스 호튼 대담집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

프레이리와 호튼, 민중에게 민중교육을 배우다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는 교육과 사회변화를 위해 헌신해 온 브라질 교육운동가 파울로 프레이리와 미국 사회운동가 마일스 호튼의 대화집입니다.

파울로 프레이리는 교육의 궁극적 목표를 인간해방으로 보고 이를 실천한 20세기의 대표적 교육사상가입니다.  1950년대에는 농민들에게 글을 가르치면서 독자적 교육방법을 개발하였고, 1963년에는 브라질 정부의 문해교육 프로그램 책임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1964년 군사 쿠데타때 체제전복혐의로 투옥되었고, 국외로 추방되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문해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였으며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였다고 합니다. 1979년 브라질로 돌아와 노동자당에 입당하였고, 1988년부터 수년간 상파울루 시 교육감을 지냈다고 합니다.

프레이리가 국내에 잘 알려진 것은 그의 초기 대표작인 <페다고지>가 일찍 국내에 소개되어 소위 '민중교육' 진영에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마일스 호튼은 상대적으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저 역시 마일스 호튼이라고 하는 탁월한 교육운동가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1932년 테네시 주의 쿰버랜드에 하이랜더 지역학교 설립을 시작으로 미국 시민권운동과 지역사회학교운동을 이끌었던 유명한 교육운동가라고 합니다.

여성인권운동가인 제인 애덤스 그리고 마틴 루서 킹 목사와 함께 일하였으며, 교육을 통해 새로운 사회질서 만들기를 꿈꾸면서 흑인과 노동자 교육에 일생을 바쳤다고 합니다. 호튼은 노동조합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잠시 하이랜더를 떠나 있던 기간을 제외하고 은퇴할 때까지 40년 동안 하이랜더 책임자로 일하였다고 합니다.

프레이리와 호튼, 100년이 넘는 민중교육 실천 '회고'

개인적으로는 <함께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를 읽으면서 처음 만난 마일스 호튼이라는 인물에게서 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이 서평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프레이리 보다는 마일스 호튼이라는 새로운 인물을 소개하는데 조금 더 관심이 기울어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린 대담은 1987년 12월 프레이리의 제안으로 호튼이 살고 있는 테네시주 하이랜더에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이 대화가 있은 지 2년 후 대담집은 책으로 출판되었으며, 호튼은 이 원고의 초안을 프레이리와 검토 하고 사흘 후인 1990년 1월 19일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책은 마일스 호튼이라고 하는 탁월한 사회운동가의 유작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는 '회고'라고 하는 독특한 방식을 통하여, 두 사람의 탁월한 교육운동가가 지닌 시민교육, 민중교육 사상을 풀어내도록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이 경험한  백 년이 넘는 교육실천 독자들과 나누는 책입니다.

마일스 호튼의 어린시절, 그리고 젊은 시절 이야기는 그가 탁월한 사회운동가로 성장하게 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학교 교육에 대한 문제를 발견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교사들이 학생들로부터 문학작품을 즐길 수 있는 가능성을 빼앗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작품을 읽고 암송해야 할 대상으로 강요하니 학생들이 싫어할 수밖에요. 저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창의력을 말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교사들을 존경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무능한 교사들에게 저항하는 방식으로 책읽기를 선택하였다고 합니다. 선생님들의 바보 같은 질문 때문에 바보가 되기보다는 혼자서 책을 읽는 것이 훨씬 더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답니다. 교사들의 집요한 방해를 뚫고 책읽기에 몰입하는 동안 비판적 태도를 키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흑인 민권운동의 배후 '하이랜더'

1932년 하이랜더 세운 호튼은 초창기에는 농촌운동과 노동운동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고, 1950년대부터 흑인을 위한 '문해교육' 운동에 집중하게 됩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법원에 가서 유권자등록을 해야만 투료를 할 수 있었지요. 흑인들에게는 이름쓰기나 영수증 작성 같은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면서 최종적으로는 투표를 할 수 있는 시민권을 얻는 일에 집중하였다고 합니다.

하일랜더 문해교육반의 첫번째 강좌가 끝났을 때, 참가자의 80%가 법원에 유권자등록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문해교육은 글자를 읽히고 쓰는 것뿐만 아니라 투표권을 획득하여 시민권을 행사하는 운동이었기 때문에 문해학교는 곧 시민(권)학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1957년 1월부터 1961년까지 400여명의 교사들이 시민학교 프로그램을 수료하였고, 다시 4000명이 넘는 학생들을 시민학교 프로그램으로 교육하였다고 합니다. 이 기간 동안 하일랜드 지역의 선거권자는 무려 300%이상 증가했다는 것 입니다.

제도권 교육 밖에서 이루어진 하이랜더의 탁월한 시민교육 사례는 사실 국내에 잘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이 책에는 하이랜더가 미국 시민권운동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이해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하이랜더에서 수십 번의 모임과 워크숍을 연 후, 미국 인종문제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시민권운동이 일어났다. 로자파크스는 하이랜더에 몇 달간 머무른 후,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라는 백인 남자의 요구를 거부함으로써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을 촉발했다."

미국 시민권운동 초창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배후'는 바로 하이랜더였던 것 입니다. 흑인들이 선거권과 정치적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읽기와 쓰기를 가르쳤으며, 대중적인 흑인 지도자들이 교사로 참여하여 '문해교육'의 원리를 개발하였다는 것 입니다.

민중교육, 1년 만에 유권자 130만명 조직

프레이리 역시 탁월한 사회교육운동가이자 문해교육 실천가 입니다. 1959년 브라질에서 레시페시에 급진적 민주주의자인 미구엘 아레스가 시장으로 당선되자 헌법 개정을 위하여 농민들에게 투표권을 줄 수 있는 문해교육에 시작합니다.

당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였던 농민, 빈민들은 글을 읽을 수 없어 투표에 어려움을 겪었고 프레이리는 이들을 교육시키는 민중문화운동의 책임을 맡았으며, 1960년에는 국가 문해교육 프로그램 책임자가 됩니다.

1964년까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적으로 백만 명에 이르는 비문해자들이 프레이리의 문해교육 방법으로 글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자 프레이리는 다른 수백 명의 활동가들과 함께 브라질에서 추방당하게 됩니다.

"투표권자의 수가 80만 명에 불과하던 당시 페르남부코의 상황에서 1년 사이에 자그마치 130만 명이 넘는 새로운 유권자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것은 정권의 권력구조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프레이리와 호튼은 모두 문해교육과 선거권을 결합시킴으로써 단순한 문해교육을 시민(권)교육으로 끌어올렸고, 바로 그 성과 때문에 오랫동안 지속된 권력구조에 커다란 위협이 되었고 결국 가혹한 보복을 당하게 됩니다.

프레이리는 쿠데타 정부에 체포되어 투옥과 고문을 당한 후에 국외로 추방당하며, 호튼 역시 매카시 선풍이 닥치자 공산주의자들과 접선하였다는 이유로 고초를 당하고 하이랜더 소유자산과 부동산을 압수당합니다.

자유에 대한 믿음, 급진적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

두 사람은 반대 세력의 음모와 공격으로 큰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자신들의 신념을 뒷받침하는 낙관주의를 버리지 않습니다. 호튼과 프레이리는 사회변혁을 위한 '민중교육' 일생을 바친 경험을 통해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믿음을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민중들의 자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확고한 믿음이다. 둘째는 민중들이 자기 해방을 위해 자유를 성취할 수 있으며, 그러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급진적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다."

호튼과 프레이리는 진정한 해방은 민중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믿었으며, 참여는 그 자체로 해방적이며 참여적인 교육실천으로 실현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호튼과 프레이리의 탁월함은 그들의 사상이 추상적이지 않다는 것 입니다.  그들의 사상은 각자의 삶속에서 이론과 실천을 결합시키면서 성장하였기 때문입니다.

제도권에서 이루어진 프레이리의 성공사례와 제도권 밖에서 이루어진 호튼의 사례는 그들을 뒤쫓는 민중교육 활동가들에게 '조건'을 탓할 수 없는 실천의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책 말미에 호튼이 소개하는 동양 철학자의 시 한 편은 독자들을 다시 한 번 놀라운 감동으로 끌어들입니다.

민중에게 가서 민중에게 배우라

민중과 함께 살고, 민중을 사랑하라

민중이 알고 있는 것에서 출발하고

민중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들어라

그러나 최고의 지도자는

모든 일이 끝나고 모든 것이 이루어졌을때,

'우리 힘으로 이 일을 해냈다'고

민중 스스로 말할게 할 수 있는 자일지니...

여러분 놀랍지 않은가요? 기원전 604년에 노자(老子)가 쓴 시라고 합니다.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 - 10점
파울로 프레이리 외 지음, 프락시스 옮김/아침이슬

▲ 가운데 사진은 로자파크스, 마틴루터킹, 마일스 호튼이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 초기 하일랜더 스쿨의 모습입니다.


▼하일랜드 연구교육센터 웹사이트